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도전 - 순수 이성에서 예언자적 죽음으로의 여정
문철영 지음 / 새문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웬만한 정도전의 전기는 다 읽어봤는데, 이 책은 조금 독특한 면이 있었다. 다른 삼봉의 전기들은 대부분 삼봉을 미화하고 만병통치약으로 삼봉을 해석하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들었는데, 이 책은 그런 삼봉의 '업적'을 밝히는 것이 아닌 삼봉의 '내면'에 입각한 서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영우의 <왕조의 설계사 정도전>은 아무래도 학구적이고 삼봉의 여러 업적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을 볼 수 있는 글이다. 논조가 차분하고, 합리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는 좋은 평전이었다. 조유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경우는 삼봉의 일대기를 가장 먼저 조망한 저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대체적으로 삼봉의 일대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는 배경 설명과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던 책이었다.

 

이 책들 외에도 시중에는 지금 정도전 열풍 덕분에 삼봉에 대한 책들이 많이 넘쳐나고 있다. 나는 그 책들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다 훑어봤는데... 사실 볼 만한 책들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 <인간 정도전>은 달랐다. 일단 이 책은 삼봉의 업적을 밝히는 것이 아닌 책 제목 그대로, 삼봉의 문집 <삼봉집>으로 삼봉의 내면을 밝히고 있는 책이다.

 

책의 쪽수는 200여 쪽이라 금방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내가 일독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금방 볼 책은 아니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일단 삼봉에 대한 서사적 전기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나 <정도전의 선택> 둘 중 하나를 읽길 추천한다. 그리고 한영우 교수의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을 읽고, 끝으로 <삼봉집>을 읽기를 추천하는데, 바로 <삼봉집>을 읽을 때, 이 책을 같이 읽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삼봉집>을 토대로, 하여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동원하여 삼봉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다. 그 이론에는 프로이트를 비롯한 지크 라캉, 그리고 귀스타브 르봉 등의 심리학자들의 논의가 있었고, 그 이론들을 통해 <삼봉집>에 나온 시나 서를 바라보며 삼봉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었다. 사실 <삼봉집>은 그냥 보기에는 힘든 텍스트다. 그러나 저자는 서시적인 흐름으로 삼봉집을 차근차근 고찰해나가고 있는데,

 

내가 주목한 해석은, 삼봉의 아버지 정운경에 대한 부분, 어머니의 핏줄은 한미했지만, 아버지의 그런 중앙 정치 진출이란 점은, 삼봉에게 있어서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고, 아버지의 청렴함을 닮겠다는 것, 그런 부분들을 조목조목 <삼봉집> 정운경의 행장에서 찾아내고 분석해낸다. 그 행장 속에 글을 쓴 삼봉의 내면을 추적하며,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해가며, 삼봉의 내면을 밝혀내는데, 어쨌든 의미 있는 해석이라 생각됐다.

 

삼봉에게 있어서 특히나 도은과 포은은 친구 이상의 벗으로 통용됐다. 일전 <삼봉집>을 보며 도은과 포은에 대한 정을 나눈 시문들이 많았다. 셋의 우정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으며, 양촌과 호정과도 시를 주고받은 것들을 통해, 이 청년기에 맺어진 사나이들의 우정과, 조직은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질풍노도의 정도전 역시도, 이들과의 사상적으로도 유대적으로도 깊은 공감력을 가졌다고 해석했다.

 

나 역시도 사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중-고등학교를 같이 보낸 이들, 페밀리라고 서로 부르는 9명의 벗들 이들은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며 싸우더라도 서로에 대한 우정에 대해서는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아마도 정도전 역시도 그런 심리였으리라, 같은 교우를 넘어선, 우애. 특히나 포은이 말한 대로 삼봉은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런 삼봉이 도은과 포은, 그리고 양촌에게는 인정하며 벗으로 받아들였다고 이야기하는데 공감했다.

 

유배 시절의 해석 역시도 좋았다. 나는 드라마 정도전과, 다른 평전들에서는 유배 시절에 대한 해석을 빠르게 지나쳐서 조금 아쉬웠었는데, 이 책은 유배와 방랑의 시기를 두 테마로 나눠서 깊이 있게 해석하고 있었고, 불우했던 정도전의 내면, 그리고 흔들리는 지금까지의 사대부의 이념, 믿었던 동지들과의 헤어짐과 홀로 남겨진 그가 생각했던 것들을 <삼봉집>에서 찾아내서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는데 굉장히 뜨겁게 느껴졌다.

