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파 - 조선의 마지막 소리
김해숙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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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받았습니다. 『금파』는 제 1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의 수상작이예요. '고창의 역사 · 자연 · 지리 · 인물 · 문화 등을 소재와 배경으로 한 작품'을 공모하여 치열한 심사를 거쳐 당선된 작품이더군요. '허금파'는 실제의 인물이지만 기록이 얼마 남지 않아 그 인물에 뼈와 살을 붙인 것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었을 터. 작가가 어릴 적 산속에서 10년을 살았던 경험을 소설의 초반부 금파의 성장 배경에 잘 담아낸 듯 해요. 소리꾼으로서 날개를 달지는 못했지만 40년 가까이 소리를 이어가신 아버지를 작품 속에 녹여내 '지난 상처와도 아버지와도 화해한 느낌'을 얻었다는 작가의 말에 뭉클해지더라구요. '아버지에게도 최고의 순간을 드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이 소설을 좋은 길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와 아버지, 허금파가 함께 걸었다니 돌아보면 뿌듯한 행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프로필에서 볼 수 있듯이 '허금파'는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던 조선 후기에 그 금기를 깨고 명창의 반열에 오른 두 번째 소리꾼입니다. 소문이 무성하였으나 기록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아 소설에 등장하는 출생이나 가족관계는 모두 허구라고 해요. 금파의 소리에 대한 열정은 소설 곳곳에 잘 드러나 있어요. 늦은 나이에 소리를 하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온 그녀는 그 시대의 진정한 예인이에요. 사랑보다는 소리를 택하고, 일본의 창극이 아닌 오로지 우리의 소리로 무대에 서겠다는 의지가 대단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금파는 소리를 하기 위해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을 떠나 스스로 관기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버지는 '무릇'을 불러 역병이 도는 마을을 지나 관아로 데려다 주기를 청하고, 금파의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졌다 생각한 무릇은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줍니다. '귀신의 소리', '천상의 소리'를 가진 금파가 '미모 때문에 재주를 다 뽐내지도 못하고 꺾일 것 같'은 안쓰러움은 이내 사랑으로 변하고, 무릇의 가질 수 없는 이에 대한 집착은 이후 질투심으로 인해 허황된 소문을 낳게 하지요.


우여곡절 끝에 관아를 떠난 금파는 소리를 하기 위해 동리정사를 찾아갑니다. 동리정사를 관장하는 김세종은 처음에 금파를 내치지만, 대나무 숲에서 들려온 금파의 소리를 듣고 그 실력을 인정하여, 조선 최고의 영창 진채선의 달비를 건네며 연회에 나갈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연회도 싫고, 달비도 싫다던 금파는 귀한 달비를 아궁이에 던지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기 위해 달비를 태웠소.

나는 나요.

누구의 뒤를 밟지 않고

오롯이 나로 남을 거요.

p.43~44


"기억해라. 울림통에서 소리를 다 뽑아내면 소나무 옹이 같은 투박한 소리를 낼 것이다. 자기의 몸을 다 태우면서 소리하다 사라지지. 사람들은 금방 너를 잊고 다른 사람을 찾을 것이다. 쉽게 버려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2. 귀성으로 울고 웃게 하고 중에서_P.77


