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문답 - 조선의 군주론, 왕도정치를 말하다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 8
이이 지음, 정재훈 옮김 / 아카넷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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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특히 정치 고전은 그 시대상황을 철저하게 반영하는 저술들이 많다. 정치라는 부분은 크게 보거나 작게 보거나, 인류의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행위이기 때문에, 그러한 정치를 논하는 고전들은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 고전 안에는 시대 상황이 태평성대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태평성대에서 고찰되지 못한 부분들을 밝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시대의 희망을 반영하고 있으며, 반대로 시대의 상황이 부정적이라면, 시대의 아픔을 고찰하고 이겨내고자 하는 시대의 희망이 반영되어 있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정치사상서는 후자의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동 서양이 가릴 것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동호문답>이라는 책도, 아파왔던 시대의 조선의 모습으로부터 고민하던 율곡이 해결책을 제시한 정치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부제에는 '조선의 군주론'이라고 명칭 되고 있으나, 내가 읽어봤을 때, 이 책은 군주론에 국한되기보단 군주론을 넘어서, 조선의 정치를 포괄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상당히 짧았었고, 그리고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어려운 논의는 없었으며, 약간의 중국사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지식을 요했고, 조선 근세의 행정 체제에 대한 지식이 필요로 했지만, 이런 부분을 모르더라도, 주석이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읽는 것에는 지장이 없겠다. 다만 내가 읽어봤을 때, 적어도 이 책의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나 근세의 행정은 주석으로 본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역사 흐름 특히 조선 전기부터 율곡이 살았던 조선 중기까지의 왕권과 신권의 구도, 사림의 위치 등등은 기본으로 이해하고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주석으로 최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만, 내 판단으로는 내가 지적한 흐름 정도는 간략하게 알고 책을 보면 좋겠다.)


율곡의 정치사상서는 대표적으로 두 권인데, 첫 번째가 바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성학집요>다. 이 책이야말로 조선판 '군주론'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진덕수의 <대학연의>를 대대적으로 보완하고 압축, 그리고 조선화하여 업그레이드 한 율곡 이이의 '군주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는 <동호문답>을 들 수 있겠다.

 


(율곡의 정치사상서 두 권)


사실 <성학집요>보다 먼저 나온 것은 <동호문답>이다. 동호는 동쪽 호수를 칭하는 것으로 지금 옥수동과 압구정 사이에 흐르는 한강을 일컫는 말로, 그곳에 국가에서 만든 독서당을 칭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으로, 나라에서 뛰어난 선비들을 뽑아, 보내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율곡은 이곳에서 독서를 하며, 보고서 형식으로 제출한 것이 바로 <동호문답>이었다. 이 당시 율곡과 동기였던 사람 중에는 유명한 '서애 류성룡'도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지금 예시로 든다면 나라에서 제공하는 장기간 합숙 연구회에 참가하여, 최종 보고서로 제출한 것이 <동호문답>이었다. 독서당은 임금의 총애가 지대한 곳으로 매일 진귀한 음식과 좋은 말, 좋은 안장 등이 제공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사실 학자들은 휴양을 온 기분으로 지낼 법 하지만 율곡은 그러지 않았다. 율곡은 깊이 있게 고민했다. 당시 조선은 심하게 부패하여 있었다. 그는 독서를 하면서도 민생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현실의 고민에 대해 나름 고민하며 해결책을 제시한 책이 <동호문답>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호에서 고민한 결과였다.


 그의 책은 두 명의 대담자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바로 '주인'과 '손님'이다. 동호에 온 손님은 동호의 주인에게 현 시세를 묻는 인물이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현세 분석을 하는 동호의 주인은 결국 율곡 자신이었다.


책의 구성은 11장으로 구성됐으며, 크게 나누면 4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1장에서 3장까지를 군주와 신하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었고 예시로 든 역사적인 지식은 중국사 중심적으로 논의를 풀어나간다. 여기서 살펴볼 점은, 이 책은 선조에게 바쳐진 보고서이므로 결과적으로 군주를 중심적으로 풀어나가는 책이다. 따라서 군주의 눈높이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아마 역자는 '조선의 군주론'이라는 주제를 붙였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신하'에 대한 고찰이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까지 군주를 다룬 책들은 신하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군주를 중심적 시각으로 두고 신하를 고찰하는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책은 없었다. 가령 군주의 입장에서 어떤 신하가 좋은 신하인가? 신하를 볼 때는 어떤 부분을 봐야 하는가, 인재를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가 등등의 군주의 틀 안에서 신하를 고찰하는 부분만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신하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는 책이었다. 군주의 입장을 강하게 논하는 동시에, 신하의 입장도 강하게 논하고 있는 책이었다.


