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코
곰민정 지음 / 한림출판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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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민정 작가님의 《거꾸로 코》를 받았습니다.
작년 가을 스페이스 아크에서 열린 더미전에서
거꾸로 코를 처음 만났어요.
보자마자 반해서 한참을 거꾸로 코 존에서
머물며 사진도 찍었습니다.
시계 바늘 대신 360도로 돌아가는
파란색 코가 정말 귀여웠지요.
나중에 작가님 인스타에 제 뒷모습이 박제된 걸
보고 부끄러웠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았어요.

그림책 편집자 N년차였던 시기여서
사무실로 돌아와 파일을 요청했지요.
작가님과 짧은 메일을 주고받으며
혼자 마음 한 편이 몽글몽글해졌어요.
갓난쟁이 아기를 돌보며 작업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더미로 만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합니다.
첫 단추를 꿰는 일부터 여러 사람의
의견과 논의가 필요하고
마음에 쏙 든 더미가 있더라도
제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 일이기에
아쉬움이 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여겨봤던 더미가
책으로 완성된다는 소식에
덩달아 기뻤습니다.
역시 사람 눈은 비슷비슷해서
좋은 작품은 누군가 꼭 알아본다고 생각하면서요.
더미 파일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지는 않아서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인스타를 통해 작가님이 들려주신 고민들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기대가 되어
서평단에 냉큼 손을 들었네요.

총 48P의 거꾸로 코는 본문은 물론이거니와
앞면지부터 뒷면지까지 무척 익살맞고 귀염귀염합니다.
코딱지, 방귀 등 도파민도 총출동이고요.
따뜻한 블루 색감이 곳곳에 어우러져 있어요.
파랑이 따뜻하다니 이상하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작가님의 파랑은 어딘지 모르게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납니다.

거꾸로 코는 어느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
코가 거꾸로 된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구름 구경을 너무 오래해서일까요,
아니면 친구 방귀가 너무 고약해서일까요,
산토끼 노래를 거꾸로 불러서일까요,
친구들 중에 혼자서만 코에 혀닿기를
성공해서일까요?

서둘러 했던 행동을 모두 반대로 해 보지만
거꾸로 코는 제대로 돌아올 생각이 없습니다.
세수를 할 때도 코에 물이 다 들어가서 맵고
도서관에서 남들 몰래 코딱지 파기도 어려워졌지요.
우산 없이 비를 맞으니 숨을 쉴 수도 없어
급기야 감기에 걸리고 맙니다.
훌쩍훌쩍 노란 콧물이 가득한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난감하지요.
주인공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요?

거꾸로 코든 똑바로 코든 살고 보자!
이렇게 굳게 마음을 먹고나니
거꾸로여서 불편했던 코 덕분에
신이 나고 재미난 일도 생깁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도 단단히 준비를 하는 건
물론이고요~.
이런저런 상상들로 마음을 달래며 보낸
긴 하루 끝에 지친 몸을 욕조에 뉘이니
이제는 거꾸로 코도 귀여워 보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아까 파다 만 코딱지나 마저 파려고
콧구멍에 손을 넣었는데...
...과연 이 다음엔 어떻게 될까요?
궁금하면 오백원~이 아니라
거꾸로 코를 펼쳐 보세요.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 짓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누구나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어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코가 거꾸로 되는 일처럼
어처구니없고 난감한 일도 생기지요.
그럴 때, 거꾸로 코의 주인공처럼
긍정 회로를 돌려 보면 어떨까요?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해결책을 찾아 보는 거예요.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도 좋아요.
그러다 보면 소리도 없이 다가온 인생의 큰 파도가 어느새 저만큼 물러나 있을지 또 모르잖아요? ^^

#거꾸로코
#곰민정그림책
#신간그림책추천
#서평단
#온담캘리
@hollymbook
@gom.is.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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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쓸 만한 인생
윤혜연 지음 / 달먹는토끼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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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윤혜연의 에세이 『제법 쓸 만한 인생』.


1부 비록 화려한 소설 같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2부 반환점을 돌아보니 인생은 소설보다 에세이 

3부 예순여섯이 되니 이제야 보이는 풍경들 

4부 세 개뿐인 내 재주가 일곱 개 운에 업혀


총 4부의 구성으로 엮어진 글들은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이야기 할머니의 보따리를 하나하나 열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파평 윤씨 5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열다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 뒤에 어머니까지 떠나 보낸 후 예순여섯 해를 보내는 동안

삶의 나이테에 켜켜이 담긴 사연들을 정성껏 담아낸다.


다소 투박할지언정 가식 없이 건네는 다정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어느 때엔 철딱서니 없고 칠칠맞지 못한 왈가닥 왕언니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녹록치 않은 삶을 지나온 이의 지혜가 곳곳에서 드러나

책장을 덮고 나면 이야기꾼 윤혜연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많고 많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딸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니고 시댁의 조카 며느리를 향한 다짐이었다.

