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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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10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P14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작지만 큰 작품이었다 언뜻 보면 건조한 심리소설 같은 느낌이 들지만, 더 깊이 들어가서 보면 이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성채를 짓고 있었다 전체에 깔린 허무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고, 음양오행, 불교, 유교, 토속신앙 등 동양 사상이 놀라울 정도로 곳곳에 녹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설적 장치는 거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만했다

기름기를 모조리 빼버린 듯한 그의 소설은, 읽는 소설이 아니라 사색하는 소설, 즉 깨달아야 하는 소설이었다

P82 터널 밖 세상은 환상에 기반한 모자이크 같은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소설은 독자들을 힘들게 만든다 독자들은 습관적으로 인과관계를 통해 하나의 전체상을 포착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설국 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읽으면 소설 전체의 인과관계를 찾거나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냥 나열된 이미지 하나하나를 감상하듯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어바다 보면 독자 스스로 어떤 '종합'에 이르게 된다

P138 사실 '체념'이라는 단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다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우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희망보다 체념을 먼저 배운 자는 잔치가 끝난 다음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서는 설국, 노벨 문학상 수상, 자살 했다는 거 밖에 몰랐다 '설국'도 읽어야지 하다가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에 읽지 못했다 고전은 시대적 배경이나 문화, 역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읽어야 이해가 되는데 지식이나 정보가 없으니 고전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무지 상태에서 읽게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의 삶과 작품 세계
그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설국'에 해설이 너무 좋았고 그의 생과 죽음 작품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설국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잘 모르고 읽어도 좋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시대 작가들 또 자살을 선택한 다른 작가와 작품들까지 소개되어 일본 문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설국'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에 크게 기여한 영문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 스티커의 노력이 컸듯이 이 책은 허연 작가님 시인의 시선과 섬세한 문장이 설국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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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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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라는 농담, 하나도 재미없습니다만?

P30 나에게 연애란 곧 노동이다 공들여 씻고 화장하는 일 어지러운 서랍 속을 뒤져 위아래 짝이 맞는 속옷을 찾아내는 일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억지웃음을 지어주는 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보고하는 일

제 한몸 추스리기에도 바쁜데 애인까지 챙기며 살아가다니 그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어? 바람피우는 사람은 진짜 박수쳐줘야 해 한 명 만나기도 피곤해 죽겠는데 두 명유 번갈아가며 만나다니 진짜 대단하잖아

P284 무엇이든 네가 느끼는 대로 하면 되는 거다 남의 말을 너무 따라갈 필요는 없다 너만의 방식으로 해서 누군가가 알아주면 좋은 거고 만약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의 것이 남으니 그것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느냐 그러니 누가 시키는대로 하지 말고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라

P287 시간이 더럽게도 안 가던 어느 날, '나는 왜 이렇게 한가할까?' 생각해봤다 결론은 '내 시간을 나 혼자서만 쓰기 때문'이었다 연애하는 사람은 애인에게 시간을 나누어주고,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시간을 나누어주고, 자녀까지 있는 사람은 자녀 각자에게 시간을 나누어주니 자기만의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나는 아무에게도 시간을 나누어 주지 않아 시간이 남아돈다

앞으로 남은 이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낼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결혼 하는 연령이 많이 늦어지기도 했고 비혼주의자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족, 친지, 지인들은 애인있냐 결혼은 언제할거냐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아이는 언제 낳을거냐는 남?의 가족 계획까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그리고 짜증 한번만 내도 노처녀 히스테리 부린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하는 일침 너무나 시원하고 유쾌하다 책 제목으로만 봐서는 결혼을 하긴 할 것 같으나 책 내용으로 봐서는 결혼 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진짜 '이 남자다' 싶은 사람은 나타나기 전에는. 작가님 너무 재밌고 글 잘 쓰심
작가님의 전작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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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닮았네 - 괴짜 과학자의 기러기 육아일기
미하엘 크베팅 지음, 전은경 옮김 / 책세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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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자 과학자의 기러기 육아일기

P13 기러기는 닭처럼 일 년 내내 알을 낳는 게 아니라, 날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3~5월 사이에 낳는다 자연이 공급을 제한하니까 미식가들이 기러기 알을 고급 음식으로 간주하는지도 모른다 기러기도 상황은 똑같다 예를 들어 엄마 기러기가 수영하러 간 사이에 배고픈 담비가 기러기 알을 발견하면, 돌아온 엄마 기러기는 잃어버린 알 때문에 슬퍼할 뿐 다시 알을 품지는 않는다 기러기는 다시 알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기러기들이 정말 슬퍼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엄마 기러기들은 한 해 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P49 새끼들에게 사는 환경을 조망하게 하는 것도 엄마 기러기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이런 탐색은 나보다 엄마 기러기에게 훨씬 더 어렵다 사방에 방해물과 위험 요소들이 널려 있고, 그래도 나는 기러기들을 어느 정도 보호해줄 수 있으니까. 도로와 사람, 개, 집과 온갖 교통수단 등이다 엄마 기러기는 초기 탐색에서 새끼들에게 어느 곳이 안전한지, 어디를 조심해야 할지, 어느 장소에 절대로 가면 안되는지 알려준다

P53 사람과 달리 기러기는 힘든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

P144 날개깃이 만들어지면 기러기들은 날 수 있다 한 번도 시험해본 적이 없어서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경험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엄마 기러기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있다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한다 엄마 기러기는 아이들에게 설명하지도, 경고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경험할 때 '옆에 함께' 있을 뿐이다
이런 동행 방식이 사람 아이들의 양육에는 너무 적게 사용되는 것 같다 아이들을 온갖 위험에서 보호한다며, 우리는 아이들이 이 위험을 다루려면 반드시 해봐야 할 경험을 막는다 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은 결과에 대해 이론적으로 많이 생각할수록 더욱 커지지 않을까? 보험회사들은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보다는 더 불안하게 하지 않나?

