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책이다. 다산이 아들과 형, 문인들과 보낸 편지들을 넣은 책이다. 사람의 글 중 저서라는 부분은 공개적으로 저자의 이름을 내 걸고 쓰는 글이라서, 어느 정도 포장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편지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고, 다소 다른 글들에 비해서 포장이 없기 마련이다. 따라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비교적으로 잘 드러내는 글이다.

 

물론 편지도 윗사람이나 존대를 해야 할 사람에게 쓸 때는 어느 정도의 예의를 포장하는 법이지만 아들이나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때는 다소 자신의 생활상의 모습과 성격을 드러내는 편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다산의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산이 아들들에게 쓴 편지로 책을 엮었기 때문이다.

 

편지에서 나온 다산은 경전의 저자와는 달랐다. 다산은 유배 기간 동안, 아들들과 함께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토로하며, 아들들에게, 간곡하게 공부를 하라고 타이르고 타일렀다. 다음 리뷰를 하게 될 책인 퇴계의 편지는 다소 일상적인 부분들을 아들에게 나누고 이야기했지만, 다산의 경우는 그런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이야기보단 훈계조로 엄하게 아들들을 다스리는 편지가 많았다.

 

이 부분은 다산의 처지, 즉 벼슬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아들들이 학문마저도 이루지 못한다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안타까운 그의 현실적 처지를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다산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위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공부를 하고 저술을 하며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라는 말을 아들들에게 한다.

 

그런데 아들들은 사실 그렇게까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은 것 같았다. 퇴계의 서신에서는 퇴계는 이런 실망을 준 아들을 꾸준하게 타이르기보단, 한심하다는 토로도 하고, 꾸짖기도 하고, 무시도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다산은 깐깐하게 꼬집는다.

 

특히나 뒷부분인 형과의 서신 등을 볼 때, 경전이나 다른 학문적 토론에서도, 그의 깐깐한 모습이 나타났었다. 아무튼 편지의 내용은 굉장히 음미해 볼 만한 것들이 많았다. 더불어 편지에 다산이 왜 그렇게 저술활동에 힘을 썼는지에 대한 이유도 있었다. 그 부분은, 불우한 자신의 생각을 후대의 사람이 알아주길 원한다는 마음으로 저술을 시작했으며,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데, 아들들이 아버지의 저서를 읽어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애석하겠냐면서, 비꼬아서 아들들의 학문 수양을 말하기도 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공명심이라는 것으로부터 아무리 군자라도 자유로울 수 없겠다. 다산 역시도 마찬가지리라, 어떻게든 후세에 스스로의 사상을 알리려고 노력했었다. 현실에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면, 저술 활동을 통해 후대에 자신을 알리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었다. 이런 부분에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박석무 선생이 번역한 책으로, 아마 다산의 편지 책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책일 것이다. 박석무 선생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올라, 다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했고 최근에는 <다산산문선>과 <다산 평전> 등등을 번역하시기도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음미해 볼 만한 교훈이 담긴 책이었다. 어쨌든 책에서 본 다산의 마음은... 좀 엄격하고 깐깐한 느낌, 빈틈이 없는... 대쪽 같은 그런 분이셨다. 좋은 책이고 맑은 책이긴 하지만... 다산의 숨 쉴 틈 없는 훈계에서, 약간은 버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쨌든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루했던 책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최고의 인생 지침서... 음...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교훈적인 책임은 맞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편지인데 당연히 교훈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면 안되겠지... 더불어 퇴계라는 위인께서 아들에게 준 편지인데... 그런데 이 책은 교훈적 가치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보통 퇴계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가 다소 가난했고, 또 벼슬살이를 싫어했다는 점. 부귀영화에 대해서 초연했다는 점이 그렇다. 물론 맞는 논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 말했듯 교훈적 가치보단, 일상생활의 퇴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퇴계가 맡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는 굉장히 일상적인 내용들을 많이 썼다. 예를 들면 안부에 대해서, 집안의 농장 경영이나 수확에 대한 부분의 걱정, 그리고 여러 가족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 노비 관리에 대한 내용 등등의 다소 일상적인 내용들로만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다산의 편지가 뭔가 자꾸 타이르고, 압박하고, 반성을 요구하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퇴계 역시도 그런 부분이 있지만, 다소 일상적 내용이 책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사실 교훈적 내용이라면 이 책보단 다산의 편지가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퇴계는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는 대부분 어렵다. <성학십도>를 비롯한 고봉과의 편지 내용인 <논사단칠정론> 그리고 <자성록> 등등에서 나오는 그의 글쓰기는 사실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거기다 <논사단칠정론>과 <자성록>의 경우는 둘 다 편지를 엮은 책이지만 주 논의가 학문을 논하고 있는 편지들이라, 내용이 굉장히 어려웠었다.

