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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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힘을 갈구한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더 나은 힘을 갈구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명성을 얻고,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단순화하자면 힘의 욕망이 아닐까. 그럼 사람은 왜 자신이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힘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힘이 있는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보다 누릴 것들이 많으며, 더 편하게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돈을 버는데 그토록 열중이며, 어느 정도의 돈을 축적한 사람들은 결국 우두머리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정치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직간접적으로 과시하려고 노력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온 영웅들도 대부분 이러한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으며, 특히 4권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러한 욕망에 매우 열정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 배신을 하기도 했으며, 다른 정적들을 모두 숙청하고 온전하게 힘을 자신의 것으로만 누리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해서 힘을 얻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권좌에 올라본 사람은 그 권좌의 달콤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랬기에 왕조 국가의 왕들은 자신의 왕권을 무조건 강화하려고 노력했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에 나오는 영웅들 역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다. 이렇듯 강한 권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유혹적이다. '모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명언도 결국 권력의 유혹의 위험성을 뜻하는 문구다.

  그럼 이런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대처하여야 바람직한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4권의 인물들에게서 저자인 플루타르코스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핵심이다. 그는 배신과 독재의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결국 권력자들은 권력으로부터의 이 두 가지 유혹을 절제하기를 주장하고 있다. 집단과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권력을 유지하지 않아야 하며, 획득한 권력을 자기 자신만이 독점할 것도 경계하고 있다. 물론 국가의 상황이나 시민들의 요구로 인하여 권력을 독점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본분과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과감하게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뤼산드로스와 술라는 각각 그리스와 로마를 독점하다시피 하였지만, 그들은 끝내 힘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의 독재는 이후 시대에 악영향을 미친다. 뤼산드로스로 인해 스파르타는 그리스 전역의 패권을 장악했지만, 숱한 폴리스들의 반란을 야기했고, 결국 그의 사후 그리스의 전성기는 다시 오지 않았다. 로마의 술라는 독재관으로 황제에 가까운 권력을 휘둘렀다. 그의 사후 로마는 패권주의 군벌들에 의해 좌지우지됐으며 그 정쟁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를 기점으로 공화정이 폐지되고 왕정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독점적인 권력의 유혹은 이후 시대에 더욱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다.

  또한 권력을 유지하는 동력은 권위와 힘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지지로 비롯해야 한다. 배신과 독재는 시민들의 지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알키비아데스와 마르키우스는 결국 시민으로부터 자신의 권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그러한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배신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술라와 뤼산드로스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들을 힘으로 억눌렀으며, 그로 인해 권력을 독점했다. 이렇듯 그들이 유지하고자 했던 권력에는 시민들의 지지와 복종이 결여됐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였기에 그들은 역사로부터 온전한 영웅이 아닌 반쪽짜리 영웅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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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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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따르는 사람이다.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제아무리 리더라고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영웅이나 리더들은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3권을 읽으며 나는 팔로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4명의 영웅들은 모두 팔로워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 인물들이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들을 위해 친서민정책을 유지했으며 신전과 문화시설을 건설했다. 그는 이러한 혜택을 줌으로써, 시민들에게 환심을 샀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혀나갔다. 파비우스도 마찬가지다. 카르타고와 적극적으로 싸우자는 다수의 호전적인 시민들을 잠재우고, 장기전으로 한니발을 괴롭히자고 끝까지 주장했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파비우스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고 겁쟁이라고 조롱했지만 그는 묵묵하게 시민들의 분노를 감내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로마 시민들은 과격한 장군들의 선동에 휘말려 군대를 내보냈지만 내보낼 때마다 실패했고, 그로 인해 파비우스는 정치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었다.

