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괜찮아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 두 번째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대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우선 이 책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전작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엔 아무 불편함은 없을 것 같다.(전작을 읽은 사람의 의견이니 믿어도 좋다.) 물론 작가의 전작과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에세이집이라는 성격을 띄고 있고, 작가의 개인적인 사생활과 그에 따른 통찰이 씌여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 작가의 에세이집들을 전작과 후속작이라고 나누지 않는 것처럼 이 책들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만 같을 뿐 두 책은 담고 있는 주제도 다르고, 작가가 처한 환경도 다르다. 비록 작가는 책의 시작에서 지난번의 책에 대한 후속작이라고 말하지만, 그냥 전작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아 유명해진 작가의 신작 정도라는 것이 이 책에 대한 제일 올바른 설명처럼 보인다. 또한 저자의 전작이 에세이와 여행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에세이와 인문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조금 다르다. 한마디로 전작의 소소한 여행담과 감동의 메세지를 생각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면 조금 오산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펴고 끙끙대기도 했고, 당황하기도 했다. 내가 읽는 책은 분명 에세이라고 분류되어 있는데, 이게 왠 결혼에 대한 인문학적인 내용들이란 말인가! 게다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결혼에 대한 여러가지 학설과 의견들이란! 이렇게 많은 이론들을 찾아내고 결혼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한 작가의 불타는 학구열에 감탄을 보내는 바이지만, 전작에 대한 기대로 이 책을 펴든 내게는 허를 찌르는 기습공격을 당한 것 같았다. 작가의 글솜씨는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개성넘치는, 내가 사랑한 그 모습 그대로지만, 내용은 전작처럼 촉촉하고 잔잔함이 묻어나는 소소한 이야기가 아니였다. 어떻게 보면 딱딱하고 지극히 이론적인 내용들로 이어져 있었기에 전작의 후속작이라고 광고한 책의 소개문구가 야속할 정도였다. 나는 저자 특유의 글솜씨를 사랑했기에 이 책을 선택했고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내가 읽고자 하는 책이 인문학의 성격을 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많이 다른 일이다. 그래서 내 예상과 다른 이 책의 성격을 파악한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버렸다. 한순간 김이 팍 새버리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내 심리적 충돌들은 내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참을 수 있는 고난이였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그녀의 글을 읽는 기회를 던져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글을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전작에서 저자가 갈등했던 것이 자신의 자아를 바로 세우는 일에 대한 것이였다면, 이번엔 그 자아를 유지하면서 결혼이라는 합법적이지만 여성에게만은 지극히 폭력적인 제도를 수용하는 문제에 대한 갈등이였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저자의 연인이 미국 입국심사대에서 어느날 갑자기 입국을 거부 당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사건으로 그녀의 연인인 펠리페는 미국에 입국이 영구히 불가능해지고, 그로 인해 어쩔수없이 둘이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두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두사람 모두 그동안 결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두 사람 모두에게 심리적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는 엘리자베스가 결혼이란 제도를 본인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그에 대한 이론과 여러가지 의견들을 취합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추론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한 사실을 다른사람들도 알아주고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느낌이랄까. 저자도 자신의 의견을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사람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단점이라고 말할정도이므로 이런 내 느낌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게다. 어차피 저자의 전작도 자신의 깨달음을 정리한 내용을 주로 써나가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럴뿐이다. 

