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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독서뿐 - 허균에서 홍길주까지 옛사람 9인의 핵심 독서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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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교수의 책은 깔끔하다. 필력 자체가 군더더기가 없고 쓸데없는 가식이 없어서 좋다. 전작인 <일침>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뽑아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 책의 연장선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조선 중 후반의 선비들 허균, 이익, 양응수, 안정복,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홍석주, 홍길주 9명의 저서에서 독서에 대한 글들만 뽑아내 번역하고 정민 스스로가 해설을 해 준 글이다. 전작인 일침과 비슷한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책의 여백들이 많아서, 사실 빨리 읽을 수 있고,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대체적으로 책의 쪽수 중 반은 빈 공간이라고 봐도 될 듯싶다.

 

일단, 허균을 시작으로 실학파 선비들이 책을 어떻게 대했나에 대한 모습들을 볼 수 있으며, 확실히 좋은 문구들도 많이 있다. 독서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글 읽는 것들이 지루해지거나 권태로움이 있을 때, 읽기에 아주 좋으며, 독서에 흥미를 붙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고전의 경구들도 뛰어난 문장이 많지만, 정민이 뒤에 달아논 해설 역시도 깔끔하고 좋았다. 책에 대한 좋은 문구와 그에 걸맞은 해석, 수미쌍관이 잘 이뤄진 책이다.

 

어쨌든, 실학자들의 독서 방법론도 볼 수 있는 데다가, 사실 여기 기록된 독서법이 절대적이진 않지만, 취사선택하여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분명 도움은 되는 책이긴 하다. 거기다가 책에서 맑은 솔나무 같은 느낌이 나서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마음도 큰 듯하다.

 

아무튼, 고전의 경구 치고 무겁지 않으면서 좋은 내용, 좋은 설명 등이 보이는 책이다. 다만 다소 편집을 잘 해서, 여백의 미를 줄였으면 책이 좀 더 콤팩트해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뭐 어쩌면 그런 여백의 미 역시도 출판사가 의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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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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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과 그 소년의 아버지는 서점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에게 두 권의 책을 쥐여줬었다. 바로 이 <명상록> 과 <군주론>을 소년은 이해하기 힘든 책을 쥐여준 아버지가 싫었다. 만화책을 읽고 싶었었으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완강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야, 소년은 성장하여 그 책에 대해서 느낀 점을 서평으로 쓰고 있다.

 

아버지께선 나완 반대로 책을 좋아하시진 않았지만, 보통의 철학서나 사상서들은 많이 알고 계셨다. 어린 나에게 사주셨던 책 2권 중 하나인 <명상록>, 이 책은 많이 읽었던 책이나, 리뷰를 보류하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논어>가 일전 리뷰에서 할아버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이 <명상록>은 아버지의 바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권유하신 두 책 <군주론>과 <명상록>은 내용이 전혀 상반되는 책이다. <군주론>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책이었으며, <명상록>은 다소 도덕적 관념과 내면의 성찰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군주론>과 <명상록>의 공통점은 어쨌든 리더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군주론>은 리더의 치국에 대한 방법이 써진 책이고 <명상록>은 저자 자체가 리더다. 리더가 개인적인 성찰을 적은 글을 모아논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유명한 황제 중 한명이고 5현에 마지막을 장식한 현군이었다.

 

블로그의 서평을 쭉 살펴보니 동양 고전과, 위인들에 대한 책만 쓴 것 같다. 하지만 플라톤을 비롯한 서양 철학 책이나 역사 책들도 읽고 있다. 다만 내 능력이 일천하여 아직까지 서평으로 승화하여 쓰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블로그에 처음 올리는 이 <명상록>을 필두로, 서양 사상 책에 대해서도 서평을 남기도록 노력해볼까 한다.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일단 스토아학파의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 스토아학파는 대체적으로 인내를 강조하며, 현실을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기본적 모토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이상형은 현인으로, 그 현인은 개인의 자아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도덕적 수양을 목표로 한 위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소 반대적 입장의 에피쿠로스 학파의 경우는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조하는 입장이지만 스토아학파는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강조하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도덕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스토아학파의 기본적 관점은 이성이다. 어찌 보면 운명론적이기도 한데, 그들은 이성에 따라서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 이성의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현인이라고 한다. 뭐 이렇게 보면 바꿔 본다면, 동양 사상의 유교 사상과도 일통한 부분이 있다. 유교의 절대 상인 군자와 현인은 어찌 보면 닮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 물론, 세상을 인지하는 그런 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인 틀로 보면 비슷하다고 느꼈다.

