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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깃털만큼 가볍고 가벼운 책이다. 책의 크기도, 책의 쪽수도, 그리고 심지어는 책의 내용마저도 가볍고 가볍다. 질탕하고 난잡하고, 구속적이지 않은 일본의 성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종이를 읽고 있는데도, 배를 꼬르륵하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 입가에 침샘을 자극하는 책이다.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이국풍의 여행, 그리고 먹는 것, 그리고 이성 3개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무라카미 류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소설가.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에세이와 같은 단편적 글의 모음집이라서, 저자의 경험담을 섞어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검색을 해 보니,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를 혼동시킬 만큼 책의 서술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일본 대중문화 소설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글로 현대 일본의 문학적 경향이 이 글에도 잘 나타나있다.
일본 소설에는 성적인 묘사가 많이 나타난다. 이 책 역시도 그랬다. 여러 여자들의 이야기, 자유분방한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남자들은 억류된 성적 판타지를 개방시키고, 여성들 역시 처음에는 거북스럽겠지만, 한편으론 그가 글 쓰는 주인공들에게 묘한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책을 구성하는 두 축, 음식과 여성, 그것은 모두 이성과는 거리가 먼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요소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분방함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밝히고 있으며, 스스로 해외에서 많은 돈을 '낭비' 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선언은 부끄러움이나 참회가 아닌 자신감이었으며, 이 소설은 그 경험담을 기초로 하여 써진 이야기다.
소설의 구성은 짤막한 이야기들 32가지로 구성됐으며 각 이야기별로, 테마 요리와, 대표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테마 요리에는 아무래도 쉽게 먹지 못하는 요리들이 많으며, 일상적인 아이스크림이나 쇼콜라 등도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음식 삼계탕 역시도 있었으며, 삼계탕 이야기에서 나오는 여성은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토플리스 바 (스트립바)에 나오는 급 좋은 여자였고, 주인공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삼계탕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뭐 다 좋은데, 우리나라 여성을 이렇게 스트립 걸로 묘사하는 부분에서,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조금 거부감을 느끼긴 했다. 그것은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다.
엽기적인 음식들도 있다 '순록의 간'이라는 테마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생간의 맛이 어떨까라는 상상도 했다. 나는 비린 간 음식 같은 것을 잘 먹는다. 물컹물컹한 그 날것을 먹으면 온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느낌, 그것은 그 옛날 원시인들의 생명의 근원을 먹는 그런 기분이랄까, 소설에서는 그 간을 먹을 때의 오묘한 기분을, 생명 그 자체를 먹는다고 표현했는데, 정말로 공감했다. 회나 날고기를 먹는 인간의 습성은 그 옛날 과거의 원시적인 인류의 모습이었고, 그 날것이라는 음식은 생명력이 가장 가까운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이 있는 남자와 한 여자의 관능적 섹스 이야기를 다룬 '양 뇌 카레'이야기, 실제로 인도에서는 그런 양의 생 뇌를 넣은 카레가 있다고 한다. 자꾸 포스팅이 뭔가 날것의 음식들로만 써 내려가는데, 캐비아를 비롯한 샥스핀, 스톤 크랩 요리 등등 험하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운'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책의 제목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 역시 한 편의 제목이다. 이 편은 무스 쇼콜라 이야기인데, 외국에서 만난 가정이 있는 남자와 단 두 번의 관계가 있었던, 추억의 여성과의 짧은 만남을 다룬 이야기였다. 이곳에서 풍겨지는 지독한 부르주아적 냄새, 초호화 리조트의 묘사, 그리고 진귀한 요리들, 그리고 그녀와의 짧은 관계 등, 온갖 욕망의 판타지를 미화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한 말은 이 책의 전체 주제, 나아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너에게는 리얼한 사랑일지 몰라도 난 잘 모르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누구와도 다른 아주 특별한 사랑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 마음을 가볍게 갖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 연애를 할 수 없게 돼......"
사회적인 미덕으로 볼 때 이런 주의는 문제가 있다. 대체로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질타하고 '도덕'으로 규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도덕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그 사회는 문란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사회지도층이 도덕을 외치면서 뒤로는 온갖 쾌락을 다 누리는 것은 이제 시민들에겐 너무 익숙해졌다.
솔직히 무라카미 류와 같은 이런 작가들은 그런 면에서 솔직하다고 볼 수 있겠다. 속 다르고 겉다른 위선자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쾌락을 이렇게 돌직구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런 면에서 그는 진솔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유분방함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사회가 규정한 부분을 거부하고, 다른 부분에서 방향을 찾는 선구자들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사회 보단 굉장히 많이 개방적이다. 같은 도시라도 풍기는 냄새가 다르다. 책에서 느낀 이 가벼움은 내가 예전 오사카에 놀러 갔을 때, 한국에서 놀고 마셨던 공간과는 전혀 다른 냄새 그 냄새의 가벼움과 동질성이 있었다. 더욱더 육감적이었고, 더욱더 관능적인 공간이었다.
어느 부분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물론 사람은 도덕을 추구해야 함은 옳다. 그러나 겉으로만 도덕을 규제하고 억지로 규제할수록 인간은 일탈을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제도적인 도덕 규제가 아닌 자발적인 도덕 화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도적인 규제를 하며 역기능 때문에 더더욱 뒤로는 문란한 사회가 된다면, 나는 차라리 대놓고 개방스러운 무라카미 류의 방식을 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보기엔 이 책은 너무나도 거북스러운 책일 것이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 책은 너무나도 부러운 책일 것이다. 작은 책에서 풍기는 현대판 귀족주의에 입각한 현대판 한량들의 모습은 우리의 대다수 일반적인 삶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고, 진귀한 음식을 원 없이 먹으며, 다양한 이성들을 만나보며 본능에 충실하는 것. 그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솔직하게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책이 가지고 있는 가벼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 가지 테마 이성적 본능과, 음식, 식욕과 성욕 두 원초적인 어쩌면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속성을 다룬 이 소설.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이 개인적으론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의 테마를 잘 녹여 쓰고 있었으며, 더불어, 우리가 누릴 수 없는 현대판 한량의 귀족주의적 묘사가 돋보였고, 이국에 대한 경험을 녹여 쓴 배경 묘사도 뛰어났었다. 더불어 내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을 상상하는 기분 만으로도 좋았었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 과연 내가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의 삶처럼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이상적 욕망에 충실하겠는가?에 대한 물음은 No라고 하고 싶다. 이상은 이상이라서 아름다운 법이다. 이상이 현실이 되면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탁색 시키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추악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가 바로 이 책의 삶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