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파 - 조선의 마지막 소리
김해숙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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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받았습니다. 『금파』는 제 1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의 수상작이예요. '고창의 역사 · 자연 · 지리 · 인물 · 문화 등을 소재와 배경으로 한 작품'을 공모하여 치열한 심사를 거쳐 당선된 작품이더군요. '허금파'는 실제의 인물이지만 기록이 얼마 남지 않아 그 인물에 뼈와 살을 붙인 것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었을 터. 작가가 어릴 적 산속에서 10년을 살았던 경험을 소설의 초반부 금파의 성장 배경에 잘 담아낸 듯 해요. 소리꾼으로서 날개를 달지는 못했지만 40년 가까이 소리를 이어가신 아버지를 작품 속에 녹여내 '지난 상처와도 아버지와도 화해한 느낌'을 얻었다는 작가의 말에 뭉클해지더라구요. '아버지에게도 최고의 순간을 드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이 소설을 좋은 길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와 아버지, 허금파가 함께 걸었다니 돌아보면 뿌듯한 행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프로필에서 볼 수 있듯이 '허금파'는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던 조선 후기에 그 금기를 깨고 명창의 반열에 오른 두 번째 소리꾼입니다. 소문이 무성하였으나 기록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아 소설에 등장하는 출생이나 가족관계는 모두 허구라고 해요. 금파의 소리에 대한 열정은 소설 곳곳에 잘 드러나 있어요. 늦은 나이에 소리를 하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온 그녀는 그 시대의 진정한 예인이에요. 사랑보다는 소리를 택하고, 일본의 창극이 아닌 오로지 우리의 소리로 무대에 서겠다는 의지가 대단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금파는 소리를 하기 위해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을 떠나 스스로 관기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버지는 '무릇'을 불러 역병이 도는 마을을 지나 관아로 데려다 주기를 청하고, 금파의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졌다 생각한 무릇은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줍니다. '귀신의 소리', '천상의 소리'를 가진 금파가 '미모 때문에 재주를 다 뽐내지도 못하고 꺾일 것 같'은 안쓰러움은 이내 사랑으로 변하고, 무릇의 가질 수 없는 이에 대한 집착은 이후 질투심으로 인해 허황된 소문을 낳게 하지요.


우여곡절 끝에 관아를 떠난 금파는 소리를 하기 위해 동리정사를 찾아갑니다. 동리정사를 관장하는 김세종은 처음에 금파를 내치지만, 대나무 숲에서 들려온 금파의 소리를 듣고 그 실력을 인정하여, 조선 최고의 영창 진채선의 달비를 건네며 연회에 나갈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연회도 싫고, 달비도 싫다던 금파는 귀한 달비를 아궁이에 던지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기 위해 달비를 태웠소.

나는 나요.

누구의 뒤를 밟지 않고

오롯이 나로 남을 거요.

p.43~44


"기억해라. 울림통에서 소리를 다 뽑아내면 소나무 옹이 같은 투박한 소리를 낼 것이다. 자기의 몸을 다 태우면서 소리하다 사라지지. 사람들은 금방 너를 잊고 다른 사람을 찾을 것이다. 쉽게 버려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2. 귀성으로 울고 웃게 하고 중에서_P.77


금파의 소리길은 순탄치 않아요. 동리정사에서 도성으로 올라가 협률사의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역시 험난합니다. 여자가 남자와 한데 섞여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을 천박하다고 여겨, 남자가 여장을 하고 남자들로만 무대를 꾸리는 탓에 설 자리도 없이 그저 연습만 할 따름이었지요. 동리정사에서 함께 올라온 양반 가문 출신 승윤은 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지만, 인기와 함께 사람들의 관심에 마음의 병을 앓습니다. 그런 승윤을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금파뿐이었지요. 사람들의 등쌀에 예민해지는 승윤을 위해 협률사의 단장은 금파에게 가짜 혼례를 권하지만, 소리에 진심인 금파는 이를 거절하고 승윤은 다른 이와 거짓 혼례를 치릅니다. 승윤의 마음에는 이미 금파가 들어차 있어 거짓 혼례는 비극적으로 마무리되고, 결국 승윤은 소리를 관두고 훌쩍 떠나게 되지요. 금파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도성에 오기 전, 동리정사에서부터 이미 금파에게 마음이 갔던 승윤은 무릇에게 금파에 대해 알아오라며 돈을 건넵니다. 무릇은 승윤뿐만 아니라 금파를 탐내는 이들에게도 돈을 받고 거짓된 정보를 흘리지요. 금파는 어떤 소문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에 품은 사랑을 외면하며 오로지 소리의 길을 걷습니다. 협률사 무대에서 드디어 춘향도, 향단이도 아닌 월매로서 큰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소리를 펼쳐내지요. 시간이 흘러 소리가 아닌 일본의 창극이 무대에 오르게 되자 금파는 미련없이 무대를 떠납니다.

사랑보다는 소리를 택하는 진정한 소리꾼, 금파와 승윤의 사랑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애틋함을 더합니다. 동리정사에서 만난 양반 출신 소리꾼 승윤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노인이 되어서라도 꽃을 피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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