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5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5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5》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가장 쪽수도 많이 잡아먹는 인물이 바로 폼페이우스다. 실제로 그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다정다감한 성격, 고귀한 성품, 덕 있는 태도 등등 내면적인 품성도 아주 아름다웠으며, 실제적인 능력 역시도 탁월했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사르와 비교를 해봐도, 카이사르의 군사적 업적은 폼페이우스에 비교하면 흔히 '듣보잡' 수준이라고 할 만 한다. 폼페이우스는 지상으로는 3개의 대륙,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소아시아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바다로는 지중해 연안 일대를 장악한 인물이다. 실제로 이전까지의 로마 인물들 중에서는 이렇게 방대한 영역에서 전공을 세운 자가 없었다. 그는 로마의 위용을 넓힌 영웅 중의 영웅이다. 게다가 그는 비록 정치적인 이유로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지만, 다른 권력자들과는 다르게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비교적 깔끔했다. 그는 아내에게 최선을 다했다. 소아시아 원정 도중에도 미트리다테스의 여인들을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돌려보냈다. 이런 위대한 인물이 왜 카이사르에게 패배했을까? 실제로 카이사르와 전쟁을 할 당시에 객관적인 조건을 봐도 카이사르보단 폼페이우스가 훨씬 유리했다. 폼페이우스는 따르는 인물들이 많았으며, 막대한 해상 세력권과 더불어 정부의 원로들도 대부분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자국 내에서도 폼페이우스의 인기는 카이사르보다 훨씬 높았고, 그로 인해 군사들도 훨씬 많았다. 왜 그토록 유능하고 유리했던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게 패배한 것일까?

첫 번째 원인은 바로 카이사르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카이사르는 그저 그런 군벌 세력이 아니었다. 그는 크랏수스의 영악함과 폼페이우스의 군사적 재능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카이사르는 갈리아에 있을 때 로마의 지지세력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온갖 뇌물을 동원했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었으며 모략과 계략에도 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정적 카이사르를 그저 갈리아의 지방관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두 번째는 준비성이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늘 갈리아에서 정예병을 훈련하고 있었다. 기회가 오면 갈리아의 군단을 움직여 로마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속셈이었다. 반면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관리구역인 이베리아반도의 군사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성공 뒤 로마에 머물러서 부인과 함께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냈다. 이미 국내에서는 자신을 제거할 세력이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이런 안일한 움직임을 보였다. 실제로 로마 안에서는 그를 대적할 세력은 없었다.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너무 과신했다. 그랬기에 카이사르가 움직이면 전방위로 병력을 동원하더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이 터졌을 때, 폼페이우스의 군대는 카이사르의 군대보다 두 배 가량이 넘었지만, 정예화된 카이사르의 군대에 패배했다. 만약 폼페이우스가 젊은 시절에 대륙을 정벌하듯 평소에 군대를 준비했다면 카이사르에게 그토록 허망하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로 소신 없는 모습을 꼽을 수 있다. 카이사르와의 전쟁 당시 폼페이우스는 로마를 내줘 카이사르의 강력한 예봉을 피한 다음, 여유를 가지고 군사를 소집하여 훈련한 뒤 수륙 양면으로 카이사르를 공략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전략은 탁월했다. 왜냐하면 카이사르에 비해 폼페이우스의 세력이 워낙 압도적이라서, 카이사르가 수도인 로마를 점령했다고 한들 보급 때문에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 폼페이우스는 막강한 해상세력과 이탈리아반도와 아시아, 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의 세력이 있었고 이들을 유동적으로 활용한다면 오히려 카이사르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갈리아 지역으로 역공을 가할 수도 있었다. 카이사르와 비슷한 사례가 바로 일본 전국시대의 아케치 미츠히데다. 전국 시대에 아케치 미츠히데는 반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이고 수도인 교토를 점령하였지만, 이는 결국 3일 천하로 끝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카이사르 역시 이런 결점을 가졌기에 장기전으로 흐르면 흐를수록, 카이사르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정부와 원로원이 지지를 하고 있기에 명분상으로도 카이사르보다 우위에 있었으며, 귀족들과 평민들 역시 폼페이우스를 더 지지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카이사르로부터 수도 로마를 빨리 탈환하라고 폼페이우스를 부추겼다. 이에 폼페이우스는 냉정한 자신의 판단을 버리고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되어 준비되지 않는 군대를 이끌고 카이사르의 정예병과 싸움을 개시했다. 애초에 카이사르는 육군이 우세했고, 폼페이우스는 육군보다 우월한 해군을 운용할 수 있는데, 이런 해상세력을 이용하지 않고 준비가 되지 않는 육군으로만 전투를 감행했다. 이 부분도 결국 카이사르에게 유리했으며, 결국 이런 결과로 폼페이우스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즉 종합해보면 폼페이우스는 성공 이후 스스로를 자만하였다. 그랬기에 카이사르를 똑바로 볼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으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전쟁에 임했다가 패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카이사르보다 유리했지만, 그 유리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 세 개의 대륙을 정벌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임페라토르(로마의 승전 장군을 지칭) 지만 이렇듯 자만감에 사로잡혀 단 한 번의 패전 끝에 이룩한 공을 모두 잃은 셈이다. 이렇듯 사람은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 스스로를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5권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리더의 무게'에 대해서다. 리더의 행동은 사소한 하나라도 대중들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를 지도하는 통수권자들이 사용하는 옷이나 물품은 일반 시민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기에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소한 행동을 통하여 정치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5권에 나온 인물들의 행적도 그랬다. 그들의 행동은 많은 팔로워들을 뒤흔들었다. 아게실라오스와 폼페이우스는 모두 뛰어난 공적을 이룬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생 전반기는 매우 황금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개인적 자질로 시민들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뛰어난 업적을 통하여, 각각 그리스와 로마의 패권을 더 넓혔다. 그러나 이런 위업들도 리더의 자만과 변덕으로 인해 흐려지게 됐다. 민중들과 지지자들은 변절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빨리 인지했다.