니키아스는 시칠리아 원정이 실패로 돌아갈 것을 알고 전쟁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주전론에 휩쌓인 민중들의 눈치를 의식하여 의도하지 않게 전쟁의 책임자로 원정에 참가했다. 크랏수스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자신의 군사적 위업을 보여주고자 파르티아로 원정을 떠났다. 네 영웅은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책에서 보여주는 대중들은 매우 선동적이고 단순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뛰어난 안건보다, 협잡꾼들이나 기만자들의 선동에 더욱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선정적인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랬기에 페리클레스는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관심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돌리려고 했으며, 파비우스의 지구전은 매번 주전론자들에게 물어뜯겼다. 크랏수스는 이런 가변적인 시민들의 여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여론을 잘 활용하여서 삼두정치의 주역으로 나서게 됐으며, 니키아스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눈치 때문에 결국 시칠리아로 떠났다.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군중들은 뛰어난 개인들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고 냉소했는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에 나오는 군중들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물론 책에서 나온 군중들은 대체적으로 포퓰리즘에 쉽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판단만 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내렸지만, 끝내 그 판단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페리클레스가 죽은 뒤 그의 선견지명을 그리워했다.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시민들은 지구전을 주장하는 파비우스를 겁쟁이라 욕했지만, 결국 원정군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파비우스의 탁월한 전략을 인정하며 지지했다. 뿐만 아니라, 파비우스의 말년에 그가 고집스럽게 지구전만을 주장하자 파비우스의 정책보다 젊은 스키피오가 주장한 카르타고 본토 침공을 강하게 옹호하기도 했다. 결국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카르타고로 소환했으며, 자마에서 대승을 거두고 카르타고를 굴복시켜 파비우스의 전략이 그릇됐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검증했다. 이는 스키피오를 지지한 시민들의 혜안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시민들은 한편으로는 매우 어리석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성숙한 존재다. 오늘날은 민권 의식이 높아졌고, 교육이 보편화됐기에 시민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물론 오늘날의 시민들도 고대의 시민들처럼 잘못된 선택을 행하기도 한다. 지난 정권의 사례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시민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렸지만 이를 응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는 고대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실수를 즉각 승복하고 인정하는 것을 연상한다.  

지도자와 영웅은 이렇게 민감한 시민 팔로워를 의식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팔로워를 너무 신봉하고 과대평가하여 팔로워의 눈치만 살피는 니키아스 같은 겁쟁이가 되어서도 안된다. 또한 크랏수스처럼 자신의 인기를 위해 가변적이고 기회주의적으로 팔로워에게 다가가서도 안된다. 페리클레스와 같이 매사에 자신의 비전과 소신을 팔로워들의 생각과 견줘보고 냉정하게 비판한 뒤, 파비우스처럼 팔로워들과 의견이 다르다면 욕을 먹더라도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설득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일이 귀찮고 원론적이며 형식적으로 여기며 독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면, 이 또한 팔로워를 과소평가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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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서, 조선을 말하다 - 혼란과 저항의 조선사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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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제한적이었다. 공교육 역사책의 대부분은 정치사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시중의 역사책도 대부분 정치에 치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시대가 바뀌고 역사 역시도 경제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마르크스 사관이 재평가 받으면서 우리는 역사를 경제적인 시각으로 확대하여 해석하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 집권세력이 아닌 민중들을 주축으로 해석한 사회사, 그리고 문화적 역량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등등이 2000년대에 성행했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대표적인 관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다.

조선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가장 중심은 정치였지만, 경제와 사회상, 그리고 우월했던 문화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해석이다. 시중 교과서의 내용도 대부분 이런 편제를 따른다. 이 중 정치는 여전히 조선사를 해석하는데 있어 핵심이다. 그런 조선 정치의 핵심은 바로 유교적 이데올로기였다. 조선은 알다시피 문치를 숭상한 국가였다. 그렇기에 조선을 해석하는데 있어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조선의 정치 속에는 공자의 철학과 주자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주장했던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능통한 지도자가 다스리던 나라가 조선이다. 그렇기에 조선을 대표할 수 있고 조선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文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는 책들이 쏙쏙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최근 유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 한의학 등등으로 조선을 해석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통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기보다, 다양한 미시적 관점에 의거하여 조선을 해석하는 책이 등장했다. 과거에는 전문인이 아니면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분야로 조선을 해석하는 책들이 대중들에게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오늘날은 훨씬 다양한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역사 대중서가 다루는 범위는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더 넓어질 것이다. 독자는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를 해석할 수 있고 이런 폭넓은 관점은 아마 역사 연구에 또 다른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니까.

