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공양전 - 국내 최초 완역본
공양자 외 지음, 곽성문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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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를 주석한 책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인데 이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춘추좌전》,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 이 세가지 고전은 춘추삼전으로 불려왔으며, 공자가 편찬한 《춘추》를 이해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춘추》는 유교의 사서오경에도 들어가는 귀중한 역사책이지만, 사실 《춘추》 자체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추장스러운 수사가 없는 짧은 단문 형식의 메모글로 역사를 서술하였기에, 《춘추》 자체만을 읽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춘추》가 이렇게 소략하게 기록됐기에 《춘추》를 연구했던 후학들은 독자적인 주석을 가미해 《춘추》의 뜻을 확장하고 《춘추》의 뜻을 명확하게 설명했으며, 《춘추》가 다루던 배경을 주석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흔히 오늘날 《춘추》를 말하면 대부분 《춘추좌전》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춘추좌전》은 춘추의 주석서 중 가장 권위 있는 주석서로 인정받았으며 이런 시각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춘추좌전》은 《춘추》의 소략한 기록의 배경을 방대하게 풀어내어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춘추》는 노나라 역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춘추좌전》에서는 노나라 역사도 역사지만 노나라 역사가 진행될 때 제후들과 주변국의 움직임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또한 간략하기 그지없는 《춘추》의 본문을 부연하고 해설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춘추좌전》이 《춘추》가 다루는 내용을 그저 부연하고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다. 《춘추좌전》의 저술 목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당한 시비'에 있다. 그렇기에 결국 본문을 부연하고 주변 나라들의 동향을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 역시 올바른 시대적 판결이라는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 역시 기본적으로 《춘추좌전》과 비슷한 목적하에 편찬됐다. 다만 《춘추좌전》에 비해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은 역사에 가깝기보다 철학에 가까운 저서들이다. 《춘추좌전》은 공자가 편수했다는 《춘추》 본문도 중시하지만 그 외의 주변국의 상황이나 역사적 사례 등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공을 들이고 있는데 반해,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의 내용은 철저하게 《춘추》 본문의 경문을 벗어나지 않는다. 《춘추좌전》이 경문을 넘어선 배경까지 다루는데 반해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철저하게 경문 중심이다. 두 책은 《춘추》의 경문이 어떤 연휴로 기록됐으며 기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기술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책은 《춘추좌전》에 비해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강조됐다는 부분이다. 《춘추》의 원문을 중시하여 밝힌다는 것은 이를 정리했다는 공자를 드높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엄밀히 따지자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철학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반면 《춘추좌전》의 경우는 전형적인 역사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둘 다 유학을 중심으로 철학적인 해설이 붙어졌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춘추곡량전》은 유학적 이념이 매우 깊은 저서지만 《춘추공양전》은 유학적 이념에 충실하되 현실적인 힘의 관계도 나름 고려하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춘추공양전》의 시각은 대표적으로 들끓는 패자 국가들과 주나라 황실에 대한 해석에서 볼 수 있다. 《춘추》와 세 주석서의 공통된 주제는 유학적 이념에 충실한 것이고, 그러한 유학적 이념이 지향하는 목표는 주나라 봉건제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 책은 모두 주나라 황실에 대한 대의명분을 강조한다. 그러나 《춘추곡량전》은 무조건적으로 주나라 황실을 옹호하는 반면, 《춘추공양전》은 주나라 황실과 봉건제를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 신망을 잃은 주나라 황실 역시 비판적인 서술로 기록했다. 비유하자면 《춘추곡량전》의 입장은 윗물이 똥물이더라도 아랫물은 그저 맑아야 한다는 논리고, 《춘추공양전》의 논리는 아랫물이 맑아야 하긴 하는데, 윗물 역시도 맑음을 유지해야 하니, 이런 혼란은 결국 두 물 모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두 책은 유교 이념에 치우친 역사 철학서지만, 나름의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쪽은 《춘추공양전》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춘추공양전》보다는 《춘추좌전》 쪽이 더 재미있었지만, 고대 동양에서 역사를 철학적으로 풀이한 《춘추공양전》 역시도 흥미롭게 읽었다. 《춘추공양전》의 핵심은 바로 '대일통 사상'이다. 즉 문자 그대로 하나로 통일된 것을 의미하는 '대일통 사상'은 《춘추》와 《춘추공양전》의 핵심적인 키워드다.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은 결국 무너지고 붕괴한 주나라 봉건주의 시스템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고, 즉 이를 역사적으로 밝히기 위해 공자는 《춘추》의 경문을 지었다는 것을 《춘추공양전》은 강조한다. 공양학파의 논리를 정리해보자면 결국 공자는 《춘추》를 저술함에 있어 대일통 사상에 입각하여 역사를 정리하였고, 《춘추공양전》은 그런 공자의 숨겨진 대일통 사상을 자세하게 드러내어 공자의 집필 공식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대일통 사상은 분봉제를 바탕으로 한 봉건주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순수한 지방 영주들 위주의 정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일통 사상의 핵심은 천자로 대표되는 막강한 제왕을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춘추공양전》이 한나라 시기에 유행했는지를 살펴보면 그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중국 한나라 시대에는 분봉제를 기초로 한 중앙집권 형태 국가였다. 