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괜찮아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 두 번째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대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우선 이 책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전작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엔 아무 불편함은 없을 것 같다.(전작을 읽은 사람의 의견이니 믿어도 좋다.) 물론 작가의 전작과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에세이집이라는 성격을 띄고 있고, 작가의 개인적인 사생활과 그에 따른 통찰이 씌여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 작가의 에세이집들을 전작과 후속작이라고 나누지 않는 것처럼 이 책들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만 같을 뿐 두 책은 담고 있는 주제도 다르고, 작가가 처한 환경도 다르다. 비록 작가는 책의 시작에서 지난번의 책에 대한 후속작이라고 말하지만, 그냥 전작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아 유명해진 작가의 신작 정도라는 것이 이 책에 대한 제일 올바른 설명처럼 보인다. 또한 저자의 전작이 에세이와 여행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에세이와 인문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조금 다르다. 한마디로 전작의 소소한 여행담과 감동의 메세지를 생각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면 조금 오산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펴고 끙끙대기도 했고, 당황하기도 했다. 내가 읽는 책은 분명 에세이라고 분류되어 있는데, 이게 왠 결혼에 대한 인문학적인 내용들이란 말인가! 게다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결혼에 대한 여러가지 학설과 의견들이란! 이렇게 많은 이론들을 찾아내고 결혼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한 작가의 불타는 학구열에 감탄을 보내는 바이지만, 전작에 대한 기대로 이 책을 펴든 내게는 허를 찌르는 기습공격을 당한 것 같았다. 작가의 글솜씨는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개성넘치는, 내가 사랑한 그 모습 그대로지만, 내용은 전작처럼 촉촉하고 잔잔함이 묻어나는 소소한 이야기가 아니였다. 어떻게 보면 딱딱하고 지극히 이론적인 내용들로 이어져 있었기에 전작의 후속작이라고 광고한 책의 소개문구가 야속할 정도였다. 나는 저자 특유의 글솜씨를 사랑했기에 이 책을 선택했고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내가 읽고자 하는 책이 인문학의 성격을 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많이 다른 일이다. 그래서 내 예상과 다른 이 책의 성격을 파악한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버렸다. 한순간 김이 팍 새버리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내 심리적 충돌들은 내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참을 수 있는 고난이였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그녀의 글을 읽는 기회를 던져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글을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전작에서 저자가 갈등했던 것이 자신의 자아를 바로 세우는 일에 대한 것이였다면, 이번엔 그 자아를 유지하면서 결혼이라는 합법적이지만 여성에게만은 지극히 폭력적인 제도를 수용하는 문제에 대한 갈등이였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저자의 연인이 미국 입국심사대에서 어느날 갑자기 입국을 거부 당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사건으로 그녀의 연인인 펠리페는 미국에 입국이 영구히 불가능해지고, 그로 인해 어쩔수없이 둘이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두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두사람 모두 그동안 결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두 사람 모두에게 심리적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는 엘리자베스가 결혼이란 제도를 본인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그에 대한 이론과 여러가지 의견들을 취합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추론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한 사실을 다른사람들도 알아주고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느낌이랄까. 저자도 자신의 의견을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사람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단점이라고 말할정도이므로 이런 내 느낌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게다. 어차피 저자의 전작도 자신의 깨달음을 정리한 내용을 주로 써나가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럴뿐이다. 

결혼이란 제도와 그 자체에 대해 뜯어보자면 결국은 패미니즘이라는 사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제도에 대해 이리저리 뜯어보고 씹어보고 맛보며 해석한 이 책에도 당연히 등장한다. 그렇다고 미리 지레겁먹거나 알레르기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저자가 주로 말하고 싶어하는 건 제도권안에서의 비합리적인 결혼이라는 개념이지, 패미니즘이 아니니까. 저자가 결혼에 대해 알레르기를 갖게 된 것은 자신이 패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이미 결혼에 한번 실패하고 그 후폭풍을 진저리나게 겪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계속 이런 자신의 경험과 상황을 주장하던 그녀가 결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자신이(전작에서 이렇게 자아를 확립한 자신이)이런 사회적인 구속에 순응해야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서라는 대목에서 또 다시한번 한번 김이 팍 새버렸다. 그것도 책의 마지막장을 고작 몇장 앞두고서야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펼쳐놓은 방대한 결혼에 대한 이론은 대체 뭐란 말인가? 자신의 첫번째 결혼과정에서 있었던 가벼운 생각과 그로 인해 야기된 갈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결혼을 튼튼한 토대위에 세우기위한 고찰의 과정이였다고 봐야할까? 그리고 결론은 자존심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자가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끊임없이 초조해하는 이유가 바로 저 자존심 때문이였다니, 앞서 저자가 제시한 자신의 모든 결혼 이론들이 퇴색해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서양인이다. 동양을 여행하고 경험하며 동양의 사상들을 많이 접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되는 그녀의 모든 이론과 의견이 옳다고 하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에 백퍼센트 동감하기는 힘든 부분과 불편한 부분이 존재했다. 그녀가 말하는 결혼제도의 주된 내용이 대부분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이 여성에게 몹시 불리한 계약관계라는 것은 백퍼센트 동감한다. 어째서 이 개념만은 인간의 수세기 역사동안 좀체 바뀌지 않았는지 미스테리할 뿐이다. 이 외에 이 책을 읽으며 결혼에 대한 흐릿한 개념들을 제법 꼼꼼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점은 이 책을 만난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글솜씨가 여전히 맛깔났고, 덕분에 심각한 내용을 말하는 부분에서도 깔깔 웃으며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이상으로 큰 수확이자 이 책을 읽는 제일 큰 기쁨이였다. 역시 난 그녀의 글이 너무너무 좋다. 그녀의 글만 보면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지니까! 이제 저자는 공식적인 기혼자의 길로 다시 들어섰다. 과연 결혼이라는 몹시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제도가 그녀의 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진다. 부디 그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로 할 수 있길 마음속으로나마 열심히 응원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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