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브레스트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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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데 유일한 어려움, 아니 속상함은 해리 홀레 시리즈가 역순으로 발간되고 있다는 것이였다. 이 책은 현재까지 발간된 9편의 시리즈 중, 세번째에 해당한다. 다시말해 이미 한국에 발간된 7-8권을 읽어버린 독자로써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 중 상당수가 조만간 어떤 미래를 맞이할 것인지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바로 나처럼. 아마도 출판사 입장에선 낯설은 북유럽 소설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거다. 그러니 가장 잘 필린 소설부터 발간할 수 밖에 없었테고. 이해는 한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다.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자의로 읽어버린 셈이니까.

 

요 네스뵈의 책을 읽으며 늘 감탄하는 건 비문으로 느껴질 문장들조차 단 하나도 허투로 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무심코 넘겼던 문장과 단어들조차 저자가 버리줄을 확 잡아당기는 순간 쫀쫀히 엮어지며 커다란 그물로 변해서 독자를 확 낚아채버린다. 게다가 매 챕터마다 어떻게 그렇게 읽는 이의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만들며 끝을 맺는지, 다음날 뒷부분을 읽을 것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책의 여운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세헤라쟈데의 이야기를 천일밤 동안 들었던 왕의 심정이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두근거림 속에서 뒷권을 읽어버렸다는 아쉬움을 다시한번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읽어버린거 뭐 어쩌겠나. 부디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랄밖에.

 

개인적으론 스노우맨도 레오파드도 재밌었지만 현재까지 한국에 나온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선 레드브레스트가 제일 좋았다. 이 책을 읽고나니 왜 이 작품을 해리 홀레 시리즈의 기본틀이 완성된 작품으로 꼽는지, 왜 레오파드를 읽으면서도 어딘가 불필요하게 넘친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 알게 됐다. 이 작품은 화려한 스케일이나 겉치레 말고 딱 실용적인 북유럽의 것, 그 자체였다. 북유럽 특유의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물론 이야기 중반부 이후에 해리 홀레가 갑자기 다중인격이란 가능성을 들고 나온 부분에선 약간 억지스럽단 느낌을 받긴 했으나 전반적인 디테일이나 구성이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보다 훨씬 좋았다. 그래서 나는 뒤의 두 작품보다 이 작품에 점수를 더 후하게 주고 싶다. 물론 내 사랑도 더 꽝꽝 찍어줄테다. 노파심으로 하는 말이지만 요 네스뵈가 앞으로 집필할 작품들 속에서도 처음에 독자들을 끌었던 이야기의 힘이 무엇이였는지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의 주인공은 두명이다. 시리즈 전체의 주인공인 해리 홀레와 이 작품 속의 가장 핵심인물인 구드브란 요한센. 해리 홀레에 대한 묘사는 나로 하여금 케빈 맥키드란 배우를 생각나게 한다. 큰 키에 피곤해 보이는 얼굴, 옅은 금발의 짧은 머리카락. 그런데 이 책에선 이전까지의 해리 홀레보다 더 젊고 살짝은 풋풋해 보이기까지 하는 해리 홀레가 등장한다.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 시절의 해리 홀레보다 좀 더 젊고 좀 덜 음울한 것도 모자라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작업을 걸기까지 한다. 보통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주인공이 산송장이 되다 못해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다는걸 역행해서 읽게 되니 기분이 묘해지고 해리 홀레란 캐릭터가 새삼 안쓰럽게 느껴졌다. 해리 홀레란 캐릭터가 너무 음울해지고 있는거 아니냐는 질문에 인생이 원래 그런거 아니냐는 작가의 대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해리 홀레의 산송장화는 계속 될 것 같다. 힘내시오, 해리 홀레.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구드브란 요한센이란 캐릭터는 20세기 초반의 광풍에 휩쓸린 대부분에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구드브란 요한센은 죽을때까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오직 조국이 옳다고 선택한 길을 그대로 따라갔을 뿐이것만, 조국이 스스로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 모든 잘못을 국민들 개개인에게 돌려버렸고 그는 평생 분노와 슬픔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가 결코 스스로의 선택을 따른 것이 아니였음에도 말이다. 우리의 20세기 초 역사 속에서도 구드브란 요한센과 같은 젊은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민족주의와 선동구호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 결백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가족과 나라에 대한 쉽지 않은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요 네스뵈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입장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는 언제나 재평가될수는 있어도 인류가 태고적부터 지켜온 보편적인 도덕성을 상실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한 재평가는 결코 없으리란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그 어디에서도 말이다.