 

그래서 나는 자식에게도 편지를 굉장히 어렵게 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일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 책에서 교훈적인 편지도 많지만, 그보다도 퇴계의 실생활의 모습과 그 모습을 통해 조선 중기의 사대부들의 모습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맡아들 준은 공부를 더럽게 안 했나 보다. 편지를 보면 뭐 과거 시험을 앞두고 한양으로 올라오는 게 늦어서 -_- 시험을 못 본다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퇴계는 그런 아들을 엄청 한심하게 꾸짖고 있었다. 지금 수험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것처럼 퇴계의 아들인 준 역시도 그런 곳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퇴계의 조언 중 재미있는 것은 '술을 너무 마시지도 말되, 술을 적당히 마셔서 교우 관계에는 신경 쓰라.'라는 부분이다. 보통 퇴계와 같이 깐깐한 사람은 술 마시지 말고 공부하라고 할 것 같은데 퇴계는 이런 부분에서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를 아들에게 했다.

 

이런 부분은 편지에 다소 많이 나온다. 벼슬을 못하고 있는 아들을 두고, 스스로는 하야하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토로하면서도 놀고 있는 아들에게, 벼슬이라는 것은 그래도 꼭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책 초반부 즉 준이 어릴 때는 다소 훈계적이고, 학문을 성취하라는 편지가 많이 나왔는데, 점점 가면 갈수록 그런 글들이 없어진다. 아마도 퇴계 역시도 부족한 자식에 대해서 마음을 많이 비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재미있는 부분은 퇴계의 모습은 그가 가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소 많은 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관리 감독을 지시하는 모습이며, 올해의 수확에 대해서 묻는 모습 등은, 우리가 알고 있던 퇴계의 가난한 선비의 모습은 아니었던 듯싶었다.

 

잔인한 부분도 있었다. 노비들의 기강이 풀어졌을 때, 매질을 해서 바로잡으라는 이야기도 했었고,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군자의 퇴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둘째 아들 채가 죽으면서, 유산 상속 문제가 일어났을 때, 퇴계 역시 참담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권리는 주장하되 치졸해지진 말자는 주장을 하며 분을 삼키는 모습도 있었다.

 

퇴계를 볼 때 학문도 높았고 벼슬도 높아서 편안 일생을 산 것 같지만, 사실 그런 사회적으로 볼 때는 그럴지 몰라도, 개인적인 인생은 비극적인 일들이 많았다. 아들과 처를 먼저 보내는 아픔과, 장자인 준 역시도 몸이 성하지 않아서 고생하는 부분, 그리고 퇴계 스스로도 건강하지 못하였던 점 등을 볼 때 행복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다산의 편지에는 다산의 비분강개함이 느껴졌었고, 그런 직설적 표현을 통해 다산의 현실적 어려움의 고뇌를 볼 수 있었지만, 퇴계의 글은 차분함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안정적인 사대부의 풍모를 볼 수 있었다.

 

어쨌든 퇴계의 일상적인 모습을 소상하게 볼 수 있으며, 그 시대의 사대부의 삶을 소상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퇴계의 신선한 모습에는 재미있었지만, 책은 대체로 지루했다. 일상이라는 것이 서로 아는 사이끼리는 공감대가 있어서 의미가 있는 법이니깐...

