휴식을 위한 지식 - 그림, 우아한 취미가 되다
허진모 지음 / 이상미디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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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위한 지식>.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당연히 역사책인 줄 알았다. 책의 지은이가 허진모 님이었고,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의 컨텐츠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이라니~!, 그림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조합인가 어리둥절했다. 서둘러 머리말을 읽었고,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스스로 미술을 깨치는 과정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누구든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7쪽 인용)" 미술책을 쓰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역사)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식을 위한 지식>은 책의 구성이 흥미롭고 감각적이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저자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센스 넘치는 인상적인 제목들은 단번에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미 알고 있을 화가들(2장)', '알듯 모를 듯한 화가들(3장)', '잘 모르지만 알면 좋을 화가들(4장)'에 나오는 화가들의 리스트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미술 실력(?)을 체크하고 있을 독자들이 눈에 선하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ㅎㅎ.



르네상스 미술의 3대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롭다. 몇년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들의 작품을 만난 것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최후의 만찬, 피에타, 아테네 학당을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코로나19 사태의 빠른 진정을 기원해 본다. 벨기에의 자부심 루벤스는 두달 전 읽었던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림공장' 시스템을 만들어 많은 주문을 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클림트에 대한 글은 '작품에 금칠하기를 좋아하는 분'이라고 시작하고 있어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뭉크의 그림을 해골류, 좀비류, 불행한 풍경류의 셋으로 구분하고 있는 점도 기발하다. 르네상스 '4대 천왕'으로 꼽히는 티치아노를 제갈량과 같은 시대에 태어난 주유로 비유한 점은 탁월했다. 내가 한번 보고 좋아하게 된 이름 모를 작품이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었다는 것과, 그 작가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베르메르 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가장 놀랐던 건 다비드의 작품으로 실린 5개의 그림을 내가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정작 책에 실린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조금 아쉽다. (ex. 피카소, 샤갈 등)



첫장에서 '상식에서 시작하는 미술사'를 다루고 마지막 장에서 '미술에 대한 생각의 흐름, 사조'를 다룬 것도 매우 지혜롭고 영리한 구성이다. 일상의 상식에서 끄집어낸 미술의 향기가 어느새 전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미술사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의 완벽한 코스로 구성된 만찬을 즐긴 느낌이다.



원근법과 소실점의 개념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브루넬리스키의 걸작 두오모 성당과 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작품인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를 모두 피렌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르네상스의 중심이 어디인지를 알게 해준다. 바로크와 로코코를 끝으로 시대를 대표하며 미술계 전체를 아우르는 유행과 화풍은 사실상 끝났다고 한다. 삐뚤어졌다는 조롱에서 장엄한 화려함으로 평가가 수정된 바로크 양식과, '샤방샤방'하고 경쾌한 화려함을 자랑하는 로코코 양식, 다비드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입학시험에서 고대 로마인의 석상을 그리는 것이 프랑스 아카데미즘 미술의 영향이라는 점도 미술사의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모르면 지루하고 잠이 오는 법. 지식이 없는 감상은 미술을 따분한 것으로 생각케 하여 작품들을 눈으로 훑고 스쳐 지나가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그런 미술 왕초보에서 벗어나 그림과 대화하며 보다 의미있는 감상을 할 수 있는 일정한 안목을 갖추게 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그림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휴식을 위한 지식>은 '그림 앞에서 잠시 멍해질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저자의 뜻을 상당 부분 이루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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