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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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굉장히 좋아하거나, 굉장히 싫어하거나. 나의 경우는 어떻냐고? 나는 그가 싫은 사람들쪽에 서 있는 사람이다. 사람 싫어하는데 이유있나?라는 우스갯소리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재생될 정도로 나는 그가 싫다. 그가 싫어진 것은 그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순간부터였다. 그 순간은 아직 소녀의 감수성이 남아던 20대 초반 어느 생일날이였다. 그 기분 좋은날 베스트 프랜드에게 받은 선물이 하필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였고, 재수없게도 그 책에 처음 펼친 페이지가 붕가붕가 장면이였는데 그 장면을 피해 넘긴 페이지에 또 붕가붕가 장면이였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싫어할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그래서 이렇게 나는 무라카미라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만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 작가라는 걸 알기에,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세상에는 정말 안 맞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안 맞는 작가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이였다. 게다가 그 뒤에 접하게 된 무라카미 류의 책에 대한 평가는 나에게 무라카미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버릴 정도였다. 대체 왜 그렇게 무라카미라는 사람들은 겉멋만 잔뜩 들어서 섹스만 부르짖는지 거야?!  

그런데 이런 내가 놀랍게도 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정도다. 내가 그의 책을 읽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당시에 읽을 책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보니 잠깐 시간이 남았고 그 시간에 맞춰서 읽을 만한 적당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눈에 띄었다. 그때 문득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중에서 제일 노멀하면서 그의 색채가 적게 드러나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는 평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 이번 기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번 읽어보리라, 불현듯 결심하고 책을 빼들었다. 그런데 재수가 없게도 책의 표지에 기름같은 미끌미끌한 정체불명의 액체가 묻어 있는게 아닌가? 순간 지저분한 기분에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왕 빼든거 다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읽기 전에 표지를 깨끗이 물티슈로 닦아내는 건 잊지 않았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적인 단편집으로 빵가게 재습격, 코끼리의 소멸, 패밀리 어페어,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로마제국의 붕괴.1881년의 인디언 봉기.히틀러의 폴란드 침입.그리고 강풍세계,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까지 총 6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혼란스러움을 주제로 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방황하는 청춘들이 자신의 이야기라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였다. 이래서 하루키의 팬들이 많을 수 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에겐 이미 유통기한이 살짝 지난 낡고 고루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인 영웅본색이 멋진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현재 우리의 감성에 비해 촌스럽게 느껴져 살짝 웃음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지금은 아무도 주윤발처럼 바바리코트에 이쑤시게를 물고 다니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목차를 보며 빵가게 재습격이라는 작품에 꽤 기대를 걸었다. 하루키의 대표적인 단편집의 제목으로 선택 될 정도의 단편이라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내 흥미를 유발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하루키의 섬세한 묘사와 문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의 다른 요소들은 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이 이 책의 전체 구성상 첫번째에 위치함으로써 내가 하루키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게 된 이유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스토리 자체가 나에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 같다. 한밤중에 일어나 부부가 빵가게를 습격한다는 발성은 꽤 신선했지만, 그게 대체 어쩌란 것인지? 결말도 여운보다는 황당함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렇게 실망스러운 첫만남을 했음에도 이 첫번째 작품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모두 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두번째 단편인 코끼리의 소멸은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현대사회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소멸과, 소유하고 있지 않거나 존재하던 것들이 사라짐으로 해서 생기는 상실감을 절묘하게 그려낸 그의 글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덕분에 이 두번째 작품을 통해서 어렴풋이나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는 방식과 그 감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철지난 마초성향과 허세끼까지 이해하는 건 아직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의 그런 모습들은 철지난 홍콩 르와르처럼만 느껴지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 철지난 홍콩 르와르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추억을 안겨주는 힘이 여전한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도 그 고루함 속에서 아직까지도 유효한 감동과 여운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역시 그가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재미나게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표지에 다시 이상한 기름 같은 액체가 다시 흐르고 있다. 분명히 책을 읽기 전 깨끗하게 닦아 냈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주윤발처럼 마르지 않는 기름기를 지닌 걸까.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기 위한 책의 몸부림(?)일지도 모를 겠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이 책 한권만으로는 그를 알기엔 조금 부족한 듯 싶다. 이 책으로 그를 알 수 있는 건 그가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마초끼를 가지고 있고, 술을 미친듯이 사랑하며 섹스를 쿨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 뿐이니까. 이번에는 그와는 만난것을 제일 큰 수확으로 만족하련다. 이제 그에 대한 파악을 마쳤으니 다음에 만날 때는 이 대략적인 모습 안에 존재하는 그의 내밀한 모습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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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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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재의 영화와 소설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영화와 소설들은 주로 기계에게 인간이 지배당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다루었는데, 이런 소재들이 한동안 계속적으로 쏟아지고 흥행가도를 달린 것을 보면 당시 대중들에게 꽤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로 각광 받았던 것 같다. 