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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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다가 어느날 밤 꿈을 꿨다. 책의 삼분의 일이상을 남겨둔 시점이였다. 완독을 하고 싶었지만 밤이 너무 늦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 완독하리라 다짐하며 책을 덮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책에 너무 몰입했기 때문일까? 꿈속에서 나는 스톨른 차일드가 되어 있었다.

꿈은 단편적이였고 대부분의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 않지만 꿈속의 마지막 장면과 그때 내가 한말, 그리고 감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어른이 된 스톨른 차일드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괴물이야?“ 라고. 그 질문을 받은 과거의 내 친구는 울면서 차마 나를 쳐다보지 못한 채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내 가슴은 저며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난 한동안 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스톨른 차일드들은 자라지 않는다. 자신이 바꿔칠 아이를 찾아낼 때까지 영원히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영원히 어린아이인 존재들. 그들은 내 꿈속의 질문에 답처럼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본다면 괴물들임에 분명하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평범하지 않은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스톨른 차일드도 자란다. 다만 어린아이의 외형에 갇혀 있을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내면엔 그들이 지나온 세월을 쌓아 그만큼의 나이를 채워 나갔다. 하지만 이들은 영원히 어른이 될 수는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어른으써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도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그리 갈망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스톨른 차일드들은 나이는 먹되 영원히 어른은 될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을 과거를 바꿔치기 당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스톨른 차일드의 이야기가 더 가엽고 안쓰럽고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살아가면서 과거에 집착하는 헨리. 그리고 멈춰진 과거에 살면서 그 시간에 얽매여 미래를 외면하는 애니데이. 이 둘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 놓인 지독한 갈등이였다. 자신의 현재모습에 불안해하며 자신의 과거에 집착하지만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고통스러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의 흐름에 나이를 먹어갔지만 어른이 되지는 못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 고통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대면할 용기를 내었을 때 비로소 그동안 외면하던 서로를 마주하고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간의 성장에 대한 고통을 끝내고 진짜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 미래로 한걸음 내딪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결국 어른이 되는 것이란, 진짜 자신을 찾아내는 슬프고 고통스럽운 감정과 경험을 수반하는 것 같다. 과거에서 진짜 자신을, 그 뿌리를 찾아내서 안정감과 평온함을 얻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껏 익숙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경험해보지 못한 불확실한 미래로 가야함을 깨달아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부디 비로소 그 미래를 향하게 된 진짜 헨리와 진짜 애니데이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긴 시간동안 읽은 이 책을 덮었다.

스톨른 차일드는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가 진행한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독백의 형식에 가깝다. 하지만 결코 표현이 지루하거나 반복적이지 않다. 오히려 주인공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기억과 감정에 이야기들로 인해 책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얼마나 다르고, 그 차이가 어떤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천천히 쫒아가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 이야기가 끝이 맺어 있을 정도로 이 이야기는 참 흥미롭고 재미있다. 다만 교정과 번역의 아쉬움이 자꾸만 눈에 밟혔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던 애니데이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였던 헨리.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 과연 나는 내가 되고자했던 어른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 같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하지 않던가? 아직 가을은 좀 여유가 있고 내 가을은 끝나지 않았으니 좀더 깊게 생각을 해보고 결론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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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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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면 잊혀지는 일들이 있다. 당시엔 소중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빛바래 보이는 기억들이 있다. 한발짝 물러나 보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감정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고, 더 선명해지며 간절해지는 것들도 있다. 일곱 번째 파도의 레오와 에미의 기억과 감정들처럼.  

전작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뜻하지 않은 결말을 맞은 이들은 마지막 메일로부터 9달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메일을 주고받게 된다. 그래서 일곱 번째 파도의 형식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서간문의 형태를 띈다. 하지만 전작과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이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만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의 메일에선 종종 현실에서의 만남에서 벌어진 사건과 감정들에 대해 말한다. 이런 이들의 변화는 마치 책속에서 튀어나온 소설속의 주인공들을 보는 것 같아서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의 만남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만났을 때 있었던 사건과 감정에 대해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레오와 에미의 만남과 이야기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기에, 이들의 재치있고 로맨틱한 메일에 전작처럼 푹 빠져들 수 있었다.

레오와 에미는 서로를 향해 다시 메일을 주고 받는 이유로 전작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만남을 품위있게 끝내기 위한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 이유는 표면적일 뿐 서로 그 결별을 핑계삼아 메일교환과 현실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그 만남을 결코 끝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서로의 마음을 장농속에 담아 열쇠로 봉한다 한들, 그 감정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저 숨기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그래서 레오와 에미는 일곱번째 파도에 자신들의 마음을 맡겨버린다. 모든것이 새롭게 시작는 그 파도에 말이다. 