이 부분은 율곡이 속한 사림과 연계해서 볼 수 있겠다. 이 시대에는 척신들에게 사회를 통해 사림들은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다. 다행히 선조 대에 이르러서 사림은 적극적으로 정치 일선에 나아가고 있었다. 율곡 역시 사림학파 계보에 선 인물이므로, 전 시대의 사화의 혼란에서부터 사림과 군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최종적으로 이 책에서 고찰하고 있었다.


여기서 신하의 입장을 대변한 제 2장인 '논신도' (신하의 도리) 제 3장 '논군신상득지난' (군신이 서로 만나기 어려움을 논하다)라는 대목은 지금까지의 군주론에서 전개하는 군주 중심의 시각에서부터 벗어나 신하의 입장 역시도 동등하게 강조하고 있었다. 즉 율곡이 생각한 이상적인 정치는 바람직한 '군신공치'를 이루는 것이었으며, 여기서 군주는 선조를, 여기서 신하는 사림이라는 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 뒤 4장과 6장에서는 조선의 시세 판단과 거시적인 국가의 문제 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 대목에서는 철저하게 한반도 역사를 중심으로 사례를 들고 있다. 특히 한반도 역사를 중심적으로 예시를 드는 부분에서 상당히 주체성이 두각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쉬운 예로 퇴계의 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성학십도>의 경우는 전형적인 중국 이론 중심적인 논고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대의 유림들은 대체적으로 예시를 들 때 중국의 사례를 드는 경우가 태반인데, 율곡은 4장에서 기자를 시작으로 삼국과 고려를 크게 고찰하는 것으로 5장에서는 조선 초에서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군왕과 '신하'들을 고찰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세종과 성종에 대한 평가인데, 율곡은 이 두 군주가 아주 뛰어난 군주라고 칭찬하면서도 한계를 말한다. 그 한계는 바로 뛰어난 군주에 비해 뛰어난 명신이 없었다는 점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율곡의 생각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군신공치'의 이념과, 뛰어난 정치는 군주의 명석함만 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신하의 명석함으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 역시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내가 생각한 점은 같은 신권 우대를 하더라도, 율곡이 논한 신권론은 군주와 신하의 공치를 이야기하는 이 이론은 정도전의 신권 우위론적 사상과도 달랐다. 정도전은 지나칠 정도로 왕권에 대해 제약을 가했지만, 율곡은 군주와 신하(사림) 과의 공존을 모색했었다.


5장에서 또 엿보인 부분은 도입 부분이었다. '이전의 쓸데없는 것(1장 ~ 4장의 논의 즉 중국의 선례와 우리나라 고조선 ~ 고려의 선례)들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니 현재의 일에 대해 말씀하시죠.'라고 말하는 손님의 발언에서 강한 '현세성'을 느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유학이란 학문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율곡의 이런 논의에서 볼 수 있듯, 율곡은 유학이란 이념을 학문적으로만 추존하지 않고 적극적인 현실 타개의 매개체로 활용하였다.


1~5장까지가, 원론적 성격, 그리고 과거적 성격, 추상적 성격의 논의였다면 6장부터는 현세적 성격과 구체적 성격을 논하고 있었다. 핵심은 왕도정치에 있었다. 율곡이 말한 정치의 핵심 '현명한 군주와 현명한 신하가 만나서 왕도정치'를 꽃피우는 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 왕도정치를 실행하기 위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7장에서 11장에 걸쳐 이야기를 하고 있다.


7장은 군주의 수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부분이 바로, 확장된 부분이 <성학집요>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의 군주 학습서인 <성학집요>의 큰 틀은 이미 <동호문답> 7장에서 다 밝혀놓고 있었다.


