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삼백수
손수.장섭 엮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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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에 대한 고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경》을 손에 꼽을 것이다. 《시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모음집이라는 문헌학적 가치와, 유학의 아버지 공자가 편찬하여 유학의 경전으로 인정받는 사상적 철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다음으로 유명한 시집은 무엇일까? 아마 《초사》가 아닐까 한다. 《시경》이 중국 북방 문명의 문학이라면 《초사》는 중국 남방 문학의 대표작이다. 굴원을 주축으로 초나라의 노래, 그리고 이러한 초나라의 노래 형식을 후대에 이어나간 작품들이 《초사》를 구성하고 있다. 《시경》이 시가 가지는 짧은 형식성을 강조한 작품이라면 《초사》는 긴 장편 시를 연상하는 작품이며 산문이나 가사문학의 효시로 꼽힌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시경》은 현실적이며 통상적인 것들을 노래하는 것이 많았고, 《초사》는 이에 반해 인간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묘사했는데, 그 감정들 중 개인의 고뇌와 번민, 비애를 집중적으로 노래했다. 《시경》의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를 알 수 없는데, 이것은 당대의 불특정 다수가 부르던 노래를 공자가 선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초사》는 이와 반대로 소수의 작가들의 작품들로 이뤄졌는데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가는 굴원이다. 굴원은 《초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이며, 초나라 노래의 시초에 해당되는 작가였다.

 

 

 

 이렇듯, 고대의 고전 중에서는 두 책이 독보적으로 두드러졌다. 그럼 중세 시기에는 어떤 시집이 유행했을까? 바로 《당시》다. 《당시》는 당나라 시인의 노래 모음집인데, 당나라의 유명한 작가들의 대표작 모음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중국에서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이백과 두보는 어느 시대 사람일까? 바로 당나라 시대 사람이다. 당시 당나라는 당시 대외적으로 돌궐을 정벌해 국토를 넓혔으며, 대내적으로 중국 내에서 가장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시대였다. 다양한 나라를 정복한 덕에 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이런 시대적인 상황은 문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왕유나 이백, 두보와 같은 걸출한 시인이 당나라 시대에 집중적으로 태어난 것은 과연 우연으로 치부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개방적인 환경이 잉태한 결과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시경》과 《초사》와는 다르게 《당시》는 여러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중국 내에서도 당나라 시가 뛰어난 점을 인식하여 여러 문학가들이 《당시》의 판본을 제시했는데, 지금 리뷰할 손수의 《당시삼백수》 역시 많고 많은 《당시》의 판본 중 하나였다. 손수는 청나라 건륭제 때 인물로, 시와 서예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서문에서 볼 수 있듯, 손수는 당나라 시를 모아 편찬한 목적을 교육에 두고 있었다. 즉 이 책에 수록된 시만 읽고 외운다면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더라도 시를 짓는데 능할 것이라고 서문에 밝혔다. 많고 많은 당나라 시 중 굳이 왜 300여 편인가? 이것은 《시경》의 300여 편의 편제를 본받은 것이었다. 이렇게 손수가 엮은 《당시삼백수》를 청조 1834년 장섭이라는 사람이 대폭적으로 주석했는데, 지금 리뷰하는 《당시삼백수》는 이 주석본을 원전으로 삼았다. 장섭은 주석을 가하면서 기존 《당시삼백수》에 10수를 더 포함하였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당시삼백수》에 포함된 작품은 320개가 확정됐다. 여기서 유심히 살펴볼 점은 각 시대별로, 당나라 시에 대해 선집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이후 송, 원, 명, 청나라 시대로 가면서 당나라의 노래는 경시된 적이 없었다. 현대에 가장 가까운 청나라 후기에도 이러한 현상은 꾸준히 유지됐다. 그만큼 당나라 시는 시대적으로 보편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는 여러 번역본이 있다. 다만 번역자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여, 어느 작가의 시를 더 많이 포함하거나 덜 포함하는가에 대한 차이가 있다.


 그럼 왜 당나라 시대의 시는 유독 주목을 받아왔을까? 그리고 당나라 시대의 시들을 정리한 《당시삼백수》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내가《당시삼백수》를 읽으며 느꼈던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엄격한 형식성과 그러한 엄격한 형식성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시의 내용면에서 뛰어난 감정 표현이 나타난 점이었다. 당나라 시대의 시는 다른 시대와는 다르게 시의 형식적인 부분이 극도로 강조됐다. 오언고시, 칠언고시, 오언고시악부, 철언고시악부,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율시악부, 칠언율시악부, 오언절구, 칠언절구, 그리고 각 절구의 악부까지... 이런 식으로 형식적인 부분이 강조됐다. 이런 형식성은 자유로운 창작을 하는 데에 걸림돌로 적용한다. 작가의 경우 자신의 창작에 무언의 형식이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작가가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것을 형식이라는 틀이 제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 당나라 시대의 시들은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암묵적인 형식이 있었다. 문인들인 이 틀에 벗어나는 것을 비판했으며, 약간의 일탈적인 형식의 시가 몇몇 수 존재하지만, 큰 틀에서는 기존의 형식을 지키려고 하는 특징이 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형식적인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삼백수》의 시들은 그러한 형식에 맞춰 자신들이 노래하고자 하는 감정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형식이라는 틀이 작가의 창작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형식이라는 틀을 이용하여 작가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당나라 시들은 이러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로부터 뛰어난 문인이더라도, 당나라 시의 시풍으로 시를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했다. 그만큼 당나라 시의 형식성은 까다로웠고, 깐깐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시인들은 그러한 까다로움을 넘어 그 까다로움을 오히려 창작의 시너지로 이용했다. 그래서 당나라 시는 엄격한 형식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 뒤떨어지지 않으며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다른 시대의 시보다 뒤지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그럼 《당시삼백수》에 주로 나온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앞서 말한 《시경》처럼 현실적인 부분이었을까? 아니면 《초사》와 같은 개인의 고뇌와 번뇌, 비애를 노래하는 것이었을까? 전자와 후자의 내용이 고루 분포됐지만, 아무래도 후자의 입장이 더 두드러졌다. 《당시삼백수》에서 가장 유명한 두보의 예를 들어보자. 두보의 시는 인간의 감정 표현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품이 많은데, 대체적으로 번민과 비애, 그리고 울분을 표현한 것이 많았다. 이런 부분에서 두보는 당나라 시대의 굴원이라고 할 만 하다. 비단 두보의 시뿐 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의 작품도 이러한 울분의 감정이 나타나있다. 그럼 어떤 것에 향한 울분인가? 바로 현실 사회와 직결되는 울분이였다. 그 시대에도 문란한 정치 상황이나, 인재가 고루 쓰이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지도층의 사치, 올바른 관료들은 배격되고 간사한 자들만 입신하는 상황 등등이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당나라 시인들은 노래로 빗대어 남겼다. 이러한 감정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도,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사람들은 당나라 시를 최고로 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을 구성하는 분야는 크게 세 분야다. 첫 번째 철학, 두 번째 역사, 세 번째 문학이다. 철학은 인간을 나아가는 데에 등불 같은 역할을 했다. 역사는 어떤가? 역사는 인간이 걸어온 길을 회고할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이다. 그럼 문학은 무엇일까? 반영론적 관점에서 볼 때 문학은 사회 현실을 그 자체를 대변하고 있다. 현실을 표현할 때 우직하고 돌직구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문학가들은 좀 더 완곡하게, 그리고 좀 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또는 좀 더 희화화하기 위해 허구를 섞어 표현한다. 이것이 문학이다. 시라는 장르 역시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것을 높은 가치로 여겼다. 그래서 지식인층은 시를 배웠으며, 술자리를 가거나 벗을 만나거나, 풍류를 즐기거나, 슬픔을 당하거나 할 때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선조들이 시로 현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쓸데없는 포장과 허위의식, 그리고 지나친 풍류로만 생각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 시는 풍류와 감정 표현이라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지금 직면한 현실을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역할도 한다. 사회 현상을 말할 때 무조건 직설적인 표현보다 때로는 완곡한 표현이나 절제의 표현이 생동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시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선조들은 시를 지을 때 이런 사회 반영론적 관점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이런 사회 반영론적 관점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가 바로 당나라 시대의 노래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인문학의 세 분야 중 역사를 가장 좋아하며, 철학은 그다음이고, 문학을 가장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문학의 장르 중에서 시에 관해서는 예외적으로 시집을 몇 권 보긴 했지만 즐겨 보진 않았다. 《당시삼백수》를 읽으며 이런 내 생각을 돌아보게 됐다. 이들의 세상에도 정치는 부패했으며, 인사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최순실 사태처럼 말이다. 당나라 시대의 부조리를 시로 읽었지만, 어쩌면 내가 읽은 것은 오늘날의 부조리가 아닐까? 어쩌면 이들의 시에 담긴 울분은 이 시대의 촛불집회가 아닐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울분의 노래에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책은 굉장히 공들여 번역한 것 같다. 사실 신동준 역자분의 다른 고전 번역본을 봐 왔지만, 이번 《당시삼백수》는 역대급으로 주석이 풍부했다. 해설 설명이 아주 자세하고 각 연마다 중요한 단어와 중요한 부분들을 상세하게 해설해놔서 정말로 편하게 작품을 음미할 수 있었다. 다만 초판본에 한해 오타가 부분 부분 있었는데 크게 신경쓸 부분은 아니지만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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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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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차줌마라고 불리는 차승원이 주연으로 나오는 사극 '화정'이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다. 화정의 주인공은 광해군의 이복동생으로 알려진 정명공주다. 드라마는 가장 정치적인 시기를 광해와 선조, 인조의 시각이 아닌 정명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17세기 조선을 이해하는 관점은 대체적으로 남성 군주 중심적인 해석이 주류를 이뤘다. 가령 선조 vs 광해군, 광해군 vs 인조, 혹은 누가 더 무능한가라는 관점으로 인조 vs 선조 등등의 시각으로 이 시기를 해석해왔다. 드라마는 종래의 남성주의적인 시각을 깨고, 정명공주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극 '화정'의 시각은 다른 사극이나 역사물에 비해 참신했다.  
 