《병서, 조선을 말하다》라는 책은 무예로 조선의 역사를 해석한 책이다. 앞서 말했듯 전통적으로 조선을 해석하던 테마는 文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정치와 철학적 관점인 文이 아닌 무예 즉 武로 조선을 해석하는 책이었다. 제목에 나온 병서는 병법 즉 군사 분야에 대한 책을 뜻한다. 책에서는 28가지의 병서를 소개하고 있었다. 책은 병법서가 나오기 전의 조선의 상황을 설명하고, 병법서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해서 배경 설명을 친절하게 서술했다. 그 뒤 테마의 병법서 내용을 간략하게 요점만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놀라움과 아쉬움이다. 문치국가였던 조선의 이면에 이렇게 열정적인 병법 연구가 있었는가에 대해서 놀랄 다름이었고, 또 이러한 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하지 않고 무예를 존중하기보단 문치에 열을 올렸으니 아쉬운 부분이었다. 조선의 지도층은 늘 말로만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있어서 文과 武를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武에 대한 연구는 늘 괄시 받았고, 비주류에 머물렀다. 왕을 비롯한 지도층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강화했고, 이는 조선의 큰 결점으로 남았다. 임진년의 참화와 병자년의 굴욕은 이런 조선의 모순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아무튼 비주류 취급을 받고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병법과 무예 분야였지만, 진지하게 연구했던 사람들의 노력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조선의 병법을 보면서 내용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다루는 분야에 대해서다. 병서는 개인적으로 크게 나눠보자면 계략과 모략 그리고 병법 철학을 뜻하는 권모 중심의 책, 법의 규율과 부대 강령을 정리한 행정 중심의 책, 그리고 사병들의 무예 연마에 대한 무술 중심의 책, 새로운 기술이나 무기를 만드는 기술 중심의 책, 그리고 역대의 전쟁 역사를 고찰한 전쟁사 중심의 책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조선이 집중한 부분은 바로 행정을 다루는 분야와 무술을 다룬 분야가 대부분이다. 물론 화포 개량에 대한 병법서와 역대 전쟁을 고찰한 병법서가 있긴 했지만, 주로 조선 병법이 다루는 테마는 행정과 무술 중심이었다. 그렇기에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고찰한 병법은 철저하기 기술론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군대의 행정 체계나 무예 연마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과 전술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아닐까. 비유하자면 병법이라는 큰 요체의 나무의 뿌리와 기둥을 살피기보다 이파리와 가지에 집중하는 모습이랄까. 모략과 전술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고 깊이 있는 책이 드물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손자병법》이 시대를 초월하여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병법에 있어서 모략과 전술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책이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도 병법에 관심이 있고 좀 더 발전하고자 하였으면 분명 이런 불굴의 고전을 저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교 철학 분야에서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세계적인 명저들을 저술한 조선인데, 정작 병법에 있어서는 철학적인 저술을 남기지 못했고, 중국의 권모 서적을 정리하여 받아들였고, 행정이나 무술에만 집중했으니 이런 부분이 참 아쉬웠다.