 

교훈을 느끼기에는, 차라리 이 책 보단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보거나 아니면 퇴계가 손자 안도에게 쓴 편지인 <안도에게 보낸다> 이 책을 추천한다. 아무래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일상적이고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다소 훈계적이고 교훈적일 수밖에 없다. 퇴계는 살아생전에 아들에게 남긴 편지가 3000통이나 된다고 한다.... 아마도 유실된 편지까지 합치면... 더 하겠지... 그 많은 양의 편지는 세상 모든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지는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런 사랑을 받은 준은 음서로 관직에 나아갔다. 자신보다 못난 아들이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을거다. 모든 부모의 심정이 그러니까,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우리는 무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퇴계와 준도 마찬가지였다.

 

 음서로 관직에 나아간 장성한 아들에게 여전히 퇴계는 관심을 가지고, 아들의 처세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조언을 하고 사랑을 보낸다. 이런 부분에서, 자식이 장성해도 부모의 눈에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그런 부분도 읽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자와 손자, 역사를 만들고 시대에 답하다 - 문무의 세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 시대와 거울 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 1
신정근 지음 / 사람의무늬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 개론서.

원래 동양 고전에 대한 개론서는 잘 보지 않고, 소장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소장할 책은 많은데 이런 개론서들까지 책장을 내주면, 공간 낭비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따라서 구매한 책은 아니고, 빌려 본 책이었다. 개론서인 만큼, 제자 백가의 두 축 유가의 공자와 병가의 손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고전의 저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논어>와 <손자>의 두 저자들에 역사적 시대상황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요즘 제자백가나 동양 고전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이런 개론서들이나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 시리즈가 많이 나오는데, 이 책은 제자백가의 각 사상 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와 비슷한 목차를 가지고 있다. 고전 역자인 신동준 역시도 공자와 손자에 대한 개론서인 <머리는 손자처럼 가슴은 공자처럼>을 냈다. 신동준의 책이 약간은 처세적인 관점에 써졌다면 이 책은 정통적인 역사적 흐름에 중점을 뒀었다.

 

대체적으로 무난했다. <사기>나 <자치통감> 등에 나오던 공자와 공자의 제자들, 그리고 손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특별한 지식 없이도, 제자백가의 기본 지식을 볼 수 있는 책으로, 부담 없이 접근하기엔 좋은 책이었고, 동양고전에 대해서 관심은 있지만 부담스러운 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쉽게 써져있었다.

 

어느 정도 동양 고전에 수준이 있는 사람들도, 시간 때우기용으로는 볼 만하다고 생각됐다. 개성 있는 해석이나 신선한 해석은 다소 없는 편이지만, 바꿔 말하면 무난하게 공자와 손자의 인생을 잘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보통 우리는 공자와 노자를 두 축으로 하여 동양 사상을 이해하는데 더 익숙하다. 그런데 요즘 특이하게 병가의 시초인 손자에 대한 위상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데, 전자의 해석은 전통적인 문(文)의 관점으로의 동양 사상을 해석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최근 병가를 격상시킨 부분에는 문무(文武) 겸전의 정신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제자백가에서 유가의 위상이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문(文)을 중시하는 태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났는데, 일본의 경우는 문(文)을 숭상하면서도 상무 정신에서 볼 수 있듯 무(武)를 중시했던 차이가 있다. 사실 일본의 상무 정신(사무라이 정신)은 현실과 직결되는 부분이고, 그런 전통은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이기도 했다. 더불어 패전 이후에도 그들은 그들만의 상무 정신을 경제적인 부분으로 응용하여서 경제 대국을 만드는 데 기여를 했다. 즉 그런 일본의 전통 속에서는 무(武)의 가치에 대한 긍정이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무를 중시한 일본의 태도는 명분의 문을 추구하며 무를 괄시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진전쟁과 조일 합방은 사상적으로 문치의 문란과 무관의 괄시라는 부분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나 역시도, 문무를 고루 중시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공자는 동양의 문성으로 추앙받는다. 손자는 동양에서 병성 혹은 무성으로 추앙받기 마련이다. 두 문무의 거장을 엮어낸 책의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현실론적인 관점 철학이 대두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되겠다. 나는 병가 철학이 대두되기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어왔는데 이런 사회 현상에 대해서 굉장히 좋다고 느낀다. 우리나라는 현실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도 느끼는데, 아무튼 책 한 권의 목차를 보며 이런 인식의 변화가 보여서 기쁘기도 했었다.