전작인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에서 레오와 에미가 메일교환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과 감정이 대해 싹 트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일곱번째 파도에서는 그 믿음과 감정들이 공고히 다져지고 그 위에 비로소 결실을 맺게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결실은 맺어지기 힘들었을 것이지만. 그래서 일곱번째 파도로 에미와 레오의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 것이 참 고맙다. 전작을 읽고 그 여운에 한동안 너무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곱번째 파도를 읽은 지금은 이 책의 여운을 행복하게 이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인기작들의 후속작들은 전작에 비해 줄거리나 에피소드들이 탄력을 잃고 빛바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일곱번째 파도는 전작만큼이나 재미있고 재치가 넘친다. 이것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글솜씨가 그만큼 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전작이 완성도를 갉아먹지 않고, 전작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만남과 이야기들로 전작과 차별성을 두고있는 것만 봐도 이 작가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 부디 앞으로도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써내주길 작가에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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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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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고대 켈트인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모티브를 큰 줄기로 삼아 진행된다. 이 큰 줄기의 곁가지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테너이자 실존했던 인물인 "루트비히"와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첨가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 이 오페라의 작곡가인 바그너가 이소설의 모델이자 실존인물이였던 테너 루트비히와의 만남에 대해 작성한 서신들을 차용하여 환상적인 소재들에 대한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사실들만 놓고 본다면 이 소설은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 이 소재들을 가지고 독자에게 감동을 이끌어 낼 만큼 완벽하게 요리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좋은 재료들로 그저그런 먹고 탈이 나지 않을 수준의 요리로 만들어냈다랄까. 

이 소설을 읽는데 가장 거슬렸던 점은 억지스럽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을 차용해 이야기를 꾸려나갔다는 것이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후손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목소리들에 빠져 그들과 관계를 갖게되고 절정에 달했을 때 죽게된다는 설정자체가 전설이 주는 교훈이라던지 감동과 전혀 맞닿은 부분이 없었다. 전설속의 트리스탄이 노래를 잘했다는 것? 작가는 그 구절 하나로 전설과 이 소설 전체에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설득력을 주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얼렁뚱당한 설정 때문에 소설의 한 축인 루트비히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인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과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이 두 이야기를 환상과 사실의 적절한 조합으로 이어 붙이고자 했다면 세밀한 묘사과 그 안에서 서로 맞춰지는 인과관계가 존재했어야 햇는데 결론에 가서야 갑자기 모든 이야기를 환상에 의한 우연으로 이야기를 꿰 맞추다보니 그간 전개되었던 이야기들 역시 다 엉성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소설이 스릴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기에 이런 어설픈 점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굳이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 스릴러 성격의 소설을 들자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 "천사의 게임"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소리수집가과 마찬가지로 환상에 의한 우연을 장치로 사건의 안과관계를 맞춰가지만 이야기가 주는 묵직함과 소재간의 서로 엮여있는 단단함의 강도가 소리수집가와 너무 차이가 나서 읽는 내내 이 소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만 쌓여갔다. 

아마도 트라아스 데 베스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고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집필한 것 같다. 책 전체에서 그런 기운이 감도니까. 만약 그들의 슬픈 사랑에 대한 전설을 차용하고 싶었다면 바그너와 그의 절친한 친구 아내와의 은밀했던 사랑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니면 이 소설에 또하나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등장하는 디오니소스와 안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조금은 더 사실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솔직히 디오니소스와 안나의 사랑은 꽤 아름답고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들의 사건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적절하지 않았던 이야기꺼리 였다고 생각된다.  

이 소설은 잔혹한 사랑과 그에 얽힌 스릴러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하게 잔혹하지도, 뒷목을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공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잔혹한이라는 문구가 아까울 정도로 잔인한 장면역시 나오지 않는다. 굳이 잔인한 장면을 찾아면 이야기 초반에 등장하는 카스트라토라는 소재정도인데 이 역시 그간 여러 영화와 소설들에서 너무 많이 차용한 것이라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특히 이야기 초반에 엄청난 비밀과 공포로 점철된 듯한 수도사의 고백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 소설이 끝나가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김을 빠지게 만든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뭐가 그리 엄청나게 공포스럽다고 수도사가 밤잠도 못이룰정도란 말인가? 덕분에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마치 겹겹이 쌓인 커다란 상자를 열고 또 열었는데 그 안에 쪼그마한 번데기 한마리가 들어 있는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의 작가인 트라아스 데 베스는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지옥의 낭떠러지까지 가보고 싶었다고 코멘트했지만, 이 소설이 그가 생각하는 지옥의 낭떠러지였다면 그는 아마도 공포영화는 단 한편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싶다. 만약 이 소설이 20년전에 집필된 것이라면 작가가 원했던 것처럼 새롭고 공포스러우며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혹적인 소설이였겠지만, 이미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들을 두루접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그다지 자극적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물론, 이 소설을 통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전설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알게 된 점은 이 책이 준 긍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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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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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사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은 내가 실제의 삶에서 잠깐 잠이 든 순간에 찾아오는 꿈이 아닐까? 혹은 환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소설가들은 이런 꿈과 같은 환상의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또다른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과연 그들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이란 말인가? 어쩌면 그들이 이야기 중 하나는 진실에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 중 무엇이 진실인지 구별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모두 거짓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은 1920년대 혼란과 격동의 바로셀로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혼란과 격동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악의적인 선전과 비방이 가득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수반한다. 게다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 중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환상인지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선상에 있었다.

