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이덕일의 역사특강 2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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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의 후속작으로 나온 책이다. 전작인 <정도전과 그의 시대>는 뒷부분이 급작스러운 마무리를 나타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책이다. 그런 뒷부분들까지도 잘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대체로 전작에 비해 책 양이 늘어났으며, 정도전의 관점이 아닌 군주의 관점, 이성계와 이방원에 대한 관점으로 여말선초를 해석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책은 잘 서술됐다. 몇몇 군데에 삼천포로 빠지는 논의가 있긴 하고, 저자의 사관 의식을 보여 주는 부분이 있지만, 잘 정리한 책임은 맞다. 나는 아쉬운 부분이, 지금 정도전 드라마의 유행으로 인해 정도전이 재해석되고 집중적으로 조망 받고 그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동지였던 이성계에 대한 평전은 한 권도 없으며 이방원에 대한 평전은 한 권밖에 없다. 정도전 현상에서 이런 부분을 볼 때, 너무나도 편협적이고 즉흥적인 부분이 아쉬웠다. 물론 정도전의 입장이 굉장히 주도적이고 중요함은 맞다. 하지만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이성계와,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이지만 이방원에 대해서도 조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정몽주에 대한 부분 역시도 잘 고찰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 책은 기존의 정도전 현상과는 다르게 군주의 시각으로 해석한 책이다. 두 주인공, 이성계와 이방원. 역사적으로 이 둘은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책에서 나온 둘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이성계는 세간을 많이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방원은 행동해야 할 때를 알고 설사 그 부분에서 욕을 먹더라도 행동하는 군주였다. 아마도 정도전이 아니었으면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지 못 했을거다라고 책에서 주장하는데,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이성계와 같이 주변 신경을 많이 쓰는 리더는 피곤하기 마련이다. 정도전은 이런 부분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악역을 자처하여 이성계를 이끌었다. 이방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정몽주를 격살한 것에서 그런 부분이 잘 나타나있다.

 

내가 중점적으로 본 사람은 이방원이었다. 그는 정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아버지의 콤플렉스인 무인의 집안에서 과거 급제를 통해, 이성계의 한을 씻어줬으며, 매 번의 이성계의 정치적 결단에는 이방원이 앞장서 있었다. 회군할 때, 강 씨 아들 둘을 말에 태워서 같이 도주시킨 것도 그였고, 이성계를 대신해 이색과 함께 명나라 사신길을 간 것도 그였다.

 

치세에는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옳으나 난세에는 다르다. 여말선초는 동아시아 자체가 난세의 장이었다. 따라서 왕위는 이방원이 이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이성계는 무리한 세자 책봉을 감행한다. 정도전은 이를 용인했고, 결국 이방원은 칼을 갈았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차이는 바로 현실 인식이다. 이방원은 시국을 잘 읽는 능력이 있었고, 복잡한 정세를 단순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해야 할 때, 즉각적으로 행동을 했다. 그는 아버지보다 좀 더 현실주의적 관점이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대목이다.

 

태조는 치국은 유교의 도를 따랐지만 개인적으론 불자였다. 그는 고려의 불교가 폐단이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았지 불교 자체에 대해서는 탄압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뿌리 깊은 유학자다. 그에게 있어 충과 효는 절대적이었다. 과거를 급제한 이방원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런 그였지만 아버지에게 칼을 겨눌 때 그의 심정은 어땠겠는가, 애초에 이성계와 이방원이 인식하는 효에 대한 개념이 달랐다. 이성계의 효는 절대적 권위를 따르라는 것이었고, 이방원은 그른 부모의 말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정몽주를 죽이자 분노하는 이성계에게 이방원은 '효를 위해서 죽였습니다.'라고 했다.

 

 분명 왕조국가에서 왕위를 찬탈한다는 사실은 정통성을 인정받기 힘든 부분이다. 그리고 그 찬탈한 권력을 사욕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비극인 것이다. 대부분의 전제 왕권 군주들은 이런 사욕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었다. 세조를 보라. 세조는 자신의 찬탈한 권력을 직계 공신들과 함께 나눠서 사용했다. 그러나 태종은? 아니었다. 태종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수도승과 같이 왕위에 전념했다. 그는 국가의 법을 바로 세워서 법 앞에 설사 공신이더라도 군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가장 많은 오해 중 하나가 태종이 공신들을 내 친 이유가 개인적인 권력 야욕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책을 읽어보니 이유가 다 있었다. 적어도 태종은 이유 없이 내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이나 과시적인 모습을 보일 시에는 가차 없이 내쫓거나 죽였다. 사회지도층에 비리를 하나하나 다 감시하며, 백성들에게는 신문고 제도를 비롯한, 선정을 베풀기 위해 노력했던 군주였다.

 

세종과의 비교도 보였는데, 노비제에 대한 부분에서 언급했는데 해석이 좋았었다. 노비제는 종부법과 종모법이 있다. 대체적으로 고려에서 성행하던 것은 종모법이다. 종모법은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서 노비의 신분이 결정 나는 것이다. 종부법은 그 반대라 할 수 있겠다. 신분제 사회에서 조선은 아버지의 신분이 어머니의 신분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종부법을 시행한다면, 국가적으로 사노비가 점점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양인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인이 많다는 것은 국가에 의무를 할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태종은 기존의 노비제에서 종모법이 아닌 종부법을 주장하여, 결과론적으로 사대부들의 과한 사노비 소유를 억제하려고 했었다. 사노비는 국가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전혀 안되는 존재들이다. 나라에 있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인원들인데다, 공노비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세종 치세에는 종모법으로 다시 환원된다. 사대부들이 계속해서, 종모법으로 고치자고 하면서 든 이유가, 여자들이 높은 집 자제들을 유혹해 자기 자식을 신분상승에 이용하려고 할 우려가 있고 그렇게 된다면 사회 윤리가 문란해진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말해서 억지라고 본다. 종모법이 있으면 대대손손 노비를 불리기에는 더 유리한 것이 맞다. 어쨌든 조선의 대부분의 상황은 남자가 여자보다 신분이 높았기 때문에, 세종은 사실 노비들에게 출산 휴가를 주거나 그런 부분에서 치적이 있지만, 그런 부분들보단 범국가적으로 봤을 때, 태종의 정책이 국가적으로 양인을 확충하는 데에는 효율적이다. 국가는 어쨌든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양인이 많아야지만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노비도 줄일 수 있고, 국가 제정도 높일 수 있는 태종의 발상이 돋보였다.

 

세종은 사실 백성을 위한 군주임에도 맞지만, 사대부들의 손도 많이 들어준 군주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세종보다는 태종이 더 백성을 생각했다고 본다. 나는 몰랐는데 태종우라는 것이 있다. 5월 10일 날 태종이 죽은 날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태종은 태조를 밀어내고 왕이 됐다. 그에게 있어서 합리화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천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태종 시기에 유난히 가뭄이 많이 들었다. 태종은 아마 괴로웠을 것이다. 피를 토하고 싶었을거다. 그래서 기우제도 드리고, 양위 소동도 기획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많이 한 군주였다.

 

그런 태종이 죽은 날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 부분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로, 얼마나 태종이 백성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국가 권력을 찬탈하였지만 누구보다도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었다. 노비제도 등을 개선하며 부국강병을 이뤘고, 후계 권력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위험요소는 모두 제거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오른 그여서 더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부패가 연루되면 직계 공신을 가리지 않고 모두 내친 자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 책에서는 안 나오는데, 하륜에 대한 부분. 태종은 이상하리만큼 하륜을 감싸준다. 그의 부정부패를 보고서도 눈 감은 적도 있었고 경고를 준 적도 있었다. 이 부분은 솔직히 많이 아쉽다.

