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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송복 지음 / 시루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독서계가 고전에 대한 부분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동양 고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 고전들을 번역하고 그 고전들의 교훈을 밝히는 책들도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좋은 일이다. 문화적으로 조명 받지 못한, 고전들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고, 다양한 사상을 국내에 소개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동양 고전이라 하면, 중국 고전을 생각하고, 중국의 사상만을 생각한다. 물론 중국의 사상과 학문은 우리의 학문, 동아시아의 학문은 주도했었다. 그러나 그 동아시아 사상을 바탕으로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다. 우리는 한족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독자적인 색이 가미된 고전 역시도 경시할 순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중국의 고전만을 동양 고전이라 칭송하고 앞세우고 있으며, 깊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고전, 그리고 일본의 고전은 비교적 중국에 비해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문화적인 부분, 고전의 부분에서도 사실 편파적인 부분이 보인다.
조선은 늘 그랬다. 의미 없고 맹목적인 교조화된 의명주의, 한족의 속국을 자처하며, 그들의 울타리에 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조선은 언제나 변방이었고, 오랑캐였고, 동이였다. 중국의 한족, 즉 명나라가 우리를 그렇게까지 자식의 국가 신하의 국가로 대우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고질적인 의존증과, 안일함, 나태함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책에 나오는 류성룡은 아마 잘 알려진 위인이다. 그는 임진전쟁 때 전시 체제의 조선을 이끈 지도자였으며, 바다에서 이순신이 분골쇄신 분발했었다면, 육상에서 류성룡은 혼신의 힘을 다해 조선을 이끌어나가며 전체 전선에 대해 종합적으로 조감하며, 관리했었던 재상이었다.
나는 얼마 전 율곡 이이의 평전을 보고 리뷰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율곡이 외치고 피 토하며 외치던 요지를 읽었었는데 느끼는 바가 많았다. 율곡의 말은 정말이지 신하가 군주에게 할 수는 없는 말들이었다. 이 책의 첫 장에서도 나오는데
'200년의 역사의 나라가 지금 2년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 국가의 저축은 1년을 지탱하지 못 합니다. 이야말로 진실로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상소가 있을까?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백성(국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끔, 행복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이 존재 이유다. 그런 것을 할 수 없다면, 국가로서 존재할 필요가 없다.
조선은 썩어 있었다. 말도 안되는 문치주의의 만연, 무를 괄시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에 대해 깊은 성찰을 가진 장군도 없었다. 군대는 기강이 빠졌고, 조세는 탐관오리의 만연으로 인해 국고는 바닥나고 군량은 없었다. 비교적 현실적인 사상에서 나왔던 성리학의 신진사대부들, 집권한 사림은 타성에 젖었으며, 쓸데없는 공리공론만을 외치고 있었다. 지방의 군관들은 매관매직으로 관직을 사며, 비공식적이지만 합법적으로 백성들을 수탈했었다.
근대 이전에는 국가의 가장 기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다. 돈(곡식)이 있어야 백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으며, 국방이 튼튼해야 자강을 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법하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 조선은 그러지 않았다. 자강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문약한 문치주의에 빠져서, 군사력은 별 볼 일 없게 떨어졌었다. 이런 나라이니, 이웃 나라가 삼키려고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임진전쟁은 절체절명의 위기였었다. 이 시기에 우리에게 위인이 있었으니, 바로, 류성룡과 이순신이 그들이었다. 타성에 젖은 대부분의 관료들과, 왕 선조에게는 조선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랬다. 그들은 우리의 백성을 버렸으며, 의병을 등한시하고, 조선군을 믿지 않았으며, 오로지 명, 명나라만을 칭송하고 우대했다.
이순신의 발탁과 파격 승진, 문신인 권율의 무관 등용 등 파격적 인사를 한 배경에는 류성룡이 있었다. 국가 비상 위기에 가장 중심이 되어 국난을 책임져야 할 왕은, 도망가기 바빴으며, 그 뒤처리와 책임은, 류성룡이 전면적으로 도맡았다.
