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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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서평단 가제본으로 『호수의 일』을 읽었습니다. 작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더 궁금했지만 알고 보니 아, 하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어요. 베일에 싸여 있던 작가는 『푸른사자 와니니』, 『짜장면 불어요!』, 『로봇의 별』의 이현 작가였습니다.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한국 후보로 선정되었다니 대단하지요. 그런 분이 손편지에서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쓴 것을 내보이는 일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지요'라고 표현하시다니…….

책장을 덮으며 지금껏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방식, 손글씨로 이 한 권의 소설을 써내려갔다는 작가의 말이 떠올랐어요. 우리에게 서로가 있어, 거기 있어주어서 고맙다던 작가의 말에 저 역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읽다 보면 제가 요즘 보고 있던 드라마(그해 우리는)처럼 눈 앞에 등장인물이 그려졌어요.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이 소설은 #청춘 #성장 #치유 소설입니다.

소설은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가족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호정이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가족과 거리를 두는 호정이를 보며 부모는 '사춘기'가 늦게 온 모양이라고 치부하는데요. '사춘기라는 말이 없었다면 어쩔 뻔하셨나요?'하는 호정이의 마음의 소리에 뜨끔한 건 이제는 사춘기를 지나온 사람이 아닌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에 이입이 되어서겠지요. 잠깐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읽는 동안 호정이의 이야기에 푸욱 빠질 수 밖에 없었어요.

1학년 8월달에 호정이의 반에 은기라는 아이가 전학을 옵니다. '어쩐지 그 자리에 붙잡혀 있는 것 같지 않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은기에게 호정은 점차 마음을 열게 됩니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품은 것 같은 은기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물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지요. 계절의 흐름과 함께 곱게 물든 첫사랑의 감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휘청이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는 그 과정들이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언젠가 사건이 터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랑말랑한 그 감정들이 좀 더 이어지길 바라는 건 제 욕심이었나봐요. 그냥 좀 놔 두지, 하는 마음. 우리 제발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는 대사가 절로 떠오를 만큼 은기와 호정이 나누는 찰나의 순간들이 참으로 어여뻤습니다.

결국, 사건은 터지고 은기가 가진 비밀이 파헤쳐지자 호정은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립니다. 주체 못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은기를 찾아 나선 호정은 내 안의 아이와 마주하는데요. '진정으로 고요한 세계'를 느끼며 '텅 비어 가'던 호정은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옵니다. 호정이에게는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했지만 자신을 구해준 친구가 여전히 곁에 있었어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친구의 선물을 받고 호정이는 은기를 찾을 결심을 해요. 마침내 호정은 사라졌던 '나의 은기'를 찾아냅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책장을 덮었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은기와 호정이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등장인물처럼 시간이 지나 언젠가 다시 은기와 호정이 만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소설은 끝이 났지만, 이야기의 여운이 마음 깊이 남는 책이에요. 풋풋하고 몽글몽글하고 그러면서도 가슴이 아리는 첫사랑의 추억 같은 소설, 『호수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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