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배우는 주식 차트
한재승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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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트를 주제로 이야기하자면 할 말이 많다. 주식하는 분들 사이에서 차트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술적 트레이딩 분석을 신봉하는 분들에게는 차트가 마치 절대비기인 것처럼 신성시되고 있다. 반면 기본적 분석을 중요시하는 가치투자자의 경우 차트에 큰 힘을 쏟지 않는다. 주린이 입장에서도 차트는 무척 모호하다. 가치투자의 대가들 중 차트의 중요성을 강조한 분들은 거의 없지만, 소위 잘나가는 주식 유튜버나 트레이더들은 차트를 중심으로 주식을 설명한다. 차트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에도 모호한 부분은 이어진다. 대체 어디까지 공부해야 할지, 어떤 지표를 봐야 할지, 캔들의 패턴은 모두 외워야 하는지, 엘리어트 파동이론과 같은 개념은 과연 실용성이 있는지 등등... 시중 어느 차트책을 보더라도 이런 부분에 속 시원하게 정리해 주는 책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차트는 주식을 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자 스타일을 떠나서 차트는 정말 중요하다. 트레이딩을 하건 가치투자를 하건 차트를 모르고서는 주식을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주식을 처음 한다면 차트에 대한 공부는 필수다. 단타 트레이딩은 차트에 온갖 보조적 지표들을 보고 저항과 지지를 활용하여 시세차익을 노리는 기법이라서 차트에 대한 의존도가 강하다. 문제는 가치투자다. 몇몇 가치투자자들은 차트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가치투자에도 차트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투자에 차트는 왜 중요할까? 가치투자라면 일반적으로 재무와 공시를 가장 우선의 가치로 생각한다. 이들은 재무와 공시를 통하여 종목을 선정하고 매매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재무와 공시가 종목을 선택하는 요인이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매수하고 언제 매도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재무와 공시를 통해 삼성전자를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삼성전자를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베스트일까? 가치투자건 트레이딩이건 주식은 최대한 싸게 사는 것이 좋다. 같은 삼성전자를 사더라도 9만 원에 사는 것과 5만 원에 사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공시와 재무를 통해서는 삼성전자의 가격을 확인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예측은 할 수 있겠지만 실제 가격의 추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지금 주가는 고점인지 저점인지 등등의 구체적인 사항은 차트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차트는 투자에 있어 수급을 의미한다. 돈이 들어왔는지 빠져나갔는지, 매수세가 강한지, 매도세가 강한지, 주가의 추세는 상향인지, 하향인지 등등 이런 흐름을 통하여 투자자는 주식을 매입하거나 매도할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재무와 공시, 그리고 재료와 촉매가 종목을 선정하는 요인이라면 차트는 선정한 종목의 진입과 청산을 담당한다. 재무를 볼 때 다섯 가지 도표를 비교, 대조하여 가치를 분석하면 종목 선정의 성공률이 높아지듯, 차트를 보면서도 여러 지표들과 추세를 잘 해석한다면, 더 싸게 사거나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차트는 트레이더뿐만 아니라 가치투자자에게도 중요하다.

 

 나는 차트를 처음 공부할 때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이라는 책으로 공부했다. 존 머피가 쓴 기술적 분석 고전인데, 정통 차트쟁이들이라면 대부분 읽어본 고전이다. 옛날 책이고 분량도 두툼해서 완독하기까지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완독 후 주가의 흐름과 추세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추천받아서 공부한 고전이지만 다른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진 않다. 기술적 분석에 큰 획을 그은 명저지만 출간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차트의 모양도 지금과 같은 봉 차트가 아니라 보기에 불편하다. 게다가 분량도 두툼한 양장본이라서 마치 기술적 분석의 《경제학 원론》과 같은 느낌이다. 교양을 위한 경제 공부에 《경제학 원론》을 추천한다면 부담을 느낄 수도 있듯, 처음 차트를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보다 좀 더 친절하고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한 책을 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국내에 출간된 차트 기본서 중 괜찮은 책은 김장환 대표의 《차트의 기술》, 《차트의 해석》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기존에 차트 이론들을 하나로 단권화시켰는데 존 머피의 책보다 가독성도 뛰어나고 최신의 내용들로 구성됐다. 문제는 분량과 범위다. 일단 시리즈 두 책을 기준으로 페이지 900쪽이 넘어가며, 여러 이론들을 필요 이상으로 담다 보니 다루는 범위도 부담스럽다. 또한 최근에 나온 차트책임에도 불구하고 컬러 인쇄가 되지 않아 이 부분도 아쉽다. 아무튼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 완독에 성공한다면 좋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모된다.