 

태종은 솔직히 무인의 이미지가 강한 군주인데,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 합격할 만큼 책을 많이 보고 경서를 많이 읽었다. 임금이 돼서도 독서를 게을리한 적은 없다. 물론 세종과는 다르게 경연은 싫어했으나 그가 책 자체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홀로 사색과 독서를 즐겼던 문인이었다. 태종은 난세는 말위에 군주가 다스려야 하지만 치세에는 군주가 도서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말위의 군주지만 후대의 군주는, 독서를 강조했다. 충녕이 왕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독서다.

 

외교관계에서 이방원은 실리적인 사대주의자였다. 당시 중국은 명나라의 황권 다툼에서 명 성조가 등극했다. 영락제라고 불리는 이 군주는 스타일이 완전 태종과 흡사했다. 그는 무력으로 일가를 청소하고 황위에 올랐는데, 이런 강력한 황권으로 거대 선박을 동원해 아프리카까지 대항해를 감행하기도 했고, 베트남의 새로운 왕조 국가를 80만 대군으로 복속시키기도 했다. 이런 강력한 명나라 앞에서 태종은 일단 지성으로 사대를 하자는 입장이었으며, 내부적으로 성곽 수리를 명령했다. 즉 지성을 드려보고 안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전쟁은 함부로 해선 안된다. 군주의 쓸데없는 자만심과 자부심으로 전쟁을 해선 안된다. 전쟁보단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보고 마지막에 써야 하는 정책이 바로 전쟁이다. 정도전이 주장한 주전론 때는 명나라 황실이 혼란기였다. 그러나 태종이 집권하던 당시는 강력한 군주인 성조가 버티고 있었고, 옆 나라 신생국가가 몰락한 전례가 있었다. 따라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서울의 남아있는 성곽은 태종 시대에 만든 것이라고 책에는 나왔다.

 

사실 책을 보며, 이성계에게도 참 공감은 갔다. 이성계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무력으로 알렸다. 화려한 신궁 솜씨와 더불어, 병법에도 밝은 그였고, 연전연승한 그였으나, 아들에게 무참히 패배했다. 특히나 복수의 칼날을 세운 조사위의 난이 그렇게 터무니없이 제압당했으니... 민심의 행보를 신경 쓰는 그 역시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는가 싶다.

 

그러나 동정은 동정. 태조는 잘못된 태자 때문에, 역사적인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왕 씨들의 무차별적인 탄압 역시도 그런 것 같았다. 정도전과 이방원이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란 생각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이방원이 왕이 됐다 하더라도 재상 중심주의를 펼치는 정도전을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이덕일은 양립이 가능한 시각으로 해석하지만 내가 볼 땐 둘은 권력에 대한 철학 자체가 다르다. 양립할 수 없다. 어느 쪽이 옳다고도 할 수 없다. 태종은 태종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했고, 정도전도 그랬다.

 

세간에는 세조와 태종이 같은 철학을 가졌다고 같은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절대 아니다. 성향은 같을지 몰라도 철학은 다르다. 태종의 철학 속에는 백성이 있었다. 그는 조선이 내세운 민본을 왕권으로 실행했다. 세조는 그러지 않았다. 세조는 태종이 다 쳐낸 공신들의 나라를 부활시켰다. 자신의 정적들의 아내를 갈취했고 자식들은 찢어발겨 죽였다. 태종은 정도전의 아들들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벼슬하는데 제약을 두지 않았다.

 

태종과 같은 군주는 많다. 역대 이래로 고려의 광종, 그리고 중국으로 보면 이세민과 명나라의 영락제, 위나라의 조조, 조선의 세조, 진나라의 시황제 등등 전제적 군주 스타일은 많다. 그러나 그런 군주들 속에서 태종이 돋보이는 것은, 찬탈한 왕위지만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노력했던 군주다.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까 말했듯 세종보다도 더 뜨거웠다. 사대부들은 고하를 막론하고 비리를 척결하는데 신중을 가했고, 국가의 법제를 완비하여 공신이더라도 법 앞에선 평등했다. 그는 완벽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군주였다.

 

그런 그였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괴감과, 처가 식구들을 몰살시키고, 심지어 장인마저 죽이고, 의형제인 이숙번을 내친 비정함에 그도 버거웠을 것이다.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조선의 입장에서는 좋은 군주였지만, 개인의 삶으로 볼 땐 외로웠으리라, 그리고 그런 그의 인생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그의 괴로웠던 인생. 외로웠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했던 길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얼마 있으면 5월 10일 태종이 서거한 날이 다가온다. 이 맘 때쯤 내리는 비는 태종우라고 하니, 이 날은 비가 왔으면 좋겠다. 그 태종우는 어떤 의미일 것인가? 아버지에게 끝내 인정받지 못한 자식의 눈물인가? 친한 친구와 형제조차 내쳐야만 했던 외로움의 파편인가? 가뭄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한 그의 몸부림인가? 현재 대한민국 시국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선조의 눈물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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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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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문제적 정치사 상가 마키아벨리를 조망한 평전이다.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내게 있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다. 그때는 <군주론>에 심취하여서 기숙사에 두고 항상 애독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군주론>을 진지하게 독서하기보단, <군주론>이라는 어감이 주는 위엄과 포스에 압도되어, 그냥 겉멋으로 글만 읽어내려 가지 않았나 싶다. 진심으로 마키아벨리에 대해 생각하며 독서한 것은 20대에 들어서였다.

 

시중엔 마키아벨리의 평전이 많이 나와있다. 특히나 <로마인 이야기> 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 역시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라는 평전을 썼었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좀 편향적인 책이고, 무조건적인 마키아벨리 칭송적인 책이라 선택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실리주의 관점으로 볼 때 분명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롤모델로 제시하기 좋으니까, 서구인들이 쓴 평전도 있었다. 그러다 르네상스 개론서를 많이 펴 낸 김상근 교수가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전을 발견했고 선택했다.

 

책은 양장본이고 굉장히 퀄리티 있게 잘 만들었다. 사진 자료가 컬러로 첨부되어서 사실 평전이라기보단 여행서와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편집은 좋았던 것 같다. 마키아벨리는 서구 사회에서 숱한 오해를 받아왔던 위인이다. 특히나 그의 저작 <군주론>은 시대의 금서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매도를 당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겉으로는 <군주론>을 비난했지만 침실에서 모셔놓고 애독을 할 정도로 권력에 대해 뛰어난 성찰을 보여준 책이었다.

 

<군주론>은 <손자병법>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애독했던 책이다. 그런데 이 <군주론>을 보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의 시대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헌정하는 군주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한다는 가정 하에 쓴 책이라, 시대적 상황을 모른다면 책이 재미가 없고 따분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선대 역사에 대한 지식 등을 섞어서 인용하는 책이라서 가벼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형이상학적 철학서들과 같이 복잡한 서술을 보이진 않는다. 시대적 배경과 어느 정도의 로마와 그리스의 역사를 안다면,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 <군주론> 이다.