 

책은 그런 스토아학파에 영향을 받은 황제가 직접 서술했다. 놀라운 점은 이 명상록이라는 이름은 후대에 붙여진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 책은 저자가 공개적인 목적으로 출판을 생각한 책이 아닌 그냥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을 담은 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솔직한 면도 볼 수 있었고, 로마의 현군이라 칭하는 그의 진솔한 모습을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현인의 상을 볼 수 있었다.

 

일단 그의 치세에서는 로마가 급격하게 쇠락하고 있었다. 로마는 넓어진 영토와는 다르게 비효율적인 행정 체계가 만연했고, 이민족들의 반란 등이 많았다. 그래서 마르쿠스는 군대를 이끌고 전쟁의 나날을 보낸다. <명상록> 역시 그런 전쟁 속에서 지어진 책이다. 반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는 그는 사실 피곤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 현상들을 외면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황제의 자리지만 그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전쟁터에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싸움을 진두지휘하는 모범을 보였지만, 사실 그 역시도 피곤하고 혼탁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그가 매일을 반성하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적었던 것이 바로 이 <명상록> 이다. 책의 체계는 <논어>와 비슷하게 일관적이지 않은 황제의 단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 1권은 자신의 가족들을 비롯한 평을 조리 있게 적어놨는데, 그 점을 빼면 <논어>와 마찬가지로 장마다 공통점은 없었다. 그는 이 책에서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노력과, 반성, 성찰 등을 토로했다. 그의 사상 속에는 강력한 도덕적 의식이 있었으며, 때론 운명론에 수긍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는 체념 감초차 보이기도 하고 인간의 허무주의에 대해서도 토로한다.

 

그러나 주 모토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끊임없는 반성을 종용, 그것이었다. 동양의 <논어>와 비교해봤을 때, <논어> 가 친근하고 조곤조곤하며 일상적인 느낌이라면 <명상록>은 전혀 다르다. 엄숙하고 절제적이며, 때론 숭고함, 경건한 분위기를 보여줬다.

 

그것은 한 인간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정신승리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명상록> 1장에 그는 자신의 아내를 현숙한 여인이라고 칭송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왕좌를 전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비워둔 탓인가 그의 아내는 그 외에 다른 장군과 소문까지 날 정도의 평판을 가졌다. 그러나 황제는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충실했었다. 심지어 후궁도 없이!! 이 여인만으로 여색을 잠재웠다고 한다!! 이런 부분으로 봤을 때 정말이지 초월적인 인간 자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구나 더 놀라운 점은, 이 책의 원문은 그리스어로 기록된 것이라는 점. 이 당시 로마 사람들 상류층은 모국어인 라틴어 뿐만 아니라 그리스어 역시도 빠삭했었다.  전쟁 끝나고 와서 모국어로 일기 쓰기도 귀찮을 텐데, 황제는 엄숙하게 '외국어'로 자신의 성찰을 담담하게 기록해나간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닌 스스로를 반성하며 스스로를 경계하며, 스스로를 질책하며 쓴 책. 그것이 바로 명상록이다. 그런 책이니만큼 책에서 풍겨져 나오는 엄숙함과 숭고함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만했다. 지금의 모습으로 치자면, 일상을 마치고 영어로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영어를 잘 한다선 치더라도 사실 편한 모국어를 놔두고 그런 짓을 하는 건 썩 유쾌하진 않을 것 같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와도 비교해보자. 공통점은 둘 다 로마의 지도자가 쓴 책이지만 둘의 성격은 너무나 다르다. <갈리아 전쟁기>는 애초부터 카이사르가 로마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기를 지지하게 만들기 위해 쓴 자전적 영웅전이다. 물론 그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호칭하며 '카이사르는 ~했다.'라는 구절을 써오긴 했지만... 반면 마르쿠스의 <명상록>은 전혀 반대적이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쓴 책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쓴 것이 아닌 주관적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진솔하게 기록했다는 차이점이 있겠다.

