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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의 가장 유명한 책인 <목민심서>.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의 실무행정 방침에 대한 저서라고 할 수 있는 <목민심서>. 1표 2서라 불리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등 이 책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꽤 많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존경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인 <목민심서>는 우리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정선 목민심서>는 그 유명한 <목민심서> 번역본 중 가장 뛰어난 책이다. 시중에는 많은 <목민심서>들이 있다. 나도 서점에 가서 쭉 둘러보면서 검토를 해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정선 목민심서>를 따라올 책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도 큰 결점이 존재하고 있다. 이 부분은 서두가 아닌 뒷부분에 소상하게 밝히겠다.
아무튼 이 <목민심서> 책은 내가 자주 본 고전 4천왕에 들어간다. <논어>, <손자>, <군주론> 그리고 이 <목민심서> 순으로 <목민심서>가 앞의 3권의 책 보단 많이 보진 못했지만.. 다른 고전에 비해서는 많이 들춰봤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의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뭐랄까,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전적 하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정갈함도 보이는 표지.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면, 그 책을 아끼고 자주 보게 되는데, 이 <정선 목민심서>는 그런 부분에서 합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목민심서>를 다시 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세월호 사건을 보며 공무원 기강에 대해 생각을 하기 위해서 책을 펼쳤다. 지금 국가에서는 구조나 재난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제도나 행정을 고치자고 외치고 있다. 그래 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위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솔직히 구조 재난의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내가 볼 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국정 쇄신에 대한 매뉴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구조 재난 역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시민을 살릴 수 있는 것은 행정에 쇄신이 필요하고 전반적인 국정에 대한 쇄신, 공무원들의 지침과 행동에 대한 매뉴얼도 중요하거늘, 왜 이런 부분은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로 덮고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다산이 생각했던 지방 공무원 쇄신 서인 <목민심서>를 다시 폈었다.
<목민심서>는 확실히 훌륭한 저서다. 그런데 왜 훌륭한 저서라고 하면, 그냥 애민정신이 구현된 저서라고만 다들 알고 있다. 다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산에 대해서 공무원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다산의 저서를 보는 등의 깊은 이해는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일반론적으로 다산을 칭송하고만 있다. 다산을 이해하고, 공무원들이 왜 다산을 알아야 하는지,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왜 다산이 뛰어난 학자인지 알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이 <목민심서>를, 그의 저서들을 봐야 한다.
<목민심서>의 뛰어난 부분은, 다산의 실제 정치 경험론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다산이 유배생활 때의 백성의 입장에서의 경험 등이 섞여있다는 사실이다. 대대로 행정 공무원이 스스로 행정론에 대한 책을 쓴다면 망각하기 쉬운 것이 아래로부터의 시각이다. 그리고 아랫사람이 행정에 대한 책을 저술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행정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그것 역시도 한계가 있다. 다산은 이 두 관점을 다 책에 녹여서 저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역사를 내세워 그것들을 검증하고 있었다. 즉 실제적인 행정 경험 + 역사적 사례 지식 + 백성의 입장이 녹아 낸 현실론적인 지방행정 지침서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책의 체계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체계다. 한 가지 주장을 펴고, 그 주장에 입각한 역사적 사실이나 경험론을 서술한 구성... 그런 것들이 연속적으로 모여서 책을 구성하고 있었다. 혹자들은 다산이 그렇게 많은 저술을 저작한 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기도 하는데, 정민 선생의 <다산의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었다. '프로젝트 형식으로 제자들에게 사료를 집약시키고 다산은 그것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었다.'라고 말이다. <목민심서> 역시 예시가 대거 들어간 점으로 봐서 그런 흔적이 보였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 많은 저술을 남긴 것에 대해서 이해가 가기도 했었다.
책의 제목 심서에 대해서는 다산이 서문에 밝히길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할 수 없기에 심서라고 붙였다고 한다. 그럼 목민이란 말은? 말 그대로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목민이란 말은 사실 유교 경전에 나오는 대목이 아닌 <관자>의 첫 편이 목민이다. 따라서, 다산이 유교 경전만 참고한 것이 아닌 다양한 제자학을 참고했다는 부분도 볼 수 있겠다.