또 2000년 전에는 밀레니엄 버그같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요소들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같은 미신들이 우리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던 때인지라 이런 소재들이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이렇게 주류를 이루던 SF 영화와 소설들은 2000년도를 넘어가면서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영화와 소설들에서 다루었던 미래가 되었지만 결코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더러, 이제 이런 SF적 소재는 너무 반복되어 식상한 주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식상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뻔한 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의구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닳고 닳은 소재라도 작가가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이야기의 힘이 달라진다는 것을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덕분이였다. 사실 나는 가끔씩 이렇게 뻔해보인다는 편견과 의심으로 섣부른 결론을 냈다가 읽고 후회하는 책들이 종종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런 류의 책이였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에 내가 짐작했던 내용들을 죄다 비껴나갔다. 결론에 대한 포석들로 인해 결말에 대해 약간은 눈치를 챌 수 있었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결말 모두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책은 처음 예상보다 얇았으며, 내용은 기존 SF소설들과 달리 어렵지 않았고, 또한 화자가 여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에 문체 역시 부드러웠다. 이 역시 모두 내가 그동안 접했던 SF소설들과 많이 다른 느낌들이였기에, SF란 장르에 압도당하지 않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천천히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액자구성을 통해 동시에 두가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2058년을 배경으로 아낙스가 공화국의 최고지성집단인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치르면서, 공화국의 역사적 인물 ‘아담’에 대한 이야기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둘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처음에는 현재의 인물이 과거의 인물에 대해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갖게 됐고, 그것이 둘을 잊는 접점이자 이 이야기를 이루는 주축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접점의 밑에 흐르는 갈등이 이 책의 주제라는 것을 곧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실 이 두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지 않고 대화체 역시 간결하며 이야기의 흐름은 정적이였다. 하지만 그 잔잔한 표면 밑에서는 막 터져버리려는 갈등이 들끓고 있음이 등장인물들의 대화 곳곳에서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서 왜 아낙스가 아담에 대해 끌릴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터지면서 그 갈등의 반전이 나를 압도해 버렸다.  

그동안 내가 접한 SF장르의 소설과 영화들은 대부분 흥미롭고 재미 있었지만, 그 작품들의 결말 후에 이렇게나 내 마음이 불편하게 만든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접한 대부분의 영화와 소설 작품들은 SF의 표면적인 이미지 묘사와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주로 집중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SF의 내면적인 요소에 대해 치중을 했던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들 역시 인간과 기계의 본질에 대해 묻기보다는 서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긴박한 목적성에 주목했던 것이 대부분이였다. 그래서 간혹 인간이 아니라 기계와 인간성이 결여된 미래 사회의 승리로 이야기의 결말이 나더라도 내 마음이 불편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표면적인 SF적 요소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본질에 대해 똑똑하고 잘나빠진 기계가 바로 그 인간이 본질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모습은 내 폐부가 찔려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마치 내 본질이 공격받은 것 같은 그 느낌이 나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그런 논리적인 공격을 받는 아담과 같은 인간이였기 때문에 오는 필연적인 느낌이였을 것이다. 사실 작가는 인간이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요소를 기계에게 남겨 놓음으로써 미묘한 인간의 승리가 엿보이는 결말을 보여주긴한다. 하지만 그 실날같은 승리의 느낌조차 나를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만들수는 없었다. 이 공격으로 받은 상처는 앞으로 시간을 갖고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치유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경제학 전공 출신에 과학 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버나드 베켓은 현재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이 책 한권만이 유일한 그의 저서로 번역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의 다른 책들을 번역본으로 만날 수 없는 것이 꽤 섭섭했다. 그의 담담한 문체와 주제의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에 통달해서 그의 저서를 원서로 읽게 되는 것은 너무나 요원한 일 같으니, 부디 앞으로 그의 저서들을 한국어로 많이 접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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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면 일어나라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1
샬레인 해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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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뱀파이어에 대한 기억들 대부분은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라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TV에서 뱀파이어 영화를 해주는 날이면 덜덜 떨며 영화를 보고 그 잔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곤 했다. 이런 나의 뱀파이어에 대한 이미지가 변하게 된 것은 1993년에 개봉한 게리 올드만 주연의 “드라큐라”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뱀파이어로 등장한 게리 올드먼은 뱀파이어를 기존에 피를 빨아대는 무서운 괴물의 이미지에서 평생토록 한 여자만을 가슴에 담은 채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애절한 남자의 모습으로 내 기억속의 괴물 이미지를 탈바꿈해 해주었다. 이후, 내 안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에서 조금씩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가던 뱀파이어들이 마침내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존재로 진화되어 나타났다. 