화정(華政)은 정명공주(이하 정명)가 쓴 서예 작품이다. 정명은 어려서부터 서예에 능통했는데, 그러한 능력은 명필이었던 아버지 선조와 인목대비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 선조는 글씨에 굉장히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었고, 어머니였던 인목대비 역시 붓글씨가 일품이었다. 그런 능력을 이어받은 정명이 남긴 작품이 바로 화정(華政)이다. 정명이 남긴 글씨의 뜻은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책 역시도 드라마와 같이, 그런 정명공주의 작품을 제목으로 하고 있었다.


드라마와 책의 차이라면, 드라마는 상당히 각색된, 내용으로 정명의 삶을 전개했지만, 동일한 제목의 이 책은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겠다. 책은 선조를 시작으로,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그리고 숙종 때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모두 정명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사연이 많은 그녀는 조선의 1/5를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시기는 국가가 혼란했던 시절이었다. 사림은 분화되고 왕권은 흔들렸다. 왕위를 이은 왕들은 취약한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해, 과도하게 애를 썼다. 욕망과 권력이 춤추던 세월이었고, 그런 권력 다툼과는 별개로, 대외적인 국난을 몇 차례나 치렀다. 안도 밖도 썩어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권력을 쥔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집중했고, 민심은 뒷전이었다. 암울한 시대였었다. 그런 풍파의 세월을 정명은 나름의 처세술로 견뎌왔었다. 책은 그런 정명의 눈으로 시대를 해석해보자는 입장이었다.


사실 책을 읽을 때는 많이 기대를 했었다. 종래의 군주 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정명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에서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책을 보면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정명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기엔, 정명의 모습을 기록한 사료가 너무나도 소략했다. 저자가 주로 내세우고 있는 정명의 사료는, 화정이라는 글귀, 그리고 막내아들에게 정명이 당부했던 말, 그리고 호란 때 강을 건널 때 재물을 버리고 백성부터 태우라고 했던 이야기 이 세 개가 전부였다. 저자는 이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이것들을 정명의 가치라고 의미 부여하며, 그러한 가치에 따라 혼탁했던 조선 시대를 해석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소략한 사료를 가지고 혼탁하고 복잡한 시대를 해석하려고 하니, 아무래도 과도한 주장처럼 보이는 부분도 많았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내세운 정명의 입장을 비판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가 정명의 시각이라고 말한 세 가지를 하나하나 검토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전면적으로 내세운 정명의 처세는 앞서 말한 대로 화정이라는 글귀, 그리고 막내아들에게 정명이 당부하던 말, 호란 시기, 강을 건널 때 재물을 버리고 백성부터 태우라고 했던 이야기들이다. 이 셋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책은 기존의 목표한 의도를 쫓아, 정명의 시각으로 당대의 인물과 역사를 해석하는 부분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교과서적인 해설을 보인 부분도 많았다. 뭐랄까 정명의 이야기가 주가 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저자가 교과서적인 해설을 하며 시대의 단면을 설명하고 마지막 결론부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뜬금없이 정명의 처세를 바탕으로 '빛나는 다스림'에 비춰, 역사를 혹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한다'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가치로, 저자는 이순신을 비판하고 소현세자를 비판하고, 광해군을 비판한다. 물론 비판 기준이 정당하다면 그 기준으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판 기준으로 내세운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이 모호하다면? 이러한 비판들이 올바른 비판이 될 수 있을까? 화정이라는 글귀도 그렇다. 화정이라는 뜻은 빛나는 다스림이지만, 그 글자가 어떤 배경으로 쓰였는지, 정명은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저자는 저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것은 저자가 자의적으로 부여한 의미일 뿐, 정확한 것은 불분명하다.


책은 문단이나 단락 말미마다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에 비춰 설명하고 평가한다는 말이 계속해서 나온다. 저자는 정명이 쓴 화정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 부여를 한다. 화정이라는 글자에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해석을 시작으로, 나를 다스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남을 다스린다. 내가 아니라 상대를 움직여 목적을 달성한다. 등등으로 확장하여 화정을 해석해내지만, 글쎄 내가 책을 읽고 살펴본 정명의 행실과 저자가 해석하는 화정의 뜻은 일치하지 못 했다. 책 속에서, 보인 정명의 행실은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라는 것 외에는 빛나는 다스림이라던지, 나를 다스린다던지 하는 부분은 발견하지 못 했다.  