결혼이란 제도와 그 자체에 대해 뜯어보자면 결국은 패미니즘이라는 사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제도에 대해 이리저리 뜯어보고 씹어보고 맛보며 해석한 이 책에도 당연히 등장한다. 그렇다고 미리 지레겁먹거나 알레르기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저자가 주로 말하고 싶어하는 건 제도권안에서의 비합리적인 결혼이라는 개념이지, 패미니즘이 아니니까. 저자가 결혼에 대해 알레르기를 갖게 된 것은 자신이 패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이미 결혼에 한번 실패하고 그 후폭풍을 진저리나게 겪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계속 이런 자신의 경험과 상황을 주장하던 그녀가 결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자신이(전작에서 이렇게 자아를 확립한 자신이)이런 사회적인 구속에 순응해야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서라는 대목에서 또 다시한번 한번 김이 팍 새버렸다. 그것도 책의 마지막장을 고작 몇장 앞두고서야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펼쳐놓은 방대한 결혼에 대한 이론은 대체 뭐란 말인가? 자신의 첫번째 결혼과정에서 있었던 가벼운 생각과 그로 인해 야기된 갈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결혼을 튼튼한 토대위에 세우기위한 고찰의 과정이였다고 봐야할까? 그리고 결론은 자존심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자가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끊임없이 초조해하는 이유가 바로 저 자존심 때문이였다니, 앞서 저자가 제시한 자신의 모든 결혼 이론들이 퇴색해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서양인이다. 동양을 여행하고 경험하며 동양의 사상들을 많이 접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되는 그녀의 모든 이론과 의견이 옳다고 하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에 백퍼센트 동감하기는 힘든 부분과 불편한 부분이 존재했다. 그녀가 말하는 결혼제도의 주된 내용이 대부분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이 여성에게 몹시 불리한 계약관계라는 것은 백퍼센트 동감한다. 어째서 이 개념만은 인간의 수세기 역사동안 좀체 바뀌지 않았는지 미스테리할 뿐이다. 이 외에 이 책을 읽으며 결혼에 대한 흐릿한 개념들을 제법 꼼꼼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점은 이 책을 만난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글솜씨가 여전히 맛깔났고, 덕분에 심각한 내용을 말하는 부분에서도 깔깔 웃으며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이상으로 큰 수확이자 이 책을 읽는 제일 큰 기쁨이였다. 역시 난 그녀의 글이 너무너무 좋다. 그녀의 글만 보면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지니까! 이제 저자는 공식적인 기혼자의 길로 다시 들어섰다. 과연 결혼이라는 몹시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제도가 그녀의 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진다. 부디 그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로 할 수 있길 마음속으로나마 열심히 응원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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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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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멋진 동네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꽤 멋진 남편과 괜찮은 직업을 갖고 그 직업에서도 인정받으며 사는 삶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꿈같은 인생이다. 그리고 몹시도 세속적인 나는 이런 삶이 참으로 부럽다. 덕분에 드라마나 영화에 이런 장면들이 나올때면 때때로 그 풍경의 주인공이 나라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는 이런 꿈결같은 삶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날부터인가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고 만다. 스스로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배부른자의 푸념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고통이란 개개인의 관점에서 고무줄과 같은 것이니까. 나에게는 그다지 큰 번뇌가 아니였을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이제까지 자신이 쌓아온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심각한 고통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밤마다 욕실바닥에 이마를 대고 펑펑 울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이런 고통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그녀는 남편과 이혼 후, 무너져버린 자신을 찾기위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여행의 시작이 이 책의 출발점이라고 해서 이 이야기가 기행문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펴게 된다면 조금 당황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1년여에 걸친 자아찾기에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서양인들의 자아찾기라는 주제에 대해 오글거리는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에, 미리 지레 겁먹고 이 책을 덮지 않으려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만약 저자의 글솜씨가 내 마음에 쏙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진작에 덮어버렸을 것이다. 정말 엘리자베스의 글솜씨는 너무나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마치 종달새가 정답게 지저귀는 것처럼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가슴 찡하게 핵심을 찌르는 그녀의 글솜씨에 연신 미소와 감탄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한줄한줄 써내려가는 단어와 문장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이런 멋지고 사랑스러운 글솜씨를 지닌 엘리자베스는 1년여간 이탈리아, 인도, 발리, 이 세나라를 순차적으로 여행하면서 자신의 시들어버린 삶을 회복시키고자 열심히 노력한다. 그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어찌보면 백인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때로는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하는 그녀의 태도는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개방적인 태도와 사랑스러운 마음씨로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고 경험하면서, 보다 더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꾸려나갈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이야기들 끝에서 만나게 된 그녀의 모습이 처음과 얼마나 많이 달라져 있던지! 어둠속에서 눈물로 점철하던 그녀가 이제는 햇볕아래서 반짝거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졌다. 아무래도 행복은 사람에서 사람으로만이 아니라 책으로도 전염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척릿소설의 실사버전처럼 보인다. 직장과 가정에서 잘나가던 여인이 고난을 맞이하지만 결국 그 고난을 다 물리치고 멋진 왕자님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진다는 기승전결 스토리는 이 책이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참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지구상의 모든 여성들이 어릴때부터 바라는 해피엔딩이랄까? 바로 이런 요소들 때문에 이 책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 제작되었겠지만. 물론 그녀는 이 해피엔딩을 거저 얻지 않았다. 이렇게 빛나고 달콤한 열매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신데렐라와 콩쥐가 가만히 앉아서 해피엔딩을 맞이 한 것이 아닌 것처럼. 뭐, 그 왕자님이 동화속과 달리 대머리라는 것이 조금 달랐지만 그런것쯤은 눈 살짝 감고 넘어가자. 

