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뻔하고 흔한, 그리고 식상할 법한 주제를 가진 책이더라도, 그런 뻔함의 미학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책은 작은 소설이었고, 뻔한 스토리를 가졌지만, 느낀 점이 많은 소설이었다. 책이 발간됐을 때, 한국에서 굉장히 유행을 했었고, 대중적인 공감을 했었던 책이기도 하다. 왜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 책을 열광했었을까?


파견사원으로 일하던 아마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루저 20대였다. 희망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으며, 직장도 변변치않고, 생활도 쪼들리고, 친구도 없고, 외모도 뚱뚱한 이 주인공은 스물아홉의 생일을 기점으로 1년간 뼈 빠지게 돈을 모아서, 화려하게 그렇게 라스베이거스에서 영화와 같은 날을 보내며 가장 인생이 화려할 때 자결을 하기로 결정했다. 책의 제목은 그런 아마리의 결심을 상징한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책의 제목.


화려한 그 마지막을 위해, 아마리는 지금까지의 잉여 마인드를 버리고, 단 며칠을 위해 1년을 노력한다. 호스티스 바를 시작으로 누드모델 등등 돈이 되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치열하게 열심히 해 나간다. 어느 소설에서나 볼 직한 거창한 꿈이나 그런 동기부여가 아닌, 그야말로 누군가가 보기엔 의미가 없는 그런 화려한 유흥 화려한 죽음을 위해, 죽을 때는 잉여처럼 죽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모든 것을 걸고 최후의 도박을 시작한 주인공은 그 절박함을 딛고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보지 못 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고, 인생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다. 책은 그런 인생의 가르침 등등을 현학적인 수사나, 거창한 문구로 치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고 초등학생이 문장을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솔직하게 꾸밈없이 주인공의 심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소설이다. 그래서 글을 보는 내내 몰두하며 읽어갈 수 있었다. 저자는 물론 소설을 위해 각색한 부분도 있고, 억지스러운 교훈을 이끌어내서 감동을 주려고 하는 부분도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진솔하게 썼었다. 가식과 포장이 아닌 최대한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글쓰기. 그런 글이라서일까, 뻔한 스토리 그리고 식상한 감동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감동이 일어났던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아마리'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함께 할 수 있는 벗들은 굉장히 제한되기 마련이고, 요란 떨며 생일을 챙기던 그런 우정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들해지며, 자기 스스로 생일을 챙겨야 할 때도 많다.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은 그들 나름대로, 갑인 상사 앞에서 쪼들리며, 스트레스받아 가며 일하고 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청춘들은, 구직을 위해 오늘도 자존심을 구기며 취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사람들 역시도 안정화되지 못한 직장과 대우에서 위태위태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경우와 상황은 달라도 청춘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는 공통점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주인공 아마리와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아마리와 같은 심리, 나이가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삶의 외로움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는 부분은 아마리와 닮았고, 그 감성적 공감은 책을 몰두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책을 보며 또 한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바로 꿈에 대한 부분이다. 이 책은 거창하고 거국적인 이상적 가치의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어이없을 정도의 소망을 위해, 아마리는 분투하고 노력한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에서 꿈을 가져라, 남들과 차별화되는 꿈을 가져라고 교육받지만, 솔직히 그 꿈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찾는 청춘은 드물기 마련이다. 우리는 아마리와 같이 우리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닥치는 대로' 살아왔었다.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꿈을 이야기했지만, 닥치는 대로 살아온 청춘인 우리는 그런 꿈에 대해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린 시절부터 꿈을 꾸라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꿔 온 꿈은 잠자리에서 꾼 꿈이 전부가 아닐까?


아마리는 그런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보단, 누가 볼 땐 소소한 것, 라스베이거스에서 화려하게 보내고 죽겠다는, 어이없는 그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적으로 분투했다. 꿈이라는 것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아마리는 거창하지 않는, 아니 아마리에게는 동기부여가 됐을지 모르겠지만, 꿈이라는 것에 어울릴 만한 단어 가령 예를 들면 야망, 대망 등등의 거창함으로 볼 때는 한없이 잉여스러운 가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적으로 분투했다.


