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상 세계의 사상 12
김부식 지음 / 을유문화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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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재미없는 책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4학년 일기장에 기록이다. 이 기록은 <삼국사기>를 보고 느낀 점을 표현한 글이었다. 

 

나에게 <삼국사기>는 그런 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국사 교과서에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힌 이 책은 그 뒤로, 독서 감상록에 단골손님이었으며, 그래서 억지로 몇 번 들춰봤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오래된 정사이자, 역사 책이라는 의의도 있다.

 

 원래 거추장스러운 타이틀이 많을수록, 어린 시절에는 그 책이 재미가 없는 법이다. 그래도 거추장스러운 중국의 <사기>는 문학 작품으로 생각될 정도로 묘사나 표현이 살아있지만, 대체적으로 <삼국사기>의 기술 방식은 몇 월 며칠 무엇을 했다 식의, 딱딱한 사실관계만 있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가 어려웠었다.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 본기(왕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메인으로 다루고 있으며, 잡저에 각국의 지리와 관작 등을 서술하고 있고, 열전(그 시대에 뛰어난 영웅의 개인적 전기)에 각 나라별로 뛰어난 인물들의 전기를 담고 있는 전형적 '기전체' 역사서였다. 아무래도 이런 기전체 형식은 중국의 사례를 본떠서 만들었겠다. 불멸의 역사책인 <사기>의 체제가 바로 기전체이기 때문에, 그 명저 아래로 동양의 많은 나라들은 기전체를 본떠 역사를 기록했었다.

 

사실 책은 신라 중심적인 내용이 많았다. 아무래도 삼국의 승자는 신라였고, 남은 기록들도 신라의 기록이 많았을 것이니 많이 참조를 했음에는 틀림없겠다. 그래서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신라 본기의 분량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본기의 차례도, 신라가 가장 앞서고 있으며, 그 뒤로 고구려와 백제 순으로, 이어졌다. 즉 편제에서도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분량에서도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열전에서도 이런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부분을 보여주는데, 고구려나 백제인에 비해 신라 영웅들의 열전이 많았으며,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10권의 열전 중 3권이 바로 '김유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루했던 <삼국사기>를 다시 보게 된 이유도 '김유신' 때문이었다. 이십 대 초반, 김유신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생각보다 어른을 위한 김유신 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역사 문헌에 기록된 김유신의 모습들을 추적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 <삼국사기>에서 상세한 김유신의 열전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분량 만으로 보자면 왕 이상의 분량으로 기록되고 있었으며, 특히 한 인물의 열전을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다.

 

열전에 기록된 김유신은 사실 좀 신화적인 모습이 존재하긴 했었어도, 굉장히 귀감이 될 만한 영웅이었다. 내가 김유신을 주목하고 존경하게 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그 당시 기득권이 아닌 몰락한 가야파의 후손으로서, 폐쇄적인 성골 진골을 내세우는 신라 사회에서 우뚝 서게 된 부분, 기존의 이너서클이 규정한 것을 뛰어넘어 스스로 새로운 역사의 발자취를 만든 영웅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두 번째로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조국의 통일전선에 앞장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영달을 위한 출세가 아니라, 개인적인 부와 국가의 국익 이상의 가치 삼한의 일통을 꿈꾸며 행동했다. 그 모습은 현대의 개인주의적 출세가 만연하는 사회에 귀감이 되기 충분했으며, 그의 사상 자체는 남북 분단을 겪고 있는 지금의 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세 번째로는 그는 김춘추라는 배경이 있었음에도 40~ 50대에 이르러서, 압량주 군주가 되어 존재감을 나타낸다. 당시의 사회에서는 굉장히 늦은 출세였었다. 사서에 김유신이 전선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전투는 낭비성 전투인데 이 때 김유신은 화랑들을 이끌고, 자살특공대로 돌격하여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군의 사기를 높였다. 이 낭비성 시기가 젊은 시절이었는데, 이 때부터 그는 조국을 위해 싸웠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나에게 큰 감동을 줬는데, 김춘추라는 배경 덕분에 떵떵거리고 호의호식하며 타협하고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부터 흔들리지 않고, 실력으로 인정받으려는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인생의 황혼의 나이에 압량주의 사령관으로 나아가 신라를 수호하였고,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뤄냈다. 즉 이른 출세를 고집하지 않고, 밑바닥부터 기본기를 잘 닦은 위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런 세 부분에서 나는 김유신이라는 인물 자체에 매력을 크게 느꼈다. 물론 그가 자행한 음험한 술수나, 극단적인 부분에는 거부감이 일기도 했었으나, 당시의 전시체제 사회상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는 부분으로 최대한 이해해보려고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삼국사기>라는 책을 통해 나의 선조인 김유신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았고, 선조가 하신 말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 김유신 열전을 포함하여, <삼국사기> 전권을 정독하여 읽었었다.

 

삼국의 역사를 상세하게 정리할 순 없다. 그러다 보면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세 왕조의 역사를 보며 느낀 점은 첫째로 전쟁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 그래서 그 시대에는 굉장히 백성들의 삶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두 번째로 주목했던 점은 흥성했던 왕과, 타락한 왕들을 볼 때 유심히 봤다. 그들이 융성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몰락한 이유는? 그 부분들에 중점을 두고 사서를 읽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연개소문 열전을 읽으며 연개소문의 성이 천 씨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 이 부분에서 <삼국사기>의 오점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백제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백제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백제사가 가장 기록이 적어 너무 아쉬웠었다.