해피엔딩에 이르게 되는 과정의 주된 축이 조금 오그라드는 자아찾기라는 것만 빼면 이 책은 정말 내 마음에 쏙 든다. 이런 오점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절망에 빠진 사람이 으례 신비주의에 매달리는 경향을 보이는 모습과 그것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엘리자베스의 태도는 나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요강을 멋진 도자기라고 황홀경에 빠져 버린 서양인을 보는 기분이였으니까. 그래서 제2장인 인도에서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을 읽는 속도에 비해 조금 오래 걸렸다. 눈으로는 글자가 들어오는데 머릿속으로는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몇번이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런게 저자가 말하는 만트라를 읽는 기분이려나. 덕분에 인도이야기는 저자가 인도에서 고행한 것처럼 나도 저자의 고행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이렇게 그 어려운 산등성이를 저자와 함께 넘어 왔다는 생각에 이 책이 더 재밌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난 저자같은 고행을 했을지언정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으니 문득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살포시 들었다. (하지만 저자의 애인처럼 대머리는 정중히 사양하련다.)

마음껏 먹고 기도하고 사랑한 그녀는 이제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읽게 된 나도 참 기쁘고 즐거웠다. 이 책을 다 읽고 아쉬움에 저자가 출연했다는 오프라 윈프리쇼와 줄리아로버츠가 나왔다는 영화를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즐거운 마음을 그냥 내 안에 품고, 그 간질거리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굳이 영상물을 통해 그녀의 모든것이 내 상상과 다르다고 실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와 함께한 이탈리아, 인도, 발리 여행을 정리하며 이 즐거움을 마음속에 가득담아두고 싶다. 그러면 나도 그녀의 반짝거리는 행복의 한조각을 살짝 맛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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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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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굉장히 좋아하거나, 굉장히 싫어하거나. 나의 경우는 어떻냐고? 나는 그가 싫은 사람들쪽에 서 있는 사람이다. 사람 싫어하는데 이유있나?라는 우스갯소리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재생될 정도로 나는 그가 싫다. 그가 싫어진 것은 그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순간부터였다. 그 순간은 아직 소녀의 감수성이 남아던 20대 초반 어느 생일날이였다. 그 기분 좋은날 베스트 프랜드에게 받은 선물이 하필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였고, 재수없게도 그 책에 처음 펼친 페이지가 붕가붕가 장면이였는데 그 장면을 피해 넘긴 페이지에 또 붕가붕가 장면이였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싫어할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그래서 이렇게 나는 무라카미라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만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 작가라는 걸 알기에,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세상에는 정말 안 맞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안 맞는 작가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이였다. 게다가 그 뒤에 접하게 된 무라카미 류의 책에 대한 평가는 나에게 무라카미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버릴 정도였다. 대체 왜 그렇게 무라카미라는 사람들은 겉멋만 잔뜩 들어서 섹스만 부르짖는지 거야?!  