 

가장 놀란 부분은 포은은 유배 시절 연군가와 같은 색채의 여성스러운 시를 습작했었다. 일전에 나는 <포은집>을 보고 리뷰까지 남겼었는데 대체적으로 여성적인 어조가 많았었어는 데, 그 시도 <포은집>에서 본 시였다. 게다가 도은은, 유배가 풀리자마자, 수도로 오면서 직접적인 임금의 은혜에 대한 칭송 시를 남겼다. 삼봉은 그러나 유배 시기 절대로 연군가를 작성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삼봉은 그들과는 노선을 달리했던 것 같다.

 

동정 윤소종을 제외하고는 사실 급진파 사대부들과 삼봉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책에서 삼봉은 괴로웠을 것이라고 그랬다. 책에 나온 <삼봉집>에 실린 꿈에서 도은이 나온 시, 파도에 물에 젖은 도은의 모습. 그것은 삼봉의 마음이었다. 결국 삼봉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시를 짓고, 어린 시절 열정을 함께 했던 자신의 집단을 배신하고, 결국 조준과의 교류를 통해 노선을 바꾼다. 조준은 도은을 탄핵했고, 이 때 저자는 삼봉의 심리에 대해서 묘사했는데, 정말 공감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절친한 벗들끼리 당파 싸움이 이뤄져서, 두 패로 나눴을 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뭐 지난 추억으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참 마음이 안타까우면서도, 배신에 치를 떤, 이중적인 마음이 있었었다. 그것은 사실 '아픔'이었다. 삼봉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양촌과 서로 책을 같이 읽고 술을 같이 마시며, 이웃하며 화목하게 살자고 맹세하고, 도은과 포은과는 우애 맹세가 <삼봉집>에 많이 묻어져 나왔었다. 그런 삼봉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서는 삼봉의 문집에서 벗들에 대한 '진심'이 그렇게까지 묻어져 나온 시들이 줄어들었다. 물론 그때는 조선을 건국하고 행정에 바빠서 시 쓸 여유가 없었겠지만 젊었을 시절,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에도 의를 변치 않았던 친우들, 그런 친우들에게 맹세했던 진심과 같은 뜨거운 시는 없었었다. 그것은 나도 <삼봉집>을 봐서 대충 느꼈었는데, 저자도 그렇게 풀이하고 있었다.

 

도은이야 그렇다 치고, 포은. 그래도 삼봉은 포은을 끝까지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정몽주는 중도적인 입장이었었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에도 동조를 했으니, 삼봉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당여로 생각을 했을 법도 하겠다고 책에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산산조각으로 무너졌고 선죽교는 붉게 물들었었다.

 

또 한가지 책을 통해 느낀 점은, 조선 혁명파들이 새 왕조를 건국하고 나서, 부귀를 누리거나 안일하게 승리를 만끽할 수도 있겠지만,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파 인사들은 그런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 왕조의 기틀을 세웠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도 돋보였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무사 안일주의를 또다시 생각하게 됐었다.

 

아쉬웠던 점은, 어쨌든 정도전과 이방원 정몽주에 대한 해석에서 정몽주는 이념형 인간 이방원은 권력형 인간, 정도전은 균형적인 인간인데, 과연 누가 더 우위의 가치에 있을까라는 저자의 물음과 결과적으로 이방원과 정도전의 비교 속에서 정도전의 손을 살짝 들어주는 부분에서는 솔직히 개인적으론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이방원은 물론 권력형 인간임에는 맞다. 그러나 그 권력을 탈취하고 나서, 이방원도 이방원 나름대로의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 군주였다. 서로에 대한 가치가 다를 뿐, 정몽주도, 정도전도, 이방원도 어느 한 쪽이 우열하다곤 판단할 수 없겠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고, 그런 여지를 남겨놔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세 사람 모두 다 의미 있는 영웅의 삶이라 생각되고, 누군가가 더 위대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책은 정도전의 심리에 대해서 아주 소상하게 주관적이지만, 깊이 있게 잘 해석한 것 같다. 물론 한계점도 있다.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정도전의 심리에 적중한 다곤 할 수 없다는 한계, 그러나 나는 이러한 시도가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론적인 해석과 아전인수 처럼, 정도전을 만병통치약으로 격상시키는 것보단, 이렇게 흔들리는 정도전의 내면을 재해석하는 서술. 이런 책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영웅에 대해서 깊이 있게 더더욱 깊이 있게 알 수 있고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아무튼 저자의 빼어난 해석과 더불어 <삼봉집>에 의거한 심리학적 분석이 아주 탁월했다고 할 수 있으며, 사실 여하를 떠나서, 인간적인, 흔들리고 고뇌하는 한 인간 '정도전'을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으며, 글 자체에서 풍기는 느낌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삼봉집>의 안내서로 추천하고 싶다. 쪽수가 적은 책이지만 인간 삼봉의 '인간스러운' 내면이 들어있는 책이다.

 

정도전뿐만 아니라, 포은이나 이성계, 이방원에 대해서도 좀 이런 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너무 정도전에만 저서들이 집중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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