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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ㅣ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평점 :
어느 텍스트를 볼 때, 가끔은 이런 후회를 하기도 한다. '아 왜 이 책을 이렇게 늦게 만났을까?'라는 후회. 내겐 <옹정제>가 그런 책이었다. 설 연휴 때 읽은 책인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책의 원 저자인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일본 역사학자로, 중국 역사에 대해서 굉장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나는 저자를 <수양제>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그 책을 보며 저자의 책을 검색하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구매하여, 책을 읽었는데 <수양제>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평전의 주인공 옹정제는 청나라 5대 군주였다. 흔히 말하는 청나라 군주의 전성시대 강희제 - 옹정제 - 건륭제 기간에 중심에 위치한 군주로 강력한 왕권을 세운 군주였다. 저자는 <수양제>에서 반면교사의 모델을 제시한다면 <옹정제>에서는 다소 긍정적인 리더의 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강희제와 건륭제의 경우는 치적이 두드러지지만, 그 사이에 있는 옹정제는 왠지 묻어가는 이미진데다, 옹정제라고 하면 흔히 권력욕에 눈이 멀어 동생들을 핍박하는 철혈정치를 내세운 부정적인 지도자를 떠올린다.
저자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그런 옹정제의 부정적인 여론을 걷어내며, 조목조목 옹정제의 치적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저자는 옹정제를 무조건적으로 칭찬하지 않는다. 결국 독재권력을 추구한 옹정제이고, 치밀하고 밀도 있게, 그리고 성실하게 정사에 임한 이 독재 군주의 한계 역시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평전을 볼 때 나는 무조건적인 칭찬이나 무조건적인 비판만 하는 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 긍정과 부정의 줄다리기를 적절하게 타며, 이 모범적인 전제군주 '옹정제'에 대해서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저자의 필법은 다른 저서 <수양제>의 리뷰에서도 지적했듯, 상당히 심플하고 간결한 편이다. 책의 쪽수는 200쪽이 안되며, 문장들도 짧은 단문을 선호하고 있다. 복잡한 청대 정치권력 암투를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요약하여 잘 서술하고 있는 저자의 필법에게서 경외감마저 느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영웅 옹정제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평이하고 쉬운 서술, 그러면서도 깊이가 있는 서술 덕분에 옹정제의 시대에 좀 더 심취할 수 있었다. <수양제>에서도 저자는 이런 필법을 보여줘서 나를 감동시켰는데 <옹정제>에서도 이런 감동은 이어졌었다.
내가 책을 통해 만난 옹정제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영웅이었다. 자고로 왕조가 흥하는지 쇠하는지를 판단하려면, 3대나 4대 군주를 살펴봐야 한다. 왕조를 세운 군주가 국가 정비를 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대체로 왕조가 개창 되고 나면 개국 군주는 죽기 마련인데, 그 이후 절대적인 개국 군주가 죽고 나서 왕조는 혼란기로 접어들고 차기 용들이 전쟁을 벌인다. 이러한 암투 속에서 황제나 왕이 되는 군주가 국가 체제를 다시 정비하는데 대체로 3대나 4대에 이르러 이런 체제 완료가 정비된다. 고려로 말하면 개국 군주 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광종이 대대적인 왕권 강화를 내세운다. 조선의 경우도 태조가 나라를 세우고, 태종이 강력한 왕권 주의 국가로 체제를 정비했다. 이 뿐일까? 당나라의 경우도 당 태종 이세민이 국가 기틀을 바로 세웠으며, 명나라의 경우도 3대 황제인 영락제가 조카를 죽이고 황제가 되어 국가 기틀을 정비한다.
옹정제는 5대 황제다. 다만 청나라의 경우 1대 황제인 누르하치와, 2대 황제인 홍타이지는 북경에 입성하지 못 했다. 대륙을 통일한 것은 3대 황제 순치제 때부터였다. 옹정제는 5대 군주인데 대륙에 들어온 것으로 환산해보자면 3대 군주가 옹정제인 셈이다. (중국 통일 통일로 치자면 순치제가 1대니까) 그러니 옹정제의 제위 기간은 상당히 중요했으며, 앞으로의 청나라 왕조가 어떻게 나아갈지를 결정짓는 시기였었다.