사실 武라는 영역으로 조선을 해석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주류로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은 두 가지 어려운 난제가 있다. 하나는 비주류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구한 것들이 축적되지 않아서 이를 바탕으로 하기가 힘들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연구를 해 봤자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실전 무예에 정통했으며, 이론적인 병법과 무예 연구에도 열정적이다. 더불어 이런 연구를 대중들과 공유하려고 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조선 무예에 대한 책을 여러 권을 썼는데, 이 책도 그러한 일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 학계는 조선을 여전히 文 중심의 유학과 유교적인 마인드로 해석하는 것을 보편적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武라는 영역으로 조선을 해석하는 이 책이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는 대중으로부터 주목받지 않기에 연구를 하더라도 전문가들의 영역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연구가 진정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열심히 연구한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친절하게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주류라 하여서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되고 그들만의 연구만 이뤄진다면 끝내 비주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어려운 환경이고 정말 의미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축적된 연구결과를 최대한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이는 말이 쉽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자는 武에 대한 대중화를 버리지 않고 다양한 저술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매우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병법에 관심이 많고, 병법 철학에 대해 나름 공부했다고 자부했는데, 책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도 가득했다. 책을 처음 받으면서 '도대체 조선에 군사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했던가?'라고 조소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우리 문치국가였던 조선에서도 끊임없이 군사와 국방, 병법 연구에 열을 올렸던 사실을 발견하곤, 나의 오해와 무지가 부끄러웠다. 조선에 대한 병법서도 읽어봐야겠다. 물론 번역된 책은 드물지만 검색해보니 《동국통감》과 《무예도보통지》, 그리고 《해동명장전》 등등의 조선 병법 고전은 구할 수 있었다. 중국의 병법 철학도 좋지만, 그에 앞서 우리 것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나는 매번 주로 읽던 《무경칠서》를 잠시 손에 놓고, 조선의 병서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나의 무지를 깨우쳐 준 저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색다른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밀리터리 덕후(소위 밀덕)들이라면 이 책을 강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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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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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에서 나오는 영웅들은 숱한 변화를 경험한다. 커다란 성공, 그리고 커다란 실패를 거듭하며 그들의 환경과 그들의 내면은 시시각각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최고 영웅인 테미스토클레스는 커다란 성공 이후 권세와 탐욕에 눈이 멀어 결국 매국노로 타락했고, 카밀루스는 추방자에서 로마의 또다른 건국자로 추앙받았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정적과 그리스인들로부터 추방을 받았지만, 그의 고결한 품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으며, 그는 죽을 때까지 그러한 품성을 유지하며 살았다. 마르쿠스 카토는 극단적으로 인색하고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원정에 있어서도 성공했지만 결국 말년에 성적으로 집착하는 늙은이로 전락했다. 키몬은 젊은 시절 방탕하고 호색했지만 전공을 쌓을수록 내면적으로 품성을 키워냈으며, 결국 온화한 미덕으로 칭송받았다. 반면 루쿨루스는 젊은 시절 잘 교육받고 원정에서도 나름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로마에 돌아와서는 사치와 방종의 삶을 보여준다.

 이렇듯 여섯 영웅들은 여러 가지 큰 사건들을 경험하며, 누군가는 고결한 품성을 지켜왔고, 누군가는 타락했다. 또한 누군가의 출생은 비천하고 교육도 보잘것없었지만 뛰어난 품성을 후천적으로 가꿔냈지만, 누군가는 좋은 출생과 교육을 받고도 말년에 이르러 방종하는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2권의 핵심적인 내용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변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변화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책은 심도 있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을 꿈꾸며, 능력 신장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 나온 영웅들은 하나같이 다들 능력은 뛰어난 인물들이다. 그러나 능력과는 별개로 그들의 평가는 하나같이 다 다르다. 결국 사람의 최종 평가는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능력일지 모르지만, 영웅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품성이다. 결국 여섯 영웅들도 능력이 아닌 그들의 내면적 품성으로 인해 각기 평가가 달라졌다. 결국 바람직한 품성은 좀 더 풍요롭고 좀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런 품성을 가꾸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하여 깊이 숙고할 줄 알아야만 한다.

 모든 사람은 변한다. 사람들은 흔히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것이야말로 최고라고 칭송하지만,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사람은 살면서 변화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며, 변화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삶에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변화를 추구해서도 안되고, 어떤 부분을 변화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변화해야 할 부분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런 내면적인 고민이 결여된 성공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부서진다. 여섯 영웅들의 화려하고 덧없는 성공에서 나는 이런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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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가 알려 주는 우리 아이 온전히 기르기 - 모랄리아 선집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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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우리 아이 온전히 기르기》인데, 원제는 《모랄리아 선집》이다. 따라서 리뷰에서 책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쓰도록 한다.

 

 

《모랄리아 선집》은 영웅전으로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의 저작을 정리한 수필집이다. 모랄리아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책은 도덕과 윤리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 외에도 작가의 소소한 생각을 표현한 것도 있었다. 원전은 총 80여 편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는 육아와 윤리에 대한 내용을 담은 5가지를 골라 번역했다. 번역된 내용의 제목은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강연을 잘 듣는 법>, <친구와 아첨꾼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화를 다스리는 법>, <운명에 대하여>로 각각의 편명은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들이다.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발전하더라도,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 크게 바뀌지 않는 보편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들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고대 로마 시절이나 오늘날이나 여전히 엄마 아빠들은 육아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고, 학생들은 공부를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사회에 나가서는 교우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삶을 살면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생각하니까 말이다.