사람에겐 자신이 확신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주장 하지만, 가장 절대적이라고 일컫어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확신하는 종교조차 진실이 아니라 환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결국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진실이라고 간절히 믿고 있는 환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진실이라고 믿는 환상의 이야기들은 그것을 전해지고 지속되게 하는 책이라는 모순되는 매개를 가지고 있으니까. 책이란 누군가의 생각과 사상이 집어넣어진 창작물, 즉 꾸며내어진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결국 진실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다비드가 경험한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내가 받아들인 이 책의 내용은 이런 생각들로 귀결되었다. 

사실 나에게 스페인 소설은 처음이였다. 그래서 처음 책을 펼칠때 낯설은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지명에 서먹서먹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에 남아 있는 페이지수가 적어질수록 그동안 주로 접했던 영어권 문학들과는 다른 새로운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은 영문학처럼 친근하지도 휴머니즘적이지도 않지만, 스페인이라는 나라와 바로셀로나라는 도시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책의 곳곳에 배어있었고, 이런 배경속에 사폰의 감각적인 문체가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그래서 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좀체 눈을 책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천사의 게임은 작가 사폰이 구상한 전체 4부작의 이야기중 2부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4부작의 이야기는 각각 별개의 이야기지만 “잊힌 책들의 묘지”라는 공간을 공유한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역자후기를 읽다 이 사실을 알고 사폰의 전작인 바람의 그림자를 읽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전작을 읽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은 쉬운 소설은 아니다.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가 책의 곳곳에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의 논쟁이 길게 이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야기 진행에 필수불가결한 그 고비만 넘는다면, 이야기는 탄력을 받아 속도감 있게 진행되므로 자신도 모르게 이 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책을 다 읽고 이 거대한 시리즈의 3부를 기다리며 바람의 그림자를 읽어볼까 한다. 과연 바람의 그림자를 다 읽고 천사의 게임을 다시 읽게 될 때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벌써부터 다시 이 책을 읽게 되고 느껴질 감정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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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Nobless Club 13
탁목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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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달의 무르무르"라는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일곱번째 달(月)의 무르무르(흐물흐물 + 물컹물컹하다는 느낌의 표현) 라고 생각했다. 책의 표지 이미지 디자인도 흐물거리는 밤하늘의 모습인지라 이런 내 짐작은 굳어졌다. 하지만 책의 첫장을 넘기자마자 이런 짐작이 전혀 맞지 않았음을 알게되었다.  

사실 알고보니 이 책의 아리송한 제목은 가이아라는 땅과 그 주위를 도는 일곱개의 달 중 숨겨진 일곱번째의 달에 사는 무르무르라는 종족을 일컫어 지은 것이였다. 그리고 제목에 등장하는 무르무르라는 종족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주 내용이였다. 제목만큼이나 특이했던 점은 기존의 판타지 소설처럼 중세 배경에 판타지적 요소를 집어 넣은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세계와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창조해 내었고 그 속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조금 난감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면 모든것에 대해 일일이 다 설명이 붙기 때문에 자칫하면 이야기가 늘어지고 지루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우려와는 달리 간결한 문체와 주인공입장에서 필요한 설명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외의 부분은 간략하게 처리함으로써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거나 지루해지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간력하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부분의 이야기들이 더 궁금해지는 경우가 몇번이나 생길 정도였다. 사실 홍보문구로 쓰인 이 책에 비하면 반지의 제왕은 지루하다라는 말에는 동의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상상력과 흡입력에는 동감을 표하고 싶을만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에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다는 것과 선정적인 묘사나 잔인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작가의 철학적 사상을 강제로 주입하려고 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그동안 판타지 소설들을 읽으면서 가장 짜증이 났던 부분이 바로 작가의 강제적인 철학적 사상주입이였는데 이 책은 그런부분이 보이지 않아 읽는 동안에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이런 사상적 부재가 이 책을 가볍게 만들었다는 단점으로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크게 아쉬웠던 점은 이야기의 전개부분이 너무 길었다는 것이였다. 전개부분이 지루하게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긴 전개에 비하여 결말부분이 너무 서둘러 마무리된 점은 이 책의 큰 오점으로 생각된다. 전개가 아무리 탄탄하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결말을 내기 위해선 앞부분에서 쌓아온 이야기들이 갈등부분에서 표출되고 그것들이 결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대부분 생략된 채 너무나 급작스럽게 도달한 이야기의 끝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작가의 후기를 볼때 이 책의 후속작이 나올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기긴 하지만 당장 이 책 한권만을 놓고보면 작가가 결말을 너무 무책임하게 맺은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작가가 창조해낸 이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는 참 매력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뭔가 모자란듯한 결말이 더 아쉬운 것 같다. 작가가 창조해낸 가이아와 여섯개의 달이라는 소재가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으므로 부디 이 이야기들을 시리즈로 계속 출간해 주었으면 한다. 이 이야기들이 시리즈로 출간된다면 이 책의 광고문구처럼 반지의 제왕에 비슷하게 도달할만한 멋진 시리즈가 만들어 질 것 같는 가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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