8장은 군주의 용인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군주와 신하를 다루면서 군주 중심적인 신하론을 펼치고 있다. 뭐 다른 책에서 나온 논의처럼 간신을 간별하는 방법 등등을 원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7장과 8장은 다소 원론적인 해결책이라면, 책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9장과 10장은 자세하고 구체적인 논의를  하고 있었다. 바로 시국의 민생안정에 대한 부분이다. 9장과 10장은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9장에서는 민생안전을, 10장에서는 백성의 교화(교육)에 대해서 강하고 자세하게 비판하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동호문답의 챕터 중 9장이 가장 분량이 많으며, 그다음으로 긴 편이 10장이다. 그리고 9장과 10장에서는 이 전에서 볼 수 없었던 구체적인 사례와 시세 판단 그리고 율곡이 생각한 제도의 개혁 방안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9장과 10장의 차례를 보면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원래 기존의 지자층이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위에서 아래로 보는 시각을 끝까지 고수한다. 즉 백성들이 덜떨어져서 백성들은 아무것도 모르니, 지배자층이 하라는 대로 하도록,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교화라 하고 세뇌라고 하고 싶은) 정책을 주로 쓰기 마련인데, 율곡은 이런 타성에서부터 벗어나, 근본적으로 위에서 시작하는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의 개혁의 칼끝은 임금을 시작으로 사대부와 선비들이 의식을 가지고 구습과 악습을 철폐하여 일단 백성의 '민생'부터 바로잡은 뒤, 올바른 학교 교육을 통해, 백성들에게 선한 풍습을 배포해야 한다는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율곡의 이런 지도층 비판은 비판을 나아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는 부분에서 의의가 있었다.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9장의 논의들은 조선 후기에 조선이 채택한 제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이가 제시한 공납의 개혁은 대동법으로, 군정의 개혁은 균역법으로 실행됐다. 조선 중기에 부르짖던 율곡의 외침은 결국 조선 후기에 가서야 최종적으로 시행됐다. 그뿐만 아니라 노비제를 비롯한 10장의 학교 개혁론들 역시도 지금의 시대에 봤을 때, 굉장히 의미하는 바가 컸었다. 우리나라 역시 지금 교육이 문제라고들 한다. 율곡 역시 10장이라는 독립적인 장을 할애하여 국가 교육에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으며, 교육이야말로 올바른 풍습과 민생의 안정, 나아가 국가의 대계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현상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시대에 대해서 무슨 일에 대해서 비판을 전개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율곡 이이처럼 '올바르고 깊게' 비판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물론 비판을 한다는 것은 문제 제기를 한다는 면에서 지극히 권장할 만 하고 좋은 일이지만, 비판 안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며, 그 비판을 나름 해결하려는 해결책도 제시할 수 있어야 진정한 비평가가 아닐까 율곡을 보며 생각했다. 율곡은 정확한 비판을 전개했으며,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했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시도됐던 정책들은 중기의 율곡의 틀에서 벗어난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만 봐도, 율곡은 뛰어난 선각자였던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11장이었다. 이 마지막 장의 이름은 '논정명위치도지본'(정명(正名)이 정치의 근본) 이 대목이었는데, 핵심은 아직까지 공신으로 추존되고 있는 죽은 윤원형 일당들을 일당들에 대해 죄를 청하고 정치의 이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부분. 이 부분에서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하고 안고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발견했었다. 이이의 말대로 정치는 이름을 바로 세우는 명분으로 시작한다는 말은 어찌 보면 상당히 명분론적인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했다. 물론 율곡이 마지막 논의를 쓴 이유에는 사적인 원한 즉 죽어나간 사림들에 대한 억울함과, 사화에 대한 척신들의 악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동호문답>에서 율곡의 개혁론을 듣던 손님은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너무 급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닌지?'라고 묻자 주인은 화를 낸다. '이래서 조선이 발전하지 않는 거라고, 사대부가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으니 나라 발전이 안되는 거 아니냐? 할 건 빨리 시행해야 한다. 지금 내가 제시하는 것은 가장 급한 문제들만 집어 낸 것들이니 이것들도 하지 않고 어떻게 나라가 바로 서 길 원하는가.'라는 입장으로 개혁을 촉구했다. 무서운 부분은 율곡이 급하게 경장을 외친 부분 중에는 군사제도가 포함되어 있는데, 율곡은 지금의 군사 체제로는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방비가 어려우니 군대를 점검하고 체제를 점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조선은 그런 율곡의 말을 듣지 않아서 임진전쟁 때 처참하게 무너진다.


 이 책을 선조에게 진상했을 때 퇴계는 같은 해에 <성학십도>를 선조에게 진상했다. 퇴계의 글이 전형적으로 유학적 관점으로 임금의 마음공부에 치중된 글이라면, <동호문답>은 임금과 신하, 백성, 그리고 올바른 '정치'와 '민생' 현실 문제 그 자체를 제시하고 있었다. 퇴계의 글에 비해 율곡의 글은 어렵지 않았으며, 명료했고 형이상적 논의를 지양했었다.