<목민심서>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일단 이 책 자체가 엄청 교훈적인 책이라, 그냥 책을 보는 것에도 도움이 아주 많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도 그렇게 책을 보며, 교훈을 얻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자면, 어쨌든 유교적인 가치가 보였던 부분이고, 따라서 지금의 현실적 부분과는 괴리감이 있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책을 아무 생각 없이 교훈적인 내용을 기대하고 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이번에 다른 관점으로 책을 봤다.
이 책이 유교사상에 입각한 부분이 있어 이상론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적인 부분이 보이는 것은, 그 당시의 숱한 탐관오리들의 행적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기업들의 관료제 시스템이나 다산이 살았던 국가의 모습은 관료제라는 군집적 속성으로 이해하면 비슷한 부분이 아주 많다. 그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사실 다산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부분이 지금으로 비춰봤을 때 현실성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관료제라는 속성 내에서 벌어지는 일탈 행동과 수탈에 대해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모든 행위들을 다 수록하고 있었다. 이 점은 사실 인간 사회가 진화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볼 때, 인간이 조직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탈을 저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 독서를 했었다. 예전에는 교훈적 부분에 입각하여 읽었는데, 그 부분은 좋은 점도 많지만, 지금 시대에 현실성이 없는 부분도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다산이 제시하고 있는 탐관 오리들의 일탈과, 일탈의 방식, 수탈의 방식 등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했다. 대대로 인간의 수탈 방법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책에서 나오는 탐관오리들의 수탈 방법은 정말로 악렬했다. 조선 시대라고 생각해서, 지금의 시대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썩은 조선 사회를 보며, 과연 조선 초기의 이념인 민본의 가치로 세운 사대부 중심의 정도전의 사상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꼈으며, 조선 중기에 율곡이 외친 경장에 대해서도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을 느꼈다. 결국 <목민심서>는 다 죽어가는 썩을 대로 썩은 조선의 행정을 보며 다산이 행한, 심폐소생술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조선은 타락했었고, 문란했었다.
그런 인간의 타락된 본성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 다산의 안목이 돋보였었다. 그가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 역시도 느끼는 바가 많았지만, 유교적인 사상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에서 아쉬움을 조금 느꼈었다. 혹자들은 <목민심서>가 지금의 가치에서는 필요 없는 옛날 지식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고전이라는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얻을 것이 무궁무진한 텍스트라는 점도 느꼈다.
책의 곳곳에는 다산의 애민정신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는 전체적으로 문란한 시대였지만 생각보다 청렴한 관리들도 많았다. 다산이 예를 든 현시대의 관리들을 보면서, 썩은 세상이더라도 직분을 다 한 수령들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책은 산수화를 비롯한 여러 조선 시대의 그림들도 넣었는데, 문제는 흑백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이 책을 호찌민이 맨날 애독했다고 했는데, 과연 맞는 말일까? 내가 볼 땐, 과장된 사실 같다. 마치 나폴레옹이 <손자>를 애독했다는 것 마냥, 그냥 확산된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은 좋지만, 이런 근거 없는 속설을 지어 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이 책의 큰 결점을 이야기하면서(앞에서 이야기한), 우리 사회의 우리 고전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확장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목민심서>는 우리의 뛰어난 고전이다. 그러나 혹자들은 <목민심서>가 한 권의 책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목민심서>는 48권 16책으로 방대한 양의 책들이 모아진 '한 질(세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중에 나온 <목민심서>는 모두 다 편역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정선 목민심서>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편역본보다 괜찮은 점이, 이 책의 역자들은 다산연구회라는 사람들이 번역한 책인데, 원래는 이 책이 처음 번역된 것이 아닌 <역주 목민심서>라는 완역본을 먼저 펴 냈고 뒷날 <정선 목민심서>를 펴 냈다. 즉 <정선 목민심서>는 <역주 목민심서>의 편역본이다. 다산 연구회의 사람들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목민심서>를 번역했다고, 서문에 나와있고, 더 깊은 공부를 위해서는 <역주 목민심서>를 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역주 목민심서>는 지금 절판인 상황이고 구하려야 구할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이 점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출판사인 창비출판사에 의뢰를 했었다. <정선 목민심서>와 같이 현대적으로 잘 손봐서 <역주 목민심서>를 다시 내 줄 수 없느냐고,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고 민족의 고전인 만큼 그래야 한다고, 장문의 글을 보냈다.