그런데 이런 내가 놀랍게도 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정도다. 내가 그의 책을 읽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당시에 읽을 책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보니 잠깐 시간이 남았고 그 시간에 맞춰서 읽을 만한 적당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눈에 띄었다. 그때 문득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중에서 제일 노멀하면서 그의 색채가 적게 드러나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는 평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 이번 기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번 읽어보리라, 불현듯 결심하고 책을 빼들었다. 그런데 재수가 없게도 책의 표지에 기름같은 미끌미끌한 정체불명의 액체가 묻어 있는게 아닌가? 순간 지저분한 기분에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왕 빼든거 다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읽기 전에 표지를 깨끗이 물티슈로 닦아내는 건 잊지 않았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적인 단편집으로 빵가게 재습격, 코끼리의 소멸, 패밀리 어페어,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로마제국의 붕괴.1881년의 인디언 봉기.히틀러의 폴란드 침입.그리고 강풍세계,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까지 총 6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혼란스러움을 주제로 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방황하는 청춘들이 자신의 이야기라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였다. 이래서 하루키의 팬들이 많을 수 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에겐 이미 유통기한이 살짝 지난 낡고 고루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인 영웅본색이 멋진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현재 우리의 감성에 비해 촌스럽게 느껴져 살짝 웃음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지금은 아무도 주윤발처럼 바바리코트에 이쑤시게를 물고 다니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목차를 보며 빵가게 재습격이라는 작품에 꽤 기대를 걸었다. 하루키의 대표적인 단편집의 제목으로 선택 될 정도의 단편이라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내 흥미를 유발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하루키의 섬세한 묘사와 문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의 다른 요소들은 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이 이 책의 전체 구성상 첫번째에 위치함으로써 내가 하루키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게 된 이유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스토리 자체가 나에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 같다. 한밤중에 일어나 부부가 빵가게를 습격한다는 발성은 꽤 신선했지만, 그게 대체 어쩌란 것인지? 결말도 여운보다는 황당함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렇게 실망스러운 첫만남을 했음에도 이 첫번째 작품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모두 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두번째 단편인 코끼리의 소멸은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현대사회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소멸과, 소유하고 있지 않거나 존재하던 것들이 사라짐으로 해서 생기는 상실감을 절묘하게 그려낸 그의 글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덕분에 이 두번째 작품을 통해서 어렴풋이나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는 방식과 그 감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철지난 마초성향과 허세끼까지 이해하는 건 아직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의 그런 모습들은 철지난 홍콩 르와르처럼만 느껴지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 철지난 홍콩 르와르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추억을 안겨주는 힘이 여전한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도 그 고루함 속에서 아직까지도 유효한 감동과 여운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역시 그가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재미나게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표지에 다시 이상한 기름 같은 액체가 다시 흐르고 있다. 분명히 책을 읽기 전 깨끗하게 닦아 냈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주윤발처럼 마르지 않는 기름기를 지닌 걸까.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기 위한 책의 몸부림(?)일지도 모를 겠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이 책 한권만으로는 그를 알기엔 조금 부족한 듯 싶다. 이 책으로 그를 알 수 있는 건 그가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마초끼를 가지고 있고, 술을 미친듯이 사랑하며 섹스를 쿨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 뿐이니까. 이번에는 그와는 만난것을 제일 큰 수확으로 만족하련다. 이제 그에 대한 파악을 마쳤으니 다음에 만날 때는 이 대략적인 모습 안에 존재하는 그의 내밀한 모습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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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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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재의 영화와 소설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영화와 소설들은 주로 기계에게 인간이 지배당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다루었는데, 이런 소재들이 한동안 계속적으로 쏟아지고 흥행가도를 달린 것을 보면 당시 대중들에게 꽤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로 각광 받았던 것 같다. 