실제 정명의 처세를 잘 살펴보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침묵으로 상황을 돌파한다. 억울한 상황이 되어도 변명하지 않으면서 묵묵하게 상황을 견뎌낸다. 확실히 문제의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보다야 훨씬 좋은 처세다. 동양은 예로부터 말을 줄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왔으니,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정명의 처세는 굉장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정명은 막내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는 참 훌륭하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보면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지 않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는다. 정치와 법령을 쓸데없이 시비하지 말라. 그럼 아닌 것을 보고도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정치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경박한 말인가? 그저 침묵만이 최고의 가치인가?


 물론 침묵은 최고의 처세술일 수 있다. 정명 스스로도, 침묵의 힘으로 광해와 인조의 질투로부터 견뎌왔으니까, 하지만 침묵보다도 더 좋은 화술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대화법이 아닐까? 어쩌면 이 혼탁한 시기에 필요했던 것은 아닌 것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정명은 그 시대의 지도자 계층에 위치하는 사람이다. 그런 계층의 사람이 혼탁한 시대에 밑도 끝도 없이 침묵하는 것은 그저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에 앞장을 서야 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개선해 나갈 때에 사회는 발전한다. 아니라는 말을 침묵하기보다, 아니라는 말은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위정자가 아닌 길로 가는데,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 그럴 때 침묵은 너 나 우리, 나아가 국가를 죽이는 것이다. 물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불행할 수 있겠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다. 현세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불의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정명이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그렇게 오래 살지 못 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했다면 정명의 화정(華政) 빛나는 다스림은 더 확실하게 후손들에게 각인됐을 것이다. 지금처럼 모호한 의미의 작품으로 남겨지지 않고, 좀 더 선명하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정명 공주 그녀도, 지금처럼 모호한 역사의 파편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명의 침묵은 자신의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기보단, 개인의 생존 처세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명이 호란 때문에 피난 갈 시절, 자신의 재화를 버리고, 백성을 먼저 태우라고 지시한 부분을 가지고 저자는 굉장히 칭찬한다. 물론 이 부분은 굉장히 뛰어난 처세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정명은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지도층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책을 자세히 본다면, 또 다른 모습의 정명을 볼 수 있다. 인조반정 당시 인조는 자신을 왕으로 추대해준 인목대비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정명에게 과도한 상을 내린다. 100칸짜리 집을 하사하고, 집에 들어가는 재료를 지원한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끝없이 수탈 받았다. 진정으로 정명이 애민정신이 있었다면, 그러한 경제적인 혜택을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가 힘든데, 왕족 한 사람의 집을 위해, 그렇게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정명은 결국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시 도성에서는 정명의 집 때문에 성화가 많았다고 책에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명은 '침묵하고, 그러한 혜택을 말없이 다 누렸다.' 그뿐일까, 도성 내 집뿐만 아니라, 정명의 가족은 전국구 단위로 땅을 하사받았다고 하는데, 그 땅이 몇 천 평에 이른다고 한다. 그녀가 과연 백성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애민정신이 있다면, 왕실의 일원으로써, 그러한 혜택들에 대해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왕실 가족 한 개인을 위해 그 많은 땅이 과연 필요한가? 그 시기가 어떤 시기인가? 나라는 전란으로 혼란스러우며, 왕실은 반정으로 인해 뒤숭숭한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그녀가 과연 백성들을 위한 지도층이었다면, 과도한 혜택에는 거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정명이 쓴 화정이라는 글씨, 그 빛나는 다스림에는 과연 진정한 애민이 있단 말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리해보면 저자가 내세우는 정명의 시각, 화정 즉 빛나는 다스림은 정확하지 않은 모호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결국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명의 처세는 그저 일신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한 침묵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애민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도 위와 같이 한계가 있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덕수궁의 암울한 역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이 책을 읽다 보면 왜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걷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광해군과 정명은 이복동생이지만 기회가 올 때까지 잠자코 숨죽여 기다리는 스타일도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복동생이긴 하더라도 같은 피를 타고나서 그런 것일까? 닮아있는 부분이라 생각됐다. 다소 비판적으로 서평을 썼지만 이 책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장점도 확실히 가지고 있다. 선조 ~ 현종 때까지 복잡한 조선의 시기를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에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앞서 지적했던 정명의 입장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부분은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런 아쉬움과는 별개로 복잡한 역사를 평이하게 서술하는 저자의 서술법은 돋보이는 것 같다. 따라서 드라마 화정을 더 깊이 있게 즐길 분들은 이 책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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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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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 잠언집 장르는 동서를 불문하고 굉장한 베스트셀러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가의 최고 경전인 《논어》 역시도 이런 잠언집 장르에 속하며, 비단 《논어》 뿐만 아니라 《노자도덕경》, 《명심보감》, 《채근담》 의 고전도 짧은 경구와 성찰을 담은 잠언집 고전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언지록》, 서양에서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지혜서》, 이탈리아 귀치아르디니의 《리코르디 - 회상집》, 파스칼의 《팡세》,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등등도 이러한 장르에 속한다. 그럼 왜 이러한 잠언집 장르가 대중에게 잘 읽히는 '베스트셀러' 였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겠다.

 

잠언집 고전들의 특징은, 잡다스러운 논의나 어려운 형의상학적 문구를 지양하고, 짧고 간결한 문구로 삶의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짧고 간결하며,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 함축된 내용은 깊고 풍성하다. 그러한 잠언집은, 지식이 없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책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읽다 보면 자신의 삶에 경험을 투영하여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동서를 막론하고, 이러한 장르적 형태를 취해,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 고전들이 많았다. 이러한 잠언서들을 어려운 용어로 '아포리즘'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금 서평을 쓰려고 하는 《유몽영》 역시 이런 아포리즘 잠언서라고 할 수 있겠다. 《유몽영》은 청대에 발간된 잠언서로 장조라는 문인이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 당대에 널리 퍼진 명문들을 모아 엮어낸 책이다. 책은 《유몽영》 본서와 이 책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유몽속영》까지 번역했다. 《유몽속영》은 장조가 쓴 책이 아니라 청대 말기에 문인 주석수가 쓴 책이다.

 

고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대중적이고, 흔히 알려진 고전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즐거운 것이 '새로운' 고전을 접하는 것이다. 《유몽영》은 그런 부분에서 우리 사회에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책은 아니었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접할 때 읽어보지 못한 고전이라 상당히 기대가 많이 됐었다. 잠언집의 최고봉인 《채근담》에 견줄 만한 책이라고 하며, 중국 유명한 문학가인 임어당이 극찬한 잠언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어당은 이 책을 영역하여 서구권 문화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자신의 저서 《생활의 지혜》라는 책 역시 《유몽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설에 나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유몽영》이 왜 그렇게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는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독서를 했었다. 그리고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이 책은 다른 잠언서들과는 다르게, 굉장한 격조와 품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잠언서의 특징은 삶의 지혜가 통찰적으로 녹아있는 문구가 많다는 점이다. 《유몽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처세서로 분류해 볼 수도 있지만, 얕은 처세서나, 딱딱한 교훈서로 분류하기엔, 문체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운 격조를 보였다. 왜 중국의 문학가인 임어당이 이 책에 매료되었는지, 알 법 했다.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독서와, 자연물이다. 특히 꽃과 산수에 대한 비유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나는 꽃이나 식물에 대해서 지식이 없어서 저자의 논의를 깊이 있게 체득하지 못 했지만, 글에서 풍기는 그 격조 높은 품위의 포스는 유감없이 느꼈다. 저자는 화훼와 식물, 그리고 꽃에 대해 상당히 지식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았다. 보통 동양의 잠언서들은 세속을 멀리하고 자연을 가까이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이 책은 구체적으로 꽃과 식물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이런 책의 서술은 책의 문장을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었으며, 교화라는 측면에서 잠언서가 가지는 딱딱함을 한층 더 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유교적 가치를 담은 잠언서들인 《명심보감》, 《논어》 등등이 다소 인과 예 충, 효에 집중하여, 직설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면, 《유몽영》은 그것보다는 다소 말랑하고, 부드럽게 이론을 전개하고 있었다.

