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의 징비 - 치욕의 역사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
박기현 지음 / 시루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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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역사서를 많이 집필하신 박기현 작가의 신간인 <류성룡의 징비>. 최근 드라마 '징비록'의 출시가 임박되면서 서점계에서는 대폭적으로, 류성룡의 고전 <징비록>을 다시 개정판으로 찍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류성룡에 대한 평전 역시도 쏟아질 것 같은... 예감인데, 아직까지는(?) 그의 삶을 다룬 평전이 많지는 않다. 그런 부분에서, 시루에서 나온 <류성룡의 징비>는 쏟아질 류성룡에 대한 평전의 첫 신호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대중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시청각 매체는 대체적으로 텍스트를 압도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 시청각 매체가 대중적이지 않을 시절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텍스트에 의존해야만 하여 자연스럽게 텍스트를 더 우위로 뒀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대중화된 시청각 매체의 위력은 텍스트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 시청각 매체보다 더 우위에 서고 있는 것은 사이버 가상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TV 징비록 드라마의 방영은, 여러모로 대중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 여파에 힘입어, 사이버 가상공간과 텍스트 분야에서도 한동안 류성룡의 붐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사극의 침체기에 방영된 '정도전' 그 '정도전'의 성공으로 인해, 대중은 정도전의 존재를 알게 됐고, 존경하게 됐었다. 인터넷에서도 정도전 붐이 일어났고, 출판물들 역시도 활기를 띠며, 정도전을 조망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름, 명량의 성공은 이러한 사극의 붐을 이어나갔다. 이순신을 다룬 책들이 모두 개정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의 <난중일기> 역시도 새롭게 번역되거나 수정 보완되어 출판되는 경우가 많았다. 작년 한 해가 정도전과, 이순신의 해였다면


올 한 해는 류성룡의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저자인 박기현 작가는 여러 대중 역사서를 집필한 분으로 나는 그가 쓴 <조선참모실록>과 <조선의 킹메이커>를 주의 깊게 읽었다. 저자는 우리 시대의 리더십을 조망하기보단 팔로워십, 참모학에 더 중점을 두고, 조선의 참모들에 대해서 여러 책을 남겼었다. 어느 조직이든 리더는 중요하지만, 리더뿐만이 아니라 리더가 아닌 99%의 존재 참모들 역시도 중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리더만을 우대시하고 너무 리더만을 조망한 감이 없잖아 있다. 이런 관점으로 비춰볼 때, 박기현 작가의 저술 방향은 많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신간의 책으로, '류성룡'을 집중 조망하고 나섰다. 그는 서두에서 조선의 많은 참모들을 만나왔지만 그중 류성룡이 단연 최고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같은 시루에서 나온 책 중 송복 교수가 쓴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 책도 작년에 나온 따끈한 책으로 아무래도 두 책이 상대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이번 리뷰에서 그런 비교점도 끄적여보고자 한다.


일단 <류성룡의 징비>의 가장 큰 장점은 부담이 없고 평이하고 가독성이 뛰어난 서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14개의 챕터로 구성된 책은 챕터의 서두 부분에 논픽션 형식의 류성룡의 이야기를 기술하며 책을 시작하고 있었다. 도입 부분에 이런 방식으로 흥미 유발을 시킨 뒤, 대체적으로 평이한 서술로 류성룡에 발자취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잘 밝혀내고 있었다.


송복 교수의 책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는 다소 전문적이고 깊이가 있으며, 정확한 통계 자료를 내세워 구체적으로 서술했다면, 박기현 작가의 <류성룡의 징비>는 그에 비해서 전문적인 면을 적절하게 풀어내어 알기 쉽게 서술했으며, 역사 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은 조금 덜고 가볍게 서술하려는 부분이 보였었다. 그래서 두 책은 상당히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류성룡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 <류성룡의 징비>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추천으로는 <류성룡의 징비>를 읽고 그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면 송복 교수의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를 심화 독서로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나는 류성룡의 새로운 모습 등등도 발견했었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면, 왜란 전 신립 장군을 찾아가, 류성룡은 왜군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신립은 다소 교만한 모습으로 왜구들을 얕잡아보고, 교만을 부리며 왜구들은 자신이 다 소탕하겠다며 큰소리를 친다. 퓨전사극 '왕의 얼굴'에서 광해 서인국은 탄금대 전투를 앞두고 신립을 찾아가 방책을 논의하는데, 신립은 교만하게 보였던 모습. 그것은 역사적으로 광해가 아닌 류성룡이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것도 임진전쟁 발발하기 전에 말이다. 이런 부분은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하게 됐으니, 류성룡 그가 얼마나 유비무환의 자세로 왜적을 걱정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봤을 때 가장 핵심적이었던 챕터는 6장과 7장, 10장이었다. 특히 위의 챕터들은 박기현 작가의 깔끔한 정리가 돋보였던 챕터로 류성룡의 행적들을 군더기가 없이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6장은 군사에 대한 그의 시각이었는데, 그가 저술한 병법 <증손전수방략>을 요약하여 10가지로 정리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병가 철학에서 준하는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었으며, 공격전보다는 방어전에 더 염두에 두고 저술한 병서라고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것은 류성룡이 지금의 적도 중요하지만 북방의 여진족이 더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되어, 선조에게, 북방의 방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었다.


가령, 얼음 진지를 세운다거나, 압록강 강변이 얼었을 시, 대처하는 방안, 축성 기술에 대한 생각, 화약의 준비 등등 임진전쟁 때에 여진족을 경계한 그의 글은 여러 가지로 시사점을 많이 남겼다. 그의 말을 조금이나마 경청했다면 어쩌면 병자년과 정묘년의 참극을 최소화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러한 유비무환의 선견지명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지 않았고, 참극은 되풀이되는 역사를 맞이하였다.