퇴계와 율곡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현실 인식이다. 퇴계는 현실 정치에 싫증을 느끼고 학문 연구에 몰두한 반면, 율곡은 사회 개혁에 적극적이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율곡의 경장론이 더 마음에 갔다.


 율곡의 다른 저서인 <성학집요>와 비교를 해 봤을 때, <성학집요> 역시 제왕학 중심적으로 고찰을 하고 있는데 반해, <동호문답>은 <성학집요>보단 짧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제왕학의 범주를 넘어선 부분이 돋보였다. 정치라는 큰 틀로 보면 <동호문답>이 범주가 더 넓다고 할 수 있으며, 군신공치 제왕론의 세부적인 부분으로 고찰할 때에는 <성학집요>가 더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성학집요>가 여러 유학 경전들의 인용으로 완성된 책이라 다소 원론적이고 추상성이 내포된 책인 반면, <동호문답>은 중국 경전들의 인용보다는 주체적인 모습이 더 두각 되고, 현실적인 부분들을 더 고찰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율곡의 상소문인 <만언봉사>와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맞물릴 수 있겠다.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경장론을 가장 돌직구적으로 토해내는 상소가 바로 <만언봉사>이기 때문에, 두 책은 상호보완적인 입장이라고 할 만하다.

 


서구의 정치사상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비교해보자면 <군주론>은 패도의 사상, 그리고 왕의 전제정치를 논하고, 대신들과 권력을 나누지 않고 왕권의 강화를 설파한 책이다. 그에 반해 <동호문답>은 왕도의 사상을 논하고 있었으며, 왕의 전제정치보다는 신권과 왕권을 동등하게 규정하며, 왕권과 신권의 조화로운 정치에 기대를 걸었다. 사상적 차이가 보이는 부분이다.


즉 무조건적인 왕권 주의를 주장하지도 않고, 무조건적인 신권 주의도 주장하지 않았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서는 재상중심주의 즉 신권 우위적 정치를 주장했는데 반해, 율곡은 신권 우위론적인 정치도 주장하지 않고 왕권을 최대한 포용하며 명신과 명군이 합치된 정치를 추구하고 있었다.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군주와 신권 어느 한 쪽을 우위에 두는 것은 어쨌든 무게중심에서 기울기 마련이다. 그러나 군신의 공치를 주장하는 이 <동호문답>은 어쩌면, 한반도 최초의 리더십과 팔로워십 양자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최초의 팔로워십에 대한 논고는 정도전이 <경제문감>에서 잘 밝혀놓고 있다. 다만 너무 극단적인 신권 중심주의로 흘러가, 결국 그 논의 때문에 그는 목숨을 잃었다. 어쩌면 율곡도 내심 속마음으로는 억눌렸던 사림이 이제야 기를 펴고 정치에 전면에 나서므로, 신권 우위론을 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왕권과 신권 어느 한 군데에도 무게추를 돌리지 않고 둘의 화합적 정치를 일궈내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율곡의 철학과도 상당히 밀접하다. 율곡의 철학은 화합의 철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는데, 퇴계의 주리론과 화담의 주기론을 적절하게 섞은 이통기국론을 주장하는 부분에서 그가 형이상학적으로 추구하던 이념의 화합, 그리고 현실 정치에서도 군신 어디에도 무게추를 두지 않고 화합으로 결론을 도출한 부분에서도 유효했었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의 글에는 이런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런 화합과는 다르게, 사림은 율곡 사후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기 시작했으며 지질한 붕당정치로 이어갔다.


어떻게 본다면 율곡은 실패한 정치가로 인식될 수 있다. 뛰어난 혜안을 가졌음에도 선조의 의중을 돌리지 못했으며, 그의 후학들 사림은 붕당으로 쪼개졌다. 그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대책을 밝혔지만 '실현시키지 못 했다.' 그래서 그는 반쪽짜리 경세가라고 할 법도 하겠다. 하지만, 이 부분은 <동호문답>에서 고찰했듯,


정치는 '율곡' 즉 명신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다. 군주와 여러 신하들이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율곡의 책임이라기보단, 그 시대의 관료들이 과오였으며, 결정적으로 조선의 군주인 선조의 책임이 가장 컸다. 어쨌든 율곡은 자신의 경장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했고, 그러한 사상을 저술로 세상에 남기는데 각고의 노력을 다 했었다.