옹정제의 아버지 강희제는 상당히 치적이 많은 군주였으며, 현명한 군주였다. 다만 집권 말기에는 강희제 역시 여러 가지 실수를 하게 되는데, 가장 큰 실수가 바로 태자 책봉이었다. 강희제의 과도한 자식 사랑으로 인해 둘째 황자인 태자는 강희제를 위협할 만한 정치권력으로 부각하고, 강희제는 태자를 폐했다가 다시 세웠다가 폐하는 등, 실책을 벌인다. 이 실수로 인해, 황자들은 제각기 파벌을 이끌고, 정치권력 암투에 뛰어들었다. 옹정제는 넷째 황자였고, 정치권력에 개입하지도 멀리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결국 강희제가 죽고, 후계자로 지명된 옹정제는 황제가 된다. 재빠르게 군권을 장악하고, 정국을 장악한 뒤, 자신의 안티 세력들을 모두 벌하는데, 가장 유명한 사례가 8번째 황자와 9번째 황자를 탄압하여 죽인 것이다. 옹정제 입장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권위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 강희제가 벌여놓은 황자들의 권력 다툼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며, 떨어진 황제의 위신도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기에 옹정제는 자신에게 따르지 않는 형제들에게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옹정제를 철면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옹정제는 상당히 따뜻한 구석도 많았다. 자신에게 복종하고 충복이 되는 형제들에게는 아량을 베풀고, 주요 요직을 맡겼다. 대표적으로 13번째 황자가 그랬다. 옹정제의 입장에서는 어제까지만 해도 권력 다툼을 하던 형제들이 자신을 황제로 인정해주길 원했지만, 다른 형제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옹정제는 황제가 됐고, 황제라는 지위는 형제 관계나 부자관계를 초월하는 군신관계였다. 옹정제는 형제들에게 형제이기 이전에 군신의 예를 요구했으나, 눈치가 없거나 감정적인 형제들은 그런 옹정제의 무언의 청을 거절했다. 그래서 옹정제는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옹정제를 이야기할 때 이런 권력 다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옹정제의 진면목은 황제가 되어서 어떻게 정사를 임했는지 그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옹정제는 그야말로 워커홀릭의 자세로 정사에 임했다. 아버지 강희제와 아들 건륭제가 유람도 떠나면서 좀 여유로운 정치를 했다면, 옹정제는 황궁 근처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모든 조회를 마치고, 저녁 시간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비밀 장계 들을 읽으며 일일이 다 답서를 내린 군주였다.
가령 지방 수령들의 비밀 장계, 그리고 그런 지방 수령을 감찰하기 위해 파견한 비밀 암행어사들의 비밀 장계 들을 비교 분석하여, 어긋나는 사항이 있을 시에는 수령을 바로 문초하고 엄벌에 처했다. 중국은 땅이 엄청 넓다. 그래서 사방에서 쏟아지는 장계가 엄청날 것이다. 이 황제는 그러한 비밀 장계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 체크하고 손수 친히 글로 답서를 다 보냈던 것이었다. 이렇게 바쁘게 정사에 임했으니, 유람을 갈 여유도 없었으며, 건륭제와 강희제의 시대와는 다르게, 엄청 경직된 사회였을 것이다.
옹정제 덕분에 청나라는 안정된 왕권의 시대를 맞이한다. 황제 자체가 근면하고 성실했으며, 총명하며, 정사를 보는 것을 즐겼으니, 그 밑의 관리들의 입장은 죽어났을 것이며, 책잡히지 않기 위해 다들 노력했다고 평전에서는 나왔다. 즉 옹정제는 역대 황제들 중 가장 뛰어난 전제정치를 펼쳤으며, 확고하게 기반을 다져나갔다. 제위 기간 동안 옹정제는 흐트러지는 모습도 없이, 경건하고 숙연하게 정사에 임했다. 이 결과, 국가의 부패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으며, 재정 상황도 나아졌었다.