책에서 나오는 내용들은 사실 조금 책을 읽었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한 잔소리로 들릴 법 하다. 나 역시 신선한 내용을 기대하고 책을 열었지만, 뭐랄까 나쁘게 표현하자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다가왔다. 문체 자체는 단조로웠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 고전들을 인용하고, 그리스의 인물 사례에 비유하며 논지를 전개하기에 마냥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다. 이 책은 그리스와 로마 인물들을 비교하는 열전으로, 서구 역사 고전의 명저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현실적인 역사책을 저술한 저자여서 그런지, 확실히 그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모랄리아 선집》도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일삼는 내용이 아니라, 현실과 밀접한 실천 중심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플루타르코스는 책에서 플라톤을 비롯한 형이상학적 철학가들의 가르침을 높이 사고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플라톤의 저서와 플루타르코스의 저서는 분위기와 어조, 그리고 문체와 다루는 영역이 매우 상이하다.

 플라톤의 사상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그리스 철학과 형이상학의 정점을 이룬다. 반면 플루타르코스의 사상은 그리스의 학풍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그의 사상은 그리스 사상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훨씬 실천을 강조하고 있었다. 플라톤의 언어와 비유는 매우 현학적이며, 그 특유의 언어유희와 중의적인 표현 덕분에 현대 학자들이 해석을 두고 아직도 논쟁 중이지만, 플루타르코스의 문체는 그리스 고전과 문학, 인물들을 비유하며 표현하였지만, 플라톤에 비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글은 현학적인 부분이 있고, 또 숱한 비유가 있지만 그의 글은 플라톤보다 훨씬 친절했으며, 훨씬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나는 이런 차이가 바로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플라톤의 사색적인 부분,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철학은 그리스 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했다면, 플루타르코스의 행동 중심의 철학과 현실적인 철학은 실천 중심의 로마 문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그리스 하면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식처럼 떠오르지만 로마 철학자 하면 언뜻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책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키케로와 세네카를 꼽겠지만(애석해게도 플루타르코스는 철학자보단 역사가로 꼽아야 할 듯싶다.), 그들을 로마의 대표 철학자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포스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로마는 사색과 숙고가 아닌 행동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기에 대표적인 이론 철학자를 꼽기가 매우 애매해서 그렇지 않을까.

  《모랄리아 선집》은 국내에 완역된 책이 아니다. 국내에는 번역본이 총 3개가 있는데, 하나는 이 책이고 다른 두 책은 천병희의 역본과 허승일의 역본이 있다. 이 책은 영어 중역본이지만 천병희 번역본과 허승일 번역본은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과 허승일 역본의 내용은 많은 부분이 겹친다. 허승일의 역본도 이 책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철학에 집중했는데, 자식 교육, 철학 강의 듣는 법, 그리고 아첨꾼과 친구의 구별은 이 책의 내용과 완전 일치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그 외 시를 듣는 법, 덕을 갖추는 법에 관하여 등은 이 책의 내용과 중첩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허승일 역본의 큰 단점은 바로 가격이다 정가가 43000원인데... 완역도 아닌데 이렇게 비싸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선뜻 구매하기 힘든 가격이다. 한편 천병희의 역본은 적당한 가격에 이 책의 내용과도 크게 중첩되는 부분은 없다. 이 책과 중첩되는 부분은 분노에 관하여 밖에 없고 나머지는 수다에 관하여, 아내에게 주는 글, 동물의 이성에 관하여, 소크라테스 수호신, 결혼에 관한 조언 등등이 있다. 따라서 《모랄리아 선집》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라면 현재로서는 이 번역본과 천병희 번역본 두 개를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완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분명 책은 오늘날 현대인이 보기에는 뻔하고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은 기원후 50년 ~ 120년 사이에 저술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책이라면 분명 오늘날에도 의의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책의 주장이야말로, 인류를 만성적으로 괴롭혔던 아이 키우기, 공부하는 방법, 교우 관계, 분노 조절에 관한 모범 정답과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자,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다 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 따위가 2000년을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아마 전해지는 과정에 폐기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은 식상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살아남은 고전이다. 그렇기에,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무턱대고 무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에서는 꽤나 의미 있는 조언들을 많이 해준다. 비단 아이를 키우는 부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가장 와닿았던 것이 바로 플루타르코스의 중용사상이다. 책을 잘 읽어보면 플루타르코스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바람직한 일이더라도 과하면 결국 해가 된다는 생각을 책 곳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사상을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완역한 책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적인 윤리관을 볼 수 있는 번역본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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