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고대 켈트인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모티브를 큰 줄기로 삼아 진행된다. 이 큰 줄기의 곁가지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테너이자 실존했던 인물인 "루트비히"와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첨가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 이 오페라의 작곡가인 바그너가 이소설의 모델이자 실존인물이였던 테너 루트비히와의 만남에 대해 작성한 서신들을 차용하여 환상적인 소재들에 대한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사실들만 놓고 본다면 이 소설은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 이 소재들을 가지고 독자에게 감동을 이끌어 낼 만큼 완벽하게 요리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좋은 재료들로 그저그런 먹고 탈이 나지 않을 수준의 요리로 만들어냈다랄까. 

이 소설을 읽는데 가장 거슬렸던 점은 억지스럽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을 차용해 이야기를 꾸려나갔다는 것이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후손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목소리들에 빠져 그들과 관계를 갖게되고 절정에 달했을 때 죽게된다는 설정자체가 전설이 주는 교훈이라던지 감동과 전혀 맞닿은 부분이 없었다. 전설속의 트리스탄이 노래를 잘했다는 것? 작가는 그 구절 하나로 전설과 이 소설 전체에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설득력을 주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얼렁뚱당한 설정 때문에 소설의 한 축인 루트비히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인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과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이 두 이야기를 환상과 사실의 적절한 조합으로 이어 붙이고자 했다면 세밀한 묘사과 그 안에서 서로 맞춰지는 인과관계가 존재했어야 햇는데 결론에 가서야 갑자기 모든 이야기를 환상에 의한 우연으로 이야기를 꿰 맞추다보니 그간 전개되었던 이야기들 역시 다 엉성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소설이 스릴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기에 이런 어설픈 점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굳이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 스릴러 성격의 소설을 들자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 "천사의 게임"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소리수집가과 마찬가지로 환상에 의한 우연을 장치로 사건의 안과관계를 맞춰가지만 이야기가 주는 묵직함과 소재간의 서로 엮여있는 단단함의 강도가 소리수집가와 너무 차이가 나서 읽는 내내 이 소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만 쌓여갔다. 

아마도 트라아스 데 베스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고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집필한 것 같다. 책 전체에서 그런 기운이 감도니까. 만약 그들의 슬픈 사랑에 대한 전설을 차용하고 싶었다면 바그너와 그의 절친한 친구 아내와의 은밀했던 사랑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니면 이 소설에 또하나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등장하는 디오니소스와 안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조금은 더 사실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솔직히 디오니소스와 안나의 사랑은 꽤 아름답고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들의 사건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적절하지 않았던 이야기꺼리 였다고 생각된다.  

이 소설은 잔혹한 사랑과 그에 얽힌 스릴러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하게 잔혹하지도, 뒷목을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공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잔혹한이라는 문구가 아까울 정도로 잔인한 장면역시 나오지 않는다. 굳이 잔인한 장면을 찾아면 이야기 초반에 등장하는 카스트라토라는 소재정도인데 이 역시 그간 여러 영화와 소설들에서 너무 많이 차용한 것이라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특히 이야기 초반에 엄청난 비밀과 공포로 점철된 듯한 수도사의 고백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 소설이 끝나가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김을 빠지게 만든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뭐가 그리 엄청나게 공포스럽다고 수도사가 밤잠도 못이룰정도란 말인가? 덕분에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마치 겹겹이 쌓인 커다란 상자를 열고 또 열었는데 그 안에 쪼그마한 번데기 한마리가 들어 있는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의 작가인 트라아스 데 베스는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지옥의 낭떠러지까지 가보고 싶었다고 코멘트했지만, 이 소설이 그가 생각하는 지옥의 낭떠러지였다면 그는 아마도 공포영화는 단 한편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싶다. 만약 이 소설이 20년전에 집필된 것이라면 작가가 원했던 것처럼 새롭고 공포스러우며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혹적인 소설이였겠지만, 이미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들을 두루접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그다지 자극적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물론, 이 소설을 통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전설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알게 된 점은 이 책이 준 긍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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