 

그래서 <군주론>을 이해하려면 마키아벨리의 시대와 인생을 이해하는 쪽이 편하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는 숱한 역사서의 법칙으로만 책을 쓴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영웅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대해 본 경험론으로도 책을 썼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격변의 시대는 난세의 시대였다. 난세는 영웅을 부르는 법이고, 여러 영웅들이 등장하고 몰락했다. 마키아벨리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 영웅들, 시보나롤라, 체사레 보르자를 비롯한 프랑스의 루이 12세, 율리우스 2세 등등 여러 군주들의 행동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더불어 그런 군주들을 수행하거나 관찰하면서, 고전 역시도 빼놓지 않고 탐독했다. 그런 인문적 성찰과 더불어 경험이 숙성된 책이 바로 <군주론>, <로마사논고>, <전술론> 이라는 고전들이다. 각각 정치, 역사, 군사에 대한 저술이다. 이 책 3권은 마키아벨리의 3대 저서로 불리는 책이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인, 권력주의, 기회주의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확실히 그의 정치 철학은 기존의 서양의 정치 철학과 다르다. 그는 교조화된 기독교에서 강요하는 도덕적인 부분으로 정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살면서,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정치의 속성은 악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의 정치론을 뒤집어서 생각했다. 군주는 선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이 되는 게 좋고, 용서하여 후환이 되는 적은 아예 깡그리 박살내버리는 것이 좋다. 군주는 여우의 머리와 사자의 심장을 가지는 것이 좋다.라는 다소 듣기 거북한 현실적인 논의들을 주장하며 <군주론>을 집필한다.

 

이런 주장은 확실히 기존의 기독교적 교리와는 상반되는 논의였다. 당시 기독교는 지동설을 천동설로 주장하여도 진실로 인정받을 만큼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바라보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시대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오로지 현실적인 가치로서의 정치학을 이끌어냈다.

 

동양도 비슷한 전례가 있다. 유가와 법가의 대립이 그것이다. 법가와 마키아벨리즘은 일란성 쌍둥이만큼이나 닮은 사상이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사상, 성악설로 바라보는 인간 본성, 군주는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한다는 부분 등. 백가전쟁, 사상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한 것은 시황제의 법가사상이다. 현실적으로 이긴 것은 법가에 기초로 한 시황제였다. 유가의 승리는 후대에 한족들이 정립한 사상일 뿐, 현실적인 사회에서 이긴 사상은 법가다.

 

마키아벨리 역시 그것을 통찰했다. 기독교의 교조화된 인간적 해석으로부터, 선대의 전통 키케로의 <의무론> 이래로 내려오던 서구의 인간 도덕을 그는 거부했다. 동양과 지독하게 닮았다. 우리 동양 역시도 유가는 유학으로 발전되고, 유교!로 종교화되며 학문적 사상에 종교적 색채를 곁들여 반발할 수 없는 권위를 내리고 그것이 절대적인 사상인 것 마냥, 숭상했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화된 사회고, 그러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 속에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서구 사회는 이를 빨리 간파하고 수용하여서 발전하였고, 동양은 그러지 못했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서구화된 사회다. 우리는 분명 마키아벨리보다 더 먼저 현실론적 정치 이론을 주장했다. 법가가 그것이다. 마키아벨리와 한비자의 시대적인 부분을 본다면 대략 2000년이나 앞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법가에 대해서 조명하지 못하고 금기만 했다. 원조라고 해서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면 안된다. 동양은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서구 사회를 보라. 물론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숱한 비난과 비판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재해석하고 비판하며, 발전해나갔다.

 

마키아벨리는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구 사회의 정치 패러다임을 가장 먼저 다르게 인식하고 바꾼 선각자. 그것이 바로 마키아벨리다.

 

책은 마키아벨리를 약자의 수호 성자로 해석하는데,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마키아벨리는 약자였다는 사실만큼은 맞는 사실이다. 그는 정부로부터 숱한 고문을 당했다. 물론 모함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만큼 강단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공무에 최선을 다하고 피렌체를 위해 그는 목숨을 바쳐서 일했던 사람이다.

 

마키아벨리와 같은 권모술수에 능한 저자들은 생각 외로 인생 자체는 성실하고 교과서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 한비가 그러했고 마키아벨리가 그러했다.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사상도 닮아 있으면서, 정치 철학도 닮았고, 인생 자체도 많이 닮았다. 약자였던 그들은 결국 군주를 위해 책을 저술하고 인정받기 원하지만 세상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의외로 굉장히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더불어 국가에 대해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한비가 <한비자>를 지은 이유는 군주가 자신의 정치이론을 바탕으로 전국시대를 끝내주길 원하는 간절한 순수함으로 글을 썼다.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을 자신의 이탈리아 대륙의 통일을 갈망하며, 강대한 군주를 고대하며 쓴 책이었다. 둘의 저서가 비록 좀 모략적이고 가벼워 보이고 이기적인 부분이 보여서 저자들 역시 약아빠진 인간으로 보기 쉬운데 그들은 지나치게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한 평범한 지식인이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순수했다. 그래서 그런 권력의 본질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세상은 그런 그들의 순수함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탄압했다. 깨우친 지식인이나 선각자들은 사실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가치는 설사 옳더라도, 기존 사회의 가치와 부합되지 않는다면 매도당한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플라톤도 그러했다. 공자가 그랬고 맹자가 그랬다. 마키아벨리가 그랬고 한비자가 그랬다. 어떻게 보면 선각자라는 사람들은 비운의 운명을 타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시대를 넘어선 깨우침과 그들의 말이 써진 고전 덕분에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발전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플라톤과 공자는 결국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저술로 남긴다. 마키아벨리도 그랬다. 파직당하고 무직이 된 그는 매일 4시간 동안 관복을 입고 서재에 가서 철학서들을 탐독한다. 어찌 보면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리고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논고를 달아 <로마사논고>를 저술한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면서 그들은 글을 썼다. 그래서 그들의 글은 고전으로 격상됐다.

 

위인들과 고전을 남긴 저자들의 인생은 치열하다. 마키아벨리는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악마 같은 주장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남겼다. 그것은 강대국에 밟히고 있는 이탈리아 반도에 대해서 약자인 그가 토로한 절규였다. <군주론>으로 강력한 군주를 고대하며, 외세에 휘둘리고 찢어진 이탈리아의 반도를 통일하는 군주가 나오길 고대했다. <전술론>을 저술하여 용병에 의지하지 않고 자주국방을 하자는 논의도 토로했다. <로마사논고>를 통해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으며 청년들에게 역사를 교훈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길 주장했다. 내가 책을 보며 느낀 것은 그렇게 노력하던 한 불우한 지식인의 인생이었다. 힘없는 지식인의 비애와 국가마저 약하고 분열된 부분을 토로하는 부분. 우리나라의 여러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불운했지만, 그 스스로는 굉장히 해학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 것 같다. 말년에 보이는 저술 희극 등은 마키아벨리가 불우한 인생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해쳐 나가는가에 대한 자세가 보였다. 더불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친구에게 매춘녀와의 하룻밤 등을 소상하게 희극적으로 밝히는 부분에서 좀... 가벼운 면모도 보였다. 아마도 웃음이 많은, 어쩌면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다.

