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년전쟁 1337~1453 - 중세의 역사를 바꾼 영국-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이야기
데즈먼드 수어드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중세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적 전쟁을 꼽자면 영국과 프랑스가 싸운 백년전쟁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흔히 서양판 '임진전쟁'으로 불리는 백년전쟁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임진, 정유전쟁과 매우 흡사한 양상을 보여준다. 섬나라의 우세적인 침공과 그것을 극복하는 내륙의 세력. 여기서 영국은 일본에 비유할 수 있고, 프랑스는 우리나라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이가 안 좋은 것처럼, 유럽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도 미묘한 관계이며 라이벌 관계라고 한다. 단지 백년전쟁과, 임진 정유전쟁의 차이점이라면 백년전쟁은 말 그대로 100년에 걸쳐 이어진 긴 전쟁이었으며, 임진 정유전쟁은 7년에 걸쳐 일어난 전쟁이었다는 부분이다. 아무튼 중세의 서구 사회에서는 이 전쟁이 거의 세계대전 급으로 취급됐을 것이다. 머나먼 과거에 이뤄졌던 그리스 연합군과 페르시아 제국의 전쟁, 그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테가 거대하게 싸웠던 큰 사건처럼, 중세의 백년전쟁은 당대 유럽 열강의 이목을 집중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백년전쟁에 관한 책이 한 권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백년전쟁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을 의존하거나, 파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지식들, 그리고 간간이 책에서 요약된 내용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찰나 2018년에 이 책이 출간됐다.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매우 반가웠던 소식이었다. 책은 중세 유럽의 백년전쟁에 대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명과 인물들 때문에 생소함이 있겠지만, 당대의 전쟁의 흐름을 최대한 평이하고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도와 가계도 편집 등이 적재적소에 나와 있어서 독자에게 책의 배경 이해를 최대한으로 돕고 있다. 백년전쟁은 단순하게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전쟁은 유럽의 패권을 둘러싼 전쟁이었고, 그랬기에 전쟁 전후로 유럽 대륙에 미친 영향은 엄청 지대했다. 전쟁을 통하여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군사적 전술과 전략은 발전을 거듭했고, 두 나라의 왕조의 권위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복잡한 백년전쟁을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짧게 흐름만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인 어머니가 장악하던 권력을 쿠데타로 되찾고, 왕권 강화에 열을 올린다. 당시 프랑스는 유럽의 최강국으로, 명목상 영국은 프랑스의 속국이었다. 프랑스를 타도할 목적이었던 에드워드 3세는 온갖 자금난을 겪으면서 빚을 내어 전쟁을 준비했다. 프랑스 역시도 영국의 불온한 움직임에 맞춰 군대를 준비했는데, 사실 프랑스도 겉으로 보기에는 강해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재정을 비롯해 엉망진창이었다. 그렇기에 강한 프랑스 역시도 전쟁을 준비하면서 무리하게 자금을 융통했다.
전쟁은 에드워드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에드워드는 바다에서 슬라위스 해전, 육지에서 크레시 전투로 커다란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흑태자는 푸아티에 전투로 프랑스의 국왕을 사로잡으며 영국군의 위용을 과시했다. 우세를 예상했던 프랑스에 상황은 매우 비관적으로 흘러갔다. 프랑스 역시 반격에 나섰는데, 포로가 된 국왕을 이어서 샤를 5세가 취임했는데, 그는 선왕들처럼 전면전에 의지하지 않고, 외교적, 모략적, 게릴라전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영국이 점령한 영토들을 야금야금 되찾기 시작했다. 전쟁영웅 흑태자는 병사했으며, 늙은 에드워드 국왕 역시도 예전만 못한 위용으로 프랑스의 공세에 몰리며 죽었으며 샤를 5세 역시 병약한 몸 때문에 일찍 죽는다.