금파의 소리길은 순탄치 않아요. 동리정사에서 도성으로 올라가 협률사의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역시 험난합니다. 여자가 남자와 한데 섞여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을 천박하다고 여겨, 남자가 여장을 하고 남자들로만 무대를 꾸리는 탓에 설 자리도 없이 그저 연습만 할 따름이었지요. 동리정사에서 함께 올라온 양반 가문 출신 승윤은 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지만, 인기와 함께 사람들의 관심에 마음의 병을 앓습니다. 그런 승윤을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금파뿐이었지요. 사람들의 등쌀에 예민해지는 승윤을 위해 협률사의 단장은 금파에게 가짜 혼례를 권하지만, 소리에 진심인 금파는 이를 거절하고 승윤은 다른 이와 거짓 혼례를 치릅니다. 승윤의 마음에는 이미 금파가 들어차 있어 거짓 혼례는 비극적으로 마무리되고, 결국 승윤은 소리를 관두고 훌쩍 떠나게 되지요. 금파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도성에 오기 전, 동리정사에서부터 이미 금파에게 마음이 갔던 승윤은 무릇에게 금파에 대해 알아오라며 돈을 건넵니다. 무릇은 승윤뿐만 아니라 금파를 탐내는 이들에게도 돈을 받고 거짓된 정보를 흘리지요. 금파는 어떤 소문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에 품은 사랑을 외면하며 오로지 소리의 길을 걷습니다. 협률사 무대에서 드디어 춘향도, 향단이도 아닌 월매로서 큰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소리를 펼쳐내지요. 시간이 흘러 소리가 아닌 일본의 창극이 무대에 오르게 되자 금파는 미련없이 무대를 떠납니다.

사랑보다는 소리를 택하는 진정한 소리꾼, 금파와 승윤의 사랑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애틋함을 더합니다. 동리정사에서 만난 양반 출신 소리꾼 승윤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노인이 되어서라도 꽃을 피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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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음 주문
이도원 지음 / 다산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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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받았습니다.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음 주문'이라니.. 정말 그런 주문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프로필에 나와 있듯이 작가는 해 뜨면 의대생, 노을 지면 엄마, 달빛이 내리면 작가가 되는 삶을 살고 있네요. 거기다 의대생으로 의사 국가고시를 앞두고 있다는데 띠지에 적힌 문구처럼 정말 작가는 '나 와의 약속'을 지킨 모양입니다.

프롤로그 다시, 꿈을 꿀 시간

Chater1. 첫걸음을 떼면 모험은 시작된다

Chater2.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돼

Chater3. 지도는 내 마음속에 있어

Chater4. 상상이 현실이 되는 기쁨

나상상 프로젝트 러닝메이트 100인의 목표

목차

결핍과 열등감으로 얼룩진 나를 터널 밖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를 온전히 믿을 것. 결국엔 이루어진다는 마음으로 계속 꿈을 그려나갈 것.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마음의 주문을 왼다.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 걸음인 것 같아서 초라한 기분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러했고 여전히 그런 기분에 종종 사로잡히기도 합니다만, 작가는 그런 시기를 잘 버티고 재수와 두 번의 편입을 거쳐 꿈꾸던 의대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모르고 시작'했지만 '목표를 공표하고 일단 시작'한 일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어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아내는 그녀는 이제 독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러닝 메이트'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외면하고 살았던 꿈이 있다면 다시 용기 낼 힘을 얻기를,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면 끝까지 이루어낼 힘을 얻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Chapter1. 첫걸음을 떼면 모험은 시작된다 에서는 목표를 이루는 방법으로 '플랑크톤 계획'을 세우라고 조언합니다. 1년 단위로 해야 할 일을 나눈 다음, 그것을 다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로 구체화 하는 것인데요. 단순하지만 여러 목표와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 당장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을 '플랑크톤 계획'이라 정의합니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단게별 목표를 세분화하는 것이지요. 세분화 시킨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하다보면 목표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육아와 살림, 공부를 병행하다 보면 당연히 과부하에 걸릴 수밖에 없다. 모든 체력을 쏟아붓고 24시간을 촘촘히 쪼개 써도 모자라고 부족한데, 이는 어느 순간 우울과 무기력으로 찾아온다. 이제는 안다. 그럴 때일수록 어떻게든 하루 안에서 빈틈을 만들어 오직 나를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을. 크고 거창한 보상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시간들이야말로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Chater3. 지도는 내 마음속에 있어_나를 지켜주는 하루의 빈틈 중에서