 

<군주론>이 각광받고 있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너도 나도 <군주론>을 보는데 그 책을 보기 전에 마키아벨리의 평전을 읽기를 권해본다. 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이더라도,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적절한 분량에 컬러풀한 사진 배경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책의 내용도 자의적인 해석이 있긴 했지만, 괜찮았던 평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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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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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문화권에서 <삼국지>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남자들 간에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삼국지> 영웅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우리나라 역사를 몰라도 어떻게 보면 아주 스쳐 지나가는 중국의 이 시대 영웅들의 이름은 다들 빠삭하게 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전쟁소설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대의 대망 등등의 가치와 더불어 여러 영웅들이 보여주는 모습, 지략 싸움 등등 그런 부분들을 <삼국지>는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지 덕후들도 꽤나 있으며, 웬만한 사람들은 줄거리 정도는 거의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 역시 그랬다. 책의 즐거움을 느낀 것은 <삼국지> 때문이었다. 어린 내가 그 당시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자고 책만 봤었다. 방학 때였는데, 아버지께서 <삼국지> 한 질을 사다 주셨다. 1권을 대충 끄적여 보다가 시간을 보니 저녁이었다. 그리고 3권까지 연달아서 봤던 것 같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책을 보는 등, 계속해서 책만 봤던 것 같다. 그만큼 너무 재미있었던 소설이고, 많이 읽었던 소설이었다.

 

다시 본 <삼국지>는 역시 재미있었던 것 같다. 물론 예전처럼의 그 설레는 마음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읽었던 <삼국지>는 내용적인 재미에 치중한 독서였고 성인이 되어 본 <삼국지>는 비판의 대상의 독서였다.

 

우리가 흔히 <삼국지>라고 불리는 책은 원래는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를 뜻한다. 기전체 역사서로, 위지, 오지, 촉지로 나뉘는 책인데 배송지가 주석을 대거 붙인 것으로 보완을 했다. 국내에서는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의 원본만 번역이 되어 나온 상태고, 배송지의 주까지 포함된 책은 출시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여느 삼국지 사이트 카페에 가면 소상히 번역해 놓은 곳이 있다.) 그럼 세간에 <삼국지>라고 불리는 소설책은 뭐란 말인가? 바로 원-명 전환기에 나관중이라는 작가가 쓴 <삼국지연의>가 그것이다. 줄여서 우리나라에는 <삼국지>라고 하는데 정식 이름은 <삼국지연의> 가 맞다.

 

즉 실제 역사 책과 역사 소설책 두 권이 있으며, 대체로 우리가 보는 책은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의 번역을 가지고 여러 담론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대체적으로 판매량이 가장 높은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와 지금 리뷰하고 있는 황석영의 <삼국지>의 대립이 그것이다. 시중에는 삼국지 번역본이 2가지가 있다. 평역과 완역. 이문열의 책은 평역이고, 황석영의 책은 완역이다. 두 책의 우열론이 인터넷을 달구는데, 내 생각은 그렇다. 두 책은 서로 간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는 점이다.

 

이문열의 책은 사실 <삼국지연의> 라고 하기엔 문제가 많은 소설이다. 작가의 과도한 개입이 들어간 책이고 평설이 들어간 책이라 나관중이 쓴 원문의 맛 <삼국지연의>의 본연의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이라는 것은, 결국 그 원본 자체도 중요하지만 현대의 가치로 재해석을 할 수도 있는 텍스트다. 이문열의 <삼국지>가 그렇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여러 타 삼국지와는 다른 부분이 바로 조조에 대한 재평가와 긍정성이 내포되어 있는 소설이다. 이런 경향은 일본의 시각이 많이 드러가 있는데, 일본인들이 조조의 실용주의와 실력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확실히 요즘의 학계는 촉한 정통론의 주인공 유비보단 조조를 더 긍정하는 분위기인데, 그런 중심에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

 

즉 이문열의 책이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서 소설 원문은 탁색 한 것, 그 원문을 훼손한 부분에서는 건덕지를 잡을 이유가 있겠지만, <삼국지연의>를 재해석한 부분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더불어, 나는 지금까지 시판된 <삼국지>들을 거의 다 봤는데, 재미로 따지자면 이문열의 소설이 가장 재미있었다. 소설의 재미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도 이문열의 <삼국지>가 좋았었다. 이와 같이 현대적 가치로 해석된 삼국지는 이문열본을 비롯하여 장정일본, 김경한본 등이 있다.

 

반면 황석영과, 김구용, 그리고 <본삼국지> 등의 시각은 원문 <삼국지연의>를 그대로 번역하자는 입장인 것이다. 아무래도 현대의 시각으로 해석한 고전이더라도 원문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재해석을 지양하고 원전 중심의 번역서를 낸 것이다. 역사서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를 서로 비교하기 힘들 듯, 원전 <삼국지연의>와 현대적 가치로 재해석한 <삼국지>를 서로 비교하는 것 역시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둘은 삼국지라는 이름과 내용만 동일할 뿐,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삼국지를 읽을 때, 나는 <삼국지연의>로 원문을 먼저 읽고 역사서인 <삼국지>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아낸 뒤에, 현대적으로 재평가된 <삼국지>를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서의 삼국지를 먼저 읽으면 사실 좋긴 한데, 역사서 <삼국지>가 더럽게 재미없는 구성이라서, 흥미 유발로 <삼국지연의> 를 보고 심화하여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삼국지에서 나오는 여러 부분들은 후대 작가인 나관중의 이념이 고스란히 들어간 소설이다. 따라서 촉한 정통론 속에는 중화사상이 있으며, 유비와 그들의 무리는 한족을 상징하고, 절대 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조는 절대악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여포는 포악한 항우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은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 시대에 창작된 것으로, 명나라의 전환기에 써진 책이다. 즉 몽골인들에 능욕당한 한족의 자존심을 촉한 정통론으로 정신승리화 한 부분이 보이는 소설이다. 한족은 자기네들이 중국 대륙을 통치할 때 이런 중화사상 정신승리의 모습을 보이는데, 그 정신승리가 문학에서 표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삼국지>를 조금만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면, 유비에 대해서 새로운 조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비는 사실 쪼다가 아니다. 삼국지에서 표현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유비는 당대의 영걸임엔 맞다. 그리고 선한 군주로 표현되고 있는데, 실제 역사가 아닌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평가하더라도, 유비의 행동엔 모순점이 굉장히 많은 위인이다. 그런 부분에서 한족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에서는 조조의 모습이 워낙 망나니로 나오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역사서의 조조는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삼국지연의>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소설은 결국 소설이다. 소설은 허구성을 가장 기초로 한 문학작품이다. 역사 소설이라도 혹자들은 삼국지를 7실 3허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 5실 5허 수준이다. 반은 거짓이라고 봐도 된다. 실제 사서를 보면 <삼국지>가 얼마나 허구가 많은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삼국지연의>를 읽을 때는 이것이 역사다고 읽으면 곤란하다. 그냥 문학작품이다.(허구다)라고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역사 소설이 아무리 사실을 내포하고 있더라도 소설자가 붙으면 결국 허구의 속성이 가미가 됐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다. 따라서 소설 삼국지와 역사 삼국지에 대해 쓸데없이 뭐가 옳으니 갑론을박을 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했다.  

 

더불어 이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많이 참고가 된 책은 <사기>가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사기>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꽤 많이 있었다. 유비는 유방이었고, 소하에 가까운 제갈량은 장량의 모습으로 나오고 있었다. 조운의 장판파 전투는 하우영이 유방의 아들을 구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표현 자체도 거의 흡사한 것으로 봐서 나관중이 이 소설을 묘사할 때 <사기>를 반드시 참고했을 것이라고 생각도 했다.