이 책 수키 스텍 하우스 시리즈도 이런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뱀파이어들은 세상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합성혈액이라는 것이 개발되면서 인간의 피를 빨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은 인간과 공존하며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려하지만 인간들은 그런 뱀파이어들을 꺼리고 배척한다. 심지어 뱀파이어의 피에 여러 가지 효능이 있음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그동안은 괴물로써의 이미지로 세상에 소수자였다면 이제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존재로서의 소수자로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런 조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웨이트리스 수키는 뱀파이어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사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는데, 이 능력이 사람들과의 교류를 막는 일종의 장애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상황은 뱀파이어역시 자신과 같은 세상의 소수자라는 일종의 동질감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마침내 수키는 우연히 뱀파이어 빌을 만나게 되고, 오직 그의 마음만이 자신에게 들리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곧 놀라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점점 발전한다. 빌 역시 자신을 배척하지 않고 선입견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보통의 연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생기는 문제라면 취향의 차이라던지 상대방의 가족이 다른 한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뱀파이어와 인간이 사랑에 빠지게 되자 차원이 다른 문제들이 일어난다. 수키의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뱀파이어와 사귄다는 이유로 꺼려하고, 빌은 수키라는 존재로 인해 다른 뱀파이어들의 이런저런 시달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으로 이런 크고 작은 갈등과 문제들을 잘 극복해나간다. 그러나 뱀파이어와 관계를 가졌던 여자들이 연쇄살인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 터지고, 수키 역시 연쇄살인마의 목표물이 되면서 상황은 심각해진다. 이런 위험에서 빌은 최선을 다해 수키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수키역시 이런 빌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안전에 대해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당차고 속깊은 아가씨답게 빌의 도움 대신,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결말로 빌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는다. 

보통 빌처럼 절대적인 힘을 지닌 남자주인공이 연인인 설정에서 대부분의 여자주인공 캐릭터는 사건의 주변인에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수키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 인상깊은 캐릭터였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빌보다 더 용감하며, 자기주도적인 모습이 여타의 다른 여자 캐릭터들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빌 역시 기존의 뱀파이어라는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난 캐릭터로, 먹고 살아가는 것과 집단장에도 열중하는 등 세속적인 그의 모습과 관심사에서 과거의 내 어린시절을 주름잡았던 무서운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쯤되니 내가 어린시절에 느꼈던 공포심으로 범벅이 된 뱀파이어를 되돌려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여주의 도움으로 목숨까지 구하게 되는 일도 벌어지니 말이다. 이런 빌의 모습과 강단있는 여주인공 수키의 모습에서 세상의 고정관념과 뱀파이어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의 변화는 한편으로 씁쓸함을 안겨줬다. 뱀파이어가 이렇게 순화된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중 하나가 우리 사람들의 성향이 그들보다 더 악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소수자이고 사악한 성향도 갖고 있지만 함부로 사람과 자신들의 동료를 죽이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인간들보다 더 법과 질서를 잘 지킨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수고 무조건 옳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단순히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음해하고 소수자라고 배척한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인데도, 뱀파이어들과 비교해보면 참 못되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사실 요즘 각광받고 인정받는 공포영화들에는 더 이상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괴물들의 자리는 사람들이 매우고 있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이 우리에게 더 친밀히 다가오고, 가슴을 지닌 존재로 진화되어 우리곁에 스며든 것은 이런 팍팍한 상황들의 반증이 아닐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소설적인 요소까지 양념으로 쳐져 이야기에 매력을 더하고 있고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간결한 필체와 깔끔한 이야기 구성 역시 맘에 들었다. 다만 주변과 사물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 읽는 동안 조금 곤란을 겪었던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들이 이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지는 못하므로 뱀파이어와의 로맨스 물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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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결혼했다 -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
마리나 레비츠카 지음, 노진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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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은 한통의 전화에서 시작된다. 예순을 넘기신 아버지가 금발에 왕 가슴을 가진 우크라이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믿기 힘든 선언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 여자에겐 어린 아이도 하나 딸려있댄다! 오~! 아버지, 노망이라도 나셨나요! 어머니와 사별하신지 2년이 지났기에 재혼하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왜 하필 상대가 그런 여자냐구요! 아버지를 이용해먹으려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그런 여자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버지의 저런 전화를 받는다면 주인공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나라면 저 전화가 걸려온 시점에서 그 상대여자인, 발렌티나한테 쫒아가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서로의 코에서 빨간 시럽을 뿜어내며 아웅다웅했을 것이다. 책속의 아버지 니콜라이는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 두 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내내 자식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지만, 나와 비교해본다면 정말 천사같고 이성적인 딸들 아닌가?  