 

해석에 한 가지 태클을 걸고 싶은 것은 '공자는 살아서는 실패했지만 죽어서는 성공한 대현인이었고, 손자는 살아서는 성공했지만 죽어서는 실패한 위인이다.'라는 식의 해석이 있었다. 공자의 부분은 맞다. 별 태클을 걸고 싶지 않은데 손자에 대해서는 글쎄 해명이 좀 필요하다 싶다. 손무가 살았던 시기는 난세의 최고의 격돌 시대였던 오월 시대다. 오월동주, 와신상담 등의 숱한 고사를 남긴 그 시기였고, 그때 손무와 오자서는 오나라 합려의 측근으로 활약한다. 어쨌든 합려의 아들 부차가 집권하면서 손무는 종적이 없고, 오자서는 비통하게 죽는다.

 

분명 현실적으로 손무는 성공한 것임이 맞다. 자신의 주군을 패권의 제후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사상인 병법을 검증했으니까, 손무의 방법은 피로 일군 천하통일임에는 맞다. 여기서 저자는 공자의 덕치와 손무의 전쟁론을 우열적으로 비교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피로 일군 국가는 얼마 못 가서 망한다는 것을 내세워 후대에는 실패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공자의 덕치는 살아생전에 통치 규범이 되어 성공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자의 덕치는 사실 이상적이었고 제대로 구현된 적이 거의 없는 상상 속의 국가였다. 그리고 손무의 현실론적 전쟁관은 숱한 인간의 역사가 따르고 행해왔던 승리의 규범이었다. 고대 국가 중, 인과 덕으로 천하를 통일한 예는, 나는 하은주 그 시기밖에는 없다고 본다. (하은주 이 시기에도 군사력의 이동과 전쟁은 있었다만... 백번 양보해서 유가에서 지칭하는 이상 국가관이니 그렇다고 치자.) 손무가 이야기한 부분은 결국 전쟁에 관한 부분이다. 치국에 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로 일궈낸 패권 국가지만, 부차의 멍청한 통치의 영역까지 손무의 사상과 결합시켜서 해석하는 것은 좀... 어불성실 같았다. <손자>에서 직접적인 치국을 이야기한 부분은 거의 없다. 장군을 평가할 때는 장군의 전적만을 두고 평가해야지 군주의 치국을 덧씌워서는 안된다고 본다. 치국은 군주(부차)의 자질 문제다.  

 

오히려 손무는 살아서도 성공했으며, 죽어서도 <손자>라는 고전을 남겨서, 대대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승리자라고 본다. 공자보단 덜 추앙받고 있지만, 현실론적인 면에서 보면 나는 손무의 인생이 죽어서 실패한 인생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법가의 시황제 역시도 마찬가지다. 시황제는 법가로 천하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그의 제국은 2대를 가지 못했고 그것을 두고 유가는 법가의 한계라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법가사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황제가 황제가 되고 나서 시행한 체제는 순수한 법가의 치세와도 거리가 멀다. 즉 시황제가 아집과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제대로 통치를 못한 것이지, 법가 사상과 결부를 시켜서 해석하는 부분은 잘못됐다고 본다. 그래도 일반 사람의 인식은 시황제 = 법가라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 역시도 위의 손무의 해석과 같다고 본다. 