 

문체 자체도 다르다. 카이사르의 글은 수사학적으로 볼 때, 굉장히 짧고 단문이 많다. 그러나 <명상록>의 문체는 그렇지 않다. 그는 그의 글은 단출한 것 같으면서도 숭고한 면이 있으며 그 숭고한 면은 아무래도 좀 현학적인 표현 때문이 아닌가도 싶었다. 반면 카이사르의 글은 대체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느낌이 강했다.

 

 로마의 스토아학파 저술을 볼 때 가장 참고되는 저자가 세네카다. 그리고 이 <명상록> 역시도 마찬가지다.

 

최고지도자가 이런 정신적 원숙함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여러 유혹에 굴하지 않고 이렇게 성찰하려고 했던 노력. 그 노력을 <명상록>은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 노력 속에는 앞서 말했듯 황제의 절망이나 허무주의 역시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숭고함과 엄숙함 속에서도 비인간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뇌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 한 인간의 영혼의 고문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다 봤을 때 그래서 더 그를 존경했었다.

 

그렇게 올바르게 살고 로마를 위해 봉사한 그지만, 그의 대에서 로마 현군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로마는 이 시기 보통 왕위를 덕망이 높은 자에게 양위하는 방식을 보여줬는데, 그는 자신의 친자인 코모두스에게 왕위를 넘긴다. 그리고 알다시피 코모두스는 로마 시대에 유례없는 폭군으로 기록된다. 이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서양 고전 역본을 볼 때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번역가에 천병희라고 쓰여있으면 일단 믿어라. 우리나라에서 번역되는 서양 역본은 대부분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이중 번역이 많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숙한 학자가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천병희 선생님은 둘 다 능숙하시고 전문가시다.  초기엔 문학서를 번역하셨는데 지금은 역사학이나 철학 서적도 번역하시고 있다.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 특징은 일단 원전 번역서라는 장점이 있겠고, 두 번째가 가독성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즉 직역 위주로 한다 하더라도 다른 원전 번역자들에 비해 가독성을 염두에 두고 번역하신다. 이 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좋았던 것 같다. 문학과 역사 고전은 그냥 이분 책으로 다 샀었다.

 

요즘은 플라톤 대화편들을 번역하시는데, 개인적으로... 플라톤 번역서는 정암학당의 책들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신뢰할 만한 번역가 선생님이시고, 책의 내용 자체도 좋고 번역도 괜찮았던 것 같다. 다만 주석이 뒤로 있는 구성이라서 좀 왔다 갔다 번거롭게 책장을 옮겨야 하지만, 책을 보는 데에는 거슬리진 않았다.

 

책은 굉장히 짧다. 본문은 모두 합쳐서 200페이지 정도고, 짧은 문단으로 구성돼서 사실 작정하고 읽으면 하루에도 다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읽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진 않다. 이런 책은 한 구절을 읽고 사색을 해 보면서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봤던 것 같았고, 씹으면 씹을수록 맛있는 고기처럼, 이 책도 그런 맛을 보여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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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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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 가지 밝히겠다. 나는 이 책을 주문하기 전에 네이버의 서평들을 읽어봤다. 항우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지만 이 책이 얕은 지식만으로 써진 책일 것 같아서 그런 폭탄을 밟지 않으려고 그랬다. 네이버에서의 이 책의 평가는 별로다. 평점도 별로였다. 어느 독자는 이 책을 항우를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한 책이라고까지 혹평했다. 그래서 사실 관심 가지 않았던 책이다. 그러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느꼈다. 이 책은 저자가 자의적인 해석을 시도하긴 했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나름 항우의 패배 원인을 객관적으로 지적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항우는 굉장히 이례적인 인물임엔 틀림없다. 역사는 보통 승자를 기억하기 마련이지만, 항우는 패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의 <사기>에 본기에 수록된다. 본기는 황제들만 오를 수 있는데, 사마천은 패배자인 항우를, 개국시조인 유방과 함께 나란히 올린다. 그리고 숱한 문인들은 항우를 애도하거나 비판, 또는 칭송해왔다. 따라서, 현대에 이르러서도 항우는 극단적인 칭송을 받거나 극단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재미있는 인물이다.