아게실라오스는 테베의 반역으로 곤욕을 치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한 스파르타는 그리스 지역에서 막강한 패권을 구축했고, 그랬기에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맹주였다. 그런 스파르타에게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다. 아게실라오스는 이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그가 내세웠던 신념을 져버리고, 동맹국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는 테베와의 전쟁에 너무도 집착했다. 설상가상으로 테베에 연달아 패배했다. 그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테베에 있어서도 좀 더 공정하게 관용적으로 대했더라면 테베의 반란은 쉽게 종식됐을지도 모른다. 폼페이우스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위대한 위업을 이뤄냈지만 결국 자만하는 모습으로 인해 스스로 몰락했다. 리더의 행동은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 말은 리더가 한 번 실수를 행한다면 그 피해 역시 막심하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리더는 행동하기에 앞서 신중해야 하고 매사에 스스로를 돌아봐야만 한다.

펠로피다스와 마르켈루스는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운 위인들이다. 물론 펠로피다스는 조국 테베의 독립을 가져왔고, 테베를 그리스의 패권국으로 만든 위인이었지만, 말년에 사소한 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목숨을 잃었다. 마르켈루스도 한니발을 괴롭힌 장군으로, 한니발이 로마 본토에서 가장 두려워한 인물이었다. 그는 한니발에 대한 증오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영웅이고 나라를 드높인 영웅들이지만 말로가 좋지 않다. 그들이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을진 모르겠지만, 만약 죽지 않고 살아서 나라에 보답했다면 조국에 더 큰 영광을 가져왔지 않았을까? 이렇듯 리더의 행동은 너무 가벼워서도 안되고 너무 무거워서도 안된다. 너무 집착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방관해서도 안된다. 적정한 방향을 걸어가되 늘 자신을 점검하고 반성해야 하며, 모든 부분에 있어서 중용을 견지해야 한다. 참 어렵다. 그러니 리더는 아무나 해서도 안 되고 아무나 욕심내서도 안 되는 자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튜브의 신 - 1인 크리에이터들의 롤모델 대도서관이 들려주는 억대 연봉 유튜버 이야기
나동현(대도서관)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오늘날은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회와 생활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이런 오늘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4차 산업'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은 이런 급격한 변화에 맞춰 새롭게 변화하는 산업 구조를 뜻한다. 변화에 의하여 기존에 익숙했던 산업은 붕괴할 것이고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직종이 새롭게 생길 것이다. 이미 변화는 진행 중이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직업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유튜브로 대표할 수 있는 '1인 미디어'다.

