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 - 창업과 수성의 리더십
오긍 지음, 신동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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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유명한 고전인 정관정요, 제왕학의 요체를 다룬 책이다. 원래는 완역본이 김원중이 번역한 책 하나뿐이었지만, 신동준이 새롭게 번역을 하여 샀던 책이다. 김원중본에는 번역문만 있는데 신동준본에는 번역과 원문 그리고, 당 태종에 대한 일반론과, 고전의 번역, 그리고 역대 정관정요에 판본에 대한 대체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즉 김원중 본에 비해 이 책이 더 자세하다고 할 수 있고 김원중 본에는 나오지 않는 대목들(판본이 다른 듯)도 실려 있다.  

 

 일단 말해야 할 점은, 신동준 이 저자는 주관적인 사상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대체로 학계에서의 대세적인 부분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색깔을 가미한 신선한 주장 등을 내세우는 편이다. 거기다, 이 사람의 사상 자체에는 전제 군주제나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체제를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대표적으로 이 사람은 세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조금은 사상적 편향이 보이는 듯하지만, 그런 부분을 넘겨보더라도, 책의 번역 부분은 아주 깔끔하다는 점이 있다. 주관적 해석이 강한 역자의 고전인 경우는 사실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초학자들이 보기에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의 사상 중에서는 고전을 현실론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부분만큼은 탁월했다. 따라서 약간의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고서라도 신동준의 역본은 현실적 가치로 평가하자면 탁월한 부분 그것 하나만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군주가 갖춰야 할 리더십에 대한 책으로, 역대 제왕들의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었으며, 고려 시대에 광종 역시 이 책을 깊이 있게 숙독했으며, 조선조 제왕들 역시도 이 책을 깊이 탐독했다. 특히나 당 태종을 좋아한 세조 역시도 이 책을 많이 봤을 가능성이 있으며, 숙종과 영, 정조 역시도 이 책을 봤다고 실록에 나와 있다. 조선조가 들어서서 유학적 가치관의 제왕학이 성행하여 정관정요가 덜 주목받았긴 했지만, 그래도 역대 왕조에서 이 책을 무시하진 못 했다.  

 

 책을 쓴 오긍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는 직필로 유명한 사관이었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자신의 정권을 합리화하는 그런 내용의 사서 편찬을 명 받았을 때 그는 동의할 수 없다며 사직했다. 오긍은 무후 실록을 편찬하는 데에도 기여했는데, 이때 재상 장열이 위원충과 관련된 일을 여러 차례 개정해 달라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개정해주지 않았다. 즉 엄격한 사관과 나름의 객관성과 소신을 가지고 있는 사관이었다. 그런 그가 집필한 제왕학의 성전인 정관정요. 그런 직필의 손에서 탄생한 정관정요 역시도 나름의 객관성이 있는 제왕학서였다.

 

 책의 주인공, 당 태종과 그의 치세에 대한 군주론이 이 책의 핵심, 당 태종 이세민은 조선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태종 이방원과 같은 전제 군주 성격의 군왕이었다. 형과 동생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그였으나 나라를 번영시킨 데에는 큰 공이 있었음은 부인하기 힘들었다. 그런 당나라의 성세한 시대, 당태종과 신하들의 이야기를 담은 군왕의 교과서가 바로 정관정요다.  

 

 이 책이 독특한 이유는, 앞서 말한 오긍의 직필법 때문인데, 책의 대부분은 태종의 행적에 대해 우호적인 서술이 많으나, 태종의 결점 역시도 드러내고 있다. 즉 무분별하게 태종의 치적만을 칭송하는 책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 태종 이세민의 가장 큰 결점인, 국방 고구려와의 패전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자면, 9권의 주제 국방론에 잘 나타나있다. 여기서 당 태종의 무모한 고구려 원정에 대해 신료들의 상서가 실려 있는데, 태종은 이를 묵살한 내용들이 잘 나와 있었고,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시대의 현인들은 그 상소들이 옳다고 생각했다.라는 평까지 달아놨다. 즉 태종의 부끄러운 모습 등도, 삭제하지 않고 표현하고 있다.  

 

 책은 대체적으로 유가적인 입장에서 서술됐다. 아무래도 뭐 유학을 진흥시키자는 대목도 책에 노골적으로 나와 있으니 부정하긴 힘들겠지만, 유학에 입각한 제왕학서인 <대학연의>와 <성학집요>와 같은 책과 비교해봤을 때에는, 그 유학적 색채가 조금 덜하긴 했다. 유학의 경전 문구에 입각하여 역사를 선별한 방식이 기존의 유학적 제왕학의 서술 방식이라면 이 책은 당 태종의 행적과 역사를 우위에 두고 쓴 책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유가 서적들에 입각된 제왕학서에 비해서 비교적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재미있게 본 부분은 태종의 트라이앵글 명신들에 대한 이야기, 지략의 대가인 방현령과, 결단의 대가인 두여회 그리고 당 태종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 직간의 명신 위징에 대한 이야기. 방현령은 대체로 법가적이고 현실적 사고에 입각한 신하였다. 그는 지모가 뛰어났으며, 당 태종이 형과 아우를 죽인 현무문의 변을 실질적으로 구상하고 기획한 자였다. 특히 9권의 국방론에서, 방현령이 죽기 전 태종에게 고구려 원정을 취소하라는 상소를 볼 때, 그는 정말로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있었다는 걸 느꼈다. 두여회는 방현령에 비해서는 조금 지모가 떨어지지만 방현령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행동을 촉구한 신하였다.  