Chater4. 상상이 현실이 되는 기쁨 에서는 의학과 4학년 실습생으로서 겪는 일들과 그간의 경험에 따른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어요.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방식과 어떤 의사가 되어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한 평짜리 방에서 원대한 꿈을 꾸'던 작가는 어느새 꿈에 성큼 다가서 있어요. '의사 국가고시 합격', '용기와 영감을 주는 작가 되기' 그리고 '미혼모 학교 설립하기'까지 작가의 꿈이 실현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러닝메이트 100인의 목표가 적혀 있어요. 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나.상.상. 프로젝트인데요. 첫번째로 클레어 이도원의 목표가 3가지 적혀 있고요. 99명의 러닝메이트들의 각기 다른 목표들이 3개씩 쭈욱 적혀 있었어요. 마지막 장에는 100이라고 쓰인 글씨 아래 세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하늘색 선이 그어진 종이 위에 저는 어떤 세 가지 목표를 적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어요.

러닝메이트 100인의 목표가 다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습니다.

인생이란, 용기를 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중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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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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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서평단 가제본으로 『호수의 일』을 읽었습니다. 작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더 궁금했지만 알고 보니 아, 하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어요. 베일에 싸여 있던 작가는 『푸른사자 와니니』, 『짜장면 불어요!』, 『로봇의 별』의 이현 작가였습니다.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한국 후보로 선정되었다니 대단하지요. 그런 분이 손편지에서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쓴 것을 내보이는 일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지요'라고 표현하시다니…….

책장을 덮으며 지금껏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방식, 손글씨로 이 한 권의 소설을 써내려갔다는 작가의 말이 떠올랐어요. 우리에게 서로가 있어, 거기 있어주어서 고맙다던 작가의 말에 저 역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읽다 보면 제가 요즘 보고 있던 드라마(그해 우리는)처럼 눈 앞에 등장인물이 그려졌어요.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이 소설은 #청춘 #성장 #치유 소설입니다.

소설은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가족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호정이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가족과 거리를 두는 호정이를 보며 부모는 '사춘기'가 늦게 온 모양이라고 치부하는데요. '사춘기라는 말이 없었다면 어쩔 뻔하셨나요?'하는 호정이의 마음의 소리에 뜨끔한 건 이제는 사춘기를 지나온 사람이 아닌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에 이입이 되어서겠지요. 잠깐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읽는 동안 호정이의 이야기에 푸욱 빠질 수 밖에 없었어요.

1학년 8월달에 호정이의 반에 은기라는 아이가 전학을 옵니다. '어쩐지 그 자리에 붙잡혀 있는 것 같지 않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은기에게 호정은 점차 마음을 열게 됩니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품은 것 같은 은기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물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지요. 계절의 흐름과 함께 곱게 물든 첫사랑의 감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휘청이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는 그 과정들이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언젠가 사건이 터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랑말랑한 그 감정들이 좀 더 이어지길 바라는 건 제 욕심이었나봐요. 그냥 좀 놔 두지, 하는 마음. 우리 제발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는 대사가 절로 떠오를 만큼 은기와 호정이 나누는 찰나의 순간들이 참으로 어여뻤습니다.

결국, 사건은 터지고 은기가 가진 비밀이 파헤쳐지자 호정은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립니다. 주체 못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은기를 찾아 나선 호정은 내 안의 아이와 마주하는데요. '진정으로 고요한 세계'를 느끼며 '텅 비어 가'던 호정은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옵니다. 호정이에게는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했지만 자신을 구해준 친구가 여전히 곁에 있었어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친구의 선물을 받고 호정이는 은기를 찾을 결심을 해요. 마침내 호정은 사라졌던 '나의 은기'를 찾아냅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책장을 덮었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은기와 호정이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등장인물처럼 시간이 지나 언젠가 다시 은기와 호정이 만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소설은 끝이 났지만, 이야기의 여운이 마음 깊이 남는 책이에요. 풋풋하고 몽글몽글하고 그러면서도 가슴이 아리는 첫사랑의 추억 같은 소설, 『호수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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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위안 (초판 겨울 한정판)
서민재 지음 / 한평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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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씁니다.