남편에게 한쪽 신장을 내어주면서도 누가 뭐래도 나는 형수 편이라는 시동생,

얼굴만 마주치면 늘어놓는 남편 험담에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나이 많은 큰 시누,

만날 때마다 콩알 반쪽이라도 나눠주고 싶어 하는 작은 시누,

남편과 싸울 때마다 든든한 비빌 언덕을 잃고 싶지 않아

마음을 고쳐먹었을 만큼 돈독한 사이었기에 

시동생 외아들의 결혼식에 꽃같이 예쁜 조카며느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구나 싶다. 


너도 나처럼 인복을 타고난 게로구나.

세상살이 아무리 힘들어도 넘어졌을 때

손 잡아주고 일으켜주는 좋은 사람

몇 명만 곁에 있으면 그럭저럭 다 살아지더라.

빈말이라도 잘한다 잘한다 해주고

등 두드려주는 사람 서넛만 있어도

힘을 내서 살 수가 있더라.

그러니 아가, 우리 어디 한번 잘 지내보자꾸나.

내 너를 두고두고 한결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주는 식구가 되겠다.

P.231


짤막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모은 글을 읽었다 한들, 

결코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쩐지 이번 만큼은 내적 친밀감이 높아져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마주칠 날이 오게 된다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진다.


'아무리 약은 체해봐도 예순여섯 먹은 할머니'라고 하지만,

노후에 친구가 필요 없는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는 

반짝반짝 빛나는 네 명의 친구들, 

또 내 말이 맞다 우겨대며 아옹다옹하면서도 

기필코 끝까지 서로 미워하는 일 없이 살아갈 네 자매들,

이러니 저러니해도 평생의 반려인 남편,

멀리 살아 자주 보진 못해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자식들,

이들과 함께하는 인생길은 앞으로도 재미난 이야기가 이어질테니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곁에 가는 그날까지

인생 내공 만렙 할머니의 일상 시트콤이 계속되길 바란다. 


'누군가가 내 보잘것없는 글줄을 읽고 

내가 예순여섯 먹은 저 리앤 할머니보다 낫네 하는

생각이 들거나, 우리 엄마는 잘 계시나 전화기를 든다면

그리고 잠시만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는 작가의 말마따나 이만 하면 제법 쓸 만한 인생이 아닐까.


'쓸 만한 인생'이라는 말 속에는 

제대로 갖추어져 꽤 충분한 인생을 표현함과 동시에 

글로 쓸 만한 삶을 살았다는 중의적 의미가 담겼을 테다.


독특한 진행 방식으로 독자 에디터 14명이 책의 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손을 보탰다.

뒤표지에 실린 각각의 추천사만 보아도 각각의 애정이 담뿍 묻어 있는 에세이다.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가을날,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보면 어떨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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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세계
모리타 아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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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 아오의 《네가 사라진 세계》를 받았습니다. 

전작인 《봄이 사라진 세계》는 영화로 보았어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후에도 우리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화두로 이야기는 진행이 됩니다.

전작의 스핀오프로 시한부인 두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에 이어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이들의 

상처와 회복, 성장과 사랑을 담았습니다. 


전작의 두 주인공 하루나와 하야사카의 사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야카가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하루나에 이어 하야사카를 떠나 보내면서

자기도 모르게 하야사카를 좋아하게 된 아야카는 

좀처럼 새로운 사랑을 만나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고, 

지난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아야카는 

어느 날 전단지 한 장을 발견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상실감을 안고 있는 이에게

안심하고 안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리프 카페 오노데라"의 전단지였지요. 

백지에 검은 글씨로 되어 있는 간결한 광고였지만 

절실한 마음이 느껴진 아야카는 모임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그곳에서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 딸과도 헤어져 살고 있는 

가와사기를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맑게 갠 듯한 느낌을 받지요.


그 와중에 우연히 중학교 시절 하루나와도 인연이 있던

첫사랑 게이지를 만나기도 합니다만, 게이지의 호감을 

느끼면서도 아야코는 망설이고 맙니다. 

아야코의 마음 속에는 이미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사별한 아내에 딸도 있는 가와사기가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이죠.


이들의 사랑은 과연 어떤 길로 가게 될까요?

자신감을 잃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마음으로 휘청거리던 차에

전해진 편지 한 통은 아야코의 마음을 굳건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됩니다.


하루나와 하야사카와의 추억이 교차되며

상처를 딛고 용기를 내는 아야카를 통해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움직이는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누구나 소중한 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지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무엇이든.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도

회복의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도

위로와 온기를 전해 줄 소설 《네가 사라진 세계》.


#네가사라진세계 #모리타아오 #서평단 #오팬하우스 #온담캘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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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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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1927년 출간 후 3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어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불멸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소설이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로 손꼽히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낡고 오래되었으나 어느 누구도 다리가 무너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그 다리가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에 무너졌다. 다리 위를 지나던 다섯 명의 여행자가 골짜기 아래로 추락했다.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다섯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까?