 

내용적인 부분에서 더 비교를 해 보자면, 이문열본 비해 황석영본은 양이 적고, 제갈량 사후에 대한 내용은 황석영본이 더 풍부했다. 대체로 황석영본은 이문열본보다 전개가 빠르다. 반면 이문열본은 작가의 시각으로 분량의 재조정이 있었으며, 강조할 부분은 길게 늘렸고, 줄일 부분(제갈량 사후)은 대폭 줄인 편집이 눈에 들어왔다. 문체는 아무래도 이문열본이 더 수려했던 것 같다. 이문열 작가 자체가 글을 현학적이고 수려하게 쓰는 편인데 그런 습성이 삼국지에도 녹아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소설의 결말은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이라는 점이다. 절대선으로 칭송되는 촉한은 결국 절대 악인 위나라에 멸망당한다. 이 부분은 인간의 지고지순한 노력(제갈량의 북벌)만으로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그런 관점도 보였다. 보통 고전 소설의 주제는 권선징악이 모토다. 그러나 이 책은 결말로 보면, 선은 결국 악을 이기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황석영은 서문에 이 부분을 가지고 촉한의 부흥(한족의 부흥)을 꿈꾼 민초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그거야 한족의 입장이고, 그들에게 이민족인 내가 볼 때에는 그들만의 혈통주의가 느껴져서 굉장히 거북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애당초 촉한 정통론에 다른 민족은 논의되지 않는다. 동탁과 여포를 보라. 출신이 서량 쪽 (선비족 계열)이라고 얼마나 대놓고 까고 있는가,

 

 그리고 또 한가지 부분은 이 책을 보다 보면, 생명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수들이 몇만을 살인을 하고, 전쟁을 한다는 부분에 대해 무감각해지면서 오히려 그런 부분을 즐거워하고 즐기는 감정도 생긴다. 전쟁의 무거움이나 인간의 목숨은 소중하다는 관점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위험한 소설이다. 전쟁은 작건 크건 일어난 것 자체가 비극이다. 몇 십만의 대군이 움직였다는 것은 그만큼 백성의 고통이 크다는 부분을 의미하는데, 저작에는 영웅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고통받는 백성의 입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전쟁을 가볍게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삼국지연의>의 안 좋은 점이 들어왔다.

 

그리고 누구나 느꼈겠지만, <삼국지연의>에서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군대는 5만 이상이다. 삼국이 형성됐을 때는 10만 이상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 비교를 하면 우리나라가 굉장히 스케일이 작아 보인다고 느낄 법도 하다. 중국은 중국이고 우리는 우리다. 애당초 비교를 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괜히 그들의 군세적인 것에 우리나라를 끼워 맞춰 약소국으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비교는 상대적으로 해야 한다.

 

모쪼록 <삼국지연의>는 문제점도 많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실제, 나관중의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고 상상력이 기발하기까지 하다. 주유와 제갈량의 모략 싸움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부분인데도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였다. 이런 재미 덕분인가, 숱한 동양의 나라들이 이 <삼국지연의>에 영감을 받아왔고, 숱한 영웅들이 칭송을 한 책이기도 하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동남아 등 그리고 서구의 나라들까지 칭송하는 고전이다. 문학성이 굉장히 뛰어나고 저자 나관중 역시도 대단한 이야기꾼임에는 맞다. <삼국지연의> 가 끼친 문화적인 부분도 상당하다. 그런 소설인 만큼, 읽는 데에도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닌 비판력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문제점이 많지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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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경영
조조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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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다소 부담스러운 책이다. <천하경영>!!... 이 책은 삼국지의 유명한 영웅 조조의 문집이다.

이 책은 아쉬운 부분과 반가운 부분이 있는 책이다. 먼저 반가운 부분은 조조의 저서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책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겠고, 아쉬운 점은 완역본이 아닌 편역이라는 점이다. 1998년도에 나온 책으로 꽤나 연식이 지난 책이지만, 이 책을 끝으로 조조의 저서는 번역되지 않고 있다. 조조에 대한 개론서나 조조에 대한 평전, 삶을 조망하는 책, 처세서 등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조조가 쓴 글에 대해서는 아무도 번역을 하고 있지 않다.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나는 그래서 조조를 찬양하는 동양 고전 전문가가 주로 책을 내는 출판사에, <조조집> 완역에 대한 건의를 했는데, 검토해 보겠다고 하고는 1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ㅠㅠ..

 

아무튼, 따라서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된 유일한 조조의 글이라는 점이다. 글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도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조조를 평가하기에 앞서 평전이나 그런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의 글을 살펴보고 그에 대해서 조망을 해야 한다. 특히나 다른 개인 저서들과는 다르게 조조는 신분이 군주였다. 군주의 특성상, 조조의 문집에는 공문서가 많다는 뜻이고, 이 부분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자의적으로 글을 써 내려간 모습보다는 어느 정도의 객관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공문서도 자의적인 부분이 있긴 하다만... 대체적으로 본다면 그렇지 않나 싶다.)

 

작은 책이고 짧은 책이라서, 읽는 건 금방 볼 수 있다. 다른 삼국시대의 군주들과 다르게 조조는 특별한 점이 있었으니, 시를 좋아하고 많이 읊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조의 문집인 이 책에는 조조의 시가 처음으로 나온다. 역시 말위의 군주라 그런지 시에서 기개가 느껴졌고 웅장함이 느껴졌다. 더불어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슬픔이나, 백성들의 고통 등을 적나라하게 진솔하게 표현하는 부분에서 새로운 조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비와 손권의 경우는 사실, 그렇게까지 공부에 취미가 없었는데, 조조는 전쟁터에 나가서도 밤에 독서를 하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은 군주다. 그런 군주라서 그런지, 시를 읊는 그런 모습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워 보였다. (유비와 손권은 남긴 시가 없다..)

 

시를 다 보고 나면 대체적인 공문서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부분은 조조의 실리주의가 잘 나타나있다. 동양은 대체로 관료나 인재를 뽑을 때 중요시하는 것이 도덕성이다. 능력이 없더라도 덕이 있다면 그 사람을 천거하여 일을 맡기는데, 조조가 활동하던 시대는 난세였다. 책의 여러 구절에는 능력만 있으면 덕성이 좀 모자라더라도 천거하여서 쓰라는 조조의 글이 많이 있었다. 조조는 시국이 치세가 아닌 난세라서, 이런저런 덕성 같은 것을 따질 시기가 아니니, 능력만 있으면 인재를 천거하여 올리라고 했고, 부하끼리 덕성에 대한 흠을 잡자, 중재하며 지금은 그런 부분을 서로 간에 지적할 때가 아니라고 일갈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부분에서 조조는 기존의 전통적인 동양의 인재관을 탈피하며, 능력을 앞세운 인재관을 보여줬다. 이런 과감한 부분 때문에 그가 숱한 군웅들을 이기고 황하 일대를 장악했겠다 하는 느낌도 받았다.

 

조조는 <삼국지연의>에서 굉장히 탐욕스러운 군주로 묘사된다. 그러나 역사의 조조는 그렇지 않았다. 책에 나오는 글 중 놀란 것은 옷을 10년째 같은 것을 꿰어 입을 정도로 검소했고,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지 않는 모습 등이 있는데, 군주의 입장에서 솔선하여 검소를 행한 부분에서 놀라웠다. 더불어, 죽기 전에도 유언에, 쓸데없이 과하게 상을 하지 말고, 전시 상태니 모두 짧게 조문만 하고 각자 맡은 일이나 충실히 하라는 부분에서, 그의 생활 역시도 실용주의적인 모습이 보였다는 점이다.