오랫동안,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서민재 작가 프로필

작가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쓴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지요. 평범한 일상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해내고 감사할 줄 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요.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함께 토닥여주고 싶기도 하고, 부모님이 떠올라 아릿해졌어요. 때로는 시를 읽는 것 같은 에세이집은 첫인사_'안개'를 시작으로 총 3부로 나뉘어져 있어요.

당신 앞길에 안개가 가득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아 속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면 제 말을 좀 들어보세요.

살다 보면 갑자기 안개가 끼고는 합니다. 하지만 안개는 걷힙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고, 걷히지 않는 안개는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일어나 보세요. 안개등을 켜듯 두 눈을 부릅떠 보세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분명 조금씩 나아질 겁니다.

정말입니다. 안개의 도시에 사는 사람 이야기니 믿어도 좋습니다.

안개 중에서_P.20~21

당신의 앞길에 안개가 있다면 반드시 걷힐 거라는 말로 작가는 이야기를 첫인사를 건넵니다. 작가의 말을 믿어볼까요? 책장을 열어 슬그머니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보통의 재산과 보통의 가족과 보통의 일상. 그것들을 모두 보통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보통은 쉽지 않다. 고요와 평온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는 이에게 찾아온다. 애써야 비로소 정신이 맑아지는 것처럼.

보통으로 사는 일 중에서_P.30~31

보통의 날들,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그리 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을 찾는 건 이제 더이상 낯선 일이 아닌만큼 더더욱요.

버려야 더 나아갈 수 있다.

비워야 또 새로움이 찾아온다.

생각도 인연도, 묵은 감정도.

등짐_P.45

어느 순간부터 버리고 비우고 정리하는 게 화두가 되었어요. 제게는 특히나 어려운 일인데, 생각도 인연도 묵은 감정들도 다 등짐이라니. 이제는 좀 등에 진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아야겠어요.

손길이 이처럼 따뜻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했고 내 손길을 나누고 싶은 당신을 떠올렸다.

손길 중에서_P.47

미용실에 간지 너무 오래되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머리 손질하러 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더군요. 물론, 저는 작가님처럼 떠올릴 사람이 없네요. 내 안의 연애세포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

멀리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다. 네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주는 아니어도 대게 할 수 있는 삶을, 지금의 이 삶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대게 중에서_P.53

부모님과 함께 대게를 먹으러 가서, 아직까지 한 번도 대게를 드셔보지 못했다는 말에 놀라워 하며 작가는 이렇게 다짐해요. 대게의 중의적 표현이 즐거우면서도 아릿한 건, 저도 모르게 부모님이 떠올라서겠지요. 그 나이쯤 되면 다 겪었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스쳐 지나왔던 일들 속에 어쩌면 부모님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고 싶은데, 이제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초조해지기도 하고요. 지금은 그저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이것 저것 많이 여쭤봐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만, 합니다.

분명 넘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보여도 막을 수 없는 것들이 나를 넘어뜨릴 것이다. 그래서 넘어져도 괜찮다.

넘어지지 않는 나 자신을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올해를 살아낼 것이다.

정월 중에서_P.71

넘어지지 않을 거야, 하고 버티기보단 넘어질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더 현명한 자세일 거예요. 작가는 넘어지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서면 되지 하는 마음. 그 유연함이 우리를 또 일어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고 있느냐고.

그럼 되었다고.

안부_P.80

단 두 문장의 말로도 우리는 안부를 전할 수 있습니다. 별 것 아닌 일인데, 그 안부를 전하는 일이 왜이리 쉽지 않을까요?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두기는 할지언정 마음의 거리는 여전히 가까웠으면 좋겠습니다. 가볍게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온도가 1도는 올라가지 않을까요?