  불과 전 세대만 하더라도 온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런 모습보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각자의 취미에 맞는 개인 방송을 시청하는 모습이 많아졌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굳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TV를 볼 필요가 없다. 가족 구성원들과 기호 채널을 두고 불필요하게 리모컨 전쟁을 할 필요도 없으며, 개인 방송을 통해 내 취향에 부합하는 것들을 시청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사회는 핵가족화되어가고, 핵가족이 진행될수록 가족 구성원의 다양성은 더욱 존중받고 있다. 이런 사회적 구조에 맞춰 발 빠르게 태어난 것이 바로 유튜브를 대표하는 '1인 미디어' 직종이다.

  과거에는 개인 방송이 흔하지 않았고,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다르다. 수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 예를 들어보면 게임을 비롯하여, 먹방, 뷰티 등등의 BJ들을 팔로워 하며 방송을 본다. 지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지대넓얕'과 같은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지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시작했다.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세대도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유튜브로 검색하여 듣곤 한다. 이런 '1인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는 소소한 취미에 불과했고, 그저 덕후들의 전유물이었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잘만 활용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무기가 됐다. 개인방송과 유튜버들이 다루는 영역도 끝이 없다. 대세인 먹방과 음악, 뷰티, 게임은 이젠 식상한 소재로 전락했으며, 학문과 지식, 미술, 예술 등등의 고상한 분야에서부터 정말 극단적인 마니아들의 영역까지 전방위적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너도나도 '1인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가진 인문학 지식을 말랑하게 해서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하는 방송을 진행해보라는 권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1인 미디어'와 유튜브에 대해서 남몰래 공부도 했었다. 이 책도 그런 공부의 과정에서 만났다. 책의 저자인 대도서관은 새롭게 태어났고,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1인 미디어의 선두주자이자 1인 미디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익숙하지 않는 분야를 배울 때에는 그 분야에서 성공하고 그 분야에서 정통한 사람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대도서관이 왜 '1인 미디어'로 성공했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다소 자극적이고 산만한 표지와는 다르게, 책의 내용은 매우 진중하고 솔직했다. 처음에 나는 표지를 보고 그저 얕은 기술적인 팁에 집중한 책이겠구나, 유튜브에 대한 가벼운 실용 지식에 집중한 책이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은 굳이 장르를 따져보자면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고 내용적인 부분은 유튜브와 '1인 미디어'에 대한 팁도 팁이지만 그런 부분보다, 마음가짐에 대해서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책의 문체는 중고등학생들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평이했다. 특별함이 없는 평이한 문장이지만 가식이 없으며 진솔하고 솔직했다. 읽으며 느낀 점은 대도서관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생각보다 매우 성실한 사람이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다. 흔히 유튜브나 '1인 미디어'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조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저자만큼은 운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본에 충실했고, 매우 성실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산업이 대세가 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생각보다 매우 다양한 분야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흔히 '1인 미디어' BJ들의 모습은 그 분야에만 정통한 사람이 떠오르는데, 그의 관심사는 매우 폭넓었다. 그리고 그런 관심사를 배우는 것에도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저자의 모습은 유튜버나 '1인 미디어'를 꿈꾸는 사람에게 분명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되겠지만, 유튜브나 '1인 미디어'를 떠나 급변하는 시대에 현명하게 살아가는 인생 선배, 멘토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끝으로 이미 '1인 미디어' 영역은 경쟁이 과열된 레드오션이며, 그렇기에 후발주자는 선발주자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저자인 대도서관도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1인 미디어'의 선두주자였다는 점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서평 서두에 말했듯 4차 산업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즉 오늘날 대세이고 유행하고 있는 미디어 영역은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렇기에 후발주자들은 기존에 유행하고 있는 유튜브나 SNS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미래에 진화하게 될 '1인 미디어'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유행했던 싸이월드가 영원할 수 없듯, 오늘날 대세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1인 미디어'를 꿈꾸고, '1인 미디어'로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대세에 집중함과 동시에 미래의 모습도 발 빠르게 예측하여서 선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힘을 갈구한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더 나은 힘을 갈구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명성을 얻고,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단순화하자면 힘의 욕망이 아닐까. 그럼 사람은 왜 자신이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힘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힘이 있는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보다 누릴 것들이 많으며, 더 편하게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돈을 버는데 그토록 열중이며, 어느 정도의 돈을 축적한 사람들은 결국 우두머리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정치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직간접적으로 과시하려고 노력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온 영웅들도 대부분 이러한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으며, 특히 4권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러한 욕망에 매우 열정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 배신을 하기도 했으며, 다른 정적들을 모두 숙청하고 온전하게 힘을 자신의 것으로만 누리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해서 힘을 얻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권좌에 올라본 사람은 그 권좌의 달콤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랬기에 왕조 국가의 왕들은 자신의 왕권을 무조건 강화하려고 노력했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에 나오는 영웅들 역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다. 이렇듯 강한 권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유혹적이다. '모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명언도 결국 권력의 유혹의 위험성을 뜻하는 문구다.

