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전술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이영남 옮김 / 인간사랑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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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키아벨리의 대표작은 《군주론》이다. 물론 마키아벨리를 깊이 읽은 분들의 입장에서는 《로마사 논고》를 꼽을지도 모르겠지만, 《로마사 논고》는 《군주론》만큼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주론》을 앞설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군주론》에서 강력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자강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자강의 핵심은 군대였다. 뿐만 아니라 《로마사 논고》에서도 마키아벨리는 군대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밝혔는데, 이로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은 마키아벨리의 생각 속에는 언제나 군대에 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군사 철학을 저술한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바로 《전술론》이다. 후대의 학자들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그리고 《전술론》을 마키아벨리의 3대 저서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전술론》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배우는데 있어 중요한 저작으로 간주됐다. 당시 유럽의 정세는 지방의 중소 영주 세력들을 중심으로 한 봉건주의 체제가 붕괴하기 시작했고, 강력한 중앙집권을 바탕으로 한 강대국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패권을 이용하여 약소국을 이용하거나 식민지화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신대륙과 식민지를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의 배경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마키아벨리가 있던 이탈리아 대륙은 여전히 봉건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강대국들에 의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휘둘리고 수탈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마키아벨리는 과거 이탈리아 대륙에서 찬란한 제국을 만들었던 로마 시대를 주목했고, 그러한 고전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정치와 군대를 개조하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런 마키아벨리의 정치적인 관념을 대변하는 저서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이며, 군사적인 관념을 대변하는 저서가 바로 《전술론》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자신의 명저인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마키아벨리의 사상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치 안에 내재됐던 과대평가된 종교적, 윤리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정치의 현실주의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정치의 현실주의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핵심은 지도층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과, 그 리더십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군대였다. 오늘날 현대에는 직접적인 전쟁을 겪을 일이 없기에 군대에 소중함이 크게 와닿지 않지만,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강대국의 필수 조건은 강력한 군사력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스스로 힘이 있어야 다른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내 목소리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평화나 미덕, 아름다움, 종교 등등으로 치장하고 포장했지만, 냉혹한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언제나 군대를 필두로 한 힘이었다. 사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G2를 잘 살펴보면 하나같이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튼 정치적 현실주의는 군사력으로 대표되는 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에 《전술론》은 정치철학자인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뜬금없는 저작이 아닌, 당연히 저술해야만 했던 저작이었다.

  《전술론》의 내용적인 측면은 책의 부피에 비해서 크게 독창적이진 않는다. 고전 옹호 주의자, 로마 시대를 극도로 찬미하는 마키아벨리는 군사적인 체제나 제도 역시도 찬란했던 로마 시대의 제도를 본받자고 이야기했다. 그뿐 아니라 공화정 로마 시대의 사심 없었던 장군들의 내면적인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로마인의 제도를 본받아 응용하고 로마 군인들의 정신을 본받아 자국을 강화하자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가장 특기할 만한 사항은 바로 상비군에 대한 생각인데, 마키아벨리는 직업 군인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그럼 의문이 들 법도 한데, 직업 군인을 양성하지 않으면 도대체 나라의 자강은 어떻게 이루려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 마키아벨리는 시민군을 강조했다. 마키아벨리는 직업 군인은 특성상 호전적이며 전쟁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존재들이므로, 위급한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평화로운 시기에는 국가에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로마 역사의 선례를 거론하며, 공화정이었던 로마가 독재정 국가로 갔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직업 군벌 세력들의 야심과 직업 군인들의 입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전문적인 직업 군인들은 평화의 시기에 국가를 전복할 수 있는 막강한 세력으로 남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공화정 초기에 로마가 시행했던 군사 정책에서 시민군 징집에 집중했다. 공화정 초기에 로마는 전문적인 군인을 두기보다, 전쟁이 일어나면 시민들의 모병과 모집으로 군대를 꾸려서 전쟁에 임했다. 즉 시민군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병농 일치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이 나면 시민들의 징집으로 군사를 충당하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군대를 해산하여 생업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이럴 경우 사령관은 승리를 거두더라도 군벌 세력을 갖지 못하기에 국가에 위협적인 요소로 남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너무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민군 제도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예비군 제도와 비슷하다.  생업을 하다가 전쟁이 나면 군대에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나, 과연 이렇게 모은 병사들이 정예화되고 훈련받은 병사들보다 노련할까? 로마 초기 공화정 시대의 이탈리아 반도의 국가들은 사실 전쟁의 수준이 매우 미개하고 떨어졌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사는 시기에는 전쟁 기술과 더불어 책략과 기교가 고대 공화정 로마 시절보다 훨씬 발전한 시대다. 과연 급조적인 시민군으로 막강한 정예병과 싸웠을 때 이길 가능성이 높을까? 의문이 든다. 물론 마키아벨리는 이런 시민군들은 상비적인 훈련과 뛰어난 지도력을 갖춘 장군의 지도를 따르면 막강한 군대로 돌변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마찬가지로 정예화된 군대가 뛰어난 지도력을 갖춘 장군을 따른다면 시민군보다 훨씬 강력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 생각은 그렇다. 최소한의 정예병은 유지하되, 시민군의 징집으로 나머지 병사들을 운용하는 것이다. 아무튼 시민군을 바라보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읽으며, 나는 그가 정말 로마 시대를 그리워하고 존경하는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그 외에 특이한 사항은 없었다. 보병 중심의 군대를 지향하는 점, 군대의 배치와 공격 수비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 그리고 비밀을 중요시하고, 군대에서는 임기응변이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 등등은 《손자병법》을 필두로 한 동양의 군사 사상과 흡사했다. 하긴 진리라는 것은 시대와 지역에 따른 개별성보다 그것들을 초월하는 보편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동양의 병법 진리와 서양의 병법 진리가 서로 궤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서 마키아벨리는 오늘날 이탈리아를 통치하는 군주들이 나약하기에 올바른 군대와 군대 체계를 이룩할 수 없었다며 통탄한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저 위대한 로마 시절의 군대 체계를 본받아 군대를 조직하여 강한 모습으로 쇄신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모습은 마치 《군주론》의 마지막 대목,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바람과 같이 굉장히 웅변적인 어조였다. 이렇듯 그는 자나 깨나 조국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애석한 것은 그의 이런 사상은 당대에 수용되지 못 했다는 점이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책의 구성이다. 《전술론》은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대화체로 구성됐다. 이 대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실제로 마키아벨리와 함께 루첼라이 정원 모임에 참석했던 인물들로, 하나같이 인문적 교양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실각 이후 루첼라이 모임을 통해 후학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이어가길 권고했다. 책의 배경은 실제 마키아벨리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책에서 군사학에 대해 주된 논의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파브리지오라는 사람인데, 결국 이 사람의 목소리는 마키아벨리의 목소리나 다름없다. 마치 플라톤이 《대화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말로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전술론》 대화편의 대화 내용을 보면서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루첼라이 정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후학들과 교류를 하였는지 대강 유추해볼 수 있었다. 아무튼 마키아벨리의 저서는 사실과 허구를 섞어서 책을 쓴다는 특징이 있는데, 루첼라이 모임이라는 현실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부분은 사실적인 모습을, 자신의 목소리를 파브리지오라는 인물에 투영하여 전개한 부분은 허구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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