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라 12 - 완결
토우야마 무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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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만에 드디어 완결을 마주보게 되었네요. 조금씩 야금야금 나오는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솔솔했는데, 이렇게 완결이 나고보니 솔직히 시원섭섭합니다. 이 마지막권도 즐겁고 맛나게 읽어보렵니다! 앞으로도 어디선가 새로운 작품으로 또 만납시다! 토우야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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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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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스노우맨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보통 전작이 화려한 성공을 거두고 나면, 후속작들은 전작만 못하게 되것만, 요 네스뵈는 스노우맨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더라. 솔직히 말해 전작이 가진 북유럽 특유의 싸늘한 분위기와 작가 특유의 신선한 글솜씨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 그 이상의 재미를 이 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요 네스뵈에 대한 내 기대감이 낮아진건 절대 아니였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앞으로 기꺼이 내 지갑을 열어줘야 할 작가를 만나게 됐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레오파드는 8권을 이어온 시리즈물답게 전작에 나온 인물들과 사건들이 단편적으로 등장하곤 한다. 배경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겨울이다. 아마도 노르웨이가 겨울이 긴 나라이기도 하지만, 전작의 분위기를 이어가겠다는 작가의 의도도 어느정도 반영 된 것 같았다. 그러므로 다음번 작품에선 여름의 노르웨이도 만나고 싶다고 하면 나의 욕심일까. 눈덮인 노르웨이도 아름답지만 서늘한 여름을 품은 노르웨이의 매력도 접해보고 싶으니 말이다. 물론 내 가슴에 여운을 남긴 계절적 배경은 이 책의 재미와는 전혀 무관하다. 책 제목이 레오파드인만큼 공간도 노르웨이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콩고와 홍콩까지 아우르며 순식간에 아우르며 블록버스터급의 스케일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짜임새도 좋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의 허를 찌르는 그의 발상도 놀라웠다. 저자가 자신이 이제까지 집필한 작품 중에서 가장 길고 복잡하다고 한 이유가 책의 두께만큼이나 절절히 내용에서 묻어날 정도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자도 사람이다 보니, 길고 복잡한 이야기들 속에서 언듯언듯 어설픈 설정이 보이기도 한다. 꼼꼼하게 짜놓은 배경 때문에 튀어나온 군더더기들도 가끔 눈에 띈다. 저자의 오리엔탈리즘도 눈에 살짝 거슬린다. 그런데 이런 모든 약점들을 상쇄할만큼 이 책과 해리 홀레 시리즈는 가히 폭발적인 재미가 있다. 주인공 해리 홀레의 불성실함과 외곩수적 기질까지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분명 현실에 해리 홀레 같은 남자가 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텐데, 이 책 속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는 카야와 카트리네가 어째서 여러의미로 해리 홀레같은 불성실하고 음울한 남자에게 폭 빠져버리고야 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마성의 남자, 마성의 시리즈 같으니라고.

 

역자의 후기를 읽어보니 해리 홀레의 세번째 시리즈를 조만간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왕이면 첫번째 시리즈부터 번역해주면 안되나 싶지만, 세번째 시리즈나마 번역되어 나오는게 어디냐 싶기도 하다. 어쨋거나 요 네스뵈의 소설을, 그것도 해리 홀레의 시리즈를 한글로 읽을 수 있다면야 두팔 벌리고 대환영이다. 참고로 역자후기에서 역자가 해리 홀레 시리즈를 번역 할 당시에 여기저기 해리 홀레 시리즈에 대해 칭찬하고 다녀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참 답답했다고 털어놓는 부분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아, 그 기분 나도 잘 안다. 내 상황도 지금 꼭 그러하니까. 어서 내 주변 사람들과도 해리 홀레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싶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던간에, 해리 홀레 시리즈가 전권 번역되어 내 책꽂이에 주르륵 꽂혀 있게 될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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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와 궁녀들 -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직접 들려주는 걸작 논픽션 2
룽얼 구술, 진이.선이링 지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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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는 전한의 여후, 당의 측천무후와 더불어 중국역사 속의 대표적인 요부로 일컫어진다. 이들은 여성의 몸으로 자신이 낳은 아들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의 측근들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는게 공통된 평가다. 우리가 이들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사실들을 통해서다. 하지만 이들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알 수 없다.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사실들 대부분이 이들의 정치적인 입장과 아주 기본적인 개인사일 뿐, 이들이 무엇을 먹고 보고 입었는지 같은 사생활에 대해선 거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니까. 남아 있다곤 해도, 야설이나 설화에 가까운 검증하기 힘든 이야기들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참 재밌고 독특하다. 앞서 언급한 권력자 중 한사람인 서태후의 일상생활에 대하여 세밀하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서태후의 일상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전할 수 있는 것은, 과거 서태후를 모셨던 룽얼이라는 노궁녀가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 이야기들을 저자 부부가 모으고 엮은 덕분이다. 주로 노궁녀가 이야기하고 저자 부부가 듣는 입장이였던 까닭인지, 구어체로 쓰여져 꽤 두툼한 두께임에도 막힘없이 술술 읽히게 만드는데 이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리하여 책을 읽다가 어느순간 꼭 가까운 할머님에게 알콩달콩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곤 했다. 이 할미가 소싯적엔 이랬다니깐으로 시작되는 것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점잖고 진중한 저자부부의 글솜씨도 마음에 들었고, 그것을 잘 번역해준 번역가의 실력도 만족스러웠다. 중간중간 꼼꼼히 첨부된 사진자료들과 각주들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줬다. 