  그럼 이런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대처하여야 바람직한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4권의 인물들에게서 저자인 플루타르코스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핵심이다. 그는 배신과 독재의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결국 권력자들은 권력으로부터의 이 두 가지 유혹을 절제하기를 주장하고 있다. 집단과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권력을 유지하지 않아야 하며, 획득한 권력을 자기 자신만이 독점할 것도 경계하고 있다. 물론 국가의 상황이나 시민들의 요구로 인하여 권력을 독점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본분과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과감하게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뤼산드로스와 술라는 각각 그리스와 로마를 독점하다시피 하였지만, 그들은 끝내 힘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의 독재는 이후 시대에 악영향을 미친다. 뤼산드로스로 인해 스파르타는 그리스 전역의 패권을 장악했지만, 숱한 폴리스들의 반란을 야기했고, 결국 그의 사후 그리스의 전성기는 다시 오지 않았다. 로마의 술라는 독재관으로 황제에 가까운 권력을 휘둘렀다. 그의 사후 로마는 패권주의 군벌들에 의해 좌지우지됐으며 그 정쟁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를 기점으로 공화정이 폐지되고 왕정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독점적인 권력의 유혹은 이후 시대에 더욱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다.

  또한 권력을 유지하는 동력은 권위와 힘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지지로 비롯해야 한다. 배신과 독재는 시민들의 지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알키비아데스와 마르키우스는 결국 시민으로부터 자신의 권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그러한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배신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술라와 뤼산드로스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들을 힘으로 억눌렀으며, 그로 인해 권력을 독점했다. 이렇듯 그들이 유지하고자 했던 권력에는 시민들의 지지와 복종이 결여됐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였기에 그들은 역사로부터 온전한 영웅이 아닌 반쪽짜리 영웅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따르는 사람이다.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제아무리 리더라고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영웅이나 리더들은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3권을 읽으며 나는 팔로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4명의 영웅들은 모두 팔로워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 인물들이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들을 위해 친서민정책을 유지했으며 신전과 문화시설을 건설했다. 그는 이러한 혜택을 줌으로써, 시민들에게 환심을 샀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혀나갔다. 파비우스도 마찬가지다. 카르타고와 적극적으로 싸우자는 다수의 호전적인 시민들을 잠재우고, 장기전으로 한니발을 괴롭히자고 끝까지 주장했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파비우스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고 겁쟁이라고 조롱했지만 그는 묵묵하게 시민들의 분노를 감내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로마 시민들은 과격한 장군들의 선동에 휘말려 군대를 내보냈지만 내보낼 때마다 실패했고, 그로 인해 파비우스는 정치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었다.

