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사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은 내가 실제의 삶에서 잠깐 잠이 든 순간에 찾아오는 꿈이 아닐까? 혹은 환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소설가들은 이런 꿈과 같은 환상의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또다른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과연 그들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이란 말인가? 어쩌면 그들이 이야기 중 하나는 진실에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 중 무엇이 진실인지 구별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모두 거짓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은 1920년대 혼란과 격동의 바로셀로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혼란과 격동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악의적인 선전과 비방이 가득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수반한다. 게다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 중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환상인지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선상에 있었다.

사람에겐 자신이 확신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주장 하지만, 가장 절대적이라고 일컫어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확신하는 종교조차 진실이 아니라 환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결국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진실이라고 간절히 믿고 있는 환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진실이라고 믿는 환상의 이야기들은 그것을 전해지고 지속되게 하는 책이라는 모순되는 매개를 가지고 있으니까. 책이란 누군가의 생각과 사상이 집어넣어진 창작물, 즉 꾸며내어진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결국 진실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다비드가 경험한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내가 받아들인 이 책의 내용은 이런 생각들로 귀결되었다. 

사실 나에게 스페인 소설은 처음이였다. 그래서 처음 책을 펼칠때 낯설은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지명에 서먹서먹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에 남아 있는 페이지수가 적어질수록 그동안 주로 접했던 영어권 문학들과는 다른 새로운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은 영문학처럼 친근하지도 휴머니즘적이지도 않지만, 스페인이라는 나라와 바로셀로나라는 도시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책의 곳곳에 배어있었고, 이런 배경속에 사폰의 감각적인 문체가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그래서 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좀체 눈을 책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천사의 게임은 작가 사폰이 구상한 전체 4부작의 이야기중 2부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4부작의 이야기는 각각 별개의 이야기지만 “잊힌 책들의 묘지”라는 공간을 공유한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역자후기를 읽다 이 사실을 알고 사폰의 전작인 바람의 그림자를 읽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전작을 읽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은 쉬운 소설은 아니다.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가 책의 곳곳에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의 논쟁이 길게 이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야기 진행에 필수불가결한 그 고비만 넘는다면, 이야기는 탄력을 받아 속도감 있게 진행되므로 자신도 모르게 이 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책을 다 읽고 이 거대한 시리즈의 3부를 기다리며 바람의 그림자를 읽어볼까 한다. 과연 바람의 그림자를 다 읽고 천사의 게임을 다시 읽게 될 때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벌써부터 다시 이 책을 읽게 되고 느껴질 감정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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