 

궁녀의 업무란 것이 본래 궁 생활의 소소한 부분에 국한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배제된 존재들이였기에, 책 속에 담긴 노궁녀의 이야기 대부분은 서태후의 일상생활과 궁인들의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태후의 기상부터 다시 서태후의 취침에 이르기까지의 하루일과와 궁에서 매절기마다 지켰던 규칙이나 먹었던 음식들, 치뤄졌던 행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노궁녀의 기억력이 어찌나 섬세한지 처음 책을 폈을 땐, 과연 이게 모두 노궁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서태후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언제나 주변상황들을 모조리 다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단 구절을 읽게 되면서 내 의심은 눈녹듯 사라져버렸다. 이 구절은 이들이 매사에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는지, 그래서 얼마나 혹독한 삶을 살았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가슴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했다. 

 

그 악명높은 히틀러가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던 것처럼, 서태후 역시 역사에 아로새겨진 악명과 다른 면들이 존재했다. 가끔은 아랫사람들을 후덕하게 챙길 줄 알고, 때로는 너그럽게 그들의 청을 들어주기도 하는 등, 이 책을 통해 이야기 되는 서태후는 이미 망국의 태후가 된 그녀를 그리워하고 끝까지 충성을 바치는 노궁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주 약간은 이해가 될 정도의 사람이였다. 물론 평범한 인간적인 면모가 그녀의 괴팍하고 이기적인 면모를 덮을 수 있을만큼 크고 넓은 것은 아니였다. 오죽했으면 내내 서태후를 칭송하고 충심을 다하던 노궁녀조차 그녀의 악업들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뒷담화를 했겠는가. 서태후의 성정에 대해서는 열마디의 충심어린 말들보다 '네가 잠시라도 내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나는 너에게 일생동안 고통을 느끼게 해주마'라는 태도로 서태후가 모든 사람들을 대했다는 노궁녀의 한마디에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태후가 야사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온갖 음행을 일삼은 요부는 결코 아니였다.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쥔 채, 괴팍하게 나이를 먹은 늙은 과부였을 뿐, 세간에 돌며 구전으로 이제까지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였는지, 서태후 역시 궁의 규칙에 매여있는 사람이였다는 것을, 노궁녀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간다. 이는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보여지는 궁이란 엄격한 규칙과 감시의 눈, 회한으로 가득찬 곳이라 세간에 떠도는 말과 같은 일들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음이, 노궁녀의 서태후의 음행에 대한 해명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되고도 남는다. 궁이란 조금의 기쁨도 느낄 수 없는 곳이란 노궁녀의 말처럼 서태후 역시 궁에 속한 삶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현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서태후 역시 음행은 커녕, 평생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조차 느껴보진 못했으리라.  

 