니키아스는 시칠리아 원정이 실패로 돌아갈 것을 알고 전쟁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주전론에 휩쌓인 민중들의 눈치를 의식하여 의도하지 않게 전쟁의 책임자로 원정에 참가했다. 크랏수스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자신의 군사적 위업을 보여주고자 파르티아로 원정을 떠났다. 네 영웅은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책에서 보여주는 대중들은 매우 선동적이고 단순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뛰어난 안건보다, 협잡꾼들이나 기만자들의 선동에 더욱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선정적인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랬기에 페리클레스는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관심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돌리려고 했으며, 파비우스의 지구전은 매번 주전론자들에게 물어뜯겼다. 크랏수스는 이런 가변적인 시민들의 여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여론을 잘 활용하여서 삼두정치의 주역으로 나서게 됐으며, 니키아스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눈치 때문에 결국 시칠리아로 떠났다.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군중들은 뛰어난 개인들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고 냉소했는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에 나오는 군중들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물론 책에서 나온 군중들은 대체적으로 포퓰리즘에 쉽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판단만 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내렸지만, 끝내 그 판단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페리클레스가 죽은 뒤 그의 선견지명을 그리워했다.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시민들은 지구전을 주장하는 파비우스를 겁쟁이라 욕했지만, 결국 원정군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파비우스의 탁월한 전략을 인정하며 지지했다. 뿐만 아니라, 파비우스의 말년에 그가 고집스럽게 지구전만을 주장하자 파비우스의 정책보다 젊은 스키피오가 주장한 카르타고 본토 침공을 강하게 옹호하기도 했다. 결국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카르타고로 소환했으며, 자마에서 대승을 거두고 카르타고를 굴복시켜 파비우스의 전략이 그릇됐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검증했다. 이는 스키피오를 지지한 시민들의 혜안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시민들은 한편으로는 매우 어리석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성숙한 존재다. 오늘날은 민권 의식이 높아졌고, 교육이 보편화됐기에 시민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물론 오늘날의 시민들도 고대의 시민들처럼 잘못된 선택을 행하기도 한다. 지난 정권의 사례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시민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렸지만 이를 응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는 고대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실수를 즉각 승복하고 인정하는 것을 연상한다.  

지도자와 영웅은 이렇게 민감한 시민 팔로워를 의식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팔로워를 너무 신봉하고 과대평가하여 팔로워의 눈치만 살피는 니키아스 같은 겁쟁이가 되어서도 안된다. 또한 크랏수스처럼 자신의 인기를 위해 가변적이고 기회주의적으로 팔로워에게 다가가서도 안된다. 페리클레스와 같이 매사에 자신의 비전과 소신을 팔로워들의 생각과 견줘보고 냉정하게 비판한 뒤, 파비우스처럼 팔로워들과 의견이 다르다면 욕을 먹더라도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설득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일이 귀찮고 원론적이며 형식적으로 여기며 독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면, 이 또한 팔로워를 과소평가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병서, 조선을 말하다 - 혼란과 저항의 조선사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제한적이었다. 공교육 역사책의 대부분은 정치사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시중의 역사책도 대부분 정치에 치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시대가 바뀌고 역사 역시도 경제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마르크스 사관이 재평가 받으면서 우리는 역사를 경제적인 시각으로 확대하여 해석하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 집권세력이 아닌 민중들을 주축으로 해석한 사회사, 그리고 문화적 역량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등등이 2000년대에 성행했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대표적인 관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다.

조선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가장 중심은 정치였지만, 경제와 사회상, 그리고 우월했던 문화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해석이다. 시중 교과서의 내용도 대부분 이런 편제를 따른다. 이 중 정치는 여전히 조선사를 해석하는데 있어 핵심이다. 그런 조선 정치의 핵심은 바로 유교적 이데올로기였다. 조선은 알다시피 문치를 숭상한 국가였다. 그렇기에 조선을 해석하는데 있어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조선의 정치 속에는 공자의 철학과 주자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주장했던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능통한 지도자가 다스리던 나라가 조선이다. 그렇기에 조선을 대표할 수 있고 조선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文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는 책들이 쏙쏙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최근 유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 한의학 등등으로 조선을 해석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통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기보다, 다양한 미시적 관점에 의거하여 조선을 해석하는 책이 등장했다. 과거에는 전문인이 아니면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분야로 조선을 해석하는 책들이 대중들에게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오늘날은 훨씬 다양한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역사 대중서가 다루는 범위는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더 넓어질 것이다. 독자는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를 해석할 수 있고 이런 폭넓은 관점은 아마 역사 연구에 또 다른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니까.