 

같은 청대에 유행했던 《채근담》과 비교를 해 보자면, 공통점과 차이점도 보이는데, 《채근담》은 유교, 불교, 도교, 3교의 속성이 모두 절충되어 나타난 책이다. 동양을 지배했던, 사상이 모두 녹아내린 책을 한 권 꼽으라면 단연코 《채근담》이라 할 수 있는데, 《유몽영》 역시도, 유, 불, 선 3가지 사상이 모두 혼합되어서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채근담》에 비해서 《유몽영》이 가지는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꽃이나 여자, 산수의 풍경을 이용하여, 서술한 부분이다. 《채근담》과 《유몽영》 모두 다른 잠언서들에 비해 일상적이고, 평이한 서술을 보이지만, 둘을 놓고 비교해봤을 때, 《채근담》은 《유몽영》에 비해 좀 더 교화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채근담》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격언들은 대체적으로 교화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유몽영》은 교화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만 그것 외에도 저자 자신의 일상적인 생각이나, 사견 등등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두 책만 놓고 비교해봤을 때 좀 더 일상적이고 소탈한,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유몽영》을 꼽고 싶다.

 

혹자들은 《유몽영》이 자연과 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아서, 대체적으로 도가의 신선사상이나, 탈세속적인 삶을 노래하는 책으로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유몽영》은 탈세속을 노래하되, 세속적 가치도 쉽게 져버리지 않는 절충주의적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다. 청대의 잠언집들은 이전 시대의 유교 중심적인 잠언서들과 다르게, 유교 제일주의를 외치지 않고, 유교와, 불교, 도교의 다양한 사상을 합친 내용이 많다. 앞서 봤듯 《채근담》 역시 이러한 예에 대표적인 책이며, 《유몽영》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부분은 이민족이라 할 수 있는 청나라 왕조가 개창된 사회 배경의 영향이 컸다. 중국 본토를 지배하던 사상은 유교 사상인데, 이 유교사상은 한족 이데올로기의 가장 막강한 사상적 뒷받침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 대륙을 한족이 지배하는 왕조가 들어설 때, 상당히 폐쇄적이고 유교적 도학 적치를 강조하곤 했었다. (대표적으로 명나라와 송나라, 한나라) 이에 반해 이민족 국가가 들어설 때에는 유교를 중시하되,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당나라가 도교와 불교에 관대했다는 점) 명이 멸망하고 들어선 청나라 역시 만주족, 이민족의 국가이므로, 이전 왕조인 명에 비해 사상적으로 훨씬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저술 《채근담》과 《유몽영》은 유, 불, 선 3가지 사상이 절묘하게 녹아있게 된다.

 

이러한 자유분방한 학풍은, 현실과 이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유, 불, 선 세 가지 사상을 절충하는 중용적 성격은, 현실과 이상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너무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도, 너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지도 않는, 현실을 고려한 이상주의를 추구하게 되는데, 《채근담》과 《유몽영》 역시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몽영》은 탈세속을 아름답게 표현하되, 세속적 삶을 절대로 경하하지 않았다. 다음의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다.

 

'고상한 얘기를 하며 산림에 묻힌 자는 시정과 조정 얘기만 나오면 문뜩 마뜩해하지 않으며 입을 다문다. 사정이 그렇다면 《사기》와 《한서》 등의 책들도 모두 없애고 읽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개 이런 책에는 거의 옛날 시정과 조정에 관한 얘기들뿐이기 때문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산림에 묻혔으면 아예 조정일이나 사회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끊을 것이지, 왜 이전 시대에 기록된 '정치'나 '사회'의 담론을 보느냐?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에서 저자는 은거하는 것은 뭐라 하지 않지만, 세속의 일을 절대로 등한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대목에서 《유몽영》은 절대로 탈세속의 가치를 우위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몽영》은 앞서, 일상생활을 많이 반영한 잠언서라고 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당대의 사회생활에 대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점은 《수호전》에 대한 인용이 많은 점이다.  책에서는 《수호전》에 대한 인용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저자 장조는 《수호전》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청대 사회에서 《수호전》은 굉장히 많이 인용되고 보급된 책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지금 우리 사회로 말할 것 같으면 《삼국지연의》 급의 책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정치나 경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 혹은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흔하게 인용되는 책으로는 《삼국지연의》가 많으니, 《수호전》은 청 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위상이 아닐까 싶다.

 

'주사위 점수로 벼슬이 오르내리는 승관도 놀이는 덕을 중시하고, 축재를 꺼린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일단 벼슬길에 오르기만 하면 문득 이와 반대로 한단 말인가?'

 

이 대목을 보고, 청대 사회에서 유행했던 놀이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부루마블' 과 같은 보드게임인데, 이 당시에는 벼슬 이름을 가지고 주사위를 던지고 논 놀이 같다. 여담이지만 이순신에 대한 책을 보며 비슷한 대목을 발견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작을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한 것이 있는데, 이 놀이를 만든 사람이 조선 태종의 재상 하륜이다. 하륜은 고관대작들에게 관직 이름을 외우게 하기 위해 벼슬 이름을 두고 주사위 놀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이순신 장군 역시도 이 놀이를 군중에서 병사들과 즐겼다고 한다. 청대에서도 비슷한 류의 게임이 성행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호텔왕 게임'이나 '부루마블' 등등의 룰이 비슷하지 않은가? 청대와 조선에 유행했던 주사위 게임도, 아마 관직 이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룰의 게임이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책의 가장 큰 축으로는, '꽃을 포함한 식물' , '미인' , '술과 산수' , '독서' , '처세' 등등이 있다. 앞선 꽃과 미인 술과 산수는 풍류적인 도가적 이미지가 생각나고, 독서는 호학적인 유가적 이미지가 생각난다. 책이라는 것은 아무리 거리를 둔다 하더라도 저자와 긴밀한 관련을 맺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에서 저자인 장조는 꽃과 풍류를 즐기며, 미녀를 좋아했고, 술을 좋아했으며, 특히 독서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격언 중 상당수는 독서에 대한 자세와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많이 있다. 경전과 사서를 읽는 법에서부터, 책을 구매할 때는 게걸스러워도 된다. 사는 것보다 읽고 이해하며 뜻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등 여러 가지 독서에 대한 자세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뛰어나고 아름다운 문재(文才)를 지닌 장조였지만, 그의 일생은 다소 불행했다. 입신을 꿈꾸며, 과거 준비를 한 그였지만, 형식적인 과거 틀에 맞는 글을 짓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끝내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책에는 은연중에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했다.

 

'글로 명성을 떨치는 문명(文名)은 급제, 검소하고 절박한 행보로 덕성을 닦는 검덕은 재화, 맑은 행보로 한가한 삶을 사는 청한은 장수(長壽)에 견줄만하다.'