 

그리고 열전을 보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기존의 역사서들은 여성에 대해 열전을 남기지 않았고, 대체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역사관으로 사서를 기술했었다. <삼국사기>의 열전에는 여성을 다루고 있지만, 그 여성들이 부귀영화나 힘을 가진 권력자도 아니었다. 철저하게 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는 효녀 지은, 설녀씨, 도미 등등의 일반 백성 열전들도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상당히 도덕적으로 교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의도적인 부분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여성을 열전에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권력자가 아닌 백성을 열전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기전체 역사서에서 교양적으로 취할 부분은 본기와 열전이다. 기타 연표와 잡지(관등체제, 복식, 지리) 등등은 아무래도 본기와 열전에 비해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크겠다. 물론 사학자들이나 문헌학자들,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연표와 잡지 등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행위와 역사만을 담고 있는 본기와 열전 부분만 봐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내가 지금 <삼국사기>를 보는 것은 국사 시험을 보거나 국사 연구를 하고자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귀감과 역사를 통한 나 자신의 반성을 위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잡지나 연표 등은 사실 스킵 하면서 봐 왔었다. (게다가 연표나 잡지는 상당히 지루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고전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고전 속에 대표적으로 꼽는 역사서는 중국의 <사기>가 대표적인데,물론 <사기>는 뛰어난 책이고, 표현도 굉장히 섬세한 책이다. 우리의 <삼국사기>와 비교해보자면 사실 <삼국사기>가 부족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삼국사기>는 한계가 있더라도, 큰 의의가 있는 책이다.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삼국사기>는 가장 절대적인 기록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의 고대사 지식은 더 빈약했을지도 모른다. <사기>를 읽는 것에 대해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나 역시도 틈틈이 심심하면 <사기>를 들춰보는, 그런 좋은 책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같은 기전체 책인 <사기>만을 추존하고 <삼국사기>를 등외시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인식이 아닐까 싶다. <사기>를 본다는 것에 딴죽을 걸 마음은 없다만, 적어도 <사기> 2~3번 들춰볼 때 <삼국사기>는 한 번쯤은 들춰봐야 하지 않을까?

 

마치 지금 고전 풍토를 보면 조선시대가 생각난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실학이 눈 뜨기 전에는 철저하게 중국의 학문을 모방하는 것에만 머물렀었다. 그래서 이전 왕조들보다, 조선 자신만의 색채가 드물다. 선비들은 새로운 이론을 내기보단, 중국의 학문을 숭상하는 것에서 의의를 뒀다. <사기>를 맹목적으로 추존하는 부분에서 왜 자꾸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비록 기전체를 모방하긴 했어도 '우리만의' <사기> 가 존재하고 있는데 왜 우리 것은 보지 않고 타국의 역사인 중국 역사만을 절대시하고 고집하는가,

 

자고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했다. 따라서, 나는 타국의 역사서보다, 자국의 역사서를 먼저 읽고 나서야 타국의 역사서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삼국사기>는 많은 한계가 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춰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내가 리뷰하는 을유문화사 이병도 선생의 역주본은 사실 직역을 한 부분이 상당히 보여서, 문체도 투박하고, 특히 국한문혼용으로 책이 기술되어 있다. 본문은 순 한글로 기록되어 있고, 역주에서는 한자를 병용하고 쓰고 있어서, 사실 대중적으로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번역본의 장점은 일단 가격이다. 상하 합쳐서 16000원이라는 점과 두 번째로 주석이 아주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한문에 강하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가장 현대적인 번역과 읽기 편한 책은 한길사에서 나온 <삼국사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차선책으로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삼국사기>도 괜찮아보인다. 동서판 번역본은 가격도 싸고 양장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이번에 경주를 다니면서 숙소에서 읽었다. 물론 다 읽진 못하고, 본기와 열전 위주로 읽었었다. 천년 고토, 신라의 기운이 서린 경주라는 공간에서 잠이 오지 않아서 늦은 시간까지 이 책을 읽었다.

 

책에서 가장 감동받은 구절은 김부식의 서문이다.

 

김부식은 스스로의 학문과 재주가 비천하다고 하면서도, 왕이 삼한의 역사를 기록하라는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기술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것이(삼국사기) 비록 명산에 비장할 거리는 되지 못하나 간장병 뚜껑과 같은 무용의 것으로는 돌려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신의 구구한 망의는 천일이 비추어 내려다볼 것입니다.'

 

나는 김부식에게 속으로 말했다.

 

'신라 중심적인 서술, 그리고 몇 가지의 한계가 있는 책이지만, 당신의 기록이 없었으면, 아마 우리 후세들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고대사를 접근했을 것입니다. 당신의 기록은 '다행히도' 간장병 뚜껑이 되지 않았으며 그 덕분에 명산이 비장할 겨레를 밝히는 등불이 됐습니다. 이에 나는 이 기록을 남긴 당신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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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 - 개정판
이황 지음, 이광호 옮김 / 홍익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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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작은 책이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얼마 되지 않는 텍스트임에도, 깊은 논의나 어려운 논의가 담겨 있으면 쉽게 읽어나가기가 힘들다. 이런 분야의 책들은 대체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논고를 담고 있는 철학서적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 <성학십도> 역시도 마찬가지다. 유학적 지식이 없다면, 상당히 읽어나가기가 힘든 철학서적이 바로 이 <성학십도>이다.