 

조조는 굉장히 모순적인 인간이다. 잔인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한없이 너그러울 때도 있는 군주였다. 거기다 그가 주로 본 책은 놀랍게도 유학이다. 그의 치국에 대한 여러 부분을 본다면 법가적인 시각이 많으나, 이 책에 나온 그의 글에는 유학서들을 인용한 글이 대거 나왔다. 조조가 주로 봤던 책은 유학서와 병법서다. 게다가 시나 여러 글을 통해서 그는 유학의 성군이 되기를 갈망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의 치국의 방법은 법가의 처세가 돋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는 자기 내면의 수양은 유가적 사상으로 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런 부분을 조조에게 배웠다. 유학은 솔직히 문제가 많은 학문이긴 하지만, 마음을 깔끔하게 하는 데에는 이보다 더 좋은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 조조는 외법 내유를 썼던 모순적인 군주였다.

 

조조의 가장 큰 공은, <손자병법>을 집대성 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손자병법> 13편은 조조가 모두 정리한 <손자병법>이다.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은 예전에 유실되고 조조의 시대에는 여러 <손자병법>이 난무하고 있었다. 조조는 그 병법서들을 다 모아서 스스로 <손자병법>을 정리하여 13편으로 추슬렀는데, 지금의 현행본을 만든 것이 바로 조조이고 이 <손자병법>에 주석을 써넣었다. 역대 <손자병법>에 주석을 단 여러 위인들은 조조를 의심했다. 과연 이 <손자병법>의 원문이 조조의 자의적 개입이 있을 거라는 온갖 추측을 다 했다. 촉한 정통론이 대두되자 조조의 주석은 매도되기 시작되고 가치 폄하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후대에 은작산 죽간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는데, 여기에 죽간본 <손자병법>이 출토됐다. 그래서 현행본 <손자병법>과 비교를 해 봤는데,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조조의 정리는 정확하고 정밀하게 원본을 복원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만큼 조조는 병법에도 조예가 깊었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나 <손자병법>의 서문에 조조는 역시나 유학서들을 대거 인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역시 조조의 해박한 유학 경전의 지식이 돋보이는 서문이었다. 조조는 이 <손자병법> 외에도 <사마법>에도 주석을 달고, 스스로도 병서를 지었다고 하는데 아쉽게 다 유실됐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의 <손자병법>의 주석을 <맹덕신서>라는 -_- 것으로 폄하하였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손자 13편을 조조가 다 정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엔 안 나왔지만, 내가 읽어본 조조의 주석이 달린 <손자병법> 역시도 주석이 간결하면서 핵심적인 논의를 잘 이끌어내고 있었다. 조조의 글쓰기 특징은 장황하지 않으며 핵심만을 찌르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주석에도 잘 나타나져 있다. 당시 한나라 학풍은 주석을 엄청나게 길게 고증하는 훈고학이 발달하였는데 대세를 따르지 않고 짧게 쓴 면에서 조조의 실용주의적인 부분도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글은 대부분 경전이 인용되고 있으며, 숱한 역사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박학다식함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조조는 유비와 손권과는 다르게 참모들과 스스로 회의를 주도했던 군주였다. 보통 유비와 손권은 뛰어난 명참모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따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조조는 달랐다. 조조는 스스로도 뛰어난 모사였고, 당대의 참모들과 의견을 나눔에도 막힘이 없던 영민한 군주였다. 그런 그라서 참모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기보단, 참모들의 의견을 다 듣고 스스로 종합적인 결론을 내린 적극적인 군주였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실패를 해서, 실수도 하곤 했지만, 전체적으로 참모들과의 교류를 봤을 때 능동적인 군주였다.

 

그런 바탕에는 해박한 지식과 지혜가 뒷받침되야 하는데, 그런 증거를 책에서 볼 수 있었다. 여러 선현들의 책을 인용하는 부분 등에서, 그의 탁월한 독서능력이 보였다. 거기다 신하들에게 학문을 권하는 교지를 내리는 등 문풍에도 힘을 썼던 군주였다.

 

게다가 손권에게 적벽대전 때 보낸 교지 등을 볼 땐, 좀 허세도 잘 부리는 위인인 것 같았으며, 적벽 교전 후 손권에게 보낸 교지에는 변명을 하는 부분 등에서 재미있는 모습도 보였다 몇 마디 옮겨서 오자면

 

'적벽에서의 전투는 때마침 병을 얻은 터이라 배를 태우고 물러나 주유로 하여금 헛된 명성만 얻게 하였다.'

 

'적벽에서 곤경에 빠진 것은 운몽택을 지나던 중 짙은 안개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라는 부분에서 정신승리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들에게 남긴 글 역시도 인상적이었다. 셋째인 조식에게 보낸 글의 요지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마라.'라는 주제로 글을 짧게 보냈는데, 이런 부분에서 영웅 역시도 여느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는 부분을 알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조조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닮은 점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는 습관, 시를 좋아하는 습관, 특히나 병법서를 좋아하는 습관, 등등 비슷한 점도 보였다. 그런데다 현실적인 그의 시각 역시도 공감하고, 능력 위주의 인재관, 실용주의적인 면은 본받아야겠지만, 잔인한 점은 본받아선 안 되겠다. 어쨌든, 국내에 나온 유일한 조조의 문집이고, 완역이 아니라서 너무나도 아쉬운 책이다. 조식의 문집인 <조자건집>은 완역이 되어 출간됐던데, 왜 그보다 더 위대한 조조의 문집은 아직까지 완역되지 않는지 참 아쉽다. 제갈량의 문집은 완역됐는데... 하루빨리 <조조집>이 완역이 나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천하경영(ㅠㅠ) 이런 거 좀 제목으로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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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임건순 지음 / 시대의창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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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독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옛 글들을 탐구하고 싶은 특이한 취미가 있어서 부담 없이 문헌들을 들추고 있지만, 사실 나의 이런 괴짜스러운 취미를 온전하게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전은 현세에 통용되는 사상이 아니고 지나간 사색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알아듣기 쉽게 편리하게 써 놨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불친절한 편집에 도통 지금과는 맞지 않은 내용들 때문에 사실 고전과 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언어도 사상도 관념도 현세와 맞지 않으니 일단 적응 자체에서 어려움을 느낄 법 하다.


최근 '인문학 만능론'이 대두되면서, 고전에 대해서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는 움직임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기존 고전들을 재해석한 입문용 텍스트도 많이 나왔으며, 고전 만능론을 칭송하는 개론서들도 많아진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갑작스러운 대중의 고전 관심이 아니꼽게 보이기도 했다. 수수깡 갈대처럼, 예전에는 천시하고 밥 안되는 학문이라고 비난하던 대중이 갑작스럽게, 몰아부는 인문학 만능론에 너도 나도 고전을 칭송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원래부터 고전을 읽어오던 나로서는 꼬아서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건대, 이런 나의 베타적인 시각 역시도 옳지 않음은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다. 인문학을 성행하자!, 인문학을 다시 조명하자는 움직임에 비해, 실속 없는 책들이 너무 난무하고 있어서 마치 보여주기식의 인문학 만능론을 조장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었다. 사실 이렇게 대중적으로 인문학의 관심이 높아졌을 때, 정부나 출판업계에서는 좀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데, 입문자용 도서들이나 강연만 난무하니 솔직히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 더 심화 학습을 하지 못하는 중견층 고전 마니아들은 난감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지금 시대에 재해석되고 심화 학습이 이뤄지는 사상은, 유명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저자들의 사상만 조명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동양 사상으로 본다면, 사마천의 <사기>의 재조명, 그리고 사상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유교사상 중심주의 등등


주류 사상의 재조명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유교사상이나, 사마천의 <사기>의 중요성은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 문제는 주류 사상이 아닌 비주류에 대한 조명이 이뤄져야 하는데, 도대체 이런 부분에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중의 관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연구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작금의 인문학 열풍이 아직도 '사상적 편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나는 느끼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병가 사상에서도 맨날 <손자병법>만을 강조 또 강조하고 있다. 아니 무슨 병서가 <손자병법> 한 권 밖에 없는가? 알고 있다. 손무의 병서가 워낙 중요하다는 것은 병가에 한때 빠져서 지낸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도대체 <육도>, <삼략>, <사마법>, <이위공문대>, <울료자> 등등의 병법은 왜 조명하지 않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무조건 병법은 <손자병법>만이 최고고 <손자병법>만이 병법의 정도라고 기존의 책들은 가르쳐왔다.


