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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전작인 스노우맨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보통 전작이 화려한 성공을 거두고 나면, 후속작들은 전작만 못하게 되것만, 요 네스뵈는 스노우맨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더라. 솔직히 말해 전작이 가진 북유럽 특유의 싸늘한 분위기와 작가 특유의 신선한 글솜씨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 그 이상의 재미를 이 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요 네스뵈에 대한 내 기대감이 낮아진건 절대 아니였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앞으로 기꺼이 내 지갑을 열어줘야 할 작가를 만나게 됐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레오파드는 8권을 이어온 시리즈물답게 전작에 나온 인물들과 사건들이 단편적으로 등장하곤 한다. 배경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겨울이다. 아마도 노르웨이가 겨울이 긴 나라이기도 하지만, 전작의 분위기를 이어가겠다는 작가의 의도도 어느정도 반영 된 것 같았다. 그러므로 다음번 작품에선 여름의 노르웨이도 만나고 싶다고 하면 나의 욕심일까. 눈덮인 노르웨이도 아름답지만 서늘한 여름을 품은 노르웨이의 매력도 접해보고 싶으니 말이다. 물론 내 가슴에 여운을 남긴 계절적 배경은 이 책의 재미와는 전혀 무관하다. 책 제목이 레오파드인만큼 공간도 노르웨이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콩고와 홍콩까지 아우르며 순식간에 아우르며 블록버스터급의 스케일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짜임새도 좋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의 허를 찌르는 그의 발상도 놀라웠다. 저자가 자신이 이제까지 집필한 작품 중에서 가장 길고 복잡하다고 한 이유가 책의 두께만큼이나 절절히 내용에서 묻어날 정도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자도 사람이다 보니, 길고 복잡한 이야기들 속에서 언듯언듯 어설픈 설정이 보이기도 한다. 꼼꼼하게 짜놓은 배경 때문에 튀어나온 군더더기들도 가끔 눈에 띈다. 저자의 오리엔탈리즘도 눈에 살짝 거슬린다. 그런데 이런 모든 약점들을 상쇄할만큼 이 책과 해리 홀레 시리즈는 가히 폭발적인 재미가 있다. 주인공 해리 홀레의 불성실함과 외곩수적 기질까지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분명 현실에 해리 홀레 같은 남자가 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텐데, 이 책 속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는 카야와 카트리네가 어째서 여러의미로 해리 홀레같은 불성실하고 음울한 남자에게 폭 빠져버리고야 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마성의 남자, 마성의 시리즈 같으니라고.
역자의 후기를 읽어보니 해리 홀레의 세번째 시리즈를 조만간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왕이면 첫번째 시리즈부터 번역해주면 안되나 싶지만, 세번째 시리즈나마 번역되어 나오는게 어디냐 싶기도 하다. 어쨋거나 요 네스뵈의 소설을, 그것도 해리 홀레의 시리즈를 한글로 읽을 수 있다면야 두팔 벌리고 대환영이다. 참고로 역자후기에서 역자가 해리 홀레 시리즈를 번역 할 당시에 여기저기 해리 홀레 시리즈에 대해 칭찬하고 다녀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참 답답했다고 털어놓는 부분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아, 그 기분 나도 잘 안다. 내 상황도 지금 꼭 그러하니까. 어서 내 주변 사람들과도 해리 홀레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싶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던간에, 해리 홀레 시리즈가 전권 번역되어 내 책꽂이에 주르륵 꽂혀 있게 될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