P210 사랑과 염려는 종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사랑은 그저 존재한다

P244 기러기들은 몇 가지를 나에게서 배우긴했지만 대부분은 저절로 할 줄 알았다 거꾸로 '내'가 기러기들에게서 뭔가를 배우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자연은 내 착각을 바로잡았다 자연에서는 계획할 수 있는 것이란 없고, 만사가 역학적인 비행 안에서 움직인다 자연은 냉혹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답다

P246 작은 새끼 기러기 일곱 마리가 몇 년 동안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나를 다시 나 자신에게 데려다주었고,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보여줬다 남을 향한 사랑과 삶을 향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기러기들과 함께한 몇 달 동안 나는 기대나 가치 평가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예전에는 알지 못한 감정의 자유가 내 안에서 생겨났다

표지를 언뜻 보고 처자식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하는 기러기아빠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과학자가 일곱마리의 야생 기러기와 함께 한 좌충우돌 기러기 조육? 사육? 이야기다 프로젝트를 위해 부화부터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이야기 무슨 기러기와 동거일기가 이리도 재밌는지 왠만한 소설보다 더 재밌고 뭉클하다 두 아이를 두고 이혼한 작가님이 기러기와 함께 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게 아니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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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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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의 귀여운 악동 어피치와 울다가 웃기기 전문 악동 작가 서귤이 만났다

그냥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친구같은 책이다
지친 하루의 끝에 보는 것만으로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웃게 되는, 웃음을 주는. 어쩜 작가와 캐릭터 매칭을 이리로 잘 하셨는지 감탄이~
다음 시리즈가 나온다면 아마도 무지? 무지는 또 어떤 작가님일지 기대된다

P26 방귀는 참 신기해 내 방귀는 하나도 싫지 않잖아

가끔 내 결점과 못난 구석에 견딜 수 없이 괴로울 때면 방귀 생각을 해 나는 내 방귀는 좋아하면서 왜 나 자신은 좋아하지 않는 걸까 방귀를 사랑할 거면 인간적으로 그 방귀를 뀌는 사람도 좀 아껴줘라! 그렇게 자신에게 외치고 나면, 참았던 방귀를 모아 모아 화장실에서 한번에 터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러니까 기분이 좀 좋아진다는 뜻이야

P86 우리가 이토록 쓸쓸한 이유는 서로의 행성이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겠지 자아라는 대기층에 꽁꽁 싸여 홀로 자전하는 외로운 중력의 덩어리들 이 고독한 질주를 견디게 하는 단 하나의 위로는, 아주 멀리서 보면 우리가 하나의 은하수라는 사실

P136 그러니까 나는 몰랐던 거야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도 희망이고 다시 세우는 것도 희망이라는 걸 허물어진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아까와는 조금 다른 모양의 마음이 새로이 쌓아 올리는 것이 성장이라는 것을. 언젠가, 희망 덕분에 생긴 울퉁불퉁한 마음의 곁을 한 겹씩 쓰다듬으며 그것을 경험이라고 부를 날이 오고야 말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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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블랙독 - 친애하는 나의 우울에게
김늦가을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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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괜찮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다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P50 내 병이 감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아 간과했다

그렇게 나는 쏟아지는 감정들을 부정하고 외면하려 애썼다

병을 키운 건 상처주는 말도 버겁고 힘든 상황도 아닌 나의 무지함

P55 세상을 살아가는 데 당연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몰랐다

삶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그게 때론 버거워 숨이 차오르기도 한다는 걸 몰랐다

몰랐다는 말로 덜어낼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P104 한참을 그렇게 살펴보니,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다가도 이유 없이 기분이 나아지는 '찰나의 순간'이 왔다

그렇게 나는 내 기분도 생각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P117 나는 혼자서도 행복하고 싶지만 혼자서만 행복하고 싶지 않다

P127 나는 몸이 아프고서야 놀랍도록 몸과 마음이 함께 간다는 걸 깨달았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한결 나아진다

P151 나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같은 길을 걸어도 사람마다 남는 풍경이 다르듯이 나는 책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게 됐다

P177 그래도 종종 균형을 잃고 넘어지겠지만, 다시 나만의 속도로 균형을 맞춰나가면 된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속도를 찾아간다

P211 홀로 고립되어 갈피를 잃은 것 같던 나는 터널 안에서 멈춰 선 채로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P256 나는 평생 동안 내 이야기로 위로를 건네는 것이 꿈이었고, 내 꿈은 내가 나일 때 이루어졌다

더이상 우울증을 정신병으로 인식하지는 않지만 병원 문턱을 넘는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진료비 걱정 뿐 아니라 기록이 남아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까지. 우울증을 겪고 예전의 '나'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로
책 마지막 부분은 블랙독이 서서히 흐려지면서 사람 모습이 되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그리고 종종 괜찮다가도 무너지는 마음에게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던 검은 개(우울증)가 있었다 - 원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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