 

어쨌든 이 부분의 해석에서 나는 다르게 생각했었지만, 책은 쉽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배경 지식 없이도 잘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책보다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의 가장 유명한 책인 <목민심서>.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의 실무행정 방침에 대한 저서라고 할 수 있는 <목민심서>. 1표 2서라 불리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등 이 책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꽤 많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존경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인 <목민심서>는 우리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정선 목민심서>는 그 유명한 <목민심서> 번역본 중 가장 뛰어난 책이다. 시중에는 많은 <목민심서>들이 있다. 나도 서점에 가서 쭉 둘러보면서 검토를 해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정선 목민심서>를 따라올 책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도 큰 결점이 존재하고 있다. 이 부분은 서두가 아닌 뒷부분에 소상하게 밝히겠다.

 

아무튼 이 <목민심서> 책은 내가 자주 본 고전 4천왕에 들어간다. <논어>, <손자>, <군주론> 그리고 이 <목민심서> 순으로 <목민심서>가 앞의 3권의 책 보단 많이 보진 못했지만.. 다른 고전에 비해서는 많이 들춰봤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의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뭐랄까,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전적 하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정갈함도 보이는 표지.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면, 그 책을 아끼고 자주 보게 되는데, 이 <정선 목민심서>는 그런 부분에서 합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목민심서>를 다시 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세월호 사건을 보며 공무원 기강에 대해 생각을 하기 위해서 책을 펼쳤다. 지금 국가에서는 구조나 재난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제도나 행정을 고치자고 외치고 있다. 그래 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위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솔직히 구조 재난의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내가 볼 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국정 쇄신에 대한 매뉴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구조 재난 역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시민을 살릴 수 있는 것은 행정에 쇄신이 필요하고 전반적인 국정에 대한 쇄신, 공무원들의 지침과 행동에 대한 매뉴얼도 중요하거늘, 왜 이런 부분은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로 덮고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다산이 생각했던 지방 공무원 쇄신 서인 <목민심서>를 다시 폈었다.

 

<목민심서>는 확실히 훌륭한 저서다. 그런데 왜 훌륭한 저서라고 하면, 그냥 애민정신이 구현된 저서라고만 다들 알고 있다. 다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산에 대해서 공무원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다산의 저서를 보는 등의 깊은 이해는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일반론적으로 다산을 칭송하고만 있다. 다산을 이해하고, 공무원들이 왜 다산을 알아야 하는지,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왜 다산이 뛰어난 학자인지 알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이 <목민심서>를, 그의 저서들을 봐야 한다.

 

<목민심서>의 뛰어난 부분은, 다산의 실제 정치 경험론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다산이 유배생활 때의 백성의 입장에서의 경험 등이 섞여있다는 사실이다. 대대로 행정 공무원이 스스로 행정론에 대한 책을 쓴다면 망각하기 쉬운 것이 아래로부터의 시각이다. 그리고 아랫사람이 행정에 대한 책을 저술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행정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그것 역시도 한계가 있다. 다산은 이 두 관점을 다 책에 녹여서 저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역사를 내세워 그것들을 검증하고 있었다. 즉 실제적인 행정 경험 + 역사적 사례 지식 + 백성의 입장이 녹아 낸 현실론적인 지방행정 지침서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책의 체계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체계다. 한 가지 주장을 펴고, 그 주장에 입각한 역사적 사실이나 경험론을 서술한 구성... 그런 것들이 연속적으로 모여서 책을 구성하고 있었다. 혹자들은 다산이 그렇게 많은 저술을 저작한 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기도 하는데, 정민 선생의 <다산의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었다. '프로젝트 형식으로 제자들에게 사료를 집약시키고 다산은 그것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었다.'라고 말이다. <목민심서> 역시 예시가 대거 들어간 점으로 봐서 그런 흔적이 보였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 많은 저술을 남긴 것에 대해서 이해가 가기도 했었다.

 

책의 제목 심서에 대해서는 다산이 서문에 밝히길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할 수 없기에 심서라고 붙였다고 한다. 그럼 목민이란 말은? 말 그대로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목민이란 말은 사실 유교 경전에 나오는 대목이 아닌 <관자>의 첫 편이 목민이다. 따라서, 다산이 유교 경전만 참고한 것이 아닌 다양한 제자학을 참고했다는 부분도 볼 수 있겠다.

