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멋진 동네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꽤 멋진 남편과 괜찮은 직업을 갖고 그 직업에서도 인정받으며 사는 삶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꿈같은 인생이다. 그리고 몹시도 세속적인 나는 이런 삶이 참으로 부럽다. 덕분에 드라마나 영화에 이런 장면들이 나올때면 때때로 그 풍경의 주인공이 나라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는 이런 꿈결같은 삶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날부터인가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고 만다. 스스로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배부른자의 푸념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고통이란 개개인의 관점에서 고무줄과 같은 것이니까. 나에게는 그다지 큰 번뇌가 아니였을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이제까지 자신이 쌓아온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심각한 고통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밤마다 욕실바닥에 이마를 대고 펑펑 울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이런 고통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그녀는 남편과 이혼 후, 무너져버린 자신을 찾기위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여행의 시작이 이 책의 출발점이라고 해서 이 이야기가 기행문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펴게 된다면 조금 당황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1년여에 걸친 자아찾기에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서양인들의 자아찾기라는 주제에 대해 오글거리는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에, 미리 지레 겁먹고 이 책을 덮지 않으려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만약 저자의 글솜씨가 내 마음에 쏙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진작에 덮어버렸을 것이다. 정말 엘리자베스의 글솜씨는 너무나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마치 종달새가 정답게 지저귀는 것처럼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가슴 찡하게 핵심을 찌르는 그녀의 글솜씨에 연신 미소와 감탄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한줄한줄 써내려가는 단어와 문장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이런 멋지고 사랑스러운 글솜씨를 지닌 엘리자베스는 1년여간 이탈리아, 인도, 발리, 이 세나라를 순차적으로 여행하면서 자신의 시들어버린 삶을 회복시키고자 열심히 노력한다. 그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어찌보면 백인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때로는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하는 그녀의 태도는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개방적인 태도와 사랑스러운 마음씨로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고 경험하면서, 보다 더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꾸려나갈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이야기들 끝에서 만나게 된 그녀의 모습이 처음과 얼마나 많이 달라져 있던지! 어둠속에서 눈물로 점철하던 그녀가 이제는 햇볕아래서 반짝거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졌다. 아무래도 행복은 사람에서 사람으로만이 아니라 책으로도 전염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척릿소설의 실사버전처럼 보인다. 직장과 가정에서 잘나가던 여인이 고난을 맞이하지만 결국 그 고난을 다 물리치고 멋진 왕자님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진다는 기승전결 스토리는 이 책이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참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지구상의 모든 여성들이 어릴때부터 바라는 해피엔딩이랄까? 바로 이런 요소들 때문에 이 책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 제작되었겠지만. 물론 그녀는 이 해피엔딩을 거저 얻지 않았다. 이렇게 빛나고 달콤한 열매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신데렐라와 콩쥐가 가만히 앉아서 해피엔딩을 맞이 한 것이 아닌 것처럼. 뭐, 그 왕자님이 동화속과 달리 대머리라는 것이 조금 달랐지만 그런것쯤은 눈 살짝 감고 넘어가자. 

해피엔딩에 이르게 되는 과정의 주된 축이 조금 오그라드는 자아찾기라는 것만 빼면 이 책은 정말 내 마음에 쏙 든다. 이런 오점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절망에 빠진 사람이 으례 신비주의에 매달리는 경향을 보이는 모습과 그것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엘리자베스의 태도는 나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요강을 멋진 도자기라고 황홀경에 빠져 버린 서양인을 보는 기분이였으니까. 그래서 제2장인 인도에서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을 읽는 속도에 비해 조금 오래 걸렸다. 눈으로는 글자가 들어오는데 머릿속으로는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몇번이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런게 저자가 말하는 만트라를 읽는 기분이려나. 덕분에 인도이야기는 저자가 인도에서 고행한 것처럼 나도 저자의 고행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이렇게 그 어려운 산등성이를 저자와 함께 넘어 왔다는 생각에 이 책이 더 재밌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난 저자같은 고행을 했을지언정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으니 문득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살포시 들었다. (하지만 저자의 애인처럼 대머리는 정중히 사양하련다.)

마음껏 먹고 기도하고 사랑한 그녀는 이제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읽게 된 나도 참 기쁘고 즐거웠다. 이 책을 다 읽고 아쉬움에 저자가 출연했다는 오프라 윈프리쇼와 줄리아로버츠가 나왔다는 영화를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즐거운 마음을 그냥 내 안에 품고, 그 간질거리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굳이 영상물을 통해 그녀의 모든것이 내 상상과 다르다고 실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와 함께한 이탈리아, 인도, 발리 여행을 정리하며 이 즐거움을 마음속에 가득담아두고 싶다. 그러면 나도 그녀의 반짝거리는 행복의 한조각을 살짝 맛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