어렸을 적 문방구 아저씨,

그때 그 분식집 이모님,

장대리님, 김 선생님,

그리고 내 눈물을 닦아주던

진심 어린 눈빛들.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

모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질 텐데.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너라는 위안_P.93~97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하는 마지막 문장에 앞서 부른 낯 모르는 이들이 덩달아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세상 곳곳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 덕분에 세상이 돌아가고,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어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모두가 그러긴 쉽지 않아요. 그저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 살다보면 점점 바라던 이들과 닮아지지 않을까요. 그러다보면, 또 모르지요. 나도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런지.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

'용기'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_P.119~120

용기를 내어 한 발 내딛는 것.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오로지 '나'를 생각하는 시간은 분명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며 자신을 안으로 밀어넣기보다는 부딛쳐도 좋으니 한 발 앞으로 나가 보자고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하지요. 그렇게 용기를 내어 걷다보면 어느새 그 걸음들이 차곡차곡 쌓이리라 여겨봅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엄마 나이쯤 되었을 무렵의 모습을

상상조차 못했더랬다.

그런데 그 상상할 수 없었던 시간을 지나

엄마 나이쯤이 되어

다시 바라본 사진 속 엄마는

서른여섯의

나와 같은 나이의 엄마였다.

나를 가득 안고

햇살 아래 환하던

사진 속 엄마는

여름날의 장미였다.

너라는 위안_P.125~129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줄만 알았는데, 하는 이야기가 떠올라요.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라고 다 같을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알지요. 사진 속 엄마의 나이보다 내 나이가 더 많아진 지금에 와서야, 추억의 앨범을 꺼내 꽃다운 엄마의 모습을 손으로 쓸어봅니다. 작가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거예요. 지난 해 유난히 예뻐보였던 장미를 떠올리다 코 끝이 찡해집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는 온갖 욕망과 바람 사이에서 흔들리고 괴로워한다. 바람이 없다면 풀꽃도 인간도 흔들리지 않겠지. 바람은 확실히 바람을 닮았네,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온 길 위로 수많은 바람이 스쳐가고 있었다.

바람 중에서_P.155

수많은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좀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요? '삶은 아름답다는 그 말을 한번 믿어보는 것도 아주 손해 보는 일은 아닐지' 모른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발췌가 너무 많아져서 담진 않았지만, 부모님이 다녀가신 자리를 바라보며 느끼는 마음이나, 집에 홀로 있을 고양이를 생각하는 마음, 어느새 해진 당신의 속옷을 개키며 드는 일상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글인 '떡볶이'도 참 좋았습니다. 읽는 이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 주신 글이어서 제 마음에도 따스한 바람이 불어들었어요.

프로필 속 작가의 바람처럼 오랫동안, 쓰는 사람으로서 마음의 위로가 되는 글들을 적어나가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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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오늘의 젊은 문학 4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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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작가의 소설집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를 읽었습니다.

표지 디자인과 제목부터 띠지의 문구까지 뭔가 말랑말랑하고 따스한 SF를 기대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그건 저의 크나큰 오산이었어요. 물론, 전혀 따스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작품인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를 제외하고는 말랑말랑함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것마저도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터져나오는 온기로부터 생명성이 부여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SF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분명 시간가는 줄 모르게 푹 빠져서 읽게 될 거예요. 전 첫 작품부터 헉, 이건 뭐지? 하면서도 순식간에 읽어버렸거든요.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는 2019년부터 2021년 겨울까지의 SF단편들을 모은 작가의 첫 소설집인데요. 이것이 본격 SF 소설이다, 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아요. 뼛속까지 문과인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에 주석이 막 달려있는데,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 살짝 속은 느낌도 들었어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바벨의 도서관」에 나온 모든 과학기술은 가짜고 엉터리'라지 뭐예요? 'SF는 과학 문학이 아니며, 과학적이지 않아도 SF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실험'이었다는데,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복잡한 무언가를 머리에 담기에 이미 제 뇌는 늘 포화상태인지라 읽는 동안에는 전혀 그 의도를 알 수 없었습니다. 가짜고 엉터리인 과학기술이라지만, 그런쪽으로는 1도 모르는 제가 보기엔 너무 그럴듯해서 어떠한 의심 없이 당연히 진짜로 여겨졌으니 작가의 실험은 저에 한해서 100퍼센트 성공입니다.