 

 그리고 가장 태종을 돋보이게 한 위징. 보통 전제성 군주의 경우 신하들이 직간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왕권의 눈치를 보며, 왕이 손가락을 가리키면 그쪽으로 우르르 공론을 모으는 것이 일반적인데, 위징은 그러지 않았다. 위징은 당 태종의 일반적인 그런 전제를 견제한 유일한 명신이었으며, 당 태종의 오만을 경계하고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당 태종의 면전에서 민망하게 군주를 지적한 사례도 숱하게 책에 많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다른 군주들 같았으면 목을 치거나 했을 텐데 당 태종은 그런 그를 아끼고 아꼈다.  

 

 실제로 정관정요 2권 규간론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분명히 할 수 있다.'  

 

 태종은 위징을 거울로 삼았고, 위징은 그런 거울의 입장에 충실하게 행했다.  실제 사람들의 경우는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어조로 대하면 분한 마음에, 상대와 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진정한 충신은 직간을 서슴지 않는다. 위대한 군주는 자신의 비판을 잘 들을 줄 알며, 자신의 비판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은 군주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당된다. 나를 칭찬만 하는 사람보다는 나를 객관적으로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리고 그 비판을 내가 새겨 들을 마음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발전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이다. 사람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저 말은, 지금의 개인에게도 유효한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태종 역시도 사람이라서, 위징의 간언한 것에 대해 '저 더벅머리 놈이 나를 너무 놀리는구나.'라고 말한 부분도 책에 나온다. 하지만 태종은 순간의 화를 내면서도 알고 있다. 위징의 간언이 충심으로 비롯된다는 것을, 전제적 군주이면서 이런 직간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둔 것에 대해서, 태종은 굉장한 멘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위징은 그런 면에서 자신의 직간을 이해할 수 있는 군주를 만나서 정말 행복했던 명신이었다. 군주를 잘 못 만났다면 그냥 형장의 이슬로 갈 뻔한 대쪽같은 원칙주의자인데, 태종은 그의 가치를 알고 그를 거울로 삼았으며, 위징은 그러면 그럴수록 태종에게 더 대쪽같고 비판적, 현실적으로 태종을 일깨웠다. 그런 면에서 조선 중기의 율곡과 선조의 관계가 떠올랐다. 명신 역시도 현군을 만나야 능력을 발휘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당 태종이 성공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명신들이 곁을 보좌하고 이런 명신들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었던 태종의 도량과 그릇도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책에서 색욕을 멀리하라는 대목에서 고구려의 왕이 미인 두 명을 바쳤는데, 태종이 이를 보고 돌려보냈다는 대목 역시도 재미있었다. 실제 태종 이세민은 호색한 군주였기 때문인데, 조금은 신기했던 대목이다.  

 

 당 태종의 치세에서 가장 오점을 찍은 것은 무모한 고구려 원정과 더불어, 후계 구도에 너무 준비를 안 했다는 점. 특히나, 무모한 고구려 원정에 대해서, 정관정요는 비판적이었다.  

 

 아무튼 책 자체는 고전 치고는 쉽게 잘 읽히며, 더불어 군주가 행해야 할 모범적인 규범들을 교과서처럼 잘 정리했다. 대체적으로 유교적 사관이 보였으며, 특히 태종의 독단적인 모습들도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한 편의 역사서와도 같았으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태종의 명신들의 상소문이 그대로 인용된 경우가 많은데, 상소들 역시도 좋은 내용들이 많았다.  

 

 신동준의 고전 역본은 특징이 있는데, 고전을 번역한 것과 더불어 그 고전의 일반론적인 해석을 같이 첨부한다는 점이다. 보통은 고전을 번역과 역주한 것만을 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설을 길게 첨부하여서 독자들에게 이해를 시키는 콘셉트. 그것이 그의 해석본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 해석이 다소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한계가 있다.  

 

 이 책에서는 정관정요 주석론,과 정관정요 치평론으로 나뉘는데, 주석론이 고전을 주해한 부분이고 치평론이 일반적인 당 태종과 당나라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돋는 일반론적 해석 부분이다. 치평론을 읽고 주석론을 읽어도 상관없으며 책의 편차대로 주석론을 읽고 치평론을 읽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독자의 성격에 따라서 자세한 배경 이해를 원한다면 전자가 좋겠고, 책을 보고 심화 학습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후자가 좋을 듯싶다.  

 

아무쪼록 국내에 나온 정관정요 책 중에선 이 책이 가장 뛰어난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여러 서구의 국가에서도 정관정요는 주목받는 리더십의 고전이다. 동양적인 리더십과 동양의 모범적 군주 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으며, 도움이 되는 명문들이 아주 많은 좋은 고전이다.  

 

 두깨에 비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고전이라서 어릴 때부터 자주 봤던 책이다. 고전에 대한 문체만 익숙해진다면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라 리더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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