《병서, 조선을 말하다》라는 책은 무예로 조선의 역사를 해석한 책이다. 앞서 말했듯 전통적으로 조선을 해석하던 테마는 文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정치와 철학적 관점인 文이 아닌 무예 즉 武로 조선을 해석하는 책이었다. 제목에 나온 병서는 병법 즉 군사 분야에 대한 책을 뜻한다. 책에서는 28가지의 병서를 소개하고 있었다. 책은 병법서가 나오기 전의 조선의 상황을 설명하고, 병법서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해서 배경 설명을 친절하게 서술했다. 그 뒤 테마의 병법서 내용을 간략하게 요점만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놀라움과 아쉬움이다. 문치국가였던 조선의 이면에 이렇게 열정적인 병법 연구가 있었는가에 대해서 놀랄 다름이었고, 또 이러한 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하지 않고 무예를 존중하기보단 문치에 열을 올렸으니 아쉬운 부분이었다. 조선의 지도층은 늘 말로만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있어서 文과 武를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武에 대한 연구는 늘 괄시 받았고, 비주류에 머물렀다. 왕을 비롯한 지도층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강화했고, 이는 조선의 큰 결점으로 남았다. 임진년의 참화와 병자년의 굴욕은 이런 조선의 모순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아무튼 비주류 취급을 받고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병법과 무예 분야였지만, 진지하게 연구했던 사람들의 노력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조선의 병법을 보면서 내용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다루는 분야에 대해서다. 병서는 개인적으로 크게 나눠보자면 계략과 모략 그리고 병법 철학을 뜻하는 권모 중심의 책, 법의 규율과 부대 강령을 정리한 행정 중심의 책, 그리고 사병들의 무예 연마에 대한 무술 중심의 책, 새로운 기술이나 무기를 만드는 기술 중심의 책, 그리고 역대의 전쟁 역사를 고찰한 전쟁사 중심의 책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조선이 집중한 부분은 바로 행정을 다루는 분야와 무술을 다룬 분야가 대부분이다. 물론 화포 개량에 대한 병법서와 역대 전쟁을 고찰한 병법서가 있긴 했지만, 주로 조선 병법이 다루는 테마는 행정과 무술 중심이었다. 그렇기에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고찰한 병법은 철저하기 기술론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군대의 행정 체계나 무예 연마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과 전술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아닐까. 비유하자면 병법이라는 큰 요체의 나무의 뿌리와 기둥을 살피기보다 이파리와 가지에 집중하는 모습이랄까. 모략과 전술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고 깊이 있는 책이 드물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손자병법》이 시대를 초월하여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병법에 있어서 모략과 전술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책이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도 병법에 관심이 있고 좀 더 발전하고자 하였으면 분명 이런 불굴의 고전을 저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교 철학 분야에서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세계적인 명저들을 저술한 조선인데, 정작 병법에 있어서는 철학적인 저술을 남기지 못했고, 중국의 권모 서적을 정리하여 받아들였고, 행정이나 무술에만 집중했으니 이런 부분이 참 아쉬웠다.

사실 武라는 영역으로 조선을 해석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주류로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은 두 가지 어려운 난제가 있다. 하나는 비주류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구한 것들이 축적되지 않아서 이를 바탕으로 하기가 힘들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연구를 해 봤자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실전 무예에 정통했으며, 이론적인 병법과 무예 연구에도 열정적이다. 더불어 이런 연구를 대중들과 공유하려고 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조선 무예에 대한 책을 여러 권을 썼는데, 이 책도 그러한 일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 학계는 조선을 여전히 文 중심의 유학과 유교적인 마인드로 해석하는 것을 보편적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武라는 영역으로 조선을 해석하는 이 책이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는 대중으로부터 주목받지 않기에 연구를 하더라도 전문가들의 영역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연구가 진정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열심히 연구한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친절하게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주류라 하여서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되고 그들만의 연구만 이뤄진다면 끝내 비주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어려운 환경이고 정말 의미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축적된 연구결과를 최대한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이는 말이 쉽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자는 武에 대한 대중화를 버리지 않고 다양한 저술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매우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병법에 관심이 많고, 병법 철학에 대해 나름 공부했다고 자부했는데, 책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도 가득했다. 책을 처음 받으면서 '도대체 조선에 군사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했던가?'라고 조소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우리 문치국가였던 조선에서도 끊임없이 군사와 국방, 병법 연구에 열을 올렸던 사실을 발견하곤, 나의 오해와 무지가 부끄러웠다. 조선에 대한 병법서도 읽어봐야겠다. 물론 번역된 책은 드물지만 검색해보니 《동국통감》과 《무예도보통지》, 그리고 《해동명장전》 등등의 조선 병법 고전은 구할 수 있었다. 중국의 병법 철학도 좋지만, 그에 앞서 우리 것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나는 매번 주로 읽던 《무경칠서》를 잠시 손에 놓고, 조선의 병서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나의 무지를 깨우쳐 준 저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색다른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밀리터리 덕후(소위 밀덕)들이라면 이 책을 강하게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