 

'차라리 소인의 욕설 대상이 될지언정 군자의 멸시 대상이 돼서는 안되고, 틀에 박힌 과거 시험관의 배척 대상이 되어 낙방할지언정 여러 선배 명사들이 알아주지 않는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위의 대목에서 저자 장조의 과거시험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다. 결국 《유몽영》은 급제하지 못한 장조의 문명(文名)을 상징한다고 보면 되겠다. 비록 살아생전에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훗날 임어당과 같은 문필가가 《유몽영》을 높이 샀으니, 죽은 장조는 현세의 아픔을 위안 받지 않을까도 싶다.

 

더불어 저자인 장조는 '달'을 굉장히 사랑했다. 《유몽영》 책에서 달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서술했는데, 관련 대목을 옮겨와본다.

 

'달도 햇빛을 반사해 그림자를 만든다. 천공에서 만들어지는 달의 그림자는 햇빛을 받아들인 결과이고, 밤에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것은 달이 햇빛을 받아 땅에 베푼 결과이다.'

 

이 외에도 달을 묘사하며 아름다움을 칭송한 구절들이 많지만, 특히 이 대목은 받아들이는 달과, 베풀어내는 달의 모습을 묘사하며, 삶의 태도를 은연중에 비유하고 있다.

 

《유몽영》의 본문과 문구가 다소 조곤하고, 여성스럽다면, 역자의 주석은 사뭇 현실적이고 강한 남성적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역자인 신동준은 책의 해설에서 자신의 지식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으며, 제자백가서를 섭렵하고, 조선왕조사를 공부한 탓에, 책의 주석에서 비슷한 사례와 문구들을 풍부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저자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힘과 힘의 논리에서 고전을 풀이하고 있는데, 뭐랄까 조금 자의적인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유몽영》이라는 책을 현실론적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돋보인 부분도 있었다.

 

모쪼록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잠언서지만, 격조 높은 문학성을 겸비했으며, 너무 딱딱하고 교화적인 내용을 드러내기보단, 중간중간 꽃과 술, 미인과 달, 산수에 대한 부분도 이야기하며 쉬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교훈적인 이야기도 많으며, 독서에 대한 문구에서 내 독서법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하고 남성적인 필력이 아니라, 여성적이면서 섬세한 필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책은 다른 고전들, 잠언서들에 비해 여유로운 분위기가 흐른다. '느림의 미학' 색다른 감동이다. 원래 잠언서는 빨리 읽는 책이 아니다. 책의 여유로운 분위기처럼, 느리게 그리고 깊이 생각하며 읽는 장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가까이하며 때때로 마음의 여유를 견지하고 싶다. 알지 못 한 책에서 받는 감동,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고전을 읽는 맛이다. 임어당이 극찬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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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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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텍스트를 볼 때, 가끔은 이런 후회를 하기도 한다. '아 왜 이 책을 이렇게 늦게 만났을까?'라는 후회. 내겐 <옹정제>가 그런 책이었다. 설 연휴 때 읽은 책인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책의 원 저자인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일본 역사학자로, 중국 역사에 대해서 굉장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나는 저자를 <수양제>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그 책을 보며 저자의 책을 검색하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구매하여, 책을 읽었는데 <수양제>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평전의 주인공 옹정제는 청나라 5대 군주였다. 흔히 말하는 청나라 군주의 전성시대 강희제 - 옹정제 - 건륭제 기간에 중심에 위치한 군주로 강력한 왕권을 세운 군주였다. 저자는 <수양제>에서 반면교사의 모델을 제시한다면 <옹정제>에서는 다소 긍정적인 리더의 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강희제와 건륭제의 경우는 치적이 두드러지지만, 그 사이에 있는 옹정제는 왠지 묻어가는 이미진데다, 옹정제라고 하면 흔히 권력욕에 눈이 멀어 동생들을 핍박하는 철혈정치를 내세운 부정적인 지도자를 떠올린다.


저자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그런 옹정제의 부정적인 여론을 걷어내며, 조목조목 옹정제의 치적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저자는 옹정제를 무조건적으로 칭찬하지 않는다. 결국 독재권력을 추구한 옹정제이고, 치밀하고 밀도 있게, 그리고 성실하게 정사에 임한 이 독재 군주의 한계 역시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평전을 볼 때 나는 무조건적인 칭찬이나 무조건적인 비판만 하는 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 긍정과 부정의 줄다리기를 적절하게 타며, 이 모범적인 전제군주 '옹정제'에 대해서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저자의 필법은 다른 저서 <수양제>의 리뷰에서도 지적했듯, 상당히 심플하고 간결한 편이다. 책의 쪽수는 200쪽이 안되며, 문장들도 짧은 단문을 선호하고 있다. 복잡한 청대 정치권력 암투를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요약하여 잘 서술하고 있는 저자의 필법에게서 경외감마저 느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영웅 옹정제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평이하고 쉬운 서술, 그러면서도 깊이가 있는 서술 덕분에 옹정제의 시대에 좀 더 심취할 수 있었다. <수양제>에서도 저자는 이런 필법을 보여줘서 나를 감동시켰는데​ <옹정제>에서도 이런 감동은 이어졌었다.


내가 책을 통해 만난 옹정제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영웅이었다. 자고로 왕조가 흥하는지 쇠하는지를 판단하려면, 3대나 4대 군주를 살펴봐야 한다. 왕조를 세운 군주가 국가 정비를 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대체로 왕조가 개창 되고 나면 개국 군주는 죽기 마련인데, 그 이후 절대적인 개국 군주가 죽고 나서 왕조는 혼란기로 접어들고 차기 용들이 전쟁을 벌인다. 이러한 암투 속에서 황제나 왕이 되는 군주가 국가 체제를 다시 정비하는데 대체로 3대나 4대에 이르러 이런 체제 완료가 정비된다. 고려로 말하면 개국 군주 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광종이 대대적인 왕권 강화를 내세운다. 조선의 경우도 태조가 나라를 세우고, 태종이 강력한 왕권 주의 국가로 체제를 정비했다. 이 뿐일까? 당나라의 경우도 당 태종 이세민이 국가 기틀을 바로 세웠으며, 명나라의 경우도 3대 황제인 영락제가 조카를 죽이고 황제가 되어 국가 기틀을 정비한다.


옹정제는 5대 황제다. 다만 청나라의 경우 1대 황제인 누르하치와, 2대 황제인 홍타이지는 북경에 입성하지 못 했다. 대륙을 통일한 것은 3대 황제 순치제 때부터였다. 옹정제는 5대 군주인데 대륙에 들어온 것으로 환산해보자면 3대 군주가 옹정제인 셈이다. (중국 통일 통일로 치자면 순치제가 1대니까) 그러니 옹정제의 제위 기간은 상당히 중요했으며, 앞으로의 청나라 왕조가 어떻게 나아갈지를 결정짓는 시기였었다.


