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제 - 전쟁과 대운하에 미친 중국 최악의 폭군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전혜선 옮김 / 역사비평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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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역사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래도 영상매체가 아닐까? 역사학은 가장 중요한 학문이지만, 최근에는 등한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해버린, 7차 교육과정의 폐해 덕분에, 이과 학생들은 역사에 대해서 무지하게 됐고, 관심조차 없게 됐다. 그뿐일까, 문과 학생도 국사 과목은 분량이 많다는 이유로 선택을 기피하게 돼서, 가장 중요한 학문인 국사가 그토록 천대받았던 것이 우리 시대 역사교육의 자화상이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그제야 부랴부랴 고시에서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도입하는가 하면, 여러 기업들도 한국사검정능력시험에 가산점을 부여하고,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찌하랴, 뒤늦게 역사교육을 강조한들, 이미 나와 함께 지내온 우리 세대들의 역사적 무지(無知)는 상쇄될 수도 없으며, 어쩌면 우리 세대는 역사적 무지의 세대로 낙인찍힌다 한들, 뭐라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이 모든 것에는 역사교육을 등한시 한, 정부 교육정책의 방향이 근본 원인이겠지만, 역사의 소명을 자각하지 못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우리 세대의 인식에도 그 원인이 있음을, 나는 느낀다.


그런 역사의 무지 세대인 나에게 있어, 사극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었고, 역사교육이 강조되는 지금도 사극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영상의 힘은 텍스트를 압도한다. 같은 지식을 습득하더라도, 책으로 보는 것과 시각매체로 보는 것의 여운은 월등하게 다르다. 그런 면에서 고전적인 지식 습득법이라 할 수 있는 역사책 읽기는 따분함을 불러일으키는데, 반해 사극은 적절하게 재미와 사실의 사이를 줄타기하며,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유도한다. 문제는 이런 사극들도 요즘은 너무 시청률을 의식해서, 재미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사실보다는 허구의 이야기들을 더 중요시하며, 사실인 것 마냥 다루고 있다는 점. 이런 부분들이 솔직히 걱정스럽다.


<수양제> 책을 보면서, 내가 떠오른 것은 그 예전 김갑수 씨가 능청스럽게 연기하던 그 '수양제'가 떠올랐다. 아버지를 죽인 군주, 형을 죽이고, 형의 자식을 몰살시키며, 아버지의 첩들을 자신이 취한 군주, 대운하 건설을 통해 백성들을 가렴주구로 다스린 군주, 허욕이 부른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3번이나 패한 군주, 주색잡기에 능한 군주... 그러한 모습을 김갑수 씨는 사극 '연개소문'에서 잘 연기했었다. 사실 사극 '연개소문'의 완성도는 별로였었지만, 당시 김갑수가 연기한 수양제는 드라마 제목이 '연개소문'이 아니라 '수양제'라 할 정도로 원맨사극의 포스를 풍겼었다. 거기다 수문제를 연기한 김성경과의 조합도 상당히 볼 만 했었다. 솔직하게 말해 당시 연개소문을 연기한 이태곤은 대사를 읽는 수준이었는데, 그래서일까 사극의 초반부는 가히 '수양제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책을 보며 그 시절 재미있게 봤던 그 김갑수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며, 아버지를 살해한 김갑수의 모습, 그리고 놀란 아버지의 후궁 앞에서 조용히 반지를 건네며 능청스럽게 아무 일 없다는 냥,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퇴폐적이고 엽기적인 인물이나, 타락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가 리뷰하고자 하는 <수양제> 역시도 매력적인 책이라 생각했다. 특히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이민족의 왕조에 대해서 상당히 베타적이었다. 조선 이래로 계속해온 전통이며, 지금도 사실 출판되는 저작을 따져 봤을 때 이런 경향이 이어지는 것 같다. 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진나라, 수나라, 당나라, 청나라에 대한 책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나와봤자, 당 태종 이세민 정도만을 다루고, 다른 군주들에 대해서는 조망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수양제는 폭군의 대명사였고, 상세하게 풀어 놓은 대중 저술도 없었던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양제를 무지막지한 폭군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매도했었다.


하긴 우리나라 출판계 현실이, 우리나라 군왕들의 평전도 거의 없는 마당에, 남에 나라까지, 특히 남에 나라의 폭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겠는가 그렇게 위안을 해 봐도,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최근 진시황에 대한 평전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으며, 청나라에 대해서도 새롭게 조망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 최대의 폭군이라 칭하는 '수양제'에 대해서도 평전이 나왔다. 재미있는 점은 중국인이 쓴 책이 아니라 일본 역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쓴 책이다.