 

이 책은 큰 줄기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지만 한가지 이야기만 종결된채 나머지 한개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끝이 난다. 아무래도 다음권 역시 목빠지게 기다려보라는 작가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진다. 다음권에서는 해리 홀레의 유머 주머니였던 엘렌의 살인범이 합당한 벌을 받을 수 있을까. 부디 그래야 할텐데. 벌써부터 다음권 이야기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다음권에선 해리 홀레가 어떤 단계의 산송장으로 진화할지, 기대해야 하나. 아마도 해야겠지. 당분간은 라켈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긴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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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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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진이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는 사실보다 더 절실한 진실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행복은 더 행복하게 슬픔은 가슴을 울리게 만들기도 한다. 궁극적으론 인간의 눈과 똑같이 만들고자하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서 인간의 눈을 뛰어넘어는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다는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사진들을 통해서 감동을 받고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감동과 영감을 원동력으로 다시 또다른 감동과 영감을 생산해낸다. 이 책 속에 감긴 수많은 무용가들과 작가 조던 매터처럼 말이다.

 

이 책을 선택한건 재기발랄한 몇장의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끌었던 몇장의 사진 이상에 감동과 영감이 이 책에 담겨 있음을 눈치채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 박진영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특별함은 진지함 안에 재미나 장난같은 무언가가 있을때 완성되는 거라고. 이 책 속엔 바로 그 특별한 순간들이 가득 담겨 있다. 때로는 작가의 의도대로, 때로는 열정과 우연만으로 만들어진 장면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영감을 준다. 이 책의 작가는 또 다른 이들에게서 이 책 속의 사진들을 만들어낼 감동과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이 또한 특별함이 갖는 순기능이 아닐까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촉촉한 키스>와 <샤워중, 아니 공연 중>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도무지 꼽을 수가 없었다.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없었으니까. 촉촉한 키스는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를 연상시키는 로맨틱함과 비가 오는 날임에도 사랑이라는 화사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색감이 참 좋았다. 샤워중, 아니 공연 중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을 유머러스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나홀로 집에의 한 장면이 연상됐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 포인트였다. 번역의 마법이 들어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사진에 대한 코멘트들도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 대해선 뭐라 설명하기 힘들다. 사진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나열하다간 스포일러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그저 강력하게 추천해주고 싶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라고. 아, 이것 한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마지막 사진으로 작가 자신의 사진을 실은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였다고 말이다. 책의 마침표로도 그가 피사체들에게 행했던 악행(?)에 사죄하는 의미로도 백점 만점의 선택이였다. 간만에 멋진 책, 멋진 특별함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쁜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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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스케치 -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할 그곳
박윤정 지음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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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대한 여행책은 국내엔 몇권 없다. 그나마도 한번 스쳐지나가는 지점이나 휴식의 공간으로만 언급될 뿐, 스위스 얘길 온전히 담아낸 책은 스위스 가이드북이 전부일 정도였다. 물론 인터넷을 두드리면 스위스에 대한 온갖 여행정보들이 튀어나오지만, 그보단 아날로그적인 책의 형태로 야금야금 읽어내려가고 싶었다. 여행이란 행위자체가 너무나 아날로그적인 외유니까 말이다. 사실 스위스란 나라에 대해서 여행책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유명한 유적지나 전시관이 있는것도 아니고, 대표적인 음식이 있는것도 아니라 여러모로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어는 세네개정도 혼용해서 쓰지, 물가마저 전세계에서 손에 꼽힐정도로 비싸니, 편히 경치구경하며 쉬고 오겠단 목적이 있지 않는 이상 굳이 스위스로 여행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 했다. 그렇지만 나는 스위스에 가고 싶었고, 스위스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최고치에 달했을 무렵 우연히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스위스의 굵직한 도시들을 11개의 지역으로 묶어서 소개한다. 개중엔 제네바나 취리히처럼 유명한 도시들도 티치노처럼 생전 처음들어보는 낯선 지역들도 있었다. 익숙한 도시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 반가웠고, 처음 알게된 도시들에선 그들이 주는 신선함에 가슴이 설레였다. 중립국이라는 스위스의 특성 때문에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머물렀다는건 알고 있었으나 그들 중에 오드리 햅번이나 아인슈타인이 있었다는 건 처음 알게 됐다. 어렸을때 분명히 아인슈타인 위인전기도 읽었으면서 난 왜 아인슈타인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건지. 그들이 머물렀던 카페나, 집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것도, 그들과 교류했던 사람들이 생생히 남아서 그들을 추억하고 있다는 모든 것들이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이게 바로 스위스란 나라의 원동력인 것 같다. 지나간 이들을 추억하고 그들에게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고이 간직하는 것, 그러면서도 현재와의 합리적인 조화를 찾는 것. 이런 스위스 인들의 모습은 자연환경을 최대한 깨끗하게 이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태도와 노력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인터라켄에 올라가 스위스의 원동력을 몸소 체험해 볼날이 올까? 그리 멀지 않은 때에 그날이 오면 좋으련만.   