옹정제의 아버지 강희제는 상당히 치적이 많은 군주였으며, 현명한 군주였다. 다만 집권 말기에는 강희제 역시 여러 가지 실수를 하게 되는데, 가장 큰 실수가 바로 태자 책봉이었다. 강희제의 과도한 자식 사랑으로 인해 둘째 황자인 태자는 강희제를 위협할 만한 정치권력으로 부각하고, 강희제는 태자를 폐했다가 다시 세웠다가 폐하는 등, 실책을 벌인다. 이 실수로 인해, 황자들은 제각기 파벌을 이끌고, 정치권력 암투에 뛰어들었다. 옹정제는 넷째 황자였고, 정치권력에 개입하지도 멀리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결국 강희제가 죽고, 후계자로 지명된 옹정제는 황제가 된다. 재빠르게 군권을 장악하고, 정국을 장악한 뒤, 자신의 안티 세력들을 모두 벌하는데, 가장 유명한 사례가 8번째 황자와 9번째 황자를 탄압하여 죽인 것이다. 옹정제 입장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권위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 강희제가 벌여놓은 황자들의 권력 다툼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며, 떨어진 황제의 위신도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기에 옹정제는 자신에게 따르지 않는 형제들에게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옹정제를 철면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옹정제는 상당히 따뜻한 구석도 많았다. 자신에게 복종하고 충복이 되는 형제들에게는 아량을 베풀고, 주요 요직을 맡겼다. 대표적으로 13번째 황자가 그랬다. 옹정제의 입장에서는 어제까지만 해도 권력 다툼을 하던 형제들이 자신을 황제로 인정해주길 원했지만, 다른 형제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옹정제는 황제가 됐고, 황제라는 지위는 형제 관계나 부자관계를 초월하는 군신관계였다. 옹정제는 형제들에게 형제이기 이전에 군신의 예를 요구했으나, 눈치가 없거나 감정적인 형제들은 그런 옹정제의 무언의 청을 거절했다. 그래서 옹정제는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옹정제를 이야기할 때 이런 권력 다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옹정제의 진면목은 황제가 되어서 어떻게 정사를 임했는지 그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옹정제는 그야말로 워커홀릭의 자세로 정사에 임했다. 아버지 강희제와 아들 건륭제가 유람도 떠나면서 좀 여유로운 정치를 했다면, 옹정제는 황궁 근처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모든 조회를 마치고, 저녁 시간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비밀 장계 들을 읽으며 일일이 다 답서를 내린 군주였다. 


가령 지방 수령들의 비밀 장계, 그리고 그런 지방 수령을 감찰하기 위해 파견한 비밀 암행어사들의 비밀 장계 들을 비교 분석하여, 어긋나는 사항이 있을 시에는 수령을 바로 문초하고 엄벌에 처했다. 중국은 땅이 엄청 넓다. 그래서 사방에서 쏟아지는 장계가 엄청날 것이다. 이 황제는 그러한 비밀 장계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 체크하고 손수 친히 글로 답서를 다 보냈던 것이었다. 이렇게 바쁘게 정사에 임했으니, 유람을 갈 여유도 없었으며, 건륭제와 강희제의 시대와는 다르게, 엄청 경직된 사회였을 것이다.


옹정제 덕분에 청나라는 안정된 왕권의 시대를 맞이한다. 황제 자체가 근면하고 성실했으며, 총명하며, 정사를 보는 것을 즐겼으니, 그 밑의 관리들의 입장은 죽어났을 것이며, 책잡히지 않기 위해 다들 노력했다고 평전에서는 나왔다. 즉 옹정제는 역대 황제들 중 가장 뛰어난 전제정치를 펼쳤으며, 확고하게 기반을 다져나갔다. 제위 기간 동안 옹정제는 흐트러지는 모습도 없이, 경건하고 숙연하게 정사에 임했다. 이 결과, 국가의 부패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으며, 재정 상황도 나아졌었다.


 그는 대외적으로, 국가의 거대한 부패, 그리고 관료조직의 어쩔 수 없는 타락과 맞서 싸운 군주였으며, 사상적으로는 한족 중심주의와 싸워나간 군주였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옹정제의 시대 역시도 한계가 있었다. 그 광활한 대륙을 군주 혼자서 엄격하게 통치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옹정제 역시도 그러한 부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역대 황제들이 못 한 선정을 자신은 펼쳐 보이고 이 생이 다 하는 날까지 부패와 싸워 나가겠다고 다짐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옹정제가 요구한 관리의 덕목은 너무나도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나는 미야자키 이치사다(저자)의 이 대목을 읽으며, 중국과 일본의 차이를 느꼈다. 이치사다는 말한다. 옹정제는 인간의 본연적인 속성을 모르고 있었다. 관리라는 사람들, 그리고 관리가 아닌 모든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남기려는 욕심이 있다. 그러나 옹정제는 관리들에게 이윤추구를 과도하게 억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은 좋지만, 정당하게 노력하고 벌어들인 이윤에 대해서도 절제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준다면, 과연 불만이 없겠는가? 중국과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학을 존숭하고 발전시켰다. 그 결과 유학에서 주장하는 정치인의 덕목을 이상화했다. 유학적인 정치가의 표본은 무엇인가? 바로 청렴함이다. 사욕을 추구하지 않으며 국가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관리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해석하듯, 일본인들의 사상은 이와는 달랐다. 예로부터 일본은 인간의 본성적 이윤 추구를 긍정한 민족이었다. 그래서 이치사다는 옹정제의 바람직한 전제정치를 비판했는데, 이러한 비판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공직이나 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윤추구를 절제해야 하며, 뇌물과 비리에 청렴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사람이고, 사람인 이상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이윤 추구는 허용해줘야 하며,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에서 재산을 모으는 것에는 여유를 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윗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도덕주의를 내세우며, 정당한 이윤 추구마저도 청렴함을 강조하는데 이런 부분은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옹정제 역시도 이런 부분에 좀 더 융통성 있게 대처했더라면 기존 관료들이 좀 더 옹정제의 정치에 호응했을지도 모른다. 절대권력자의 철권통치로, 관료주의를 억누르며 부패를 척결하려는데 노력한 옹정제였지만, 결국 옹정제의 강력한 독재로도 관료주의의 타락을 극복하지 못 했던 것이다. 이것은 독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로부터 나는 지도자는 과연 어떻게 집단을 이끌어야 하는지, 밑의 사람들의 이윤 추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됐었다.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옹정제는 상당히 열정 있는 군주였다. 그가 보여준 성실함과, 그가 보여준 치밀함, 한계가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군주, 쉬지 않는 워커홀릭의 자세, 그리고 그의 애민정신 등등은 귀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어쨌든 그가 이렇게 국가 내부를 철저하게 다스렸기에 아들인 건륭제 시기에 확장하는 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자금성에 가고 싶다.', 그리고 '청나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다.'라고 말이다. 자금성에 가서 옹정제를 비롯한 강희제와 건륭제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으며, 청나라에 대한 역사도 관심이 갔다. 건륭제나 강희제를 다룬 책들도 읽고 싶으며 며칠 전에 선물 받았던 <누르하치>도 빨리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책은 이번에도 나를 만족시켰다. 일본인 저술의 특징인 얇은 부피, 얇은 부피지만 내용의 깊이가 매력적인 책이었다. 옹정제의 삶 역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옹정제의 삶을 조곤하게 알려준 이 노학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그의 글로 다양한 인물을 만나보고 싶다. 옹정제는 매우 매력적인 모범 전제 군주였다. 그를 통해서 많은 부분을 배운 것 같다. 특히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선배인 옹정제에게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부피도 얇고 어렵지도 않되 깊이는 있는 책이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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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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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 정치철학서 <맹자>가 유교사상의 정치철학을 대변하고 대표해왔다면, 서구 사회에서의 정치 텍스트의 시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국가>라는 책은 플라톤의 중기 철학, 그 자체를 대변함과 동시에, 플라톤이라는 아이콘을 대표하는 저서다. 왜 우리는 플라톤 하면 <국가>를 떠올리고, <국가>가 그의 대표작이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국가> 책 안에서는 여러 가지 주제가 중구난방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가령 국가와 정치에 대해서, 그리고 순수철학과 인식론, 이데아 이론에 대해서 강하게 드러난 책이 <국가>다. 일단 <국가>는 플라톤의 저서 중 분량이 방대한 편에 속한다. 다른 대화편들이 단편적인 성격을 지닌다면, <국가>는 상당히 두꺼운 양을 자랑한다. 그만큼 플라톤은 이 책을 저술하면서, 혼을 쏟아 저술했다. 분량이 방대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론들이 심도 있게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책은 국가와 정체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지만, 그런 것을 나아가, 사회와 개인, 도덕, 순수철학, 문학 분야들을 넘나들며,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플라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국가>, 그리고 명문대 선정 고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 <국가>이지만, 사실 <국가>는 상당히 어려운 저술에 속한다. 플라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국가>부터 사 놓고 책을 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십중팔구 멘붕당하고, 철학을 멀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작이기는 하나, 플라톤의 입문작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책이 너무 방대하고, 여러 분야들이 뒤섞였기 때문에, 플라톤과 친숙하지 않다면 접근하기 힘든 텍스트가 <국가>다.