소설은 이에 의문을 품은 주니퍼 수사가 다섯 명의 숨겨진 삶을 조사하여 그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유를 밝혀내고자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딸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_P.23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은 부유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해 자신이 낳은 딸에게 집착과 애정을 갈구한다. 시집 간 딸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건너기 전 날, 새 인생을 시작할거라고 다짐한 후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쓴다. "이제 나도 사는 것같이 살 거야. 다시 시작할 거야." 하녀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속삭이던 그녀가 맞닥뜨린 것은 새로운 삶이 아닌 죽음의 다리였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섯 명의 인물들이 비극적인 삶의 아픔을 견뎌내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불태우는 시기에 어째서 죽음이라는 시련이 찾아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재난 뒤에 남겨진 이들의 슬픔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다. 떠나간 이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감사와 사랑은 남겨진 이들의 마음에 진한 흔적을 남긴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도대체 왜? 어째서? 하는 물음 대신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 인물들이 어떤 실수를 했든 결국엔 사랑만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_P. 207

삶과 죽음, 인간과 신, 운명과 예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짧고도 강렬한 이야기,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책장을 덮고 난 뒤에 후폭풍처럼 몰려오는 여운이 가슴을 흔들고 지나갔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고, 마음을 주고 받으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생이 다하는 날, 어떠한 후회도 없이 한 세상 잘 놀다 갑니다, 하고 말할 수 있도록.

#원모어페이지 @1morepage_books 를 통해 #클레이하우스 @clayhouse.inc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산루이스레이의다리 #손턴와일더 #소설 #고전 #명작 #삶과죽음 #죽음을대하는우리의자세 #서평 #서평단 #소설리뷰 #신간소설추천

#온담캘리 #온담 #캘리그라피 #책속의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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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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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례

​

01 내 삶에 예고 없이 찾아온 변화

02 이상한 집주인 그리고 결심

03 이상한 병원과 그들

04 닫혀버린 비밀

05 비밀이 기다린 사람

06 아나톨 가르니아

07 같지만 다른 두 개의 일기

08 이어진 비밀

09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 공간

10 다시 살아나는 집

11 기억을 담은 공간

12 라자르 가르니아

13 제자리로

14 추억

작가 소개

나는 파리에 산다.

길을 지나다가 문득

아름다운 집을 볼 때마다

그 집의 우편함에

편지를 적어 넣곤 했다.

"당신의 집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 건축가로부터……."

간혹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집에 초대를 받았고,

그 집에 숨어 있는

신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많은 파리의 저택에

발길이 닿았고

그 이야기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_빛이 이끄는 곳으로 서두에서

​


작가 백희성은 프랑스에서 젊은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폴 메이몽 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하고,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사무소에서 건축가로 활약하였으나, 건축가로서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미래를 뻥 차버린 괴짜 아티스트이다. 기억을 잘 못해 적기 시작한 '기록 노트'를 장장 21년 동안이나 써 오고 있으며, 거기에는 평소에 느끼고 경험하고 배운 모든 것들이 적혀 있다. 작가 소개에 적힌 기록 노트의 한 대목만 봐도 이미 한 편의 소설을 엿본 기분이다.


나의 사랑은 언제나 지우개처럼 지워진 채로 남겨진 찌꺼기 같았다. 적어도 이 오래된 저택들에 새겨진 사랑을 보기 전까지는. _빛이 이끄는 곳으로_P.354

​

아직 어리고 부족함이 많은 건축가이지만 집에 관심이 많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집 내부를 구경해 보고 싶다는 글에 연락처를 적어 우편함에 넣고 기다린지 한 달 남짓, 작가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아주 오래된 집이지만 그래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방문해 달라는…….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이 발동해 조사를 시작했지만, 저택을 방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는 눈물을 쏟고 깨달음을 얻는다.

​

자그마치 8년 동안 조사해 온 거의 모든 집의 이야기를 책 속에 넣고 그 이야기를 하나로 재구성한 것이 바로 이 책, 『빛이 이끄는 곳으로』다. 각각의 저택에 사는 이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소중한 추억, 비밀, 수수께끼. 그리고 작가가 파리에서 건축가로서 일하며 깨닫고 발견하고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아주 아름다운 소설 한 편을 만났다. 긴 세월이 담긴 이야기를 손에서 떼지 않고 단숨에 읽어내린 것이 미안할 만큼.

​

책의 화자로 파리의 저택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뤼미에르는 건축가다. 건축가이기에 알아챌 수 있는 수많은 비밀들. 1년에 단 한 번 왈처요양병원에서 볼 수 있는 신비로운 빛의 환희. 백년 전의 건축가가 아들에게 남긴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과정을 읽노라면, 어느새 시공간을 뛰어 넘어 그곳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루미에르는 스위스 루체른 왈처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는 피터로부터 수수께끼를 풀어 낸 보답으로 파리의 저택을 받지만, 저택의 열쇠를 다시 주인에게 돌려준다.

​

멋진 액자를 가졌다고 그림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림의 주인이 액자를 가져야죠. 그 그림은 당신과 부모님의 추억입니다. 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돌아가서 그분과 함께했던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찾으셔야죠. 프랑스와가 제게 알려준 것이 있습니다.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다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됩니다.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위해 그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이제 피터 씨,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의 흔적을 채워서 당신의 아이들에게 전해줄 차례입니다._빛이 이끄는 곳으로_P.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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