또 2000년 전에는 밀레니엄 버그같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요소들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같은 미신들이 우리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던 때인지라 이런 소재들이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이렇게 주류를 이루던 SF 영화와 소설들은 2000년도를 넘어가면서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영화와 소설들에서 다루었던 미래가 되었지만 결코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더러, 이제 이런 SF적 소재는 너무 반복되어 식상한 주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식상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뻔한 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의구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닳고 닳은 소재라도 작가가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이야기의 힘이 달라진다는 것을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덕분이였다. 사실 나는 가끔씩 이렇게 뻔해보인다는 편견과 의심으로 섣부른 결론을 냈다가 읽고 후회하는 책들이 종종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런 류의 책이였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에 내가 짐작했던 내용들을 죄다 비껴나갔다. 결론에 대한 포석들로 인해 결말에 대해 약간은 눈치를 챌 수 있었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결말 모두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책은 처음 예상보다 얇았으며, 내용은 기존 SF소설들과 달리 어렵지 않았고, 또한 화자가 여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에 문체 역시 부드러웠다. 이 역시 모두 내가 그동안 접했던 SF소설들과 많이 다른 느낌들이였기에, SF란 장르에 압도당하지 않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천천히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액자구성을 통해 동시에 두가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2058년을 배경으로 아낙스가 공화국의 최고지성집단인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치르면서, 공화국의 역사적 인물 ‘아담’에 대한 이야기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둘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처음에는 현재의 인물이 과거의 인물에 대해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갖게 됐고, 그것이 둘을 잊는 접점이자 이 이야기를 이루는 주축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접점의 밑에 흐르는 갈등이 이 책의 주제라는 것을 곧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실 이 두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지 않고 대화체 역시 간결하며 이야기의 흐름은 정적이였다. 하지만 그 잔잔한 표면 밑에서는 막 터져버리려는 갈등이 들끓고 있음이 등장인물들의 대화 곳곳에서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서 왜 아낙스가 아담에 대해 끌릴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터지면서 그 갈등의 반전이 나를 압도해 버렸다.  

그동안 내가 접한 SF장르의 소설과 영화들은 대부분 흥미롭고 재미 있었지만, 그 작품들의 결말 후에 이렇게나 내 마음이 불편하게 만든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접한 대부분의 영화와 소설 작품들은 SF의 표면적인 이미지 묘사와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주로 집중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SF의 내면적인 요소에 대해 치중을 했던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들 역시 인간과 기계의 본질에 대해 묻기보다는 서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긴박한 목적성에 주목했던 것이 대부분이였다. 그래서 간혹 인간이 아니라 기계와 인간성이 결여된 미래 사회의 승리로 이야기의 결말이 나더라도 내 마음이 불편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표면적인 SF적 요소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본질에 대해 똑똑하고 잘나빠진 기계가 바로 그 인간이 본질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모습은 내 폐부가 찔려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마치 내 본질이 공격받은 것 같은 그 느낌이 나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그런 논리적인 공격을 받는 아담과 같은 인간이였기 때문에 오는 필연적인 느낌이였을 것이다. 사실 작가는 인간이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요소를 기계에게 남겨 놓음으로써 미묘한 인간의 승리가 엿보이는 결말을 보여주긴한다. 하지만 그 실날같은 승리의 느낌조차 나를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만들수는 없었다. 이 공격으로 받은 상처는 앞으로 시간을 갖고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치유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경제학 전공 출신에 과학 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버나드 베켓은 현재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이 책 한권만이 유일한 그의 저서로 번역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의 다른 책들을 번역본으로 만날 수 없는 것이 꽤 섭섭했다. 그의 담담한 문체와 주제의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에 통달해서 그의 저서를 원서로 읽게 되는 것은 너무나 요원한 일 같으니, 부디 앞으로 그의 저서들을 한국어로 많이 접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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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면 일어나라 ㅣ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1