<국가>는 일반적으로 철학서적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으며 <국가>를 철학서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오류가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이 책 속의 논의나 철학적인 색깔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철학서로도 손색없는 뛰어난 역작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원저자의 저술 의도를 짐작하고 생각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 문헌에 따르면 플라톤이 이 책을 저술한 이유는 이렇게 나온다. 향후 정계에 나갈 명망 높은 유력 가문의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숙고하고 생각한 플라톤만의 이상적인 정체 이념이 투영된 것이 <국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순수 철학서라고 이야기하기보단, 정치철학서라고 생각한다.


당시 그리스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페르시아와 전쟁을 겪었으며, 대내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아테네는 엄청난 타격을 받은 상태였다. 거기다, 최종적으로 30인의 과두정은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죽임으로써, 플라톤에게 강한 멘붕을 선사했다. 기존에 부유층 자제였던 그는 스승의 죽음에 절망하여,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학문 활동에 전념한다. 보통 사람들이 어떤 충격을 맞이했을 때, 극복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충격으로부터 정면 돌파하는 경우, 두 번째 다른 분야에 몰두하면서 다른 분야를 통해 충격을 준 부분을 해소하는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있겠다. 여기서 플라톤은 두 번째 경우를 선택했다. 그는 스승의 죽음을 내린 사회 앞에서, 정치가의 꿈을 접고 철학 학문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기로 다짐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숙고의 삶을 거쳐, <국가>라는 텍스트를 통해 스승의 죽음을 내린 현재 그리스 정치관을 진단하고 비판했다. 플라톤의 입장에서 스승을 죽인 그리스 정부는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숙고와 사색 끝에 자신의 이상적인 정치관을 형성하고 그것을 저술로 써 냄과 동시에, 향후 자라는 아테네의 미래들에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자신의 절망을, 그리고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것이 <국가>가 저술된 목적이었다.


<국가>에 나온 플라톤의 정치이념은 철저한 계급 이론을 바탕으로 하며,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뛰어난 수호자 계급의 철인이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며, 각자의 계급에서 어긋나는 것은 사회를 혼란시키게 만드는 요소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제적인 정치를 떠올리기 쉽다. 특히 몇몇 사람들은 플라톤의 이런 정치이념을 보고, 독재주의로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구석은 있다. 그러나 이런 성급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플라톤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정체에 대해서 '과두정치'와 '철인정치'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플라톤이 이상으로 내세우고 있는 철인정치의 최고 통치자는 그야말로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인간이다. 가장 이성적이며, 가장 자제력이 뛰어난 인물, 무한한 권력 앞에서 자신의 욕심을 잘 다스리고 초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인물, 사욕을 채우지 않는 인물, 본질(이데아)를 바라볼 수 있는 인물, 그런 인물이 다스리고, 그런 집단이 지도층에 서서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것을 '철인정치'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철인 수호자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부분에서 '과두정치'라고 규정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플라톤의 관념으로는 과두정치와 철인정치를 엄격하게 구분을 했었다.


플라톤의 수호자를 이런 부분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인간 집단에서는 리더가 필요하다. 아무리 평등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동물과 인간은 태생적으로 대표자를 선출해왔었다. 어쩌면 플라톤은 그런 인간 조직문화의 본연적인 속성을 이해하고, 반영하되, 그 지도자에 대해서 최대한 자신이 생각한 덕목들, 즉 이성 중심적인, 철학에 능통한 자격을  통치자에게 요구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플라톤의 정치이념은 동양 사상의 이상주의자 공자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공자가 말하는 선비 집단, 그리고 그 선비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군자라고 칭하고, 그 군자를 중심으로 정치를 이뤄나가는 것, 사농공상이 제각기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회를 공자는 꿈꿨다. 그래서 이런 이념을 보수주의적 이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후대의 가치를 투영하여 바라본 결과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당시 공자가 말한 사 계급, 즉 선비 계급은 놀고먹고, 통치의 즐거움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농공상의 계급보다 더 청렴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도층은 내면적으로 더욱 더 성찰하고, 덕을 쌓아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은 플라톤과 공자가 간과했던 것이 있다. 플라톤의 입장부터 보자면 인간은 완벽한 이성으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공자의 입장으로 보자면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선하지 않으며 무조건적인 도덕을 내세우고 있지 않다는 점도 간과하는 점이 보였다. 동양과 서양의 두 선현은 어쩌면 인간을 완벽하고 절대적인 이상적인 개체로 인식하고 정체 이론을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그들은 그들의 이론에 집중하여서,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본성을 고려하지 않았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둘의 사상은 의의는 있으되, 구현되기 어려운 이상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지만, 플라톤은 남녀평등을 이야기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호자 자질이 있는 여성들은 남성과 평등하게 교육해서, 국가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이 부분은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이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그야말로 바닥이나 다름없는데, 플라톤은 이러한 관념을 뒤엎고, 남녀평등의 교육을 주장했다. 그래서 여성들도 체육관(김나지움)에 가서 남성들과 비슷하게 레슬링(고대 그리스에서 대표적으로 남성들이 단련했던 운동)을 해야 하며, 군사적인 지식과 통치, 철학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 바람직한 철인, 수호자는 과연 어떻게 국가를, 국민을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국가> 7편에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물론 이 7편 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지도자의 덕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흔히 말하는 '동굴의 비유'라고 하는 이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다.



플라톤을 이야기할 때 가장 빠지지 않는 부분이 이 '동굴의 비유'다. 이것은 <국가> 7권에 나온 이론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 손발이 묶인 채, 그림자가 비치는 환영만을 보며 그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삶의 본질은 그렇지 않다. 동굴을 빠져나와서 태양 위의 세상이 본질이듯, 결국 세상의 본질(이데아)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과 떨어져 있다. 우리는 수갑을 풀고, 나와 용기 있게 동굴을 나와서 태양 아래에 올바른 세상을 봐야만 한다. 올바른 세상 그것이 바로 플라톤이 주장하는 이데아이며, 사물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플라톤은 이 동굴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이데아 이론과 더불어, 수호자가 어떤 자세로 정치를 임해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올바른 치자라면, 일단 동굴 안에서 그림자만 보는 속박당한 자신을 해방해야 한다. 수갑을 풀고, 나아가 동굴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빛 아래에서 세상의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치자는 다시 차갑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가, 환영에 사로잡힌 여러 대중들을 동굴 밖으로 이끌어야 한다. 수호자 그리고 철인은 이렇게 대중의 사슬을 끊고 대중들에게 사물의 본질, 세상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자를 플라톤은 원한 것이다.