 

이 리뷰는 사명감을 가지고 작성했다. 네이버의 다른 분들의 서평들과는 다르게, 내가 본 관점으로는 정말 탁월한 분석이었으며, 자의적인 저자의 분석이지만 합리적인 부분이 아주 많았다. 이 책은 중국의 CCTV <백가강단>이라는 인문학 프로그램의 방송된 부분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그러나 저자는 방송 분량만으로 책을 낸 것이 아닌 뒤에 내용을 더 상세하게 서술하여서 <백가강단>에서 보여주지 못한 내용들까지 독자들에게 선사했다. 그만큼 책은 공들여서 제작됐다. 보통 강연록을 엮어내는 책들은 사실 강연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고 심지어는 강연록보다도 더 못한 서술을 보여줘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 이 책은 다르다.

 

중국의 <백가강단>은 지금은 아주 유명한 이중텐이 '삼국지 강의'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삼국지강의> 역시 1,2권으로 나눠서 발간됐다.) 대륙 최고의 인문학자들이 나와서,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국내에서도 몇 편들은 방영을 해 줬었다. 시청을 해 봤는데, 대중화라고 해서 얕은 일반론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깊은 내용까지 들어가서 분석하고 고찰하는 프로라 아주 흥미로운 프로였다. 이 책은 그런 <백가강단>의 강연록이다.

 

사실 이 책은, 초한 전쟁의 대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서술은 서사적인 구성에 입각하여 서술하였지만, 갑자기 스킵 하여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상세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지나가는 부분이 있다.

 

책은 항우의 전반적인 모든 부분을 고찰하고 있으며 사서인 <사기 - 항우본기>를 중점적으로 분석하면서 항우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으며, 더불어 뒷부분에는 후세의 평가와 항우를 노래한 시 문학까지도 소개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항우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하면 되겠다. 국내에서는 <초한지>는 유행하더라도, 항우만을 다룬 전기는 없었는데 그래서 더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책 내용을 모두 이야기할 순 없다. 핵심만을 요약하면 항우가 유방에게 패배한 원인의 가장 큰 부분은 '정치력'의 부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 하나 밑도 끝도 없는 '자만심'도 하나겠다. 그리고 사람을 잘 판별하지 못한 '용병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순하고도 직설적인 '성격'이다.

 

항우와 유방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치적은 시각이다. 유방은 초한 전쟁의 전체 판도를 넓게 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항우는 스스로의 군략 (용력이 아니다.) 만을 믿고 자만에 자만을 빠졌던 것. 그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항우는 전투에서는 매번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지고 있었다. 시야 자체가 굉장히 좁아서 일의 경중을 똑바로 판단하지 못한 점이 가장 결점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하나는 밑도 끝도 없는 자만심이다. 사람이 자신감이 너무 없어도 안되지만 자신감이 너무 지나치면 그것은 자만이다. 스스로를 자만하게 되면 사물이나 현상을 똑바로 볼 수 없게 된다. 항우는 남을 인정하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유방을 깔보고 있었고, 자신의 진정한 라이벌이 유방이었다는 사실을 결국 팽성 전투 이후에야 알게 됐다.(팽성 전투를 시작으로 이후 항우는 서서히 몰락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자만시 하면 참모의 의견을 절대 듣지 않는다. 범증뿐만 아니라 여러 장수들의 의견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또 뭐든 자기 스스로 하려고 이리저리 의미 없이 움직이기만을 했다. 최고지도자가 솔선수범하게 움직이는 것은 좋으나, 모든 일을 이렇게 피곤하게 도맡아서 할 필욘 없다. 지도자는 만능이 아니다. 그러나 항우는 모든 것을 자기가 처리하려고 했고 그 결과 군대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유방을 보라, 유방은 적재적소에 한신을 투입시켜 새로운 진격로를 확보하고 항우의 시간을 끌었다. 유방은 장량이나 진평과 같은 일급 모사들의 진언뿐만 아니라 한량한 자들의 의견까지도 듣고 맞는 말이 있다면 힘을 실어 진행했다. 그러나 항우는 그렇지 못했고 그것은 패배로 직결됐다.