"가장 운 좋은 세대는 동질성을 갖는 세대로서, 한 시대라는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 세대다. 반대로 불운한 세대는 두 시대에 걸쳐 있는 세대다" 라는 리턴 스테리이치의 말로 이 책의 화자인 노궁녀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서태후의 삶은 행복하진 못했어도 극히 운이 좋은 경우이긴 했다. 하지만 서태후와 달리 노궁녀는 봉건적인 사고로 현대를 살아가야 했으니, 출궁 이후에 삶 속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초는 이 책에 드러나는 것, 그 이상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와 맞닿아 있는 그녀를 통해서 중국 청나라 시대의 궁생활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이 고마움과 기억을 후대가 계속 이어갈 것이란 사실이 저승에서나마 그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우리에게도 노궁녀와 같은 분과 이 책의 저자부부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이 책과 같은 기록물이 우리에게서는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제는 바람처럼 소실되어 버린 그 기억과 경험들을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쉽고 또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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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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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내리기만 하고 녹지 않는 새하얀 눈을 보며 이제는 이 책을 해치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가을 사람들의 강력한 칭찬과 입소문에 힘입어 이 책을 선택했으나, 이와 비슷한 이유로 선택한 "658 우연히"가 기대와 달리 날 실망시킨터라 이 책의 첫장이 그동안 쉬이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손에 쥐고만 있으며 마음의 짐으로 이 책을 남겨둘 순 없는 일, 이제 눈이 녹기 전에 이 책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은 해리 홀레 시리즈의 7번째 작품이다. 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7번째까지 나올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이 작품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과 재미를 갖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일거다. 그러니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진즉 이 책을 읽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됐다는 진한 아쉬움이 조금이나 적어졌을테니까. 나는 이 책의 책장을 10장도 채 넘기기 전부터 내내 이런 후회에 시달려야 했다. 아, 눈이 조금만 더 빨리 내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 책의 이야기는 눈과 함께 시작한다. 눈이 내리고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면서 여인들이 하나둘씩 실종되어간다. 처음엔 단순가출이라고 생각했것만, 곧 그 여인들이 실종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만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 반드시 남겨진 의문에 눈사람은 이 사건들이 연쇄살인범에 의한 사건임을 암시하며 사람들의 목을 서늘하게 옥죄어온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새벽녘까지 읽고 나선 침대 옆 스탠드를 꼭 켜고 잘 수 밖에 없었다. 왠지 창밖으로 보이는 눈들이 바로 내 목뒤에서 찬 기운을 뿜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은 스칸디나비아의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차가운 겨울을 꼭 닮아 있었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생각하면 머리에 열이 오르면서 서늘했던 기분을 담백하게 만들어주긴 했다. 나는 이 책속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들이 단 한명을 제외하곤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내 기준에선 너무나 파렴치하고 몰상식했다. 물론 그들보다 더욱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남자 캐릭터들도 한가득이였지만, 이 책 자체의 중심소재를 생각하면 이 책에서 그려지는 여성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개운치 못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단점이 해리 홀레란 캐릭터의 단점 앞에서 가볍게 상쇄되고, 이 소설이 여성들을 파렴치하게 만든 바로 그 마초성향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해리 홀레 시리즈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해리 홀레라는 이름을 지닌 중년의 남자다. 그는 오슬로에 거주하고 있고,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연쇄살인범을 잡아본 경험이 있으며, 또 그럴 능력이 있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형사다. 여기에 그는 여느 하드보일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일중독에 알코올 중독 등등 온갖 마초적인 단점들을 당연하다는듯이 지니고 있다. 그런데 너무나 전형적이고 특별할 것 없는 이 설정들이 여타 소설들에서는 주인공에게 주어진 훈장처럼 보이다 못해 그 주인공들의 빼어난 능력을 강조위한 악세사리처럼 사용된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 해리 홀레에겐 그를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써 보이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책에 홀딱 빠져버린 가장 큰 이유였다. 전형적인 클리셰를 전형적이지 않게 풀어나간다는 것.

 

어느 헐리웃 관계자가 그랬더란다. 헐리웃의 오리지날 영화를 만들지 않고 다른 나라 영화들을 리메이크하거나 소설원작들의 영화가 점점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헐리웃이 영화로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다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제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다 고갈되어 무엇을 만들던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건 비단 헐리웃 영화계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학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설정들은 이미 다 나와 버렸으니까. 로미오와 줄리엣과 오만과 편견 이후로 이들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 로맨스 소설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내가 "658 우연히"를 읽고 실망한 이유도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다 나와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사용했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실망했던 진짜 이유가 그게 아니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 책에서 실망한 진짜 이유는 그가 전형적인 클리셰를 너무나 전형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굳이 그 소설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소설의 장치들이 날 지치게 했던 거다. 하지만 요 네스뵈는 달랐다. 그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전형적이지 않게 사용했다. 해리 홀레의 설정은 물론이고, 너무나 전형적인 주변상황까지 그 특유의 변주로 새하얀 눈결정처럼 날카롭고 반짝반짝하게 그려 놓았다. 그래, 작가란 이런것이다. 전형적인 클리셰를 전형적이지 않게 쓰는 사람들, 닳고 닳은 표현도 참신하게 재창조 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작가들이고, 그런 사람들의 소설을 나는 읽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오만과 편견의 클리셰를 고대로 쫒아가는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도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덕분에 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요 네스뵈의 담백한 글솜씨와 참신한 표현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고, 그의 이야기에 포로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나는 눈이 내릴때마다 이 책이 생각날 것만 같다. 그의 서늘하고 아찔한 글솜씨와 함께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해리 홀레 시리즈의 7번째 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에 번역된 해리 홀레 시리즈는 이 책포함, 꼴랑 두권이 전부다. 내 짐작으론 이 책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번역된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계기가 어떻든 앞으로 이 시리즈가 꾸준히 번역되어 내 책꽂이에 주르르 꽂혀지길 바래본다. 이대로 단 두권의 번역본만으로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시리즈란 생각이 이 단 한권만으로도 강렬하게 느껴지므로. 그래서 솔직히 헐리웃 영화화를 계기로 번역되는 책들을 만날 때마다 헐리웃의 영화인들의 소재가 고갈된게 안타까운 한편 고맙기도 하다. 그들 덕분에 내가 이런 재미난 책을 만나게 된 셈이니까. 그렇지만 역시 헐리웃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의 안타까움이 더 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안타까움을 스노우맨으로 상쇄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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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숲의 아카리 11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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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1권이 나왔군요! 너무나 따스하고 담백한 책이야기가 가득 담긴 서점숲의 아카리가 이번 편에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12권은 11권보다 조금더 빨리 발간되길...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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