챕터 7장에서는, 6장의 이론들을 어떻게 실현해 나가는가에 대해서 잘 밝혀놓고 있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훈련도감이었다. 책은 훈련도감의 교관에 대해서 상당히 깊게 서술하고 있었는데, 류성룡이 명군의 악명 높은 절강성 정예부대 주장 낙상지에게 훈련도감을 부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낙상지는 친조선적인 인물로, 여느 다른 명군과는 다르게 힘써, 조선을 위해 노력한 장수로, 일찍이 류성룡은 그의 부대의 위력을 평양성 탈환 때 주의 깊게 보고 있었었다. 낙상지는 조선의 정예부대 설립에 관심을 가진 몇 안되는 장군으로, 류성룡은 그를 군사고문으로 초빙하는데 굉장히 애를 썼다고 책에서 나왔다.


챕터 10에서는 그가 전란 때에 재상이 되어 국가를 되살리기 위해 시행했던 정책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있었다. 소금 전매에 대한 규제를 풀고, 대동법의 원조인 작미법을 시행하고, 당시 상권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국제무역을 열어 식량조달에 힘쓰는 등등의 이야기, 그리고 면천법(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공을 세우면 신분을 면천 시켜주겠다는 법 - 당시에 파격적인 법으로 노비에 대한 입장 때문에 사대부들의 반발이 심했다.) 주장했었다.


특히 면천법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사상은 주자학적 사상이 아니라 실사구시 양명학의 사상도 보였으며, 교조주의 주자학에 침몰되어 명분론을 강조하는 조선 사회에서 류성룡은 개방적이고 현실적인 양명학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이런 파격적인 법을 제정하여 시행했었다. 이 결과 전란이 끝나고 사대부들의 불만을 한 몸에 받아 하야를 해야만 했었다.


책을 보며 느꼈던 점은 선각자 참모들의 자질에 대해서였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면, 선초의 정도전, 류성룡과 같은 시기의 율곡, 그리고 선 말의 정약용, 그리고 이 책에서 류성룡과 동일시하고 있는 제갈량에 대해서도 비교를 해 보자. 일단 네 명의 참모의 공통점은 학문이 높고 식견이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군사적인 지식이 해박했으며, 세 번째로 과학 기술적인 창의성 역시도 돋보이는 위인들이다. 즉 이론적 학문뿐만이 아니라 실용학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흔히 수원화성을 정약용의 축성기술로 지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정약용이 영감을 받고, 정조대왕이 수원화성 구조를 참고한 책은 류성룡이 집필한 책 <축성방략>을 참고한 것이었다. 또한 네 위인 모두 재산을 탐하지 않으며 청백리로 지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네 번째로 외교에 있어서도 이들의 식견은 탁월했었다.  


책에서 비교한 대로 제갈량과 류성룡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류성룡이 제갈량을 압도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인사정책이다. 제갈량의 인사정책은 때론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류성룡의 경우는 인사정책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순신과 권율의 발탁 등등에서 볼 수 있듯, 임진전쟁의 3대 대첩을 행한 영웅들이 둘이나 그의 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니, 개인적으로 제갈량보다도 류성룡의 혜안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이 든다.


이번 책을 보며 인상 깊었던 점은 류성룡이 어려운 정책을 풀어나가는 태도였다. 류성룡은 최선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더라도 시행하여서, 훗날 최선의 방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일조하는 것에 스스로를 다 한 위인이었다. 자신의 방책이 고수되지 않아서, 조정 대신들과 탁상공론을 불러일으키고 일은 일대로 미루는 그런 인사가 아니었었다. 나는 그런 그의 현실주의적인 부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다만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류성룡이라고 해서 다 배울 점만 있는 위인은 아니다. 그 역시 실수도 하고 그 역시 실책을 했다.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율곡 이이의 경장론에 대해서 그는 율곡은 스스로 말하는 경장을 구현할 인물이 아니라고, 당론에 의거하여 이야기했던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이순신에 탄핵 때 그가 슬쩍 발을 빼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순신의 탄핵 때 류성룡이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나섰다는 것으로 류성룡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내가 아는 사실과는 조금 달라서 약간의 혼선이 오기도 했다. 역사 인물을 평가할 때, 긍정적인 면만을 내세우고 그가 자행한 실수를 쓰지 않는 것은 한편으로는 왜곡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중에 나온 류성룡에 대한 책들에서 류성룡의 공적과 실책을 나름 분석해서 둘 다 제시하고 있는 책은 드물어서 이런 부분도 기대했었는데, 이 책도 류성룡의 장점만을 부각하여 쓴 것 같아서 아쉬웠다. 앞으로 류성룡에 대한 책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텐데, 너무 칭찬만 하지 말고 그의 과오까지도 드러낼 수 있는 책이 발간됐으면 좋겠다.


어쨌든 아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적당한 깊이의 편안한 서술이 돋보였던 저서였다. 류성룡의 삶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징비록' 드라마를 시청하기 전, 사전 예비 지식으로 류성룡을 알아보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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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찾사 2015-01-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좋은 책글 보고 갑니다. 곧 TV로 징비록을 방영한다고 하니 책과 비교해서 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리군 2015-01-06 14:03   좋아요 0 | URL
앗 ^^ 오랜만이네요 책찾사님, TV 전에 보면 괜찮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