그러던 찰나 나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줄 책을 발견했다. 바로 손무와 대칭적인 인물인 오기, 즉 오자라고 명칭 되는 사상가를 다룬 책이었다. 책은 개론서이기도 했지만, 개론서를 넘어서, 저자 특유의 해석으로 오기와 <오자병법>을 독해하고 있었다. 물론 한 개인의 해석이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랴, 나는 이런 시도가 참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저서 중 예전에 유의 깊게 본 책이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의 전작인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난 천민 사상가>였다. 전작에서 저자는 유교와 쌍벽을 이뤘던 묵적(묵자)의 사상을 올바르게 복원하고 공자에 의해 가려진 그의 사상을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주의 깊게 읽었다. 현전하는 묵자 사상의 책은 <묵자> 한 권뿐인데, <묵자>에 대해서 번역한 출판사도 드물었고, 그런 상황이니 묵자에 대한 삶의 조명과 사상의 조명을 다룬 책은 공자에 비해서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 현실이었다. 저자는 그래서 묵자에 대한 책을 썼다.


그리고 저자는 이번에도 손무에 가려진 오기에 대해서, 소상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책은 오기의 삶을 다루면서, 오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 그리고 오기의 군대 사상과 병법 사상, 그리고 나아가 정치사상과, 리더십까지 전체적으로 조망한 역사 책이기도, 고전 해설집이기도 했었다. 책값이 조금 비싼 편이긴 했지만, 서점에서 살펴보고 충분히 구매 가치가 있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얼른 샀던 책이었다.


유교사상을 공맹(공자와 맹자)의 사상이라고 하고, 도가사상을 노장(노자와 장자)의 사상이라고 한다면, 병가 사상은 손오(손자와 오자)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멸의 역사서라 칭해지는 <사기>에 의하면 당시 백성들의 집에는 집집마다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가지고 있었고, 이 책들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두 책은 동등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손오병법이라 통칭되며,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동등한 위상으로 대우받았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다르다. 병법의 A 이자 Z는 <손자병법>이고 다른 병법서들은 별로 중요시되지 않고 있다. 물론 <손자병법>은 뛰어난 병서다. 나에게 있어서도 충격과 감동을 전해 준 병서이고 인생의 책 중 한 권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고대와는 다르게 다른 저서들은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손자병법>만이 추존되는 작금의 현실이 조금 안타깝긴 했었다.


책은 오기의 <오자병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기술하지 않았다. 부분 부분마다 잘라서, 재조립을 거쳐,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하고 있었다. 더불어 <오자병법>의 사상을 이야기할 때, 예시로 든 부분은 오기의 실제 역사적인 행동을 예로 들었었다. 사실 아무 지식도 없이 <오자병법>을 읽으면 책이 내포하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대강대강 읽어나갈 수 있다. 동양 병법서는 상당히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현실성을 내포한 사상이지만 서술 자체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거국적이기 때문에 (사실 <오자병법>은 <손자병법>에 비해 좀 더 구체적이긴 하다만...) 통으로 읽어서는 남는 것이 없기 마련이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상당히 친절하게 <오자병법>을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오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는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사마천이 <사기>를 기술할 때 오기를 잔인하게 묘사했는데, 아내를 죽여서 벼슬을 구한 자, 증삼의 문하에서 유학을 배워놓고 어머니의 제사를 치르지 않은 부덕한 자, 재물과 여색을 탐한 위인 등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기에 대한 <사기> 문헌을 자세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오기라는 인물은 상당히 특이하고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 마치 그 시절의 전형적인 인물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중 삼중 사중인격자처럼 모순 투성이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사기>에서 잔인한 오기가 왜 <한비자>와 <여씨춘추> 등등의 문헌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는가


그리고 실제 오기가 재물과 여색을 탐하고 소인배처럼 행동했다면,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모략을 꾸미는 모습도 있을 법 한데, 사서 속의 오기의 모습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병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 (종기를 빨아주는), 일반 병졸과 같이 행동하고 일반 병졸과 같은 대우로 군대를 이끈 모습, 군주에게 돌직구 상소를 자주 날리는 모습 등등을 볼 때, 그는 상당히 의리가 강했고, 인간적이었으며, 군주에게 충성을 다한 충신의 모습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기에 의해 국토가 처음으로 풍비박산 난 진(秦) 나라의 문헌 <여씨춘추>에서 오기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본진을 유린한 적국의 장수를 성인으로 추앙하기란 쉽지 않은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는 이런 오기의 모순에 대해서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일리가 있었다. 첫 번째로 오기 시대의 기득권 귀족들이 굴러들어온 돌인 오기를 질투하여서 중상모략을 꾸민 것, 두 번째로 후대의 유교 중심적 역사가들이 그런 중상모략을 사서에 공식적으로 기록하면서 오기는 빼도 박을 수 없게, 폄하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오기는 능력은 출중했지만 신분이 비천하여, 지지 세력이라곤 군주의 총애 외에는 없었다. 그런 그가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했으니, 당대 폐쇄적인 귀족들이 얼마나 반발하겠는가,


 오기는 노나라 -> 위(魏) 나라 -> 초나라 등으로 국적을 옮기는데, 항상 공을 이루고 귀족의 견제 때문에 도망 나오는 신세였었다. 야인, 천민 출신의 그는 기존의 신분제의 한계를 파악하고 귀족들의 특권을 줄여 중앙집권화를 이루려 노력했었다. 그리고 상벌을 공정하게 포상하며, 천민이더라도 공적을 이루면 국가에서 합당하게 포상하려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당연 백성들은 환영했지만, 당대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오기를 축출해야만 했다. 결국 오기를 지켜주던, 명군들이 죽을 때 오기는 정치적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초나라에서도 그렇게 죽어야만 했었다.


사실 오기와 같은 전쟁영웅들은 말로가 비참한 경우가 많다. 한신이 그러했으며, 서양으로 보면 스키피오가 있겠다 더불어 개혁가들의 운명도 좋은 경우가 없는데 오기는 군권과 정권 두 부분에서 공격받을 부분이 많았으니 어쩌면 죽음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보수층은 두터웠었다. 그 보수세력의 이너서클을 깨려는 오기는 도리여 결국 죽고 말았다. 이런 사례는 역사상 숱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책에서 오기가 묵학(묵자의 사상)을 배웠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출처 주석 처리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기가 병가의 사상을 배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오기가 묵학을 직접적으로 배웠다는 주장은 조금 과한 해석이 아닐까도 싶었다.


가장 재미있게 해석한 부분은 아무래도 3챕터의 '손자 vs 오자' 군신들의 전쟁관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내세우고 있는 논리는, 손무는 귀족주의적 장군의 모습이며, 오기는 천민 출신 장군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아주 일리가 있었다.