 

<목민심서>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일단 이 책 자체가 엄청 교훈적인 책이라, 그냥 책을 보는 것에도 도움이 아주 많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도 그렇게 책을 보며, 교훈을 얻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자면, 어쨌든 유교적인 가치가 보였던 부분이고, 따라서 지금의 현실적 부분과는 괴리감이 있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책을 아무 생각 없이 교훈적인 내용을 기대하고 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이번에 다른 관점으로 책을 봤다.

 

이 책이 유교사상에 입각한 부분이 있어 이상론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적인 부분이 보이는 것은, 그 당시의 숱한 탐관오리들의 행적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기업들의 관료제 시스템이나 다산이 살았던 국가의 모습은 관료제라는 군집적 속성으로 이해하면 비슷한 부분이 아주 많다. 그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사실 다산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부분이 지금으로 비춰봤을 때 현실성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관료제라는 속성 내에서 벌어지는 일탈 행동과 수탈에 대해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모든 행위들을 다 수록하고 있었다. 이 점은 사실 인간 사회가 진화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볼 때, 인간이 조직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탈을 저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 독서를 했었다. 예전에는 교훈적 부분에 입각하여 읽었는데, 그 부분은 좋은 점도 많지만, 지금 시대에 현실성이 없는 부분도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다산이 제시하고 있는 탐관 오리들의 일탈과, 일탈의 방식, 수탈의 방식 등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했다. 대대로 인간의 수탈 방법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책에서 나오는 탐관오리들의 수탈 방법은 정말로 악렬했다. 조선 시대라고 생각해서, 지금의 시대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썩은 조선 사회를 보며, 과연 조선 초기의 이념인 민본의 가치로 세운 사대부 중심의 정도전의 사상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꼈으며, 조선 중기에 율곡이 외친 경장에 대해서도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을 느꼈다. 결국 <목민심서>는 다 죽어가는 썩을 대로 썩은 조선의 행정을 보며 다산이 행한, 심폐소생술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조선은 타락했었고, 문란했었다.

 

그런 인간의 타락된 본성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 다산의 안목이 돋보였었다. 그가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 역시도 느끼는 바가 많았지만, 유교적인 사상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에서 아쉬움을 조금 느꼈었다. 혹자들은 <목민심서>가 지금의 가치에서는 필요 없는 옛날 지식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고전이라는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얻을 것이 무궁무진한 텍스트라는 점도 느꼈다.

 

책의 곳곳에는 다산의 애민정신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는 전체적으로 문란한 시대였지만 생각보다 청렴한 관리들도 많았다. 다산이 예를 든 현시대의 관리들을 보면서, 썩은 세상이더라도 직분을 다 한 수령들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책은 산수화를 비롯한 여러 조선 시대의 그림들도 넣었는데, 문제는 흑백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이 책을 호찌민이 맨날 애독했다고 했는데, 과연 맞는 말일까? 내가 볼 땐, 과장된 사실 같다. 마치 나폴레옹이 <손자>를 애독했다는 것 마냥, 그냥 확산된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은 좋지만, 이런 근거 없는 속설을 지어 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이 책의 큰 결점을 이야기하면서(앞에서 이야기한), 우리 사회의 우리 고전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확장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목민심서>는 우리의 뛰어난 고전이다. 그러나 혹자들은 <목민심서>가 한 권의 책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목민심서>는 48권 16책으로 방대한 양의 책들이 모아진 '한 질(세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중에 나온 <목민심서>는 모두 다 편역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정선 목민심서>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편역본보다 괜찮은 점이, 이 책의 역자들은 다산연구회라는 사람들이 번역한 책인데, 원래는 이 책이 처음 번역된 것이 아닌 <역주 목민심서>라는 완역본을 먼저 펴 냈고 뒷날 <정선 목민심서>를 펴 냈다. 즉 <정선 목민심서>는 <역주 목민심서>의 편역본이다. 다산 연구회의 사람들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목민심서>를 번역했다고, 서문에 나와있고, 더 깊은 공부를 위해서는 <역주 목민심서>를 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역주 목민심서>는 지금 절판인 상황이고 구하려야 구할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이 점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출판사인 창비출판사에 의뢰를 했었다. <정선 목민심서>와 같이 현대적으로 잘 손봐서 <역주 목민심서>를 다시 내 줄 수 없느냐고,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고 민족의 고전인 만큼 그래야 한다고, 장문의 글을 보냈다.