저자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몰랐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나는 놀랍고 또 감동이었다. 일본인이 쓴 중국 황제 역사라서, 조금 편파적으로 해석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책을 읽는 순간 너무나도 놀랐다. 이 책의 가장 큰 서술적 특징은 바로 쉽다는 것이다. 책은 복잡한 시대인 남북조 시대를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 문제와 수 양제, 그리고 나아가 당나라의 태동까지도 다루고 있었다. 물론 수나라 양제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이 정도면 <수양제> 평전이 아니라 '수나라'의 역사라고도 할 만 했다. 복잡한 시대상황을 일본인 특유의 간결한 필법으로 단순화하여 조곤조곤 설명하고 있었다.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더라도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저작의 특징이었다. 현학을 덜고, 대중화를 추구했으며,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핵심적인 내용은 가득한, 그러면서도 인간 군상의 본성을 담은 책이 이 책이다.


거기다 편파적인 해석은 없었으며, 진지하고, 성찰적인 태도로 역사를 밝히려는 저자의 노력이 느껴졌던 저서였다. 사실 역사 평전의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은 깊이다. 장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깊이 있는 역사서는 사료와 실제 상황의 분석, 그리고 역사학자의 분별력 있는 의견에 만났을 때  인간 본성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부분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다만 단점의 입장에서 깊이를 보자면, 너무 전문적인 사료와 너무 복잡한 상황을 어렵게 분석해버리면, 아무리 효용론적 가치의 역사책이라 하더라도 접근 자체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흔하게 말하는 말 '역사책은 두꺼워서 싫어'는 이런 부분을 상징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두 가지의 장단점, 역사학의 딜레마를 극복하였다. 부피는 줄이면서 핵심은 담은, 그러면서도 인간 본성의 통찰력을 한결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역사서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수양제>라는 책이었다.


책의 본문은 230쪽 밖에 되지 않으며 나머지 232~261쪽은 그야말로 '심화 학습' 수양제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전문적으로' 다뤘다. 즉 너무 어렵고 고증이 필요한 '논문 포스의 지식'들은 뒤에 따로 편제했으며, 본문에는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하듯, 재미있고 간결하게 수양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우리는 보통 수양제가 막장의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그런 관점을 조금 비판한다. 한 인간은 그 사회 관념으로부터 자연스러울 수 없다. 아무리 스스로가 시대적인 관념을 거부하려 하더라도 환경이라는 요소는 인간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 중국의 남북조 시대는 그야말로 '막장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 시대의 천자들은 하나같이 다들 포악하고, 음탕했으며, 선정을 베풀기보단, 폭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였다. 아버지의 첩을 강탈하거나 때로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죽이기도 하며,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것이 궁궐에서조차 보편화된 그야말로 중국 치세의 '막장의 시대'였던 것이다.


물론 수문제가 중국 남북조를 통일하여서, 당시의 막장 시대를 끝내고 조금은 다른 시대를 열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수문제 역시도, 권력을 쟁탈하고, 자신의 형제들을 의심하고 견제했으며, 권모술수를 자행한 점 등으로 봤을 때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책에서 짚고 있다.


역사학에서 가장 경계를 해야 할 부분은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가령 절대 선을 상징하고 그에 걸맞은 절대 악의 축을 '설정하는 것', 혹은 이 반대로 절대 악에 발맞추어 '절대 선'을 설정하는 것. 이러한 이분법적인 발상은 유교 사회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는데(단적인 예로 유학이 추구하는 이념과 그 외의 지식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 수양제가 바로 대표적인 그 예였다. 앞서 말했듯, 당시 남북조시대의 군주들은 막장의 시대였었다. 그런데 유독 남북조 군주들은 묻혀버리고, 막장의 황제 하면 떠오르는 것이 수양제라는 점. 그런 부분은 아버지인 수문제와 수양제를 비교한 부분에서 파생된 부분이었다. 유학자들은 수양제의 악업을 강조하며, 대조적인 사람을 내세워야 했는데, 수문제를 선의 축으로 삼음으로써, 성군의 수문제, 악군의 수양제로 공식화하였다.