 

 개인적으로 차트를 공부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주가의 추세와 흐름, 저항과 지지, 그리고 보조지표의 활용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세의 흐름'이다. 저항과 지지, 보조지표의 활용은 추세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부차적인 요소들이다. 주가의 추세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런 추세를 이루면서 캔들은 어떤 패턴이 나오는지, 차트상 어떤 저항대를 뚫었는지, 어디까지 지지 받고 반등하는지, 주가의 추세가 진행 중일 때 각각의 보조지표들은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이런 일련의 요소들을 종합하여, '언제 매수를 할지' , '언제 매도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처음 공부할 때에는 이런 부분을 모르고 보조지표에만 몰두하여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그러나 공부가 쌓이고 거래를 하면서 수많은 보조지표 중 나의 입맛에 맞는 보조지표는 제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보조지표를 추리고 매매를 거듭하면서 나에게 맞는 보조지표 수치를 설정했다. 이렇듯 차트 공부의 시작은 방대하지만, 공부하다 보면 추리고 추려서 핵심만 남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치주나 우량주를 매매할 때에는 이평선,엔벨로프,RSI, MACD, 일목균형 정도만 체크하고, 중소형 스몰캡 트레이딩을 할 시에는 이평과 엔벨로프, 스토캐스틱, 피보나치, 볼린저 밴드, 일목균형 등을 살핀다. 수많은 지표들 중 나의 기준에서는 이 정도만 있더라도 추세 파악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이를 토대로 매매했을 때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경험론적 확신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난날 차트 공부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매달렸던 과거의 시간들이 안타깝기도 하다.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했더라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차트가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닌데... 등등의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차트서의 대부분을 읽었다. 유명하다는 고전을 필두로, 기법을 소개한 책까지 웬만한 책들은 구매하거나 빌려봤다. 주식 초반에는 차트에 대한 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서재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가치투자와 매크로, 심리에 대한 책들이다. 그만큼 국내에 발간된 차트 책들은 부실한 책들이 많다. 특히 기법을 설명한 부류는 가벼운 책이 대부분이라서 믿고 걸러도 충분하다. 그런 와중에 개인적으로 구독하던 유튜버가 차트 신간을 냈다. 일목균형표와 엘리어트 파동이론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채널인데, 차트의 어려운 이론을 알기 쉽게 잘 정리해서 큰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책이 오자마자 기대와 함게 꼼꼼하게 살펴봤다.

 

 이 책은 기존의 차트 기본서들이 가지고 있던 결점들을 모두 극복했다. 시원한 판형, 컬러 인쇄, 차트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들을 담은 알찬 내용 등,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차트 기본서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 책 한 권이면 차트에 대한 기본이자 필수적인 요소들은 숙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세에 대한 중요성, 거래량, 다양한 보조지표와 캔들의 패턴 등 주린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차트의 핵심을 알차게 담았다. 내가 공부할 때 이런 책을 만났으면 시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차트를 공부했을 것 같다. 차트를 처음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자극적인 광고의 기법이나 비법을 설명한 책보다 이 책을 보면서 차트의 원리를 탐구할 것을 추천한다. 책에는 유튜브 강의 QR코드가 있어 이해가 가지 않을 시에 동영상 강의와 함께 학습할 수 있다. 강의는 무료인데 무료라고 해서 퀄리티가 낮지 않다. 차트의 기본을 쌓기에 충분한 분량이다.

