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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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데 유일한 어려움, 아니 속상함은 해리 홀레 시리즈가 역순으로 발간되고 있다는 것이였다. 이 책은 현재까지 발간된 9편의 시리즈 중, 세번째에 해당한다. 다시말해 이미 한국에 발간된 7-8권을 읽어버린 독자로써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 중 상당수가 조만간 어떤 미래를 맞이할 것인지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바로 나처럼. 아마도 출판사 입장에선 낯설은 북유럽 소설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거다. 그러니 가장 잘 필린 소설부터 발간할 수 밖에 없었테고. 이해는 한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다.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자의로 읽어버린 셈이니까.

 

요 네스뵈의 책을 읽으며 늘 감탄하는 건 비문으로 느껴질 문장들조차 단 하나도 허투로 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무심코 넘겼던 문장과 단어들조차 저자가 버리줄을 확 잡아당기는 순간 쫀쫀히 엮어지며 커다란 그물로 변해서 독자를 확 낚아채버린다. 게다가 매 챕터마다 어떻게 그렇게 읽는 이의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만들며 끝을 맺는지, 다음날 뒷부분을 읽을 것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책의 여운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세헤라쟈데의 이야기를 천일밤 동안 들었던 왕의 심정이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두근거림 속에서 뒷권을 읽어버렸다는 아쉬움을 다시한번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읽어버린거 뭐 어쩌겠나. 부디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랄밖에.

 

개인적으론 스노우맨도 레오파드도 재밌었지만 현재까지 한국에 나온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선 레드브레스트가 제일 좋았다. 이 책을 읽고나니 왜 이 작품을 해리 홀레 시리즈의 기본틀이 완성된 작품으로 꼽는지, 왜 레오파드를 읽으면서도 어딘가 불필요하게 넘친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 알게 됐다. 이 작품은 화려한 스케일이나 겉치레 말고 딱 실용적인 북유럽의 것, 그 자체였다. 북유럽 특유의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물론 이야기 중반부 이후에 해리 홀레가 갑자기 다중인격이란 가능성을 들고 나온 부분에선 약간 억지스럽단 느낌을 받긴 했으나 전반적인 디테일이나 구성이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보다 훨씬 좋았다. 그래서 나는 뒤의 두 작품보다 이 작품에 점수를 더 후하게 주고 싶다. 물론 내 사랑도 더 꽝꽝 찍어줄테다. 노파심으로 하는 말이지만 요 네스뵈가 앞으로 집필할 작품들 속에서도 처음에 독자들을 끌었던 이야기의 힘이 무엇이였는지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의 주인공은 두명이다. 시리즈 전체의 주인공인 해리 홀레와 이 작품 속의 가장 핵심인물인 구드브란 요한센. 해리 홀레에 대한 묘사는 나로 하여금 케빈 맥키드란 배우를 생각나게 한다. 큰 키에 피곤해 보이는 얼굴, 옅은 금발의 짧은 머리카락. 그런데 이 책에선 이전까지의 해리 홀레보다 더 젊고 살짝은 풋풋해 보이기까지 하는 해리 홀레가 등장한다.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 시절의 해리 홀레보다 좀 더 젊고 좀 덜 음울한 것도 모자라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작업을 걸기까지 한다. 보통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주인공이 산송장이 되다 못해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다는걸 역행해서 읽게 되니 기분이 묘해지고 해리 홀레란 캐릭터가 새삼 안쓰럽게 느껴졌다. 해리 홀레란 캐릭터가 너무 음울해지고 있는거 아니냐는 질문에 인생이 원래 그런거 아니냐는 작가의 대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해리 홀레의 산송장화는 계속 될 것 같다. 힘내시오, 해리 홀레.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구드브란 요한센이란 캐릭터는 20세기 초반의 광풍에 휩쓸린 대부분에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구드브란 요한센은 죽을때까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오직 조국이 옳다고 선택한 길을 그대로 따라갔을 뿐이것만, 조국이 스스로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 모든 잘못을 국민들 개개인에게 돌려버렸고 그는 평생 분노와 슬픔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가 결코 스스로의 선택을 따른 것이 아니였음에도 말이다. 우리의 20세기 초 역사 속에서도 구드브란 요한센과 같은 젊은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민족주의와 선동구호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 결백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가족과 나라에 대한 쉽지 않은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요 네스뵈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입장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는 언제나 재평가될수는 있어도 인류가 태고적부터 지켜온 보편적인 도덕성을 상실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한 재평가는 결코 없으리란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그 어디에서도 말이다.

 

이 책은 큰 줄기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지만 한가지 이야기만 종결된채 나머지 한개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끝이 난다. 아무래도 다음권 역시 목빠지게 기다려보라는 작가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진다. 다음권에서는 해리 홀레의 유머 주머니였던 엘렌의 살인범이 합당한 벌을 받을 수 있을까. 부디 그래야 할텐데. 벌써부터 다음권 이야기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다음권에선 해리 홀레가 어떤 단계의 산송장으로 진화할지, 기대해야 하나. 아마도 해야겠지. 당분간은 라켈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긴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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