사실 <손자병법>은 굉장히 객관화된 수치를 강조하고 있다. 전쟁은 속임수이고, 전쟁은 사람에게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황)에게서 구한다. 손무의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적국 안에서 약탈을 강조하고(보급은 적국에서 충당해야 한다는 사상은 결과론적으로 약탈을 허용하는 주의다.), 전쟁은 경제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계산기를 잘 두드리고 본전보다 더 이득을 낼 수 있어야지만, 비로소 군대를 출정시켜 베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런 부분들을 인용을 통해서 조목조목 밝혀내고 있었는데, 실제로 <손자병법>에서는 군대를 출병시킬 때 성을 가진 백성(즉 귀족, 이 당시에는 성을 가진 자는 귀족이다.) 의 재산이 고갈되면 큰일이라고 강조한다. 


귀족들을 옹호한다고 하더라도 손무의 사상은 당시 춘추시대의 전쟁관, 귀족들의 허세적 스포츠 개념 - ex 송 양공의 고사 -에서 많이 탈피한 사상이 보인다. 적을 기만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손무의 가르침은 확실히 예와 격식을 차리며 마치 귀족 놀음처럼 전쟁을 하던 춘추시대의 전쟁관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손무는 유형적 가치를 중요시한 사상가였다. 그에게 있어 전쟁은 '경제력'이며 장군은 모든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야 전쟁을 수행하는 그런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반면 오기의 사상은 달랐다. 물론 오기 역시도 손무가 강조하는 경제력과, 물리적 수치를 중요시하긴 했지만 손무에 비해 무형의 가치에 좀 더 힘을 실었던 사상가였다. 애초에 병법의 가장 큰 속성은 속임수라는 점이다. 이 점은 오기도 인정하고 있고, <오자병법>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오자는 상황적인 여건보다도 '정신력'을 더 강조했었다. 손무가 병졸들을 신용하지 못하는 그런 고질적인 귀족적 시각을 가졌다면, 오기는 그럴수록 병졸들과 함께 하며, 격식을 없애고, 장수가 솔선하여 병졸들과 함께 같은 대우로 군을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병졸과 함께 하여, 병졸을 정예화하여 손발처럼 부린다는 사상.


흔히 오기를 법가적 인물로 비유하는데, 책에서 주장하는 것 대로 사실 오기는 법가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기는 유가적인 부분이 다분하다. (책에서는 묵가적 겸애사상과도 연결 짓는데 개인적으로 그 부분은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 분명 오기는 공자의 수제자 증삼의 제자였었고, 파문을 당했어도, 유세를 하러 다닐 때 유자 옷을 입고 다녔었다. 그런 부분에서 오기는 유학자로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고 자신의 명예에 대해서 상당히 중요시한 인물이었다.


병사들에게 다가가 병사들의 마음을 얻고, 병사들을 믿고, 함께 하는 부분은 유가에서 주장하는 인의 정치와도 닮았다. 더불어 손무가 전쟁을 경제력으로 해석했다면, 오기는 전쟁을 정치력으로 확대 해석했었다. <오자병법>의 첫 챕터가 도국(道國) 즉 정치에 대한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원론적인 부분 같아도, 상당히 의미심장한데, 지도자에게 덕을 겸비하라는 사상 등은 유가사상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흔적이었다.


그런 오기의 군사정책은 병졸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고 유대감을 강화하면 어떤 적도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항상 이길 세를 형성하고 싸우라는 손무의 사상과는 대조적인 부분이었다. 손무의 사상이 깐깐하고 객관화된 수치를 강조하고 손해가 조금이라도 있거나 불리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전쟁을 하지 말라고 하는 반면 오기의 경우는 다소 좀 불리하더라도, 정예화된 군사가 있다면 해 볼 만 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저자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또 한가지 이야기해보자면 손무라는 인물은 지금 실존 인물인지 가상 인물인지 혼동되는 인물이다. <춘추좌전>,<국어>,<전국책> 등등의 책에서 오기의 흔적은 분명히 드러나는데 반해 손무의 기록은 없다. 합려를 패자로 만든 1등공신의 이름이 당대의 역사 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손무라는 인물이 가공된 인물이라고도 주장한다. 그에 반해 오기는 확실한 실존 인물이다.


 두 병법은 사실 상호보완적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사실 객관적인 세를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고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은 주도권 싸움인데, 어느 누가 주도권을 내 주고 싸우겠는가, 다만 최대한 노력한다 하더라도, 불리함을 가지고 싸워야 할 때도 있는 게 인생이고 전쟁이다. 그럴 때는 손무가 말한 것처럼 피하기만 해야 할까? 그래야 했다면, 이순신의 명량 대전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기는 자신의 군사 정예화 이론을 실제로 검증한다. 당시 최고의 국가인 진(秦) 나라의 50만 대군을 정예화된 5만 군사로 초토화시켜버린 명장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코너에 몰렸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손무의 사상보다는 오기가 강조한 정신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전쟁을 해석하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경제문제이기도 하고 정치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 사상가의 생각을 상호 대립적으로 이해하기보단,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시대적으로 오해받아온 사상가들을 위해 진혼굿의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묵자와 오자에 이어, 순자, 한비자, 안자 등등을 조명하고자 한다. 나는 그의 글쓰기에 크게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소 좀 비약이 있더라도, 조명하지 못한 사상가들을 풀어내 주는 그의 글쓰기에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아쉬워한 플라톤이 떠올랐었다. 플라톤 역시 스승의 억울함을 숱한 대화편으로 남겼듯, 작가의 죽은 사상가들을 위한 진혼굿 글쓰기 역시 비슷한 예가 아닐까, 비주류에 대한 글쓰기, 그것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나는 존중하고 응원하고 싶다.   


책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지도 자료를 첨부하여서, 오기의 이동 경로나, 오기의 망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해를 도왔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나는 이 시기에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서 받아들이기 쉬웠지만, 여러 나라가 중구난방으로 나오는 탓에 일반 독자들은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나 싶었다. 그 부분이 아쉽다면 아쉬웠었다.


사실 오기의 실제 성격은 어땠을지 알 수가 없다. 실제 오기가 다중인격자라서,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벼슬을 얻었을 수도 있겠고, 재물과 여색을 은밀히 탐하면서, 공적으로는 강직한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사서에서 보이는 부조화적인 부분, 그리고 역사 기록물에서 다르게 해석되는 그의 모습, 적국에서조차 성인으로 추앙받는 그의 모습, 병사를 지극하게 아낀 그의 모습, 미천한 출신인 그가 공적을 이루고도 기득권의 견제로,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삶, 그 삶을 반복했던 불우한 개혁가...


그렇게 병사를 자기 자식처럼 아낀 장군이 자기 아내를 죽였을까?

그렇게 군주에게 바른 돌직구를 날린 재상이 과연 재물과 지위를 탐했을까?


만약 이 모든 것이 날조된 귀족들의 음해라면, 그것을 의심없이 기록한 사마천,사(史) 성이라 불리는 사마천 역시 편협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긴 사마천 그 역시도 인간이니까,



인상 깊은 구절


저는 고국에서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의 목을 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어머니의 상례를 치렀습니다.

저는 스승의 따뜻한 배웅을 받고 떠났습니다.

저는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 자였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손자병법 - 손무>

<오자병법 - 오기>

<묵자 - 묵적>

<춘추전국시대 7 - 공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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