 

이 책은 퇴계 이황이 준비되지 않고 즉위한 선조에게 진상한 작은 책자이며, 한 마디로 퇴계 이황의 군주론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퇴계는 이 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성을 논하고 있으며, 그 인성에 다다르기까지의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퇴계의 글은 상당히 난해한 구석이 많다. 율곡의 글과 비교를 해 봤을 때, 퇴계의 글은 다소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졌다. 퇴계와 비교해서 율곡의 글은 명료하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퇴계는 이 책에서 바른 정치를 위해, 정치의 주체인 군왕이 마음공부를 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 책은 치국의 도나, 정치 처세의 기술론적인 부분을 고찰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 다스리는 법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학 그리고 성리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기치인(내 몸을 잘 닦아 남을 다스림)이다. 기존의 국왕의 군주론을 다룬 책들을 살펴보면 수기와 치인 둘 다를 고찰한 책들이 많다. 이것은 서양의 마키아벨리 <군주론> 역시도 마찬가지다. 군주의 마음에 대한 부분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치인에 대한 부분과 정치와 처세에 대한 고찰, 나 이외의 타인의 심리를 고찰하는 것으로 다스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퇴계의 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성학십도>는 오로지 수기, 즉 마음공부만 이야기하고 있다. 퇴계가 봤을 때, 군왕이 정사를 돌보는 데에는 정치적인 모략과 기술보다는, 바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그런 것 같았다.

 

<성학십도> 제목에서 의미하듯, 성학은 성인의 학문, 군주의 학문, 제왕학 등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다. 십도의 경우는 10가지 그림이라는 뜻으로, 굳이 제목을 풀이하자면 '성인에 이르는 10가지 그림'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이 10가지 그림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10가지의 유학 이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림이라고 할 순 없겠고, 한 마디로 일목요연하게 이념을 정리한 도표라고 보면 되겠다. 퇴계는 성리학의 이념을 10가지로 나눠서 각 이념마다 그림을 그려 유학에 학습론을 거시적으로 제시하고 글로 부연 설명을 했었던 것이다. 기존 제왕학 저서들이 텍스트 위주로 서술된 것에 반해 퇴계의 이런 그림 활용 등은 참신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퇴계가 먼저 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 초 양촌 권근이 <입학도설>이라는 유학 초학서를 쓰며, 그림과 글을 병용했다고 나오는데 퇴계는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성학십도>를 완성했겠다. 실제 <성학십도> 안에 4장인 대학도는 양촌 권근이 <입학도설>에 그린 것을 약간의 수정만 하여 올렸다고 했다.

 

퇴계는 기존의 성리학의 이념을 밝혀 놓은 그림들을 참고하여 싣거나 수정하여 차용했다. 그 차용한 그림들을 학습 체계에 맞게 대대적으로 편제했으며, 때론 자신이 생각했던 이론의 그림이 없을 땐, 자기 스스로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그 그림에 대응하는 경전 이론들을 인용하여 쓰고 있었으며 때론 경전 이론들에 자신이 보충 설명을 쓰기도 했고, 퇴계 스스로가 자신의 견해를 뒤에 달아놓았다. 즉 이 한 권에 주자학의 학습 방법론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 등등이 체계적으로 압축되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유학의 A에서 Z까지 심학에 대한 부분들을 다 다루고 있다. 그래서 책은 어려웠다. 그리고 다소 추상적인 논의도 나와서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었다. 다만 이 홍익출판사 번역본은 주석이 굉장히 자세하고 친절해서, 그냥 지나칠 법한 대목들도 주석으로 설명하고 있고, 책에서 논의되는 경전들의 출처를 일일이 다 밝히고, 상세 설명까지 해 놔서 최대한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한 부분이 보였다. 본문보다 상세한 주석이 더 돋보였던 것 같았다.

 

또 한가지 이 책의 특징적인 부분은 조선의 인문지식과 자연 지식이 조화롭게 만나는 책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부분이다. 책에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논고를 다소 형이상학적인 개념, 태극에 대한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이 인식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비롯한 태고의 천지창조와 인간의 본성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1장 태극도와 2장 서명도)

 

보통 우리는 자연 지식이라 함은 기술과학만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론 자연과학 지식은 이과 계통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이다. 과학이 다루는 것은 궁극적으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학문이다. 반대로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이 인문학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에게 생겨난 폐단 중 하나는 자연 학문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꼽을 수 있겠다. 바로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자연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술론적인 고찰을 중심적으로 자연학을 생각하는 것. 그 인간 중심적인 오만함. 그러나 자연학의 본질은 인간과 자연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그런 자연학의 본질론적 시각으로 볼 때, 동양의 음양학이나, 태극에 관한 논의 등등은 결국 어떻게 본다면 유학적인 사고 관념의 자연학, 이과학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역>이라는 텍스트도 단순한 점술서가 아니다. <주역>이라는 책은 한편으로는 동양의 이과 학문을 인문적으로 풀이한 책이기도 하다. 자연의 모습을 보고 만들어 낸 64괘, 그리고 오행 화 수 목 금 토에 대한 논고 등등은 어쨌든 동양에서 탐구한 자연 지식을 이론적으로 고찰한 부분이기도 하다. 서양의 자연학과는 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동양 역시도 동양 나름대로의 자연철학을 가지고 있다.

 

책은 그런 동양의 자연학적 시각과 인문학적 유학 사고를 적절하게 융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었다. 태고의 인간이 생겨난 본질에 대해서 퇴계는 나름대로의 고찰을 2장 서명도에 언급한다. 그래서 책은 적은 분량임에도 상당히 거시적이고 범위가 넓다. 물론 오행 화수목금토에 대해 유학의 이념 인의예지신을 대입하는 것도 상당히 어불성실 같아 보이고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짜 맞추기가 옳냐 그르냐를 떠나서, 퇴계의 저술 동기를 읽어내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퇴계는 이 자연 이론들들과 인문 유학적 이론들의 융합적 설명을 통해 바른 인간 성인으로 가고자 하는 도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내가 주로 의미에 와 닿았던 부분은 3장 소학도(유학경전 <소학>에 대한 도표), 4장 대학도(유학경전 <대학>에 대한 거시적 도표), 5장 백록동규도(오륜에 대한 부분을 고찰한 도표), 9장 경재잠도, 10장 숙흥야매잠도다. 특히 10장 숙흥야매잠도는 지금까지 추상적이었던 바른 마음에 대한 고찰을 일상에 적용한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시작은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부분으로 시작한다. 바로 존재에 대한 인식과 선에 대한 부분을 태극도라는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에 반해 마지막 10장인 숙흥야매잠도는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만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 체계들의 편차는, 결국 마음공부의 최종적인 목표는 일상에 머물러야 한다는 퇴계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다.