 

 항우의 또 다른 실책인 용병술, 항우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싸우는 전투에서의 용병술은 가히 최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우가 장군인가? 아니다 항우는 군주의 신분이다. 군주의 용병술은 장들을 어떻게 포진해야 할지를 잘 판단하고 일을 맡겨야 한다. 항우는 용저에게 한신의 군대를 저지하라고 대군을 줬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틀렸다. 용저는 거만하게 한신을 깔보다가 귀중한 군사를 다 잃었고 그 결과로 항우는 몰락했다. 1차적인 책임은 용저에게 있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항우에게 있었다. 거기다 숙부인 항백의 이적행위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눈치 차리지 못한다. 이 점은 항우가 인재 보는 눈이 매우 부족했고 용병술에 뛰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항우의 결점인 단순하고 직설적인 성격, 저자는 말했다. <사기 - 항우본기>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대목은 항우가 화냈다.라는 대목이다. 항우는 성격 자체가 굉장히 단순하고 직설적인 것 같았다. 유방은 덕이 많다고 사서에서는 그러나 사실 유방은 덕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유방은 음험하고 계략적이며, 모략에 아주 밝은 군주였다. 단순한 항우는 쉽게 발끈하고 쉽게 화를 냈다. 지도자가 이렇게 감정적이게 되면 밑에 사람들은 피곤하기 마련이다. 유방에 비해 솔직하고 단순한 점은 어떻게 보면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람이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면에서는 그렇겠다 허나, 지도자는 이러면 안 된다. 무릇 지도자는 무거워야 하고 감정 절제를 잘 해야 한다. 그러나 항우는 그렇지 못했고, 수하들에게 모욕을 자주 줬으며 대로 하는 감정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4가지 사항은 저자가 분석한 내용인데, 일리가 있었다.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순 있겠으나,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됐다. 그러면 항우가 단점만 있느냐? 그렇지는 않다.

 

일단 항우는 군사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천재적인 모습을 보인다. 항우는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자주 이겼다. 그가 기록한 거록의 전투는 5만의 군사로 30만의 대군을 상대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허접스러운 상대도 아니다. 진나라의 장함이라는 장군인데, 그는 굉장히 병법에 밝은 무장이었고, 반진세력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를 상대로 항우는 결사항전한다. 당시 항우의 연합군 쪽은 항우의 군대를 제외하곤 다른 제후들은 장함을 두려워서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 항우가 용감하게, 싸워 이겼었다. 말이 5만 대 30만이지 이런 전공을 내기란 쉽지 않다.

 

또 하나의 대전은 팽성의 전투다. 이 팽성의 전투는 유방 세력의 최초의 반격이었으며 무려 56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하여, 항우 세력을 뿌리를 뽑아버리려는 전멸전을 목표로 하고 거병했었다. 이 당시 유방에게는 최고의 참모라 할 수 있는 장량, 군사 부분에서는 한신이 있었다. 당시 항우는 다른 곳으로 원정을 나가있어서 팽성(본진)이 비어 있었다. 그래서 유방은 그 기회를 노리지 않고 대병을 일으켜 팽성을 차지했다. 쉽게 말하면 빈집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자 항우는 '열폭'하며 정예병 3만을 이끌고 스스로 선봉으로 출정한다. 여기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유방의 56만 대군이 항우의 3만의 병사에게 대패를 당한다. 사서에는 10만 명의 병사들은 도망가다가 다 죽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참패를 당한다. 유방은 아마 자만했을 것이다. 수도를 뺐고 병력이 많다는 것에, 아무튼 이 때 자기 자식까지도 내 버리고 도망간 유방의 마음도 처참했을 것이다. 이 때 한신이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역시도 종군하고 있었음은 분명했다.

 

항우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경우는 또 하나가 있는데, 항우 사후, 유방은 투항했던 항우의 부하인 경포가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제압을 하러 갔다. 이 때 경포가 항우가 주로 쓰던 진법을 구사했었는데, 유방인 그것을 보고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만큼 항우의 군사적인 능력은 탁월했었고, 실제로 전투에서는 매번 승리를 했다. 한서 예문지에서는 <항왕>이라는 병법서가 있는데 이것은 항우가 병서를 썼다고 저자는 추측하는데, 항우가 과연 병서를 썼는지는 의문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항우의 병법 철학을 누군가가 후대에 정리를 했을 수도 있겠고 그 사실은 항우가 병법에 굉장히 밝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 책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매우 애석할 뿐이다. 