굳이 번잡하고 복잡하고, 있어 보일 필요는 없다. 꿈이라는 것은 그렇게 소소하게, 꾸며 그런 소소한 꿈으로부터도 인생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책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젠가 어느 블로그 이웃님께, 블로그 제목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이웃님이 말하신 부분이 생각났다.


'아 이탈리아에 있는 그림 이름이에요. 한 번 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거든요.'


그 대답이 생각났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런 작은 소원도 굉장한 삶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구나, 나는 과연 나만의 소소하더라도 저렇게 똑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는 꿈이 있는가? 나는 나만의 라스베이거스가 있는가? 거창하지 않고 소소하게나, 저런 꿈이 있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마리를 보며 또 느낀 것은, 아무리 가치가 없는 꿈이더라도, 그 꿈을 실현하는 데에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미생'에서 우리는 장그래에게 열광한다. 고졸 출신의 아무 스펙도 없는 그가, 회사에서 적응해가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자화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이정표로 다가올 수 있겠다.


아마리와 장그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노력이다. 아무리 하찮은 꿈이더라도, 그 꿈을 이뤄 나가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미생'을 보며 내가 느낀 점은 장그래가 무역 사전을 3일 만에 외웠다는 사실이다. 이런 열정과 노력이 있어야지 우리는 장그래가 될 수 있다. 이 정도 노력은 해야지,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장그래가 말하는 멋진 말들이나, 느낌이 오는 대사들만 기억하지, 장그래의 노력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리 역시도 마찬가지다. 라스베이거스를 가기 위해, 그녀는 지금까지의 잉여스러운 태도를 버리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 장그래도 마찬가지다. 꿈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 소박한 꿈 때문에 그도 휴일을 반납하고 노력한다. 둘은 그래서 닮았다.


아마리는 그러한 삶의 작은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고, 삶의 긍정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 죽지 않고, 새로운 삶을 부여받아, 더 나은 삶을 열어갔다. 그래서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마리는 죽었다. 기존의 잉여스러운 못났던 아마리는 죽었고, 새로운 아마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1년이란 시간은 보이듯, 길지도 적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사람을 바꾸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뻔한 플롯과 뻔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감동 있게 잘 봤던 책이다. 일본인이 써서 그런지, 현학적인 수사나 그런 부분이 없으며, 간결하고 단출하게 알기 쉽게 잘 써진 책이었다. 아마리를 보며, 나의 꿈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과연 작은 가치들을 너무 쉽게 지나치지 않았는가 그런 부분에서도 아마리처럼 생의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과연 나의 꿈을 위해 아마리처럼 목숨을 걸고 한 일이 몇 개나 있을까라고 생각해봤다. 부끄럽다. 나는 그렇게까지 노력한 경우가 거의 없다.


어떤 일을 할 때엔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야 한다. 무슨 일이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사소한 일이고 작은 일이더라도 쉬운 일은 없다. 노력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도 노력을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의 노력은 특별하다. 노력이 옵션의 가치를 부여받으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남들과는 다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니까, 아마리도 그랬고 장그래도 그랬다. 과연 나는 그렇게 인생을 살았는가? 부끄러울 다름이었다. 뻔하고 식상한 이 책은 나에게, 그런 부끄러움을 선사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나를 죽여야 한다. 타성에 젖은 나, 열정을 잃은 나, 행동하지 않는 나, 변명이 많은 나, 나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아마리처럼, 그러기 위해선 죽을 듯 노력해야 한다. 죽을 듯 노력해야 할 꿈, 가치를 생각해야만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소소해도 그 소소함을 이루는 과정에서 삶의 성찰을 받는다면, 나의 타성의 모습을 죽여나갈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도 나를 죽이고 싶다. 1년이란 세월,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에 나도 목숨을 걸고 노력해야겠다. 우선은 1년만 그렇게 살아보련다. 너무 길게 계획을 잡지도 않고, 아마리와 같이 1년만, 죽기 아님 살기로, 그래서 나도... 나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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