 

그러나 들려오는 말은 그럴 계획이 없다는 말뿐이다. 즉 우리나라의 현실은 완역본 <목민심서>가 지금 출판되지 않고 있다. 세간에서는 지금 다산을 본받자,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다산을 본받아야 한다며 그러는데, 정작 우리의 고전 문화적 인프라는 다산의 완역본 <목민심서> 조차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 <목민심서>가 다른 나라 고전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명저다.

 

얼마 전 정약용의 모든 저서 <여유당전서>가 번역됐다고 신문에 나왔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방대한 책은 시민들이 다가가기 힘들다. 과연 시민들 가운데 <여유당전서> 전집 100만 원을 넘는 그 책을 살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적어도 시민들이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정도는 다가갈 수 있게 번역을 해 놔야 하는 게 아닌가?

 

<흠흠신서>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금 1권이 품절 상태라서 보려야 볼 수도 없다. 그나마 <경세유표>는 출판사 두 곳에서 완역하여 판매 중이다. 가장 유명한 <목민심서>는 이렇게 다산연구회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을 한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번역본은 오래전에 절판됐다.

 

나는 창비출판사를 좋은 출판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태클을 걸고 싶진 않은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같은 책은 리뉴얼하고 컬러로 해서 재출간하면서, 이런 좋은 <목민심서> 완역본에 대해서는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출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많은 실망을 했었다. (아 물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명저다. 우리 집에도 전권 리뉴얼 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에 비춰 보면 많이 아쉽다.)

 

다산은 <목민심서> 자서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앞에 선현들의 목민에 관한 책을 열거) 이 모두 이른바 목민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 이런 책들은 거의 전해오지 않고 오직 음란한 말과 기이한 구절만이 일세를 횡행하니 나의 이 책인들 어떻게 전해질 수 있으랴?'

 

지금 다산의 이 주옥같은 글조차도 완역 번역되지 못한 사태에 대해서 애탄하고 애탄할 뿐이다. 물론 나는 <역주 목민심서> 전질을 중고서점에서 운 좋게 구매를 했었다. 그래서 <목민심서> 완역본도 봤고, <정선 목민심서>도 봤다. 솔직히 완역본은 쓸데없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축약본에선 볼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정선 목민심서>는 잘 축약했다. 대체로 현실에 맞는 부분들을 잘 추려서 냈고, 나도 완역본은 1번 회독을 했지만 <정선 목민심서>는 자주 봐서 손때가 묻었다. 그만큼 <정선 목민심서>는 알차게 번역된 책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완역본을 보고 싶어 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지금 출판계에선 그런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완역 번역본이 없다는 사실이다. 축약본이 아무리 잘 번역되고 잘 축약됐다 하더라도 원전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순 없다.

 