 

우리는 보통 여포와 항우를 비교하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여포와 항우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여포는 용력이 뛰어난 일개 범부일 뿐이지만, 항우는 적어도 그렇지 않다. 물론 항우 역시도 힘이 뛰어나다고 사서에 적혀있다. 허나 항우가 정말 무서웠던 것은 군사를 잘 다루는 병법에 밝았다는 부분이다. 즉 여포는 그냥 선봉장감이라 생각됐고 항우는 적어도 장군급의 포스라고 생각했다.

 

한신과 항우를 비교해보자. 둘 다 공통점은 병법에 아주 밝다는 점이고, 또 하나 정치적 안목이 아주 부족했다는 점이다.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처럼 한신 역시도 공을 세우고 탐하다가 유방에게 축출된다. 보통 군략에 밝은 사람은 정치력에서도 두각을 보이는데 항우와 한신은 의외라는 점이 참 재미있다. 전체적인 시세를 판단하는 능력은 한신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그러니 북벌로를 개척해서 항우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전투적인 능력에서 보자면, 항우 역시도 밀리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 항우의 장점은 아까 단점으로 말한 직선적인 성격이다. 항우는 부하 장수들에게는 교만했지만, 백성이나 병졸들에게는 관대했던 지휘관이다. 그는 솔직하게 부하들을 대했고 아마도 그런 소탈한 모습이 백성이나 병졸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갔지 않나 싶었다. 물론 대노하는 부분 등은 회의 때 주로 일어난 모습이라 직계 참모들이나 부하 장수들만 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더불어, 그는 일편단심 우희를 사랑했다. 우희 사랑이야 뭐 너무 알려져서 정평 났고 그 사랑을 노래한 시들도 책에 수록돼 있었다. 삶의 가치를 어떻게 두고 판단해야 할진 모르겠다만, 현대적 가치로 본다면 항우는 낭만적인 남자임에는 틀림없다. 직선적이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그이고 한 여인을 우직하게 좋아했다는 점으로 보면 그는 참으로 매력적인 남성임에는 틀림없다. 아마도 아내에게 사랑받을 남자겠고, 큰 뜻이 없이 세상을 욕심 없이 살아간다면 분명 좋은 성격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항우는 명문가의 출신이고, 건달 잡배 출신인 유방과는 태생 자체가 질적으로 달랐다. 그는 교육 역시도 좋게 받았을 것이고, 뿌리 깊은 엘리트 의식이 있었을 것이며 그로 인한 자만감이 있었을 것이다. 유방은 출신은 미천하나 풍파를 많이 겪어서 시세 판단이 빠르고, 상황 판단 능력이 빨랐다.

 

정말 아쉬운 점은 항우가 몰락할 때, 병사들이 배가 있으나 건너서 훗날을 도모하라고 건의했는데 항우는 묵살했다. 이미 전투가 졌고 내가 무슨 낯으로 초나라(고국)에 가서 재기를 도모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항우의 의중이었다. 유방을 보라 유방은 시세가 불리하면 자식도 내팽개치고 도망간 위인이다. 허나 항우는 달랐다. 그의 자존심에는 그런 것이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이 부분도 참 아쉽다. 세상 살다 보면 순간의 실패가 있기 마련이다. 포기라는 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여력이 생길 때나 하는 것이지, 아직 초나라가 건재하고 군사들이 있고 도망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쉽게 죽는다는 것에서 그는 지도자감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더불어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범증에 대한 재해석이다. 우리는 보통 범증을 뛰어난 모사로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으나, 저자는 범증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일단 유방을 분봉할 때 그는 원래 촉땅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중 땅까지 때어달라고 했다. 이 때 범증은 말렸어야 했다. 더불어 그 제후들에게 한 분봉 자체도 사실문제가 많았지만, 유방을 경계한다면 한중 땅을 절대로 분봉시 내주면 안 된다. 한중이 어떤 곳인가, 촉한의 유비가 얻어서 바로 왕에 추대되고 위나라 전복의 핵심 군참기지로 활용된 곳이다. 초한 대전도 마찬가지였다. 그 한중의 자원 덕분에 유방은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범증은 이 부분을 놓쳤다. 항우는 시세 판단이 어둡다 치자. 그러나 참모가 이런 부분을 놓친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이것 외에도 범증에 대한 이상한 점을 속속 기록하고 있었다. (항백을 간파하지 못한 점 등) 