사실 읽는 내내 이렇게 나에게 격렬한 감정을 쏟아내게 만드는 이 책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책의 특이한 제목 때문이였다.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라. 대체 무슨내용일까? 책의 제목만 봐서는 쉽게 내용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우크라이나의 농부가 쓴 수필인가? 아니면 농기계 전문가들의 수기 모음인가? 아마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느끼는 감정일 것 같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오죽하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서점들이 이 책을 문학 쪽이 아니라 기술 쪽에 분류해 놓았겠는가.  

이렇게 오랜 세월 책과 동거동락 했던 서점가 사람들조차 헷갈려 한 이 책의 제목은 아버지가 재혼하겠다는 이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이해되어 가기 시작한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라는 주제로 사회체제의 문제, 이민문제, 빈곤, 가난, 전쟁의 참혹함 등등 과거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회문제들을 고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거의 유물같이 느껴지는 문제들이 현대사회에 지구 어딘가에선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주인공들이 가진 이중성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지한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버지의 황당한 전화한통으로 시작된 사건이지만 결국엔 나름대로 해피엔딩이 되었고, 독자인 나로 하여금 재미와 읽은 보람을 느끼게 해줬으니 그 아버지의 전화는 꽤 괜찮은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와 책속의“나”는 이런 나름의 결과를 내기 위해 혈압으로 중간에 몇 번이나 터질 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중에 니콜라이가 명을 다해 하늘나라로 떠난다면 그의 아내에게 부탁 하나를 하고 싶다. 로우킥을 한번 날려달라고. 머리카락을 한웅큼 뜯어내도 괜찮을 것 같다. 미안해요, 니콜라이. 난 아직까지도 당신이 싫어요! 부디 하늘나라에선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는 행동들을 고치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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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아름다운 판타 빌리지
리처드 매드슨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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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후세계를 믿습니까? 사이비단체에서 사람들을 꾀어내는 데 종종 쓰이곤 하는 이 익숙한 짧은 문장을 화두로 이 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의 경우엔 사후세계를 믿는다. 사실 나는 사후세계를 믿던 안 믿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믿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내가 사후세계를 믿기에 그때를 대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옳다고 믿기 때문이고 내 스스로가 순간순간 떳떳해지기 위해서다. 내세를 대비하여, 혹은 사후세계를 대비하여 착한 일을 하고 바른 삶을 산다는 것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 결국 위선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내용은 나에게 쉽게 와닿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사유세계라던가, 자아성찰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읽는 내내 손발과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네 중학교 책에 써 있음직한 내용을 마치 심오한 철학을 나누는 것처럼 묘사된 내용들이 낯간지러웠기 때문이다. 그것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듣고 있자니 그 느낌과 지루함의 농도는 점점 짙어졌다. 이야기의 초반에는 주인공이 사망 후, 사후세계로 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설명하기 위해 그런 내용을 열거했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중후반부로 넘어 갈수록 그게 아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반복되는 내용들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주제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속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책의 홍보문구대로 이 책은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같은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세상에서 벌어지는 긴박하고 스릴넘치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일 것이라고 믿었것만, 현실은 한없이 늘어지고 제법 따분하기까지한 사랑이야기가 1%남짓 들어가 있으며, 스스로가 몹시 철학적이라고 믿는 소설 책이였다.  

물론 주인공 크리스와 그의 사랑하는 부인 앤의 희생적인 사랑이야기는 좋았다. 하지만 그 사랑을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반복해서 비슷한 에피소드를 계속 나열한 것은 지루했다. 그리고 사후세계의 이야기로 책 분량의 3분에 2이상을 잡아먹은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 아니였다. 차라리 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크리스와 앤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해서 긴박하게 소설을 구성했다면 훨씬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됐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하랴. 이 책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사후세계에 대한개념과 자아성찰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비록 그 내용이 우리에겐 너무 낮은 수준의 사유였기에 책의 내용이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이 책의 역자는 이런 작가의 주제의식 덕분에 이 책이 사랑과 영혼같은 통속적인 러브스토리가 되지 않았다고 평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과 영혼을 보고는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지만 이 책을 읽고는 지루함에 눈에 눈꼽만 가득 꼈을 뿐이다. 사람마다 보는 시선과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 이 소설은 밍밍한 쥬스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작가의 동양에 환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땅치 않았다. 서양만세 같은 사상은 현세에서면 충분하다. 사후세계에서까지 서양만세를 외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고로 아마도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은 크리스의 아내사랑과 작가의 부드러운 글 솜씨 뿐 이였다고 기억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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