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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쓸 만한 인생
윤혜연 지음 / 달먹는토끼 / 2026년 8월
평점 :
이야기꾼 윤혜연의 에세이 『제법 쓸 만한 인생』.
1부 비록 화려한 소설 같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2부 반환점을 돌아보니 인생은 소설보다 에세이
3부 예순여섯이 되니 이제야 보이는 풍경들
4부 세 개뿐인 내 재주가 일곱 개 운에 업혀
총 4부의 구성으로 엮어진 글들은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이야기 할머니의 보따리를 하나하나 열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파평 윤씨 5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열다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 뒤에 어머니까지 떠나 보낸 후 예순여섯 해를 보내는 동안
삶의 나이테에 켜켜이 담긴 사연들을 정성껏 담아낸다.
다소 투박할지언정 가식 없이 건네는 다정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어느 때엔 철딱서니 없고 칠칠맞지 못한 왈가닥 왕언니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녹록치 않은 삶을 지나온 이의 지혜가 곳곳에서 드러나
책장을 덮고 나면 이야기꾼 윤혜연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많고 많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딸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니고 시댁의 조카 며느리를 향한 다짐이었다.
남편에게 한쪽 신장을 내어주면서도 누가 뭐래도 나는 형수 편이라는 시동생,
얼굴만 마주치면 늘어놓는 남편 험담에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나이 많은 큰 시누,
만날 때마다 콩알 반쪽이라도 나눠주고 싶어 하는 작은 시누,
남편과 싸울 때마다 든든한 비빌 언덕을 잃고 싶지 않아
마음을 고쳐먹었을 만큼 돈독한 사이었기에
시동생 외아들의 결혼식에 꽃같이 예쁜 조카며느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구나 싶다.
너도 나처럼 인복을 타고난 게로구나.
세상살이 아무리 힘들어도 넘어졌을 때
손 잡아주고 일으켜주는 좋은 사람
몇 명만 곁에 있으면 그럭저럭 다 살아지더라.
빈말이라도 잘한다 잘한다 해주고
등 두드려주는 사람 서넛만 있어도
힘을 내서 살 수가 있더라.
그러니 아가, 우리 어디 한번 잘 지내보자꾸나.
내 너를 두고두고 한결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주는 식구가 되겠다.
P.231
짤막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모은 글을 읽었다 한들,
결코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쩐지 이번 만큼은 내적 친밀감이 높아져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마주칠 날이 오게 된다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진다.
'아무리 약은 체해봐도 예순여섯 먹은 할머니'라고 하지만,
노후에 친구가 필요 없는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는
반짝반짝 빛나는 네 명의 친구들,
또 내 말이 맞다 우겨대며 아옹다옹하면서도
기필코 끝까지 서로 미워하는 일 없이 살아갈 네 자매들,
이러니 저러니해도 평생의 반려인 남편,
멀리 살아 자주 보진 못해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자식들,
이들과 함께하는 인생길은 앞으로도 재미난 이야기가 이어질테니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곁에 가는 그날까지
인생 내공 만렙 할머니의 일상 시트콤이 계속되길 바란다.
'누군가가 내 보잘것없는 글줄을 읽고
내가 예순여섯 먹은 저 리앤 할머니보다 낫네 하는
생각이 들거나, 우리 엄마는 잘 계시나 전화기를 든다면
그리고 잠시만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는 작가의 말마따나 이만 하면 제법 쓸 만한 인생이 아닐까.
'쓸 만한 인생'이라는 말 속에는
제대로 갖추어져 꽤 충분한 인생을 표현함과 동시에
글로 쓸 만한 삶을 살았다는 중의적 의미가 담겼을 테다.
독특한 진행 방식으로 독자 에디터 14명이 책의 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손을 보탰다.
뒤표지에 실린 각각의 추천사만 보아도 각각의 애정이 담뿍 묻어 있는 에세이다.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가을날,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보면 어떨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