소설집은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저로서는 살짝 충격적인 소설이었는데요. '이 작품으로 많은 상을 탔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보여드리기가 참 죄송스럽다'는 작가의 말이 십분 이해가 갔습니다. 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야기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떠오르는… 그러나 그 끝이 비극으로 치닫는 걸 수긍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마도 예로부터 뿌리 깊게 내려온 유교사상에 의한 일말의 양심이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멈추면」은 '2014년 KTX민영화 저지 투쟁과 2018년 파리바게트 제빵기사들의 투쟁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작가의 말을 맨 나중에 읽었기 때문에 다 읽고나서야 아, 그렇구나 했어요. 우주 정거장 근로자들의 투쟁과 파업에 이르는 과정들이 실로 구체적이었던 건 아마도 모티브에 관한 사실적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서였겠지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말 붉은 빛이 온 우주에 터져 나오는 것 같은 벅찬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곳에 있었다면 저 역시 붉은색 조명의 버튼을 누르고 말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층 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는 급박하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했어요.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이어지는 단편들로 오히려 더 이해가 갔던 작품입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해도 인간의 본질적 욕망은 '자유'를 찾게 될까요? 이러한 질문은 다음 소설인 「바벨의 도서관」의 결론과도 어쩌면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에게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으란들 그들은 명령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신체강탈자들의 침과 입」은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던 2020년 봄'에 쓰여진 작품이라고 하네요. '특정 종교를 의식하'지 않았다고도 하고요. 뭐가 됐든간에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소설처럼 싸그리 잡혀 사라지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는 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앞의 단편들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씩 다 축약해 놓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소설이기도 했고요. 띠지에서 저를 설레게했던 말랑말랑한 문장도 바로 이 작품에서 나옵니다. 사랑하는 하나를 쫓아서 무수한 게이트를 통과해 끝없이 미래로 나아가는 정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인간의 외로움을 뼈져리게 느낄 수 있어요. 메워도 메워도 채울 수 없는 마음 속 구멍은 과연 채워지게 될까요? 읽는 동안 가장 따뜻한 건 어쩌면 인간인 정원과 하나보다 게이트를 수만년동안 지키고 있는 휴머노이드 직원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계의 위로가 오히려 서로를 욕망하여 죽고 죽이는 인간보다 낫네, 싶어질 정도로요.

"다정함을 잃지 않으면 돼요.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빼앗으려 들지 말고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얻으려 해봐요. 더 많이 나누려 해봐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지니고 있으니까."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중에서_P.305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정원은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한 욕망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욕망이 서로 교차하고 간섭하기 때문이었다. 온전히 욕망을 충족하려면 각자의 세계에 홀로 존재하는 수밖에 없었다. 욕망을 실현할 힘이 커질수록, 그 힘의 크기만큼 서로를 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은 욕망하기를 포기하거나.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중에서_P.328

그리고,

이윽고 두 사람의 손끝에서 온기가 닿아.

그곳에서,

새로운 은하가 태어났다.

부디 지금보다 다정한 우주가 탄생하기를.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중에서_P.354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는 단편 소설집이기 때문에 각각의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동일한 등장인물을 '재사용'하기도 하고, 단편들마다 전체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거대한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옴니버스처럼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다 읽고 나니 그제야 작가 프로필에 다시 눈이 가더라구요. 'SF소설가. 죽음과 외로움, 서열과 권력에 대해 주로 이야기 한다'는 말이 정말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각기 다른 문예지에 실린 단편을 모은 작가의 첫 소설집을 읽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작가의 다음 소설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실려 있을지 기대해 보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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