관료들과 왕은 우리나라를 버리고, 명으로 입조하려 했었다. 그러나 류성룡만이 홀로 끝까지 반대했다. '우리 영토를 벗어나면 절대 안 된다.'라는 말을 외치며, 죽더라도 한반도에서 죽을 것을 고집했다. 그의 저지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한글을 쓰고 있으며,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는데 정말로 수긍했다.
백번 이해하려고 노력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조선의 두 왕 '선조'와 '인조', 그들에게는 왕권과 왕좌만의 전부였었다. 조선조 모든 왕들이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알고 군주국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안다. 생각을 했다. 태종과 세조에 선조에 대해서, 태종 이방원 역시 강력한 권력의지와 왕권 주의가 있던 군주다. 그러나 그는 대외적으로 사대를 하며 대내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방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그의 왕권 속에는 백성이 있었다. 찬탈한 왕조였지만, 백성을 생각하고 근본으로 생각하는 마음으로 권력을 사용했던 군주다. 자신과 사적으로 아무리 친한 신하더라도 비리 감찰이 보인다면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던 군주다.
세조는 태종과 성향은 같지만 그의 왕권의 속에는 개국 공신과 자신의 야욕만 있던 군주다. 그럼 선조는? 선조의 왕권 속에는 오로지 명과 자신의 생존만 있었다. 그에게 있어 조선 백성과 관군은 불신의 대상이었다. 임진전쟁이 끝나고 폭동이 일어날까 봐 명나라 군사를 주둔시키길 '자청' 했던 군주다. 정말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자국의 병사와 백성보다도 명이 더 소중했단 말인가? 그런 그가 과연 조선의 임금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 군주와 그런 그가 이끄는 조정에서, 돋보이는 영웅이 있었으니, 해상에서는 조선, 아니 이순신의 군대와 일본군, 양 군이 호남을 걸고 사투를 벌였다면, 육상에서는 류성룡이 포악스러운 명나라의 군대에 군량을 대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비교적 이순신의 행적만을 자세히 알고 있는데, 실제로 류성룡의 군량 전쟁도 굉장히 큰 의의가 있다.
썩어 빠진 조선 관군들을 가지고는 현실적으로 평양과 한성 탈환이 불가능했고, 어쩔 수 없이 명의 군대를 들였는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 명나라의 군량조차도 지급하기가 힘들었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외세를 들였고, 그 외세가 요구하는 필요 이상의 물자를 감당하는데, 그 몫은 모두 류성룡의 몫이었다. 가슴이 아팠다. 우리의 역사는 매번 이런 식이다. 외세의 격돌, 그것은 300년 뒤인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중국군과 미군의 전투 등, 모든 부분에서 그랬다.
명은 이런 우리를 국가로 취급하지 않았다. 대놓고 무시했고, 조선의 장군과 재상들을 가축 다루듯 다뤘다. 그런 명의 장군들을 선조는 머리 굽혀서 높였다. 그에게는 국가란 없었다. 그에게는 오로지 왕권만이 있었다. 오로지 그 왕이라는 지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명나라가 행하려 했던 만행, 광해를 왕으로 내세워 조선을 분할하여 역치하려는 주장도 용인했고, 심지어는 조선을 직할 통치하려고 한 명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려고 했었다.
<군주론>에 이런 말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벌하기 어렵고 통치하기 쉬운 국가에 대해서, 국왕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기 때문에 점령하긴 어려워도, 점령 후, 왕을 제거하기만 하고 기존의 법도를 존중하기만 하면 통치하기가 쉽다. 조선은 오랜 세습 국가였고 전형적으로 이 형태에 속한다. 명의 입장에서는 조선을 직할령으로 하기엔 더없이 좋지 않겠는가? 같은 유교 문화권에 문화적 사대주의가 심각한 나라니, 국왕만 죽이면, 조선의 반을 먹을 수 있었다. 이러니 일본과 전쟁을 하기보단 강화에 주력하지 않겠는가? 더 웃기는 것은 이런 것을 선조는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두둔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다.