 

항우는 난폭하긴 했지만 인간적이었다. 죽기 전 자신의 배신한 부하인 여마통에게 자신의 목을 유방에게 가져가면 출세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며 의연하게 돌격한다. 실제 인간은 죽음 앞에서 이렇게 초연해지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살기를 도모하는 법이나, 항우는 달랐다. 그의 끝없는 자존심에게서 배울 점이라면, 이런 신념의 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패자는 의도하지 않게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모든 역사가 그랬다. 승자는 승자의 입장으로 패자를 매도하기 시작한다. 패자는 말이 없으니까, 패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패자를 회자하고 기억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항우는 분명 결점이 많은 위인이다. 그는 사실 최고지도자감은 아니고 전선에서 활약하는 최고사령관 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성공을 했고 자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영웅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의 우직함과 단순함은 사랑과 함께 결합되어 한 여자만을 모르는 상남자를 연상시켰으며, 그의 천재적인 군사적 능력 역시도 인정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그런 매력적인 패자 항우를 기억했으며, 사마천은 아예 본기에다가 항우를 서술했다.

 

나는 이 책을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책은 아주 뛰어난 서술력과 논증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도자가 범할 수 있는 모든 우를 항우로부터 보여주고 있다. 깊이 있는 서술과 신뢰 있는 사료 인용, 그리고 자의적이지만 색다르고도 종합적인 고찰 등 아주 뛰어난 책이었다. 특히 리더는 독단적이고 자만심에 빠지기 쉬운데 그런 리더라면 자만심의 선배인 항우로부터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더불어 역사 지식이 많다면, 이 책이 참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우. 많은 한계와 많은 애석함과, 출중함을 지닌 매력적인 영웅. 그가 군주가 아닌 장수의 신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글을 마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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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wns548 2017-02-2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을때 멋있게 죽어서 후대의 사람들 기억에 남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패왕별희 에서도 엄청 멋있게 나왔었죠
 
중국고사에서 배우는 제왕학
니와슈운페이 지음, 이규은 옮김 / 삶과꿈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돋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제왕학, CEO!!!... 중국 고사에서 배우는 리더를 위한 전형적인 자기 계발서다. 이 책은 청소년 때, 샀던 책으로 기억한다. 당시 서점에 들러서 뭘 살까 하다가 골랐던 책인데... 당시에 참 괜찮았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책을 본 뒤, 소장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모두 팔아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준다. 이 책은 용케도 우리 집에서 살아남은 책이다.

 

책의 구성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구성으로 한 가지 주제에 고사나 역사적 사건을 인용하여 논지를 강화하는 그런 구성이다. 다소 이런 책들의 경우, 내용에 맞게 그럴듯한 역사적 사실을 짜 맞춰서 내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그 예시로 든 사실이 사실이 아닌 경우나 사서와는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들을 넣은 경우가 많다.

 

다행히 이 책은 구성은 마음에 안 들지만, 생각보다 역사적 내용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있었다. 이런 책을 볼 때 나는 엇나가는 예시문을 발견하면 그냥 덮어버리고 그 책을 보지 않는다. 그것은 저자가 책을 대충 대충 써 냈다는 반증인데,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는 합격이었다. 한 가지 예로 저자는 제갈공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공명은 사실 모략가라기보단 좋은 명재상 스타일의 참모라고 밝혔다. 대체로 이런 책들은 공명을 인용할 때 신처럼 묘사한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은데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반영한 저자의 안목이 느껴졌다.