그렇기에 지방 자치를 의미하는 분봉제와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중앙집권제가 혼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질적인 정치제도를 잘 굴러가게 하려면 분봉을 받은 제후국은 지방에서 실력을 과시하기보다 중앙 정부의 명령만을 잘 받도록 관리해야만 했다. 또한 중앙에 위치한 황제 역시도 지방 영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만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만방에 넓힐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은 필연적으로 《춘추공양전》이 지향하는 대일통 사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한나라 대에 황제들과 중앙 관리들은 의도적으로 《춘추공양전》을 드높였고, 그래서 한동안 성행했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이 시행하는 소수 민족 정책 역시도 어찌 보면 대일통 사상을 떠올린다. 결국 중앙 한족으로 통일하는 것.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의도를 뜯어보면 궁극적으로 한족으로부터의 예속,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춘추공양전》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공자가 다룬 노나라의 역사를 시기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눠 해석했다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책에서는 '장삼세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세 부분은 난세(소전문세), 안정과 발전기(소문세), 태평세대(태평세)로 구분되는데, 유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발전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춘추》의 경문은 공자의 죽음으로 끝맺고 있는데, 결국 국가 발전의 마지막 단계인 태평성대는 공자라는 성인의 등장과 그의 철학이 세상에 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기록과는 다르게, 국제 정세와 노나라의 정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패권주의로 흐르고 있었다. 《춘추공양전》의 장삼세설은 이념적인 측면에서 강조됐지만, 정작 현실은 《춘추공양전》의 기록과는 다르게 더더욱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기록대로라면 노나라의 발전과 중원 대륙의 발전은 태평성대로 끝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춘추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국가 간의 질서와 천자와 제후 간의 균형은 무너져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장삼세설을 통해 나는 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하나의 주관과 이데올로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역사의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춘추공양전》은 역사 기록을 유교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잘 풀어낸 명저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유학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시각 때문에 역사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나는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의 주관을 가지고 집필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물론 일정한 집필 방향이 있으면 좋겠지만 때론 집필 방향과 어긋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경우, 역사가는 진실에 입각하여 기록을 하기보다, 자신의 집필 방향 (어떠한 이념이나, 목적 따위)에 충실하여 진실에 입각한 역사를 져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가는 자신의 관념 역시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사료를 대하고 선별하며 해석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런 나의 역사적 주관에 입각한다면 《춘추공양전》의 장삼세설은 비판적인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집필 방향이 아쉽긴 했어도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까마득한 고대에, 역사를 두고 이토록 진지하게 철학적으로 풀어낸 저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춘추공양전》을 읽으면서 앞서 읽었던 《춘추좌전》이 많이 생각났다. 두 저서는 같은 《춘추》를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두 책이 추구하는 춘추필법의 공통점은 주나라 봉건시대로의 회귀를 지향한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집필법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춘추좌전》은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사건을 평가하는 정통 역사서고, 《춘추공양전》은 스토리텔링보다 《춘추》의 경문이 어떻게 집필됐는지 치밀한 질문을 통해 의미를 찾는 역사 철학서다. 따라서 두 책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했지만 집필 스타일로 인해 전혀 다른 장르의 책으로 갈라졌다. 《춘추공양전》의 문답법을 읽다 보면 서양의 소크라테스 문답법이 생각났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상대의 의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춘추공양전》 역시 《춘추》 본문의 집필 의도를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물음에 물음을 거듭하고 있었다.

  역사철학서라 장르 자체에서 내용이 딱딱할 수밖에 없는 《춘추공양전》이지만, 중간중간에 역자의 센스 있는 해설이 있어서 책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해설은 모든 대목이 있진 않고 복잡한 사건이거나,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만 나와 있는데, 괜찮은 편제 같았다. 해설이 길지도 않고 적당한 부분에만 있어서, 본문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춘추좌전》과 《춘추공양전》을 읽었으니, 《춘추곡량전》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춘추곡량전》까지 읽어야 비로소 '춘추삼전'을 읽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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