 

개인적으로 여행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글솜씨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한쪽이 보완해주면 되는데, 이 책은 서로 보완해주질 못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성격과 타겟이 분명치 않다. 책 속의 사진도 온전한게 별로 없다. 스위스 스케치라는 제목처럼 책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에 일러스트를 그려놓아서 온전한 사진으로도 일러스트로도 감상하기가 애매하다. 그냥 딱 작가의 포트폴리오 책이란 느낌이다. 그렇다고 글이 좋은것도 아니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어딘가에서 한번쯤 들어본듯한 전형적인 표현들로 글을 이쁘고 교훈적으로만 풀어간다. 지금이 90년대도 아니고, 언제까지 여행책을 읽는 내내 우리 자신과 우리 나라를 거국적으로 반성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자기 자신의 여행기를 풀어내는것도 아니고, 여행 가이드북에 실릴법한 전형적인 소개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결국 이 책은 애매모호하다. 여행 책이라기엔 여행자로써의 이야기가 별로 담겨있지도 않고, 가이드 북이라기엔 여행지에 대한 소개와 사진이 부족하고, 작가의 에세이나 포트폴리오라기엔 퀄리티가 너무 떨어진다. 게다가 아무리 독일어권 지역이라지만 생 모리츠를 장크트 모리츠라고 할건 뭐란 말인가. 보통은 생 모리츠라고 부른다는 설명을 붙여줬다면 내가 갸우뚱하며 인터넷으로 검색해볼일도 없었을텐데, 이 책은 이런 친절마저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스위스 여행이란 갈증을 해소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긴 했다. TV로 꽃보다 할배를 틀어놓고 이 책을 읽는것도 꽤 괜찮은 경험이였다. 하지만 이 책의 다른 여행 시리즈들까지 읽어보고 싶진 않다. 만약 다음번에 다시 책을 또다시 출판하게 된다면 그때는 온전한 사진과 온전한 일러스트를 가득넣는 쪽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은 최소한 진심을 담아서 쓸 줄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쪽으로 하고. 빌 브라이슨의 책이 왜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읽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나는 정말 이 책을 읽는 내내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이 생각났다. 단언컨데 스위스 부분은 고작 서너장 밖에 되지 않음에도 발칙한 유럽산책이 이 책보다 더 나았다. 빌 브라이슨, 그대는 정말 여행꾼이자 이야기꾼이였구료. 그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절감하게 된건 유감입니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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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애국주의 - 언론의 이유 없는 반일
최석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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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에는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말을 책에 적용한다면, 이 책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불편한 사실들을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무겁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게 풀어냈다는 점에 후하게 점수를 주고 싶다. 덕분에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실 이미 언론의 선정적이고 비전문적이며 비객관적인 태도를 눈치챘거나 거기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들이 그리 크게 불편하지 않을 듯 싶다. 눈치채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사살 받는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언론이 이미 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 서서히 눈치채고 있었다. 클릭 한번만으로도 뉴스에서 미처 다루지 않은 자초지종을 살필 수 있게 된 세상을 살게 됐으니까. 그러다 최근 두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을 떠나 모든 언론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무책임한지를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됐다. 그들은 자신들의 오보나 과장을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며 독자들의 쓴소리나 자신들의 무리 속에서 나온 자정의 소리조차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이 빠져 있는 흑백논리만을 재생산해내며 사람들을 선동하는데만 앞장섰다. 이런 시대를 거치면서 내가 얻게 된 유일한 위안은 각종 언론 매체들이 보도하는 내용을 모두 한번 걸러서 듣고 좀더 신중하게 살펴보는 태도를 갖게 됐다는 점 뿐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대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의 반일감정에 상당부분이 언론이나 권력의 이익에 의해 선동된 것이라는 내용에도 크게 불편하거나 놀랍진 않았다. 이미 인터넷으로 정보와 뉴스가 개방된 사회에서도 자존심을 내팽겨치고 부끄러움 없이 기사를 써내려가는 언론이 정보와 뉴스의 대부분을 거머쥐고 있던 과거엔 오죽했겠는가 싶었다. 정재계에 큰 비리나 사건이 터지면 연예인들의 스캔들이 터진다거나 일본과의 갈등에 대해 크게 보도되는 일엔 이미 익숙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내 내면에 존재하는 반일감정의 일부분에 일본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에 대한 열등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거나 일본에 대한 보도가 왜곡된 사실임을 알았음에도 유독 일본이니깐 저런 욕은 좀 들어도 된다며 지나쳐 버렸던 일들이 분명히 있음을 꼬집는 부분에선 찔끔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그릇된 반일감정들은 삐뚤어진 고정관념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동해의 표기문제와, corea란 개념과 일왕이란 표현들이 언제부터 언론에 의해서 사용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고정관념으로 굳어졌는가에 대한 내용만 보더라도 이런 내용들이 상식이 아닌 상식으로써 주입된 고정관념임을 알 수 있다. 