류성룡은 이와 같은 명의 만행에, 목숨을 내놓고 결사반대를 했고, 비록 중국의 속국이긴 한 조선이지만, 나라의 자주권을 지켜냈다. 선조와 같은 우매한 군주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저자는 임진전쟁은 명나라와 일본의 조선 분할 전쟁이라고 해석했는데 일리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남북으로 양분되고 있는 부분, 그 시초는 바로 임진전쟁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부분은 전적으로 조선의 군대를 관군의 입장으로 본 해석이다. 이 당시에 관군은 명나라 군대의 서포트 역할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군이라 불릴 수 있는 군대들은 의병이었다. 관군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임진전쟁은, 명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애통해도 나라와 왕조를 지속시키려면 명의 군대에 의존을 해야만 했던 것이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자강을 하지 못한, 조선 왕조의 실책임을...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더더욱 분했었다.
류성룡 그는 명나라의 군대를 지원하였으며, 조선군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자강하려 애썼으며(훈련도감, 속오제), 명의 야욕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밖으로 일본과의 전쟁을 총괄적으로 주관했으며, 안으로는 나약한 선조를 달래며, 능구렁이 같은 명나라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해 분골쇄신했었다.
전시 체제에 있어서, 이런 명재상이 있었다는 점은 정말로 조선으로서는 '행운'이다. 썩어 빠질 대로 빠지고 군사력조차 없으며 백성에 대한 의무를 지지 못하는 국가가 400년이나 지속했다는 것 자체가 운이 참 좋은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운도 400년까지였다. 조선은 늘 그랬다. 류성룡은 주장했다. '징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미래란 없다고, 또 다른 외침이 있을 거라고 강하게 강하게 주장했었고, 저술들을 남겨 후세가 귀감이 되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우리는 어땠는가? 교조화된 사대주의 의명사상은 존명사상으로 바뀌며, 송강 정철을 비롯한 노론은 다 죽어 없어진 명나라만을 그리워하며 고집했었다.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했으며, 자강하지 못했으며 징비하지 못 했다. 류성룡이 쓴 <징비록>은 읽히지 않았으며, 여전히 주자학만을 고집했었다.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어땠는가? 그 조선왕조를 지탱하던 운빨은 결국 한일합방에 이르러서 끝을 고한다. 제2의 이순신은 없었으며 제2의 류성룡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었다. 결국 운으로 지탱하던 무사 안일주의는 역사적 심판을 받은 것이다. 자강하지 못했던 우리의 한
일본은 자국의 사무라이 무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래 우리 조선은 뭐가 있는가? 선비정신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묻고 가보자. 그 선비 정신의 원류는 뭔가? 결국 중국의 사상의 복제품이 아닌가? 물론 그 선비정신을 주동적으로 해석한 조선 초의 정도전과 같은 위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 중 후반기의 선비정신은 뭔가? 그 문치주의 안일한 대책 없는 현실성 없는 선비정신으로 인해 국가가 약해졌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선비 정신을 올바르게 우리나라의 자국화하여 재해석하였다면, 더 나은 발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선비정신은 다 죽어가는 명나라를 그리워하고 존중했으며, 정치인들은 바뀌는 시세를 볼 수 없었고 국가는 도태됐다. 그 문약한 문치주의, 선비정신의 사념의 결과가 바로 안전불감증으로 진화하여 지금 현실로 다가온 것 아니겠는가?
지금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지하철, 버스, 터미널 등에서 산발하는 재난에 대해서,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안일함과 의존주의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부정부패, 관피아... 그런 것들이 빚어져 터지는 것이 바로 이번 사태들이다. 그 옛날 조선 관료들이 도태되고 썩어 빠진 것과 뭐가 다른가, 시대가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무능함
그 옛날 문약한 문치주의의 조선 왕조가 지탱해왔던 '운' , 그리고 지금 세월호 사태에서 그 불안불안한 배를 아무렇지 않게 운행해왔던 '운'
뭐가 다를까? 생각하니 암울하다. 지하에 있던 류성룡은 과연 지금의 국가 사태를 보며 어떻게 생각을 할까? 류성룡이 외치던 자강을 우리는 왜 하지 못했는가? 그토록 징비하라고 그는 외쳤는데... 애석하고 애석할 뿐이다.