 거기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모든 공무원들이라면 <목민심서>의 완역본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긴 기존의 공직자들이 이 '축약본'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대한민국의 행정이 이런 사태까지 불신을 겪지 않았을 테지만... (마음 같아선 완역본 보고 좀 성찰했으면 좋겠는데, 양보해서 제발 축약본이라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보며 느낀 점은, 다산이 썩은 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듯, 우리나라에도 지금 전반적인 행정을 쇄신할 현대판 '목민심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선현이 내려준 지식을 검토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창비출판사는 빨리 <역주 목민심서>를 이렇게 <정신 목민심서>처럼 재출간을 했으면 좋겠다. 고전이란 것은 시대에 공유되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잃기 마련이다. 좋은 출판 기술과 편집 기술, 쓸데없는 데다 사용하지 말고 좀 좋은 양서를 펴는데 총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창비 출판사 규모가 크고 전통 있는 출판사가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UGUF 파리여행노트 - Paris Travel Note
박은희.이경인 지음 / 한길아트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맨날 딱딱한 인문고전이나, 사회서들만 리뷰하다가, 이런(?) 여행책을 리뷰하려니 뭔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프랑스로 가기 전 사전 지식(?)를 위해서 산 책이다. 서점에서 프랑스에 대한 책들을 살펴봤다. 여행기나 여러 여행 정보를 담은 책. 등등이 있었다. 지금은 솔직히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가 보편화되어서, 좋은 에세이를 찾기가 쉽겠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 에서이는 드물었다. 그냥 딱딱한 여행 정보를 팸플릿처럼 제공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랑스에 대한 여행책들 역시도 그랬다. 당시에 유럽 붐(?) 이 일어나서, 너도 나도 유럽을 찍어야지라는 허세 어린 사회 시각이 있어서, 그 영향 때문인가, 유럽 여행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책들은 획일적으로 맛 집, 지역, 교통수단 등등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정보만 원한다면 그 책들이 이 책보다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뭔가 나는... 콘셉트가 있고 누군가에게 프랑스 파리에 대한 썰을 듣고 싶었었다. 주변에 파리를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뭐, 단편적으로 일방적인 칭찬 내지는 뭐 그런 부분만 들려서 실망하던 차에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책은 재미있는 부분이, 그래픽 디자이너 부부가 저술한 것으로, 결혼 직후 파리에서 2년간 살았고 토론토에서 1년을 프리랜서로 학생 신분으로 지낸 경험이 있었다. 약력을 보니 꽤나 특이했고, 파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책 자체도 기존의 여행책들처럼 정보만 툭 던지는 것이 아닌,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그렇게 조곤조곤 파리에 대한 부분들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래픽 디자이너라 그런지 사진 기술이 참 뛰어났다. 책은 가벼움과 나름의 진중함, 그리고 파리의 색채 3박자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파리의 색채는 여행객의 색채가 아닌 생활의 색채가 있었었다. 이런 여행 책의 필수 요소, 책에서 그 도시의 향이 나와야 한다. 책에서 그 도시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합격점이다.

 

에세이처럼 글도 좀 있으면서, 파리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곤조곤하고 있으면서도, 여행 정보나 깨알같은 팁들을 챙기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진들에 대해서도,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을만한 그런 부분도 있었고, 굳이 파리를 가지 않더라도 도시의 느낌을 온전히 전하는 데에는 충실한 가이드였다.  

 

그래서 과연 파리를 갔을 때, 이 책의 도움은 받았느냐고? 음...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모르겠다. 책에서 말하는 프랑스인들의 에티켓 등도 들어맞는듯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 부분은 파리의 이방인이자 여행자인 나와 생활인이었던 저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내가 방문했던 파리와, 저자의 책에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가 얼추 일치했었다. 그래서 이 책은 파리의 모습을 온전히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파리 근교에 샹티라는 곳에 이모 집에서 얼마간 거주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부단히 파리로 나가서 파리의 기운을 느끼려고 엄청 노력했었었다. 그때의 거주 경험, 프랑스에서의 생활의 느낌과, 이 책이 전해주는 파리의 느낌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어쨌든 가볍게,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출간된 지 꽤 지난 책이라, 그리고 내가 파리를 가 본지 꽤 오래돼서, 이 책에서 전하는 내용이 틀릴 수도 있고, 이 책이 알려주는 정보가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도에 나온 책이니... 이런 장르의 여행 책은 최신의 신속한 정보를 업데이트해 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이 책도 생명력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거의 지난 파리의 모습, 그 냄새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싶다. 예쁜 사진 자료와, 특출나지 않지만 무난한 에세이형 글들, 그리고 생활상의 파리의 모습, 파리의 구석구석이 담긴 팁... 등등 어쨌든 책은 아담하면서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아무튼 요즘은 이보다 더 좋은 여행 에세이집들이 많이 나와서 이 책의 메리트가 없지만, 당시엔 괜찮은 책이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