우리는 근시적인 분류를 사극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방영한 퓨전사극들은 아버지 vs 아들이라는 구도 아래에서 아버지는 무조건적으로 악의 축, 아들은 성군이라는 공식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시각 역시도 거슬러 올라가면 유교 관념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해버리는 사관과 일통한 면이 있음을 느꼈다. 저자는 명확하게 이 점을 비판하고 나섰는데, 이런 부분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부분이었다.


역사는 그리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권선징악의 구도 전래동화처럼 모든 것을 선과 악, 이분법적인 분류로 평가하기엔 인간이란 동물은 너무도 복잡하다. 선과 악이 뒤섞여있는 모습이 바로 인간이고, 특히 사학에서는 전대의 관점들을 다시 검토하여서, 올바르게 선과 악을 사실적으로 분별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수 양제가 폭군이 된 점은 전대의 남북조시대의 영향도 있었는데다, 마찬가지로, 수문제의 행실에도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형제 간의 우애를 강조하라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형제들과 반목하며 정략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황자들의 가정교육을 가르치지 않아서, 하나같이 다들 망나니로 커 왔었고, 주색잡기에만 능했었다. 너무 받들여서 키운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물론 수문제는 한 나라의 제국을 건립했고, 중화 대륙을 통일한 황제로써, 뛰어난 군주였었다. 근검절약했으며, 내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국가기강을 다진 군주였다. 그러나 그가 자행했던 권모술수들은 고스란히 수양제에게서 볼 수 있었다. 아니 수문제에 비해 수양제의 권모술수는 더 발전했었다.


저자는 분별 있는 시각과 사서의 맹점들을 짚어나가며, 수양제가 부군인 수문제를 살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흔하게 인식된 아버지를 죽인 폭군이라는 점은 수나라 역사책인 <수사> 본기에는 나오지 않고 열전에 잠깐 나온 부분인데, 후대 사가들은 악의 상징적인 축으로 수양제를 설정하며, 열전의 이야기를 정사로 편입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양제는 아비를 죽이고, 형을 죽인 폭군으로 인식됐었다.


'연개소문' 드라마에서 수양제를 연기했던 김갑수 역시도 능청스럽게 아버지를 죽인 모습이 떠올랐다. 저자의 말 대로라면 이 부분은 아무래도 각색된 것이리라. 여기서 저자의 생각을 인용해본다.


'수양제 전기는 특별히 소설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역사적 사실 자체가 재미있는 이야기다. 아니, 오히려 날것의 역사적 사실이 훨씬 재미있고, 읽는 맛에도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역사적 사실만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하고 있는 수양제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각색된 모습이 많았다. 책에서는 그런 부분을 조곤조곤 짚어주고 있었다. 하긴 솔직히 어떻게 보면 수 양제도 피해자이기도 하다. 당대에는 그런 막장의 군주들이 '보편화'된 막장의 시대였는데, 다른 막장들은 언급되지 않고, 유독 '수양제'만 언급되니, 그것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나는 왜 그가 폭군의 아이콘으로 됐는지 이해하기도 했었다.


첫 번째로, 과한 토목공사와 전쟁이었다. 특히 중국 역사상의 궤적이라 할 수 있는 '대운하 건설'을 감행했었다. 이때 완성된 대운하는 지금의 중국의 강 물줄기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고 있으며, 중국의 화북과 강남, 북쪽과 남쪽의 교통에 많은 도움이 됐었다. 그러나 그러한 물줄기를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공사 인력이 동원됐었다. 여기서 연상되는 군주가 있다. 바로 진시황제다. 시황제는 중국 대륙을 통일하자마자, 흉노족의 위협을 막고자 저 유명한 만리장성을 쌓아버린다.


수양제 역시, 명목상으로는 북쪽과 남쪽을 연결 짓는 수로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사의 합리화를 주장했는데, 물론 이 대운하 건설은 중국 대륙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공사였었다. 그러나 전란에 전란이 덮진 막장의 시대에서, 이제 겨우 통일왕조가 들어섰는데, 과연 무리해서 그렇게 공사를 해야만 할까, 당시 책에 나온 바로는 '여자'들까지 공사에 동원됐다고 한다. 일손이 모자라서 여성들까지 공사에 투입할 정도면 얼마나 무리를 해서 공사를 했는지 이해가 간다. 이렇게 완성된 대운하는 지금 시대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 영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 힘들지만, 그러한 공사를 무리해서 완성하려 했던 그의 야욕은 인정받기 힘들다.