 

책의 그림 도표는 상당히 자세하다. 유학의 핵심 이념을 체계에 맞게 잘 배열하고 있었으며, 읽었던 <소학>과 <대학>의 편차 역시도 아주 훌륭하게 잘 밝혀놨다. 확실히 이 작은 책은 유학을 처음 배우는 초학자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법 하겠고 (물론 다소 좀 어려운 논의가 있겠지만) 유학에 정통한 사람들은 자신의 유학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퇴계는 이 책을 상주하며 선조에게 '내가 나라에 보답한 것은 이 도 뿐이다.' 라고 하며 '소신이 충성하기를 바라고 가르침을 드리고자 하는 정성에서 바친 것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학문적 공력을 다하여 책을 저술했다. 따라서 이 책은 성리학의 학문적 이념을 가장 체계적인 도표로 표현하고 있기도 했으며, 유학이 추구하는 마음공부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세상 모든 일을 마음으로 풀어 나갈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르고 곧은 마음은 모든 일의 근간이다.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 생각했다. 퇴계의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한계도 있었고, 동의하기 힘든 극단적 성선론적 관점도 있었지만, 읽으며 내 마음을 책의 이론에 대입하여 생각을 많이 해 봤었다.

 

이 지극한 가르침을 받은 선조는 결국 마음을 다스리지 못 했다. 그는 끝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고, 성군이 되지 못 했다. 퇴계의 이런 지극한 정성을 받은 군주는 조선의 최고 무능한 군주로 인식됐다. 퇴계는 지하에서 그런 자신의 '어린 주군'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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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략 임동석 중국사상 65
황석공 찬, 임동석 역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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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펴 본 <삼략> 병법서다. 흔히 말하는 <육도삼략>인데, 원래는 두 권의 책을 칭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도>와 <삼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의 7대 병법서 안에 들어가는 문헌이며, 상당히 짧은 문헌임에도 무경으로 인정받아 무인들에게 중요시됐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삼략>은 대부분 <육도>와 함께 합본으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면 사실 <삼략>의 원문이 굉장히 짧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삼략> 3가지 모략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고 책의 체계 역시 상략, 중략, 하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텍스트라서 사실 마음먹고 본다면 두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깊이 있게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삼략>은 다른 병법서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바로 정치와 전쟁의 관계에 대해서 정치를 비중 있게 다루는 부분이다. 사실 이 책은 병법서라기보단, 국가경영 철학을 담고 있는 경영서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 정도로 책에 전체적인 군주의 정치에 대해서 논한 부분이 많다. 물론 다른 병서들 역시도 치국에 관한 부분과 올바른 군주의 도에 대해서 짤막하게나마 언급을 한다. 그러나 <삼략>은 구체적으로 정치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삼략>에서 논하고 있는 정치의 도는 철저하게 유가 중심적인 논의였다. 인의와 덕치를 강조하는 대목들이 상당히 많으며 이 부분은 춘추전국 시대의 유가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반영한 부분이 보였다. 같은 무경칠서의 <사마법>과도 일통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마법> 역시도 유가의 사상을 최대한 많이 반영한 병법서이기 때문에, 두 책은 상당히 사상적으로 닮아 있음을 느꼈었다. (<사마법>에서는 상대의 농사 추수 기간일 때에는 배려해서 군대를 일으키지 말자고 하며 적이 상을 입었을 때에도 공격하지 말자고 할 정도로 인의와 명분을 강조하고 있는 병서다.)

 

<삼략>은 또 특이한 것이 책 중반부에 서술 동기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중반부에 이르러 책에선 이야기하는데 상략에서는 예와 상을 설치하는 것과 간웅을 변별하는 방법, 성공과 실패를 드러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상략을 잘 밝히면 능히 어진 이를 임용하여 적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한다. 중략의 경우는 덕행의 차이와 권변의 심찰을 다뤘으며 중략을 깊이 알면, 장수를 제어하고 무리를 통괄할 수 있다고 한다. 하략의 경우는 도덕을 진술하고 안위를 살피며 적현에 따른 허물을 명확히 하여야 함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성쇠의 근원을 밝히고 치국의 기틀을 심찰할 수 있다고 한다. 위의 대목에서 느끼는 것은 이 책은 병법사라기 보다는 확실히 치국의 도에 더 중점을 둔 정치사상서와도 같다고 느낄 수 있겠다.

 

거기다 이 책은 유가의 정치사상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강조한 유약강강(부드러운 것이 능히 굳센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한다.) 라는 도가 철학도 채용하고 있으며, 그런 부분에서 유가적 덕치를 연결시켜 절묘하게 치국에 대해 무조건적인 강함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삼략>이 병법 특유의 속임수 지향주의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병가의 가장 큰 특징은 '속임수'라고 할 수 있겠다. 싸움은 자고로 어떤 속임수가 다 허용이 된다는 것이 병가의 가장 큰 사상적 특징이다. <삼략> 역시도 정치에서 인의를 강조하지만, 중략에서 보듯, 궤휼과 기모(속임수 계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설토하고 있으니, 사상적 모순이 보이는 부분이지만, 병가 특유의 권모를 중시하는 부분도 볼 수 있었다.