가장 객관적이여야 할 언론에 의해 잘못된 상식이 퍼지고 그 상식을 받아들인 교육을 받고 성장한 사람들이 다시 잘못된 상식에서 비롯된 반일감정들을 후학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니 답답노릇이다. 그렇게 먼저 대중을 선동하고 나섰다가 그 선동에 자신들의 발목이 잡혀 대중들의 눈치를 보게 된 언론에 대해선 자승자박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언론이 자꾸만 사실을 왜곡하여 반일감정을 증폭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이므로 그 어떤 것보다 쉽게 선동되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 때의 국정원이 김대중 사건을 덮기 위해 반일감정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나, 동시대부터 북한이 반미는 이미 먹히지 않으니 반일로 남한을 공략한다는 지침을 세웠단 기록 모두, 우리가 그 시절부터 단 한걸음도 나아지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지금도 그 상처를 헤집는 행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잘못되고 선동된 정보들까지 동원해서 그들에게 분노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잘못한 사실에 대해선 정당하게 비판하면 된다. 그것이 우리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고 우리가 일본의 과거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표현이다. 언론도 우리가 중심을 잡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한다면 분명 대중의 눈치를 보는 그들 역시 보다 자신들의 본질을 지키려고 하지 않을까. 물론 대중이 변하기 전에 언론이 먼저 스스로 변한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겠지만, 언론의 태도는 좀체 바뀌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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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의 나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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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 절감하게 된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풍월에 의하면 무엇이든 꾸준히 일주일만 하면 몸에 익어서 그 뒤로는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된다던데 일주일만이라도 꾸준하게 무언가를 한다는건 쉽지 않다. 게다가 사람의 몸이란게 얼마나 간사한지 일주일간 꾸준히 하더라도 도중에 한번이라도 흐트러지면 계속하기 힘들어지는게 현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땐 어떻게 그렇게 일기를 꼬박꼬박 썼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일년동안 꾸준히 오후 3시의 모습을 기록했다는 저자에 의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저자가 프리랜서라지만 일정한 시간에 기억을 꼬박꼬박 기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런데 저자는 그걸 꼬박꼬박 한걸음씩 해냈다. 솔직히 처음 몇장을 넘기면서 내 눈에 보인건 참 별것없는 내용과 몇줄의 글 뿐이라, 이런 내용의 책을 끝까지 읽어봐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별것아닌 일상이 쌓여서 책의 말미에 이르런 감동을 주고 책 한권을 이루어 내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도 감동적인건 이런 별것 아닌 한걸음이 아닐까.

 

얼마 전에 성룡이 한국 예능프로에 나와서 사람사는게 다 똑같다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공감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또 한번 사람사는게 다 똑같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정서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였다. 사람을 만나고 일하고 밥먹고 쉬고 기분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다가 우주 저 멀리까지 날아가기도 했다가. 기본적으로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우리나라 웹툰작가들의 생활툰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그보다는 좀더 러프하고 그보다는 살짝 깊은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 일본식 문화가 살짝살짝 보이는 색다름도 마음에 들었고 책과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함께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저자는 처음에 세운 1년짜리 계획은 오후3시에 꼬박꼬박 간식을 먹는 거였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들이 그렇게되면 사회생활하기 힘들다고 뜯어 말려서 오후 3시의 일을 기록하는 쪽으로 계획을 변경했다고. 간식을 먹는 쪽이였다면 사진으로 기록이 남게 됐을까? 그렇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은 프로젝트지 않았을까. 물론 저자의 사회생활에 큰 악영향을 끼쳤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무언가를 꾸준히 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었는데, 이건 뭐 때문에, 저건 힘들어서, 아직까지 망설이고만 있다. 역시 별것 아닌것 같아 보이는 한걸음이 가장 어려운 거다. 다시한번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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