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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와 궁녀들 -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직접 들려주는 ㅣ 걸작 논픽션 2
룽얼 구술, 진이.선이링 지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11월
평점 :
서태후는 전한의 여후, 당의 측천무후와 더불어 중국역사 속의 대표적인 요부로 일컫어진다. 이들은 여성의 몸으로 자신이 낳은 아들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의 측근들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는게 공통된 평가다. 우리가 이들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사실들을 통해서다. 하지만 이들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알 수 없다.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사실들 대부분이 이들의 정치적인 입장과 아주 기본적인 개인사일 뿐, 이들이 무엇을 먹고 보고 입었는지 같은 사생활에 대해선 거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니까. 남아 있다곤 해도, 야설이나 설화에 가까운 검증하기 힘든 이야기들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참 재밌고 독특하다. 앞서 언급한 권력자 중 한사람인 서태후의 일상생활에 대하여 세밀하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서태후의 일상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전할 수 있는 것은, 과거 서태후를 모셨던 룽얼이라는 노궁녀가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 이야기들을 저자 부부가 모으고 엮은 덕분이다. 주로 노궁녀가 이야기하고 저자 부부가 듣는 입장이였던 까닭인지, 구어체로 쓰여져 꽤 두툼한 두께임에도 막힘없이 술술 읽히게 만드는데 이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리하여 책을 읽다가 어느순간 꼭 가까운 할머님에게 알콩달콩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곤 했다. 이 할미가 소싯적엔 이랬다니깐으로 시작되는 것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점잖고 진중한 저자부부의 글솜씨도 마음에 들었고, 그것을 잘 번역해준 번역가의 실력도 만족스러웠다. 중간중간 꼼꼼히 첨부된 사진자료들과 각주들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줬다.
궁녀의 업무란 것이 본래 궁 생활의 소소한 부분에 국한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배제된 존재들이였기에, 책 속에 담긴 노궁녀의 이야기 대부분은 서태후의 일상생활과 궁인들의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태후의 기상부터 다시 서태후의 취침에 이르기까지의 하루일과와 궁에서 매절기마다 지켰던 규칙이나 먹었던 음식들, 치뤄졌던 행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노궁녀의 기억력이 어찌나 섬세한지 처음 책을 폈을 땐, 과연 이게 모두 노궁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서태후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언제나 주변상황들을 모조리 다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단 구절을 읽게 되면서 내 의심은 눈녹듯 사라져버렸다. 이 구절은 이들이 매사에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는지, 그래서 얼마나 혹독한 삶을 살았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가슴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했다.
그 악명높은 히틀러가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던 것처럼, 서태후 역시 역사에 아로새겨진 악명과 다른 면들이 존재했다. 가끔은 아랫사람들을 후덕하게 챙길 줄 알고, 때로는 너그럽게 그들의 청을 들어주기도 하는 등, 이 책을 통해 이야기 되는 서태후는 이미 망국의 태후가 된 그녀를 그리워하고 끝까지 충성을 바치는 노궁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주 약간은 이해가 될 정도의 사람이였다. 물론 평범한 인간적인 면모가 그녀의 괴팍하고 이기적인 면모를 덮을 수 있을만큼 크고 넓은 것은 아니였다. 오죽했으면 내내 서태후를 칭송하고 충심을 다하던 노궁녀조차 그녀의 악업들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뒷담화를 했겠는가. 서태후의 성정에 대해서는 열마디의 충심어린 말들보다 '네가 잠시라도 내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나는 너에게 일생동안 고통을 느끼게 해주마'라는 태도로 서태후가 모든 사람들을 대했다는 노궁녀의 한마디에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태후가 야사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온갖 음행을 일삼은 요부는 결코 아니였다.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쥔 채, 괴팍하게 나이를 먹은 늙은 과부였을 뿐, 세간에 돌며 구전으로 이제까지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였는지, 서태후 역시 궁의 규칙에 매여있는 사람이였다는 것을, 노궁녀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간다. 이는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보여지는 궁이란 엄격한 규칙과 감시의 눈, 회한으로 가득찬 곳이라 세간에 떠도는 말과 같은 일들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음이, 노궁녀의 서태후의 음행에 대한 해명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되고도 남는다. 궁이란 조금의 기쁨도 느낄 수 없는 곳이란 노궁녀의 말처럼 서태후 역시 궁에 속한 삶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현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서태후 역시 음행은 커녕, 평생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조차 느껴보진 못했으리라.
"가장 운 좋은 세대는 동질성을 갖는 세대로서, 한 시대라는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 세대다. 반대로 불운한 세대는 두 시대에 걸쳐 있는 세대다" 라는 리턴 스테리이치의 말로 이 책의 화자인 노궁녀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서태후의 삶은 행복하진 못했어도 극히 운이 좋은 경우이긴 했다. 하지만 서태후와 달리 노궁녀는 봉건적인 사고로 현대를 살아가야 했으니, 출궁 이후에 삶 속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초는 이 책에 드러나는 것, 그 이상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와 맞닿아 있는 그녀를 통해서 중국 청나라 시대의 궁생활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이 고마움과 기억을 후대가 계속 이어갈 것이란 사실이 저승에서나마 그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우리에게도 노궁녀와 같은 분과 이 책의 저자부부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이 책과 같은 기록물이 우리에게서는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제는 바람처럼 소실되어 버린 그 기억과 경험들을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쉽고 또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