영국에는 리처드 2세가 보위에 올랐으며 프랑스에서는 샤를 6세가 보위에 올랐다. 리처드 2세는 친프랑스 정책을 고수했고,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반란이 일어나 헨리 4세가 등극한다. 한편 프랑스에서도 샤를 6세의 정부는 파당 정치로 내분이 격화됐는데, 브르고뉴파와 아르마냐크파가 권력을 앞에 두고 내부 투쟁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두 파당은 각각 영국 정부로부터 군대를 요청했는데, 이를 빌미로 다시 영국은 프랑스에 약탈을 시도했고, 헨리 4세를 이어 헨리 5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전세는 다시 영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헨리 5세는 프랑스의 내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침략을 시도했고 아쟁쿠르 전투에서 우세한 프랑스의 귀족 군대를 몰살시킨 뒤 브르고뉴와 일드프랑스, 수도 파리를 비롯한 북부 프랑스 지역을 모두 점령했다. 그는 샤를 6세를 사로잡은 뒤 그를 압박하여 프랑스 왕위 계승자가 됐고, 프랑스 섭정으로 취임한다는 트루아 조약을 채결했다. 그 뒤 그는 남부 프랑스 지역을 점령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 베드퍼트에게 프랑스 섭정을 맡겼다.
남부로 피신한 도팽(태자) 세력은 이에 용기를 얻고 영국이 점령한 북부 프랑스 지역으로 진군했는데, 베드퍼트도 군대를 이끌고 맞이했다. 베르뇌유에서 양군은 격돌했고, 도팽 세력은 결국 영국군을 이기지 못하고 퇴각한다. 그 뒤 베드퍼트는 오를레앙으로 군대를 모아 진격했으나,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영국은 전쟁 주도권을 프랑스에서 빼앗긴다. 잔다르크는 결국 영국군에 붙잡혀 사형됐지만, 사기가 오른 도팽파는 북부 프랑스를 야금야금 점령해나갔고, 마침내 도팽은 샤를 7세로 프랑스 왕위를 이어나갔다. 그 뒤 샤를 7세는 기만과 책략, 그리고 군사력으로 프랑스 국토를 회복해나갔고, 영국 세력을 몰아낸 뒤 포르미니 전투의 대승, 기옌의 보르도 점령을 끝으로 전쟁을 종결지었다.
흔히 백년 전쟁의 주도권은 초중반까지 영국이 모두 잡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전쟁의 중반부 즉 영국의 에드워드 3세와 헨리 5세의 공백기 때에는 프랑스의 샤를 5세가 간접적인 방법으로 국토를 회복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프랑스 쪽이 주도권을 가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책을 읽으며 백년전쟁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 책에서 배울 점은 복잡하고 파편적인 역사 지식보다, 이런 역사적 흐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 더 값진 법이니까 말이다.
첫 번째로 원인으로는 '안정된 정치'였다. 주도권을 잡은 나라는 대체적으로 정치가 안정됐고, 당파가 나눠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국론이 하나로 모여 있었다. 반면, 열세의 나라에서는 내부적으로 파당을 이루고 있었고, 내부 갈등이 매우 심했다. 이를 중재할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도 없었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주도권을 잡은 나라의 특징은 바로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 전쟁과 정치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이런 지도자들은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을 적절하게 회유하거나, 민족성에 호소하여 지지를 이끌어냈으며, 군사적으로는 강력한 리더십과 체계적인 명령을 바탕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사실 우세했던 프랑스군이 매번 영국군에게 패배한 원인은 바로 지도층의 리더십 부재와 지도층의 무데뽀 정신에서 비롯했다. 주요 전투에서 영국군은 비록 열세였지만 강력한 지도자의 지도와 철저한 전략 아래에서 우세의 프랑스군을 무찌를 수 있었고, 이런 자신감이 영국군을 감싸고 있었기에, 프랑스군은 전쟁 후반까지도 영국 군대를 두려워했다.
세 번째 원인으로는 '무기의 우세'다. 전쟁 당시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 절대적으로 전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우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국이 자랑하는 '장궁' 부대였다. 당시 프랑스 군대의 주력은 기병이 주축이었고, 중무장을 한 중기병이 주요 전력이었다. 반면 영국은 기병보다는 궁병을 내세웠으며, 사거리가 기존의 쇠뇌보다 훨씬 압도적인 장궁을 활용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그저 물량과 화력으로 돌격하여 영국군을 제압하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영국의 장궁이 너무나도 강력했다. 영국이 대승을 거둔 전쟁에는 항상 장궁이 함께하고 있었다. 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아쟁쿠르 전투, 베르뇌유 전투 등 모든 대승의 배경에는 궁수가 있었다. 마치 임진전쟁 초기에 일본군의 무장인 조총 덕분에 압도적인 승리를 했던 것과 비슷하다. 반면 전쟁 후반에 접어들었을 때, 영국군은 프랑스군에 압도적으로 밀리는데, 이때 프랑스는 우세한 대포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포를 주력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장궁이 아무리 사거리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대포와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이렇듯 전쟁에서 승리한 세력의 이면에는 '우수한 무기'가 있었던 것이다.