 

병가 특유의 벙법론을 보자면, <삼략> 역시도 부하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특히 책 서두에서 아군의 영웅심을 촉발시키라는 부분에서 볼 수 있으며, 사기를 높이는 방법으로 예시를 든 것, 어떤 이가 좋은 술을 주자 장수가 이를 강물 상류에 쏟게 한 뒤 강 하류에서 부하들과 함께 마셔서 사기를 올렸다는 부분, 무릇 한 동이 술이 강물 전부를 술맛이 나게 할 수는 없지만, 삼군의 사졸들이 모두 죽음으로 장수의 고마움에 보답했다는 부분에서 병가 특유의 고도의 심리론을 볼 수 있었다.

 

뻔하긴 해도 가장 리더가 귀감으로 삼아야 하는 부분도 고찰하고 있는데, 장수는 사졸들보다 먼저 목마르다고 해서도 안되며, 군사 막사가 완공되기 전에는 절대 부하들에게 피곤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며, 군대 아궁이에 밥이 지어지기 전까지 절대 배고프다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비 온다고 우산을 먼저 펴서도 안되며, 여름에는 부채를 들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졸들과 편안함과 고난을 같이 해야만 군대의 사기가 오르고, 장군을 존경으로 바라본다는 이야기는 2000년을 지난 지금에서도 유효한 덕목이다.

 

확실히 <오자>, <울료자>와 같이 법가주의적 병법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병가 특유의 심리학과 권모학이 녹여 있는 책이었으며, 유가와 도가의 영향을 받은 부분들도 보였다.

 

재미있는 점은 <삼략>에서 계속되게 인용되는 <군참>이라는 병법서를 보며, 과연 이 시대에도 내려져 오는 병법 텍스트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병가라는 철학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점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군참>이란 병서도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유실됐다고 한다.)

 

흔히 같이 거론되는 <육도>와 비교를 해 보자면, <육도> 역시도 첫 장인 문도에서 정치에 대해서 논고가 있긴 하지만 나머지 다섯 챕터에서는 전형적으로 전쟁 모략 이야기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법에 대해서 무기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즉 <육도>는 자세한 미시적 전쟁 이론서라면 <삼략>은 육도보다 짧긴 하지만 치국의 도에 더 중점을 둔 거시적 국가경영 병법서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이 <삼략>의 정신은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도 많은 유사성이 있고, 사무라이 정신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도 한다.

 

유가 사상이 공맹(공자와 맹자), 도가 사상이 노장(노자와 장자)로 통칭되는 것에 비해 병가는 손오(손자와 오자)라고 통칭한다. 물론 병가의 집대성은 <손자병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오와 육도삼략의 차이를 보자면, 손오가 이야기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전쟁 중심적인 관점이다. <손자병법>은 거국적인 전쟁의 틀과 거국적인 전쟁의 돌아가는 판도와 형세를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병서라면 <오자병법>은 세부적인 전술론과, 부하들을 심리적으로 다루는 부분, 그리고 무장에 대한 부분들을 고찰하는 부분이 특징이다. <육도삼략>은 그런 손오병법에 비해 관점이 더욱더 포괄적이다. <삼략>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전쟁을 넘어선 정치의 도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루고 있는 논고의 포괄성으로 보자면 <육도삼략> 쪽이 더 넓다고도 생각했었다.

 

<육도>와 <삼략>의 공통점은 장량에 있다. 유방의 책사인 장량이 얻었다는 병서가 바로 <삼략>이라고도 하며 <육도>라고도 한다. 사마천의 <사기세가>에서는 <태공병법>이라고 기록됐는데, 후세 사가들은 <육도>일 가능성과 <삼략>일 가능성, 그리고 <소서>라는 책일 가능성, 아니면 가공된 사례 거나, 텍스트의 분실 등등도 이야기하고 있다. 어쨌든 두 책은 그렇게 장량의 전설과 통한다는 점도 공통점이겠다.

 

어쨌든 논고는 짧고, 깊이 생각할 부분은 생각보다 없는 부담 없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손자병법>보다는 읽기가 편했으며, 뻔한 덕목이나 뻔한 이야기가 있는 책이기도 했지만, 귀감을 살 만한 구절들이 많은 좋은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른 병서들과 번갈아가며 주기적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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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법 임동석 중국사상 63
사마양저 찬, 임동석 역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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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서라고 다 같은 사상이나 전략과 전술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각 병법서마다, 추구하는 사상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어느 병서는 전략적인 부분을 어느 병서는 실제 전술적인 부분을, 어느 병서는 군법에 관한 부분을, 등등 책마다 강조하는 것이 다르기 마련이다. 무경칠서로 이야기되는 병법서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7권의 책은 병가라는 철학 특유의 권모를 중시하는 부분도 있지만, 세부적으로 우위에 두는 철학은 각 책마다 다 다르다.

 

<사마법>은 그 중 사상적으로 가장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텍스트는 굉장히 짧은 책이며, 소실이 많아서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 병법서다. <사마양저병법>, <사마병법>이라고도 통칭되는 이 병법서는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가 지었다고 하는 병법서다. 흔히 병가를 집대성한 손무의 외가가 사마양저라고 끼워 맞추는 소설 등이 있는데, 밝혀진 바는 없으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사실은 손무 이전 세대의 사마양저는 그 당시 시대에 병가의 선각자였음에 틀림없고, 손무 역시 그의 저술이나 사상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았다.