거기다 그렇게 거대한 토목공사를 일으킨 뒤, 국가가 흔들릴 정도로 사치스러운 전국 퍼레이드를 펼친다. 항상 통일왕조가 들어서면 황제들은 국가를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퍼포먼스의 순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진시황제도 그러했으며, 수양제도 그랬다. 완성된 대운하를 통해 양주까지 배를 타고 운행을 하는데 그 무리가 90km나 됐다고 한다. 이 많은 인원들을 데리고 수양제는 떵떵거리며 순시를 했는데, 황제가 머무는 고을에서는 이런 무지막지한 행렬의 음식과 숙박을 감당하느라, 고역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만리장성을 보수하는 공사, 고구려와의 3차례나 걸친 전쟁 등으로, 국가 경제는 파탄 나게 되고, 각지의 민심은 흉흉하게 됐었다. 그런데도 수양제는 정신 차리지 못 했고, 사치를 추구했었다. 심지어 부하들에게 죽을 때조차도, '짐이 이런 허접스러운 말을 타야 하는가? 깔끔한 말로 가져다주게.'라고 호통칠 정도니 알 만 하다.


책을 읽으며 수양제의 결점을 생각해봤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무리한 토목공사와 의미 없는 전쟁으로 인해, 국고가 바닥났다.

2. 여색을 지나치게 밝혔으며, 허장과 허세, 낭비가 심했다.

3. 사람을 보는 눈이 없으며 자신보다 뛰어난 이를 공경하기보단 질투하며 배격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기에 수양제는 자질이 나쁜, 폭군이라고 인식하는데,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수양제는 어쩌면 주변 환경에 쉽게 좌지우지 받는, 전형적인 일반인의 모습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비극은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 리더의 자질이 없는, 자신을 다스리지 않은, 지위적 야욕만 가득한 자들의 모습, 수양제는 그런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자가 리더가 됐으니 백성에게는 이보다 더 한 비극이 있을까? 이런 부분을 보며, 그 누구보다도 평범한 삶을 사는 나 역시,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또 한가지 느낀 점은, 저자는 말했다. 남북조와 수나라 시대의 인물 유형과, 당나라의 인물 유형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말했다. 남북조와 수나라 시대의 인물들은 전형적으로 나의 세력을 기르고 나의 힘을 이용하기보단, 남의 힘을 권모술수적으로 빼앗아 이용하여 권좌를 획득하는 인물들이 많았다. 수문제, 수양제 역시도 이런 인물에 해당됐다. 그러나 당나라 대의 인물들은 이런 시대적인 인물 유형에서 탈피했는데, 바로 자신의 힘을 길러서 왕좌를 차지했다고 한다. 특히 이런 예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이세민이었다. 즉 남의 힘을 빌려서 떵떵거리는 것이 아니라 자강불식하여 권좌를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이세민은 더 나아가 종래의 막장 시대 - 피폐한 쾌락주의적 사고를 거부하고, 도덕을 강조하며, 국가의 윤리를 바로 세워나간 점도 남북조, 수나라에 비해 더 나아진 부분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생각난 점은, 특히 우리나라의 된장녀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그저 돈 많은 남자들에 눈에 들어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그런 부류들, 그리고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에게 빌붙어서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난세의 역사서, <수양제>가 나에게 알려준 것은, 결국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나 자신의 힘을 주축으로 일을 도모하라는 것, 그런 자주성도 알려줬었다.


책은 아주 재미있고 간결했다. 한 편의 막장드라마를 본 것 같다. 문학에서 나 올 법한 그런 막장의 시대가 바로 이 시대였다. 허구의 문학도 재미있지만, 역시 인간의 실체 모습은 때론 허구를 넘어서는 부분이 보인다. 이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다. 야욕과 쾌락, 막장의 시대, 그것이 바로 수양제의 시대였었다. 그 시대 안에는 온갖 인간의 모습이 다 담겨 있었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그런 좋은 역사서다. 책을 덮으며 이제야, 김갑수의 수양제를 버릴 수 있었다. <수양제> 속의 수양제는 김갑수의 수양제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책에서 나온 수양제의 모습은 폭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모습은 지극히도 나, 너, 우리와 닮은 일반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반면교사로 삼으려 한다.


그리고 별개로, 이 책을 통해 저자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앞으로 역사비평사 출판사에서 저자의 전집을 발간할 예정이라 하는데, 기대가 된다. 깊이 있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서술, 그러면서 진지하고 성실한 학문적인 고찰, 우리나라에서도 본받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사실 우리나라 역사책들은 너무 쓸데없이 무거운 감이 없잖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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