네 번째 원인으로는 '경제적인 요인'이다. 사실 백년전쟁을 거치면서 양국은 파산의 파산을 거듭했다. 우세한 국가도, 열세의 국가도 재정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양국의 군주는 엄청난 빚더미 속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언뜻 보기에 영국은 프랑스를 약탈하고 점령했기에 자금으로부터 더욱 우세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섬이 아닌 내륙에 상비해야 할 군대의 유지비용은 어마어마했으며 그렇기에 전쟁의 승리 군주들도 승리를 빌미 삼아 더 많은 돈을 융자하여 전쟁을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즉 우세한 세력의 배경에는 더 많은 돈을 대출, 융자할 수 있었던 여유가 있었다. 오늘날 사업 역시도 자금의 유통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는데, 이 시대의 전쟁도 오늘날의 사업과 흡사한 성격을 가졌다.
사실 읽으면서 마냥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영국군이 프랑스에 가했던 모습은 일본이 우리에게 자행했던 온갖 종류의 악행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임진-정유전쟁 때의 침략에서도, 그리고 35년의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우리 민족은 일본에 수탈됐고 약탈됐다. 프랑스 본토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약탈하는 영국군의 모습을 읽을 때마다 매우 착잡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고 하지만, 열강의 제국주의, 그리고 자국 이기주의 앞에서는 그러한 신사도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능적 욕망에 너무나도 충실했다. 무자비한 약탈을 100년 가까이나 지속해왔던 민족이 신사로 불리는 영국인이다. 당시 영국군 안에서는 프랑스와 전쟁을 통해 한몫 챙기려는 하층민 벼락출세주의자들이 만연했다고 한다. 귀족들에게도 전쟁이 부를 축적하는 커다란 사업이었다. 그랬기에 100년에 걸쳐 전쟁(이라 쓰고 약탈)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전쟁의 배경은 한쪽에서는 처절한 생존, 한쪽에서는 막대한 이익에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침공을 받는 프랑스 전역에서 조직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책 안에서도 프랑스인들이 점령인 영국인들에 대항하여 싸운 기록은 있으나 어디까지나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반항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조직적으로 군대를 운용하여, 국가를 위해 일어나는 하층민 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어 북부 프랑스 지역은 점령군인 영국에 굉장히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의병과, 대한 독립 투쟁이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 있는 행동이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잔다르크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잔다르크는 100년 전쟁이 배출한 가장 큰 스타 영웅이다.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프랑스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책에 기술된 잔다르크의 분량은 매우 짧고, 매우 간단하게 나와 있었다. 유명세에 비해 생각보다 그녀가 이룩한 것들은 드물었던 것 같다. 물론 그녀의 존재가 프랑스 군의 떨어진 사기를 올렸다는 공은 인정해야겠지만. 사실 잔다르크에 대해 많은 전설적인 이야기가 떠도는데, 대부분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뿐이다. 사실 나는 이 잔다르크야말로 샤를 7세가 만들어낸 스타가 아닐까 싶었다. 책에 나온 바와 같이 잔다르크가 등장할 당시 프랑스는 영국보다 객관적인 조건이 훨씬 우세했다. 당시 영국은 어린 왕이 집권했고 정치는 혼란스러웠는데다, 점령한 북부 프랑스 쪽으로 지원도 거의 없었다. 반면 남프랑스 일대를 장악한 샤를 7세의 도팽군은 자금을 축적했고, 군대를 비밀리에 키웠으며, 적지에 스파이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영국군에 비해 군대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 큰 흠결이었다. 샤를 7세는 초기에는 문약하고 떨어지는 지도자였지만 날을 거듭할수록 각성하여, 군주의 풍모를 되찾고 모략과 지략, 그리고 과감한 행동력으로 백년전쟁을 종결하는 지도자다. 모략에 능한 그였기에, 병사들의 사기를 올릴 만한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잔다르크라는 스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군대의 사기를 드높이는데 활용하려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도팽군의 사기가 높아지고 북부 프랑스를 탈환할 무렵, 잔다르크는 무리한 군사작전을 수행하다 영국군에 포로가 된다. 샤를 7세는 '이용 가치가 떨어진 잔다르크'를 구하지 않는데, 이를 봐도 그녀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영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