 

<사마법>의 사상적 특이성은 '의전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인위와 도덕, 명분을 앞세운 전쟁을 선호하고 첫 장의 제목 '인본'에서 보듯, 인과 예를 중시하여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명분주의 전쟁을 지향하고 있다. 사상적으로 유가 사상에 깊이 연관을 받은 것 같이 느껴졌다. 쉬운 예로, 몇 가지 들어보자면, 적이 상을 당했을 때에는 공격하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겨울과 여름에는 군대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이는 아군과 적군의 백성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의를 두고 다투었고 이를 두고 다투지 않았으니 이로써 용을 밝혔던 것이다. 앞의 구절들에서 볼 수 있듯 유교적 덕목 명분주의에 입각한 병법서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보며 송 양공의 고사가 생각났다. 송나라가 초나라와 싸울 때, 송 양공은 먼저 전쟁터에 도달했다.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건널 때 제장들은 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병법에서 물가를 지나는 병력을 강을 건널 때 공격하면 승산을 잡을 수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법에서는 습지나 물을 만날 때는 신속하게 지나치라고도 경고를 했다. 그러나 양공은 그것은 '의'에 어긋난다 하여 초나라 군사들이 전열을 가다듬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결국 초나라와 싸워서 패배하며 자신 스스로도 목숨을 잃고 만다. 지금의 가치로 보면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그 당시에서는 송 양공을 뛰어난 군주라며 칭찬한 사람들도 많았었다. 대표적으로 맹자 역시도 양공의 의를 행한 행적을 칭송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명분적인 '의전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전쟁이란 명분이 중요하다. 전쟁을 일으키는 동기적인 부분에서 명분이 없다면 목적 없는 전쟁으로 비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된다면 부하들의 사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실제 전투에 들어갔을 때, 명분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는 관점에서는 역대 병가들은 현실을 중요시했다. 전쟁에 돌입한 즉시, 장군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우리는 병법 이론이 기업 경영과도 상통한다고 하나, 경영과 병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극도의 현실 추구의 정도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에는 엄연한 윤리와 도덕이 있고, 불문율에 그런 부분들을 지키며 경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그런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랬다간 내가 죽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 중 하나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로 일궈내는 것이 전쟁이며, 이겨내서 전쟁 초에 내세웠던 명분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전쟁이다.

 

그런 부분에서 보자면, <사마법>의 의전론은 지금 시대와, 어쩌면 춘추전국 약육강식 시대에서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쟁의 동기를 인간의 야욕에서 찾아낸 <오자병법>의 사상과도 상반되는 부분이다. <사마법>에선 군대를 일으킬 때에는 의와 예에 입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두 사상은 상당히 상반적인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마법>이 병가 특유의 권모를 경하하고 있지 않다. 책 중반부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무릇 전투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근본(모책)을 사용하는 것이며, 그다음에는 지엽적인 공전과 징벌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장수는 책략을 잡고 은미함을 지켜야 한다. 본말은 오직 권변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전쟁을 '의전론'으로 시작하더라도, 실제 전투에서 장군은 책략을 은밀하게 사용하며, 결국 전쟁의 승패의 본말은 권모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병가 사상들이 강조하고 있는 권모숭상이 나타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사마법>은 평화를 지향하는 병서지만, 평화 시에 전쟁을 항상 유념하고 신경 써야 하며 군사 훈련들도 갖춰야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보며 조선이 생각나기도 했다. 조선 초에는 상당히 강력한 군사정책을 시행하여 부국강병의 초석을 닦아놨는데 성종 이래로 태평성대가 열려, 나라의 국방이 저하되기 시작됐으며, 국방력 약화의 방점을 찍은 것이 임진전쟁과 병자전쟁 정묘전쟁이다. 전쟁을 지향하는 것도 안 좋지만, 지양하는 것 역시도 경계해야 한다. 나라의 근본은 경제력과 국방이라는 점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마법>의 초반이 '의전론'에 무게를 뒀다면 <사마법>의 중반은 군법에 대한 이야기가 강조되고 있으며, <사마법>의 후반에 이르러야 현대적으로 의의가 와 닿을 수 있는 장수의 리더십에 대하여 거론되고 있다.

 

<사기열전> 사마양저열전을 보면, 사마양저가 얼마나 군법을 중시했는지 나와 있다. 당시 사마양저는 제나라 경공에게 발탁되었는데, 한미한 출신을 가지고 있어서 군대를 통솔하기에 위엄이 서지 않았다. 고민한 양저는 경공에게 한 가지 청을 하는데, 경공이 아끼는 부하 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해서 자신의 군율에 위엄을 싣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랬는데, 문제는 경공이 아끼던 신하가 늦게 도착한 것이다. 송별연에서 술을 거하게 마시다가 합류한 시간에 늦게 도착했는데, 양저는 이 군주의 신하를 목을 참수함으로써 군법의 지엄함을 보였다. 경공은 뒤늦게 부하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급히 사신을 보내 양저에게 참수를 취하하라는 명을 전달했으나 양저는 '장수가 밖에 있을 시에는 군주의 말을 다 따르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전장으로 나아간다. 

 

위의 예를 보듯, 사마양저는 굉장히 군법을 중요시했다. <사마법>이라는 제목 자체에서도 풍겨 나오듯, 법이라는 대목에서 군법에 대한 부분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다. 책에서의 군법은 고대 이래로 행해지던 군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사기열전>에서 보이듯, 이 당시 군법은 상당히 문란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사마법>은 특히 다른 병서보다 군법의 지엄함과 군법의 예를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군의 위계를 강조하는 항목들이 상당히 많았었다.