그는 대외적으로, 국가의 거대한 부패, 그리고 관료조직의 어쩔 수 없는 타락과 맞서 싸운 군주였으며, 사상적으로는 한족 중심주의와 싸워나간 군주였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옹정제의 시대 역시도 한계가 있었다. 그 광활한 대륙을 군주 혼자서 엄격하게 통치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옹정제 역시도 그러한 부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역대 황제들이 못 한 선정을 자신은 펼쳐 보이고 이 생이 다 하는 날까지 부패와 싸워 나가겠다고 다짐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옹정제가 요구한 관리의 덕목은 너무나도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나는 미야자키 이치사다(저자)의 이 대목을 읽으며, 중국과 일본의 차이를 느꼈다. 이치사다는 말한다. 옹정제는 인간의 본연적인 속성을 모르고 있었다. 관리라는 사람들, 그리고 관리가 아닌 모든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남기려는 욕심이 있다. 그러나 옹정제는 관리들에게 이윤추구를 과도하게 억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은 좋지만, 정당하게 노력하고 벌어들인 이윤에 대해서도 절제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준다면, 과연 불만이 없겠는가? 중국과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학을 존숭하고 발전시켰다. 그 결과 유학에서 주장하는 정치인의 덕목을 이상화했다. 유학적인 정치가의 표본은 무엇인가? 바로 청렴함이다. 사욕을 추구하지 않으며 국가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관리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해석하듯, 일본인들의 사상은 이와는 달랐다. 예로부터 일본은 인간의 본성적 이윤 추구를 긍정한 민족이었다. 그래서 이치사다는 옹정제의 바람직한 전제정치를 비판했는데, 이러한 비판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공직이나 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윤추구를 절제해야 하며, 뇌물과 비리에 청렴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사람이고, 사람인 이상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이윤 추구는 허용해줘야 하며,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에서 재산을 모으는 것에는 여유를 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윗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도덕주의를 내세우며, 정당한 이윤 추구마저도 청렴함을 강조하는데 이런 부분은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옹정제 역시도 이런 부분에 좀 더 융통성 있게 대처했더라면 기존 관료들이 좀 더 옹정제의 정치에 호응했을지도 모른다. 절대권력자의 철권통치로, 관료주의를 억누르며 부패를 척결하려는데 노력한 옹정제였지만, 결국 옹정제의 강력한 독재로도 관료주의의 타락을 극복하지 못 했던 것이다. 이것은 독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로부터 나는 지도자는 과연 어떻게 집단을 이끌어야 하는지, 밑의 사람들의 이윤 추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됐었다.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옹정제는 상당히 열정 있는 군주였다. 그가 보여준 성실함과, 그가 보여준 치밀함, 한계가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군주, 쉬지 않는 워커홀릭의 자세, 그리고 그의 애민정신 등등은 귀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어쨌든 그가 이렇게 국가 내부를 철저하게 다스렸기에 아들인 건륭제 시기에 확장하는 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자금성에 가고 싶다.', 그리고 '청나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다.'라고 말이다. 자금성에 가서 옹정제를 비롯한 강희제와 건륭제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으며, 청나라에 대한 역사도 관심이 갔다. 건륭제나 강희제를 다룬 책들도 읽고 싶으며 며칠 전에 선물 받았던 <누르하치>도 빨리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책은 이번에도 나를 만족시켰다. 일본인 저술의 특징인 얇은 부피, 얇은 부피지만 내용의 깊이가 매력적인 책이었다. 옹정제의 삶 역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옹정제의 삶을 조곤하게 알려준 이 노학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그의 글로 다양한 인물을 만나보고 싶다. 옹정제는 매우 매력적인 모범 전제 군주였다. 그를 통해서 많은 부분을 배운 것 같다. 특히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선배인 옹정제에게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부피도 얇고 어렵지도 않되 깊이는 있는 책이니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