샬레인 해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어린시절 뱀파이어에 대한 기억들 대부분은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라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TV에서 뱀파이어 영화를 해주는 날이면 덜덜 떨며 영화를 보고 그 잔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곤 했다. 이런 나의 뱀파이어에 대한 이미지가 변하게 된 것은 1993년에 개봉한 게리 올드만 주연의 “드라큐라”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뱀파이어로 등장한 게리 올드먼은 뱀파이어를 기존에 피를 빨아대는 무서운 괴물의 이미지에서 평생토록 한 여자만을 가슴에 담은 채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애절한 남자의 모습으로 내 기억속의 괴물 이미지를 탈바꿈해 해주었다. 이후, 내 안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에서 조금씩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가던 뱀파이어들이 마침내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존재로 진화되어 나타났다. 이 책 수키 스텍 하우스 시리즈도 이런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뱀파이어들은 세상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합성혈액이라는 것이 개발되면서 인간의 피를 빨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은 인간과 공존하며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려하지만 인간들은 그런 뱀파이어들을 꺼리고 배척한다. 심지어 뱀파이어의 피에 여러 가지 효능이 있음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그동안은 괴물로써의 이미지로 세상에 소수자였다면 이제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존재로서의 소수자로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런 조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웨이트리스 수키는 뱀파이어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사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는데, 이 능력이 사람들과의 교류를 막는 일종의 장애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상황은 뱀파이어역시 자신과 같은 세상의 소수자라는 일종의 동질감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마침내 수키는 우연히 뱀파이어 빌을 만나게 되고, 오직 그의 마음만이 자신에게 들리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곧 놀라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점점 발전한다. 빌 역시 자신을 배척하지 않고 선입견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보통의 연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생기는 문제라면 취향의 차이라던지 상대방의 가족이 다른 한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뱀파이어와 인간이 사랑에 빠지게 되자 차원이 다른 문제들이 일어난다. 수키의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뱀파이어와 사귄다는 이유로 꺼려하고, 빌은 수키라는 존재로 인해 다른 뱀파이어들의 이런저런 시달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으로 이런 크고 작은 갈등과 문제들을 잘 극복해나간다. 그러나 뱀파이어와 관계를 가졌던 여자들이 연쇄살인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 터지고, 수키 역시 연쇄살인마의 목표물이 되면서 상황은 심각해진다. 이런 위험에서 빌은 최선을 다해 수키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수키역시 이런 빌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안전에 대해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당차고 속깊은 아가씨답게 빌의 도움 대신,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결말로 빌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는다. 

보통 빌처럼 절대적인 힘을 지닌 남자주인공이 연인인 설정에서 대부분의 여자주인공 캐릭터는 사건의 주변인에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수키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 인상깊은 캐릭터였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빌보다 더 용감하며, 자기주도적인 모습이 여타의 다른 여자 캐릭터들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빌 역시 기존의 뱀파이어라는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난 캐릭터로, 먹고 살아가는 것과 집단장에도 열중하는 등 세속적인 그의 모습과 관심사에서 과거의 내 어린시절을 주름잡았던 무서운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쯤되니 내가 어린시절에 느꼈던 공포심으로 범벅이 된 뱀파이어를 되돌려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여주의 도움으로 목숨까지 구하게 되는 일도 벌어지니 말이다. 이런 빌의 모습과 강단있는 여주인공 수키의 모습에서 세상의 고정관념과 뱀파이어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의 변화는 한편으로 씁쓸함을 안겨줬다. 뱀파이어가 이렇게 순화된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중 하나가 우리 사람들의 성향이 그들보다 더 악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소수자이고 사악한 성향도 갖고 있지만 함부로 사람과 자신들의 동료를 죽이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인간들보다 더 법과 질서를 잘 지킨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수고 무조건 옳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단순히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음해하고 소수자라고 배척한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인데도, 뱀파이어들과 비교해보면 참 못되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사실 요즘 각광받고 인정받는 공포영화들에는 더 이상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괴물들의 자리는 사람들이 매우고 있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이 우리에게 더 친밀히 다가오고, 가슴을 지닌 존재로 진화되어 우리곁에 스며든 것은 이런 팍팍한 상황들의 반증이 아닐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소설적인 요소까지 양념으로 쳐져 이야기에 매력을 더하고 있고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간결한 필체와 깔끔한 이야기 구성 역시 맘에 들었다. 다만 주변과 사물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 읽는 동안 조금 곤란을 겪었던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들이 이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지는 못하므로 뱀파이어와의 로맨스 물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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