여기서 바깥세상, 즉 태양이 비치는 세상은 사물의 본질과, 세상의 본질 즉 이데아의 측면을 뜻한다. 플라톤이 생각한 관념 속의 개념인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현실적 형상은 동굴 개념에서 비추는 말과 병 등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에서 플라톤은 철저하게 이원론적 사고과정을 보여준다.


정신 vs 감각, 이데아 vs 보이는 사물의 형상, 동굴 밖의 원래 세계 vs 동굴 안의 세계, 이성 vs 감각, 등등 플라톤의 철학은 철저하게 하나의 축과 다른 축의 대립이 있다. 대체적으로 플라톤은 정신과 이상을 절대시하고, 그러한 정신과 이성으로 사물의 본질 이데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이데아를 바라보는 것이 동굴 밖의 밝은 세계를 본다는 개념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국가>에서 플라톤은 문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결국 문학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로 표현한 것이므로, 가까이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런 부분은 너무 지나친 오버가 아닐까, 플라톤에 따르면 결국 이데아(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속성이 있는데, 결국 문학이라는 것은 실제 사건이나 영감을 포장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포장하고 묘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실제 하는 것을 비틀어 표현하는 것이라 이데아적 속성을 지니지 않게 된다. 즉 플라톤은 모든 문학은 허구와 공상이 존재한다. -> 그것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다. -> 본질은 가변적 속성이기보다 절대적 속성이다. -> 이런 부분에서 보자면 문학은 이데아적 속성을 지니지 않으므로 지향해서는 안된다.로 귀결된다. 플라톤은 이런 이유로 문학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비판적으로 플라톤의 이념을 바라보자면, 플라톤 자신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데아(본질)를 사물의 본질로 인식하고, 우리가 보는 현실의 세계를 껍데기로 인식했지만, 반대로 어쩌면 이데아야말로 상상 속에 만들어진 관념일 수 있겠고, 현실에 보이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하며 더욱더 현실 중심적인 것에서 답을 찾으려 했던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의 문학론을 옹호하기보단, 자신만의 문학론을 <시학>이라는 저술로 남긴다.


디오게네스의 <철학자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플라톤의 <국가>를 반박하기 위해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교육>을 저술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살펴봐도 <국가>의 저술 의도를 알 수 있다.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은 직접적인 리더십을 다루고 있다. 즉 외전과 내전, 그리고 스승의 죽음으로 얼룩진 위기의 아테네를 구할 정치에 대해서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것이 <국가>였다. 크세노폰은 플라톤의 사상에 반발하여 자신만의 해결책인 <키루스의 교육>을 저술했다.


두 책을 다 읽어 본 입장에서 과연 뭐가 다를까?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인은 절대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크세노폰이 주장하는 키루스 대제는 이성적이긴 하되, 한계가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절제라는 측면에서, 플라톤의 철인은 자신의 감정을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기에 절제하는 건 지도자의 당연한 책무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크세노폰의 이상향 키루스 대제는 이성적이긴 하나, 결국 인간 본성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유혹들로부터 의식적으로 절제를 해야 한다는 그런 입장이다. 즉 플라톤의 입장은 이성을 통해 완벽한 자기 통제가 가능한 인물을 꿈꿨다. 그런 완벽한 자기통제 하에 절제를 자유자재로 하는 철인적인 인간을 이상적으로 꿈꿨다, 크세노폰은 인간은 이성으로 완벽하게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며,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유혹들로부터 타락하지 않기 위해 절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플라톤은 인간은 절대적인 이성의 존재로 인식하는 반면, 크세노폰은 그런 입장에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것이 두 철학자의 가장 큰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


마치 동양의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을 보는 것 같았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에 본성에 따라 선을 실천하고 배우기를 갈망한다고 해석한다. 순자의 성악설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에, 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공자를 중심으로 유학 학파는 계보적으로 맹자와 순자가 갈리기 시작하는데, 대체적으로 동양에서는 맹자의 사상에 권위를 부여해왔고 순자를 이단으로 치부했었다.


마찬가지로, 서구 사회에서도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과 플라톤이 절제라는 측면을 해석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플라톤의 이념을 좀 더 우위에 두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은 과연 플라톤이 말한 대로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존재인 것일까? 왜 나는 이 질문이 회의적으로 들리는 것인지...


거기다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여러 가지로 대조적이다. 플라톤은 귀족 명문가의 자제로 스승의 죽음 이후, 깊은 사색과 숙고하는 자세로 자신의 번뇌를 돌파했다. 그 결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출함과 동시에 서양 철학에 엄청난 거두로 자리 잡았다. 크세노폰은 플라톤과 달랐다. 크세노폰은 스스로가 전쟁을 경험했었고 그 경험담을 <아나바시스>라는 책으로 남겼다. 활동적 성격이 다분하기에, 숙고하고 생각한 플라톤의 글과 비교해서, 글이 투박하다. 크세노폰의 저술을 살펴보면 자신이 경험한 전쟁담과 경험이 녹아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크세노폰은 자신의 실제 경험담(주로 전쟁 경험)을 녹여서 저술을 했다.  


가령 <국가>와 <키루스의 교육>을 비교해보자면, <국가>가 상당히 이상주의적이고, 관념적이며, 철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키루스의 교육>은 다소 현실주의적이며, 경험주의적이며, 간결하고 투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보통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서 참고해야 할 도서로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정치학>을 꼽는데, 물론 <정치학>과도 비교를 해야 하지만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과도 비교를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가>는 쉽게 리뷰할 책은 아니다. 나는 지금 비교적 책의 저술 동기에 맞춰, 정치와 지도자에 관한 부분으로 좁혀 리뷰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 책은 워낙 방대한 분량이고 다루는 부분이 많아서, 여러 각도로 리뷰를 쓰고 싶은 생각도 든다.


국내에는 <국가> 번역본이 많이 나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책은 아무래도 박종현 선생님의 <국가>다. 내가 본 책은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본이다. 두 책은 장단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박종현 선생님의 국가는 직역을 바탕으로 하였고, 철학을 전공하신 탓에 전문적이고, 다양하고 심도 있는 주석이 매력적이다. 깊이 있게 <국가>를 읽을 분들은 박종현 선생님의 저작을 추천한다. 반면 천병희 선생님의 <국가> 장점은 가독성이다. <국가>를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아니 국가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철학서적에 국한된 것이지만,) 책은 굉장히 난해한 내용이다. 천병희 선생님은 번역을 하실 때 가독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번역했다고 한다. 둘 다 읽은 결과, 확실히 천병희 선생님의 역본이 보기에는 더 편했다. 이 부분은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여 읽으면 될 것 같다. 참고로 두 저서 모두 그리스 헬라어 원전 번역본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 <국가> 원전 번역본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호에 맞게 책이 나왔으니 좋은 것 같다. 앞으로 정암학당본 <국가>가 나올 예정이라는데 기대가 된다.


지금 보면 여러 가지로 한계도 있고, 이상주의적인 부분이 많은 텍스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역시 좋은 책이다. 리더가 되고자 하거나,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필수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고전이라는 것은 괜히 내려오는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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