 

특히 문무양권에 대해서, 책에서는 문권은 무권을 간섭하지 않으며, 무권 역시도 문권을 넘봐선 안되며, 그렇게 문무 양권은 각자 맡은 바에 충실해야 한다는 대목. 이 대목. 이 대목은 후대 병가들에게 숱하게 재해석되어, 손무를 비롯한 여러 후학들은 '설사 군주의 명이더라도 현장에 나간 장군에게 명을 내릴 수 없으며, 장군 역시도 상황 판단에 입각하여 군주의 명이더라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따르지 않아야 한다.'라는 개념까지도 도출시키지 않았나 싶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이념도, <사마법>에서는 나온다. '무릇 전쟁에서 군사의 숫자로 많고 적음에 따라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한다.'라고 명시하는데 중요한 부분은 장군이 전쟁을 하다 실수에 따라 패배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승패를 떠나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을 일러 정칙이라 한다.'라는 대목을 보건대, 같은 실수를 장군이 반복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장수의 계책 하나로 삼군이 이기기도 하며 지기도 하니, 장군의 묘계는 그만큼 중요하다고도 역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독 반복되고 있는 병법으로는, 사지에 몰린 적에게 통로를 내 주고 도망갈 길을 열어주라는 부분과, 병졸들에 대한 교육 역시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특히 병졸의 교육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출신 지역이 다른 병사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성격은 각 주에 따라 다르다. 이들에게는 교육을 통하여 습속을 이루도록 해 줘야 한다. 그 풍습도 각 주마다 다르니 도로서 이를 교화시켜야 한다.'라는 부분에서 병사의 다름을 인정하고 교육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이 부분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부하 인재를 육성할 때에 참고할 부분이라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의전론' 사상이 들어간 명분주의 병법서라서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고대 중세 이래로 <사마법>은 상당히 중요한 텍스트였다. <사기열전> 사마양저열전에서도 사마천은 양저의 병법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병법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만큼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병법책이다. 같은 <사기열전> 손무오기열전에서는 사마천이 손오의 병서는 집집마다 다 가지고 있는 병서이니, 라는 대목. 즉 이 당시에 <손자병법>, <오자병법>, <사마법> 3가지의 텍스트는 사회적으로 상당히 중요시된 문헌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겠고, 사관인 사마천의 기록으로 짐작건대 병법서로서 중요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하는 부분이다.

 

거기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는 <손자병법>을 재구성하며 <사마법>을 인용한 주석을 썼다고 한다. 조조는 <손자병법>과 <사마법> 두 책의 주석서를 남겼다고 하는데, 지금 현존하는 것은 <손자병법> 뿐이다. 어쨌든 전쟁영웅 조조가 중시할 정도로 <사마법>은 주목받은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원문은 155편이라고 <한서 예문지>에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현전하는 것은 5편으로, 상당히 많은 유실이 있는 병법서다. 유실이 많은 책이라 사실 책의 논고가 뒤죽박죽이고 문체도 상당히 거칠었으며, 내용의 연속성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은 책이다. 어쨌든 사마양저는 손무 이전 시대에는 가장 뛰어난 장군임엔 틀림없었다. 책을 보면서 <사마법>이 병가를 집대성한 <손자병법>에 영향을 준 부분들이 상당히 많은 점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 소소한 비교 포인트도 독서의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겠다... (누군가가 보기엔 상당히 머리 아프겠지만...)

 

어쨌든 발굴을 통해 유실된 부분들이 발견됐으면 싶고, 연구와 논증을 통해 책이 좀 더 보완됐으면 했었다. 아무튼 양이 너무 적은 텍스트라서 아쉬움을 가지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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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최대의 교훈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권오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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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떨어질 때,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이 책을 손에 쥐여주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셨었다. 아버지께선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책은 아버지가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지니며 읽어라.'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이해하기엔 너무도 어린 5살의 꼬마였었다. 그 당시 나는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 했다. 여전히 그림책이 익숙했던 그런 아이였었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갈 때에도, 나는 이 책을 항상 가지고 갔었다. 이 책은 나에게 이해할 수 없었던 책이지만, 이 책은 나에게 아버지의 사랑 그 자체였었다. 여덟 살 무렵, 나는 이 책을 부단히 읽었다.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세계였었고, 초등학생이 이해하기는 버거운 현실적인 교훈이었으나,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9살이 돼서야 나는 이 책을 '의미론적으로' 처음 읽었다. 첫 회독 후의 기쁨은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책의 뒤 갈피에, 짤막하게 소감을 남겼다.

 

'받은 지는 꽤 지났지만, 나는 오늘 이 책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

 

그랬다. 꼬꼬마였던 다섯 살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이 책은 너무도 범주가 컸고, 이해하기 힘든 어들들의 관념이 많았다. 그것은 9살 이래로 계속되었다. 9살이 돼서야 나는 이 책의 진정한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으며, 이 책이 상당히 잘 저술된 책이라는 것을 어림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이제 슬슬 또래의 무리에서 작은 사회라는 것을 알아가고 체득하는 이 시기에 내게는 이 책은 보물단지처럼 다가왔었다.

 

그 뒤 나는 매년 이 책을 읽어왔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는 명료해졌으며, 교훈은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형광펜으로 중요 구절들에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사실 이런 부류의 책은 흔하디 흔했다. 뻔한 자기 계발서와 뻔한 힐링 서적이 난무하던 시절, 이 책 역시도 어떻게 본다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책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가벼운 책들과는 다른 '자기 계발서' 였었다.

 

원제인 <Letters To His Son>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누군가나 독자들을 의식하고 쓴 책이 아니다. 원래 이 책은 필립 체스터필드라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문필가가, 자신의 아들에게만 써 준 작은 책자다.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이 책은 아버지가 인생을 살면서 느낀 진솔한 경험의 진액이 그대로 녹여있는 진국의 경험담이었다.

 

그것은 아들을 향한 사랑이었다. 다른 자기 계발서들과 느낌이 다른 이유는,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쓴 사랑이 묻어있기 때문이며, 진심이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책이기 때문이다. 숱한 자계서들 이 자극적이거나, 혹은 가볍게, 독자들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그런 가식성이 없는 진솔함이 담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특별하다.