그러나 들려오는 말은 그럴 계획이 없다는 말뿐이다. 즉 우리나라의 현실은 완역본 <목민심서>가 지금 출판되지 않고 있다. 세간에서는 지금 다산을 본받자,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다산을 본받아야 한다며 그러는데, 정작 우리의 고전 문화적 인프라는 다산의 완역본 <목민심서> 조차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 <목민심서>가 다른 나라 고전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명저다.
얼마 전 정약용의 모든 저서 <여유당전서>가 번역됐다고 신문에 나왔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방대한 책은 시민들이 다가가기 힘들다. 과연 시민들 가운데 <여유당전서> 전집 100만 원을 넘는 그 책을 살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적어도 시민들이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정도는 다가갈 수 있게 번역을 해 놔야 하는 게 아닌가?
<흠흠신서>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금 1권이 품절 상태라서 보려야 볼 수도 없다. 그나마 <경세유표>는 출판사 두 곳에서 완역하여 판매 중이다. 가장 유명한 <목민심서>는 이렇게 다산연구회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을 한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번역본은 오래전에 절판됐다.
나는 창비출판사를 좋은 출판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태클을 걸고 싶진 않은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같은 책은 리뉴얼하고 컬러로 해서 재출간하면서, 이런 좋은 <목민심서> 완역본에 대해서는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출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많은 실망을 했었다. (아 물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명저다. 우리 집에도 전권 리뉴얼 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에 비춰 보면 많이 아쉽다.)
다산은 <목민심서> 자서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앞에 선현들의 목민에 관한 책을 열거) 이 모두 이른바 목민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 이런 책들은 거의 전해오지 않고 오직 음란한 말과 기이한 구절만이 일세를 횡행하니 나의 이 책인들 어떻게 전해질 수 있으랴?'
지금 다산의 이 주옥같은 글조차도 완역 번역되지 못한 사태에 대해서 애탄하고 애탄할 뿐이다. 물론 나는 <역주 목민심서> 전질을 중고서점에서 운 좋게 구매를 했었다. 그래서 <목민심서> 완역본도 봤고, <정선 목민심서>도 봤다. 솔직히 완역본은 쓸데없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축약본에선 볼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정선 목민심서>는 잘 축약했다. 대체로 현실에 맞는 부분들을 잘 추려서 냈고, 나도 완역본은 1번 회독을 했지만 <정선 목민심서>는 자주 봐서 손때가 묻었다. 그만큼 <정선 목민심서>는 알차게 번역된 책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완역본을 보고 싶어 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지금 출판계에선 그런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완역 번역본이 없다는 사실이다. 축약본이 아무리 잘 번역되고 잘 축약됐다 하더라도 원전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순 없다.
거기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모든 공무원들이라면 <목민심서>의 완역본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긴 기존의 공직자들이 이 '축약본'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대한민국의 행정이 이런 사태까지 불신을 겪지 않았을 테지만... (마음 같아선 완역본 보고 좀 성찰했으면 좋겠는데, 양보해서 제발 축약본이라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보며 느낀 점은, 다산이 썩은 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듯, 우리나라에도 지금 전반적인 행정을 쇄신할 현대판 '목민심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선현이 내려준 지식을 검토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창비출판사는 빨리 <역주 목민심서>를 이렇게 <정신 목민심서>처럼 재출간을 했으면 좋겠다. 고전이란 것은 시대에 공유되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잃기 마련이다. 좋은 출판 기술과 편집 기술, 쓸데없는 데다 사용하지 말고 좀 좋은 양서를 펴는데 총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창비 출판사 규모가 크고 전통 있는 출판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