책은 류성룡의 행적과, 고뇌를 실증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수치들을 동원하여서, 정치사적인 해석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인 부분까지 고찰해가며 시대의 아픔을 잘 해석하고 있었다. 저자의 분별 있는 식견이 돋보였었고, 조선 중기의 썩은 모습들을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조선의 못난 모습이 이곳에 다 담겨있고, 징비하지 못한 지금의 우리에게도 깊은 시사점을 남기는 책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저자는 율곡과 류성룡에 대한 해석에서 류성룡에 대한 부분을 높이 산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다. 저자는 율곡이 관념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류성룡의 글이 율곡보다 현실적이지 못하면 그것은 이상한 것이다. 어쨌든 류성룡은 국난을 직접 총괄했고 국가의 여러 뒤틀리는 부분들을 실제로 경험했었던 재상이다. 그런 류성룡이 율곡보다 더 현실적인 글을 못 남기면 안 된다. 어쨌든 율곡보다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본 것이 많이 때문에, 그냥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류성룡이 뛰어나고 명재상이지만,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율곡의 경장을 외치는 것에 당론에 의거하여, 반대를 한 부분에 대한 언급도 없었으며, 실제로 이순신의 탄핵 때, 절친했던 류성룡조차 이순신과의 거리를 둔 부분이 <조선왕조실록>에 있었다. 이런 부분들은 구체적으로 밝혀줬다면 더욱더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항간엔 지금 조선 초기의 드라마 <정도전>에 열풍으로 인해 조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가득하다. 물론 여말선초의 조선의 건국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단편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 찬란한 국가 조선의 중기는 썩어 있었다. 그랬다. 정도전이 기대를 걸었던 사대부는 썩었고 도태됐다. 고려 말보다도 더 한심했었다. 사명 의식을 가진 올바른 사대부 류성룡과 극소수의 신료들만이 발분해서 조선을 일으켜세웠으나, 결국 우리는 징비하지 못 했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 조선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는가? 그 못난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불어, 우리 양옆의 중국과 일본인들이 어떤 족속들인지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소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끝으로 류성룡이 쓴 상소를 인용해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는 일이란 언제나 급합니다. 어찌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허둥지둥하다가 그만 일을 그릇되게 처리하고 맙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지나고 나면 금방 해이해집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끝내지 못하고 내버려 둡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큰 폐단입니다. 지금 왜적이 우리나라 중심부에 아직 있음에도 이러하다면, 만약 명나라 군대가 떠나버린다면 다시 믿을 곳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오래 견뎌내는 일이 없습니다. 짧으면 한두 달이고 길어봐야 한 해를 넘기지 못해 중도에서 폐지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의지가 굳게 서 있지 못하고 계획이 먼저 정해져 있지 않아, 이리저리 옮겨서 일이 귀착할 곳이 없습니다. 아침에는 갑이란 사람의 말을 좇아서 일을 진행하다가, 저녁에는 을이란 사람의 말을 듣고 일을 폐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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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을 시작했다면 반드시 그 일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혹시 일을 맡은 사람이 능력이 모자라고 직위가 맞지 않는다면 사람을 바꿀지라도 그 일을 폐지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게 과연, 임진전쟁 시기에 써진 글이란 말인가? 과연 우린 징비를 했단 말인가? 진심으로 깊은 반성의 마음이 일었다. 이런 애통한 마음의 기록 <징비록>을 과연 우리 국민들은 몇이나 읽었단 말인가? 어쩌면 이 책 역시도, 그런 <징비록>이 인정받지 못함을 탄식하여서, 태어난 책이 아닐까? 정말로 반성해야 한다. 국가도, 관리도, 민간도, 나 역시도... 그래야 열정적으로 민족을 보존한, 류성룡, 선조에게 떳떳하지 않겠는가?
지금 세월호 문제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나라가 통탄하고 있다.
실로,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다.' 개혁을 외치는 지금, 나라 전체를 확실히 바꿔야 할 필요성을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린 선조 류성룡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