 

내용은 동양 중국 역사에 입각하여서 리더의 덕목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분량도 적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분량도 적고 서술 역시도 평이하게 써져서 혹시나 해서 확인했는데, 저자 출신이 도쿄에서 출생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름이 중국 사람 이름 같아서 중국인인 줄 알았는데 일본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책의 구성에 대해 납득했다. 일본인들은 책을 쓸 때 장황하게 쓰지 않는다. 핵심만 말하는 경향이 강하고 일본인들이 쓴 책은 대체로 분량이 짧다. 이 책도 그런 습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지금은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도 힘들겠고... 그렇게 유명한 책도 아니라서 더더욱 구하기 힘들 텐데, 청소년이나 동양학에 관심은 많은데 부담이 가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적합하다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칭찬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아무튼 내실 있고 흠잡을 곳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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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답안에 반역을 권함 -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한 청춘 설계서
허우원용 지음, 김태성 옮김 / 공명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오늘은 뭐 자계서 서평의 날인 듯싶다. 이번에 서평을 남길 책도 자계서다. 출판사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저자도 생소하다. 대만의 한 독특한 경력이 있는 지식인이 쓴 자기 계발서인데, 책을 읽으며 나는 놀랐다. 저자와 내가 경험한 것이 2개나 같았다는 점이,

 

저자는 말했다. 졸업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을 괴롭혔던 중국 고전들을 옥상에서 불태워 버렸고 그 고전이 타는 모습을 보며 희열(?)까지 느꼈다고 했던 점.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는 <논어>를 태운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께 배우던 유학 지식이 너무나도 질린 나머지 사서 삼경 모두를 태우려고 했었는데, <논어>를 대표로 태웠었다. (논어 서평에 자세히 나와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또 한 가지는, 글쓰기 대회에서 저자는 기본적 학교의 방침에 반하는 글을 썼다는 점. 나도 이랬다가 혼난 경험이 있고, 나는 그 뒤 글을 습작하는 것을 관뒀었다. 아무튼 이런 부분에서 어린 내 모습을 발견했었다. 그래서 더 책에 몰두할 수 있었고,

 

저자는 의사이자, 전업작가, 프로그램 사회자, 드라마 작가, 프로듀서 등 -_- 직업이 엄청 다양하다. 한 가지 일도 똑바로 못하는 나라서 저자의 이런 약력을 보고 책 역시도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순간, 나는 느꼈다. 저자는 굉장히 개방적이고 사고가 유연하다는 것을,

 

밑에 리뷰했던 이영석의 <인생에 변명하지 마라>라는 책이 '근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 책을 한 단어로 압축해본다면 '주체성'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고력을 알려주고 있다. 남이 정해준 인생이나 관점을 거부하고 스스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책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목차를 잘 살펴보자.

 

1. 착하지 않아도 된다.

2. 진지함은 열정을 이겨내지 못한다.

3. 성공이 반드시 실패보다 나은 것일까

4. 생각을 하려면 자기 머리를 써라

5.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6. 시작도 하기 전에 즐거움을 포기하지 마라

7. 견문과 시야를 갖추는 법

8. 인문이란 연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진부한 관점의 챕터도 있지만, 다른 노력형 자계서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 책 역시도 저자의 이런 경험담이 많다. 챕터의 신선함에서 보이듯, 저자의 이런 열린 생각과 사고력은 분명, 여러 가지의 직업을 소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음을 느꼈다.

 

자계서에게서 포스와 내공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솔직하게 읽었을 때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나는 저자의 세상을 보는 관점에서 많은 부분을 생각할 수 있었고, 내 스스로의 주체적인 인생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았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대항마로 내놓은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후속작도 읽었다. 내 마음을 어러 만져주는 서술은 좋았지만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건대 그런 감정적인 위로보다는 이 책이 훨씬 더 도움이 된 것 같다.

 

이 책은 사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대만과 중국에서 부모들이 먼저 읽고 자식에게 사 준 책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구는 광고성 문구일 가능성이 높아서 별로 신뢰하지 않는데, 책을 읽고 나서 공감했다. 

 

내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러기엔 우리 주변의 현실적인 여건이나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이미 구축해 놓은 사회적 가치에서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상황적인 부분에서 한 줄기 빛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초독을 하고 재독도 했을 만큼 내가 아끼는 자기 계발서 중 하나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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