 

책은 인생사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처세와 인간관계, 배움, 우정, 삶의 의미 등등 여러 범주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친절하게 인생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라서, 아버지는 남들에게 보이던 가식적인 모습을 걷어내고, 솔직하고 담담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글이 어려운 부분은 없다. 자상하고 친절하게 배려하며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에게 글을 쓰고 있었다.

 

이 책이 나올 때의 시대적 배경을 보자. 체스터필드는 영국의 중상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가이다. 당시 영국은 수상인 로버트 월폴이 집권하고 있었고 부유한 번영을 이뤄나가던 국가였다. 영국은 이 시기 부유한 시민과 근대적인 지주를 기반으로 하여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이 부를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쏟아부어 산업혁명을 일궈내어 제국주의의 기반을 마련했었다. 그렇게 영국은 세계로 팽창하고 있었고, 이 영국을 롤모델로 삼아 지금의 패권을 가지게 된 국가가 미국이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영국에서는 젠틀맨 정신을 발전시켰으며, 이 책은 유감없이 그런 영국의 귀족주의적 덕목들을 소상하게 밝혀내고 있다. 그래서 사실 책에는 귀족적인 냄새가 풍기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런 소소한 단점들이 책이 가지는 장점을 덮을 수는 없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책은 상당히 의미가 깊은 자기 계발서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젠틀맨 정신의 교과서를 영국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모두 읽었다. 유명한 존 스튜어드 밀이나, 과학의 찰스 다윈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명사들은 이 책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한 가지 또 생각해 볼 점은, 현대 자기 계발서의 모토는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이다. 스마일스의 <자조론>은 온갖 좋은 덕목들을 청교도 정신으로 압축시켜, <자조론>에 투영한다. 노력, 근면으로 이야기되는 <자조론>. 그 <자조론>을 쓴 새뮤얼 스마일스 역시도 이 책을 읽었고 많은 영감을 받았던 배경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현대 자기 계발서의 모태는 바로 이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 자기 계발서와 스마일스의 <자조론>은 이 책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책의 진솔한 면과 가식이 없는 점.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식에게만 사랑으로 가르침을 전하려는 체스터필드의 저술 동기를 자기 계발서들은 따라오지 못한다. 수많은 대중을 염두에 두고 쓴 책과 아들에게만 전하려고 한 책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현대 고전이라고 칭송되는 <자조론>에게도 적용되는 사례다.

 

나는 이 책에서 책을 읽는 방법과, 삶을 살아가면서 지식을 어떻게 습득해야 하나, 책으로 보는 지식과 경험으로 통하는 지식의 조율, 그리고 특히 인간관계에 대응하는 방법과 진실한 친구를 만드는 법과 알아보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그것 외에도 배움에 대하여, 사교에 대하여, 노는 것에 대하여 등등, 책은 짧아도 상당히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이런 종류의 책은 대체적으로 도덕적이고 옳은 이야기만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체스터필드의 책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예로 독서가 중요하지만 책 더미에만 쌓여서 사교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이다고 하는 부분. 텍스트라는 책을 읽기보다 사회라는 책을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 그렇다고 해서 책을 경하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하루 30분 집중하여서 책을 읽도록 강조하는 부분과, 만년 노년이 되어서 자신은 책 더미에 쌓여서 보내는 여생이 아주 유쾌하다는 그의 입장에서 어디 하나에도 치우치지 않은 합리적인 사고를 볼 수 있었다.

 

사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경박하고 가벼운 인간들과 교제하지 말거니와, 너무 무거운 학자들의 모임 역시도 힘이 빠지기 마련이니, 적당하게 사람을 보고 대처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겉만 뻔지름하고 속은 텅 빈 가식쟁이들을 구분하는 방법과, 특히 마음에 들었던 말은 '결점까지 칭찬하는 인간에게는 심적으로 접근하지 말라.' , '시시한 인간은 가볍게 대하되 적으로 돌리지 말라 - <논어>에서도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 그렇다고 하여 인간관계를 너무 수동적으로 생각하지도 말고 자신이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부분, 등등은 아주 곱씹을 만 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자본주의의 정점을 찍은 미국이 산업혁명으로 부를 창출하던 영국을 쫓았던 것과 같이, 우리나라도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우리만의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와 같은 정신적인 성숙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 있는 것일까? 그저 모양이나 겉모습만 따라 하기 급급하지 내면이나 정신적인 부분 등등은 아직도 미숙하고 함량 미달이라고 생각한다. 중상주의가 만연하는 영국의 그 시대에서 정신적인 젠틀맨 사상이 발전했듯, 우리도 너무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만을 생각하지 말고 그 자본주의에 어울리는 우리만의 사상을 계승하거나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사상과 정신의 빈곤이 참으로 아쉽다. 이번에 책을 보며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는 왜 나에게 저런 글을 못 남겨주실까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러나 세월을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께선 아들인 나에게 저런 글을 남기진 못하시더라도, 좋은 책을 나에게 소개할 안목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안목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체스터필드가 아들에게 줬던 사랑이나 아버지가 나에게 줬던 사랑이나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니까, 그것으로 나의 투정에 위안을 삼는다. 어쨌든 내 인생에서 이 책을 어린 시절에 만났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필립 체스터필드'라는 또 다른 아버지를 어린 시절부터 만났으니까 말이다,

 

모쪼록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아들, 딸들에게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지금 보고 있는 판본은 구판본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이 책을 물려주셨듯, 나도 이 책을 미래의 내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다. 어쨌든 이 책은 나의 유년 시절과 지금에서도 많은 정신적인 영감을 줬던 훌륭한 도서다. 분량도 짧고 문체도 명료하며, 교훈적인 좋은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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