선조라는 임금은 뛰어난 자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혈통상 서자의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졌다. 핏줄에 대한 정통성의 약화와 사림의 진출은 왕권의 약화를 가져왔다. 선조 입장에서는 그럴수록 의식적으로 신하들을 견제하려고 노력했었고 신하들을 누르려고 노력했었다. 사림 역시도, 지금까지 권신들에 억눌렸던 기세를 이제야 펴리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약화된 왕권은 결국 신권의 강화로 이어져갔다. 선조 이후, 조선사는 사실 왕권과 신권의 첨예한 대립을 불러왔다. 율곡이 바라고 바랐던 군신공치와는 전혀 반대되는 부분으로 역사는 흘러갔다.


 율곡의 맹신적인, 아니 그 시대 사람들이 맹신하던 왕도정치에 대해서도 사실 비판의 여지는 있다. 무조건적인 왕도정치 역시도 답은 아니다. 조선의 역사가 왕도에 목을 메다가 결국 멸망하지 않았는가?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동의할 순 없었다. 그리고 시대적인 한계인 중화주의에 대한 부분도 책에 나온다. 바로 오랑캐와 중화에 대한 시각도 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이 책에서 가장 의의가 있는 부분은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율곡의 군신공치 사상이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제왕학서들은 군주 우위론적 시각으로 군주론을 전개했었다. 신권은 그냥 무지막지하게 눌러버리고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신하들을 다뤄야 한다(아니 억눌러야 한다.) 는 시각. 그런 방법도 사실 해답은 아니다. 지도자는 왕도와 패도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하들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는 율곡의 논의대로 명신들을 존중하고 팔로워십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도 좋은 리더십의 표본이다. 신권을 때론 견제를 할 때도 있어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신권을 존중하며, 같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최대한 모색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율곡의 군신공치는 화합의 정치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 사상이 녹여있는 <동호문답>은 그래서 의의가 있다고 느꼈다.


고전을 특히 정치 사상서를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했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은 텍스트, 누군가가 볼 때는 한없이 짧은 텍스트겠지만, 읽는 내내, 율곡이 나라를 위해 고민했던, 그리고 그 시름하던 조선을 개혁하기 위해 생각했던 고뇌를 읽으려고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면서 부단히 지금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었다. 시대는 다르고, 제도적인 부분은 달라도, 근본적인 정치의 개혁적 시각과 방법론에 대해서는 그와 나의 생각이 많이 닮아있었다.


한 권의 작은 책 안에, 많은 부분이 담겨있다. 평범한 독서당 리포트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큰 책이었다. 손님과 주인의 대화에서 중국의 역사를 한반도의 역사를, 조선의 역사를, 율곡 시대의 아픔을, 사림의 진출에 대한 배경을, 아쉬움 투성이의 선조라는 왕의 고뇌를, 그리고 이 모든 현세의 아픔을 개혁하고자 했던 한 지식인의 열정을, 그 지식인의 열정 안에는 백성을 위한 순수한 마음을, 끝내 실현되지 못 했던 그의 뛰어난 해결책들을... 그래서 책을 보며 그의 통찰에 놀라기도 했으며, 그의 초라한 최후에서 강한 아쉬움과 먹먹함을 느꼈다.


이 책은 서울대에서 펴내는 규장각 우리고전 시리즈다. 책은 상세하게 잘 설명되어 있으며, 해설 역시도 책의 이해를 잘 고찰하고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이 리뷰를 쓸 때, 해설에 없는 나 자신의 견해를 많이 투영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규장각 시리즈는 참 해설이 좋다. 책 표지도 아름다우며, <동호문답>과 같은 경우는 곤룡포와 익선관의 표지가 잘 어울린다. 다만 한 가지 이야기하자면 주석을 뒤에 몰아넣지 말고, 본문 밑에 처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짧은 책인데 주석 편제가 다소 아쉽다. 주석을 보려고 책장을 자꾸 넘겨야 해서 그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다른 아쉬움은 없었다.


쓰다 보니 참 글이 길어졌다. 사실 책의 본문에 딸린 해설이 워낙 뛰어나 이렇게 긴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이 이렇게 길어졌다. 책을 덮으며, 많은 부분을 느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의 즐거움을 물씬 느낀 책이었다. 율곡의 평전과 율곡의 저서들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동호문답>을 통해 그에 대해 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이 책으로 나와 그는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읽었던 <성학집요>를 다시 읽으려 한다. 그가 원했던 군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찰하고, 끝내 선조가 따르지 못 했던 부분들을 거울로 삼아, 나는 실천으로 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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