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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ㅣ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12월
평점 :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따르는 사람이다.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제아무리 리더라고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영웅이나 리더들은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3권을 읽으며 나는 팔로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4명의 영웅들은 모두 팔로워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 인물들이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들을 위해 친서민정책을 유지했으며 신전과 문화시설을 건설했다. 그는 이러한 혜택을 줌으로써, 시민들에게 환심을 샀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혀나갔다. 파비우스도 마찬가지다. 카르타고와 적극적으로 싸우자는 다수의 호전적인 시민들을 잠재우고, 장기전으로 한니발을 괴롭히자고 끝까지 주장했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파비우스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고 겁쟁이라고 조롱했지만 그는 묵묵하게 시민들의 분노를 감내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로마 시민들은 과격한 장군들의 선동에 휘말려 군대를 내보냈지만 내보낼 때마다 실패했고, 그로 인해 파비우스는 정치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었다.
니키아스는 시칠리아 원정이 실패로 돌아갈 것을 알고 전쟁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주전론에 휩쌓인 민중들의 눈치를 의식하여 의도하지 않게 전쟁의 책임자로 원정에 참가했다. 크랏수스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자신의 군사적 위업을 보여주고자 파르티아로 원정을 떠났다. 네 영웅은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책에서 보여주는 대중들은 매우 선동적이고 단순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뛰어난 안건보다, 협잡꾼들이나 기만자들의 선동에 더욱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선정적인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랬기에 페리클레스는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관심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돌리려고 했으며, 파비우스의 지구전은 매번 주전론자들에게 물어뜯겼다. 크랏수스는 이런 가변적인 시민들의 여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여론을 잘 활용하여서 삼두정치의 주역으로 나서게 됐으며, 니키아스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눈치 때문에 결국 시칠리아로 떠났다.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군중들은 뛰어난 개인들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고 냉소했는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에 나오는 군중들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물론 책에서 나온 군중들은 대체적으로 포퓰리즘에 쉽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판단만 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내렸지만, 끝내 그 판단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페리클레스가 죽은 뒤 그의 선견지명을 그리워했다.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시민들은 지구전을 주장하는 파비우스를 겁쟁이라 욕했지만, 결국 원정군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파비우스의 탁월한 전략을 인정하며 지지했다. 뿐만 아니라, 파비우스의 말년에 그가 고집스럽게 지구전만을 주장하자 파비우스의 정책보다 젊은 스키피오가 주장한 카르타고 본토 침공을 강하게 옹호하기도 했다. 결국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카르타고로 소환했으며, 자마에서 대승을 거두고 카르타고를 굴복시켜 파비우스의 전략이 그릇됐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검증했다. 이는 스키피오를 지지한 시민들의 혜안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시민들은 한편으로는 매우 어리석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성숙한 존재다. 오늘날은 민권 의식이 높아졌고, 교육이 보편화됐기에 시민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물론 오늘날의 시민들도 고대의 시민들처럼 잘못된 선택을 행하기도 한다. 지난 정권의 사례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시민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렸지만 이를 응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는 고대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실수를 즉각 승복하고 인정하는 것을 연상한다.
지도자와 영웅은 이렇게 민감한 시민 팔로워를 의식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팔로워를 너무 신봉하고 과대평가하여 팔로워의 눈치만 살피는 니키아스 같은 겁쟁이가 되어서도 안된다. 또한 크랏수스처럼 자신의 인기를 위해 가변적이고 기회주의적으로 팔로워에게 다가가서도 안된다. 페리클레스와 같이 매사에 자신의 비전과 소신을 팔로워들의 생각과 견줘보고 냉정하게 비판한 뒤, 파비우스처럼 팔로워들과 의견이 다르다면 욕을 먹더라도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설득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일이 귀찮고 원론적이며 형식적으로 여기며 독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면, 이 또한 팔로워를 과소평가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