 

 과거, 차트 공부를 하고 싶다는 와이프에게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을 추천했다가 부부 싸움(?)을 할 뻔했다. 부부 사이에 운전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는데 주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 뒤로 주식에 주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이 책이라면 쉽고 재미있게 차트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건네며 강의를 들으며 차트 기초를 쌓으라고 조심스럽게 추천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는(?) 차분하게 진도를 잘나가고 있다. 책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일목균형표'에 대한 설명이 없는 점인데, 이 지표는 주린이 분들이 이해하기 어렵기에 뺸 것 같다. 저자가 운영 중인 친절한 재승씨 유튜브에 가면 일목균형표를 설명한 영상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당부할 몇 가지를 끝으로 글을 맺으려 한다. 첫 번째, 책에서는 캔들과 추세를 설명할 때 일봉 위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량주나 장기투자를 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일봉의 추세보다 주봉과 월봉, 나아가 연봉의 추세가 중요하다. 우량주일수록 분봉이나 일봉보다는 큰 흐름의 추세를 읽고 매수와 매도를 고려해야 한다. (사실 트레이딩에 있어서도 주봉과 월봉의 추세는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 책에 소개된 보조지표도 무척 많아서 처음 학습할 때에는 혼돈이 올 수 있다. 각각의 보조지표는 나름의 매수와 매도의 관점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적용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책에 나오는 여러 보조지표 중 처음에는 자기가 이해한 지표들을 위주로 살펴보고 매수 매매에 활용을 해 보면서 어떤 지표가 나에게 맞는지, 필요한지에 대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책에 나온 지표를 모두 적용하겠다는 생각은 과욕이고 욕심이다. 다양한 보조지표를 배우고 사용, 적용하면서 나와 맞는 지표들을 추려내고 조합하고 선별하는 것. 그것은 투자자 개인의 몫이다. 이런 기준이 명확하게 확립된다면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긴 호흡으로 여러 지표들을 사용하며 충분한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울 것을 추천한다.

 

 세 번째 이 책을 모두 이해했다면 《저가 매수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저가 매수의 기술》은 국내에 출간돼 기술적 분석 책 중 얄팍하고 단순한 기법이 아닌 차트의 심리를 풀어낸 명작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우량주 낙폭과대 매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네 번째, 투자에 있어 차트는 중요하지만 차트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주식은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의 펀더멘탈, 업황의 흐름, 촉매나 재료의 유무, 매크로, 지수의 흐름, 차트의 수급 등등... 이 중에서 차트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차트만 보고 매매를 한다는 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에 가깝다. 차트는 예측의 영역이 아닌 대응의 영역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아무튼 정말 좋은 차트 기본서가 출간된 것이 무척 기쁘다. 차트 공부에 처음인 분들이나 차트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분들께 적극 추천하고 싶은 친절한 책이다. 와이프가 책을 무탈하게 완독했으면 좋겠다. 부부 싸움이 아닌 차트에 대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길 간절하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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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업처럼 하는 투자 주주행동주의 - 그레이엄과 버핏부터 칼 아이칸까지 주주가치 극대화 투자 전략
제프 그램 지음, 이건 외 옮김, 심혜섭 감수 / 에프엔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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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을 기점으로 한국 주식시장에는 행동주의 열풍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에 개입한 행동주의 펀드 KCGI는 대주주 리스크와 주주환원 가치를 명목 삼아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 매집을 시작했다. 이후 공개 매집과 다른 사모펀드들의 개입으로 인해 주가는 고공행진을 달렸다. 최근 행동주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얼라인 파트너스다. 일반인들에게는 에스엠 경영권 분쟁을 통해 잘 알려졌지만 에스엠 사건 외에 JB금융지주에도 행동주의 활동을 시작했고 나아가 은행 주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줬다. 이런 활발한 움직임 때문에 특정 종목에 행동주의 펀드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단기적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도 많았다. 코리안 디스카운트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하는 것이 '주주환원 정책의 미흡함'인데 눈치 빠른 몇몇 기업들은 행동주의의 흐름을 읽고 주주 환원 정책을 적극 시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주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 주식 전반을 걸쳐 설명한 개론서와 가치투자 고전들을 접했다. 우리가 주식을 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목적은 '경제적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돌아볼 때, 개인이 돈을 버는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생산시설을 소유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금이다. 생산시설을 독점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금이 없는 개인의 입장에서 좋은 생산시설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정답은 바로 주식이다. 개인은 독점적이고 돈을 잘 버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생산시설을 간접적으로 소유한다. 그렇게 개인은 투자자가 되어 좋은 회사와 함께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주린이를 대상으로 한 주식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나도 이런 내용을 보면서 노동소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본소득이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식을 시작했다.

너무 많은 기대와 의미 부여를 해서일까? 액수와 상관없이 주식을 사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기업문화는 대주주나 오너 일가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심한 경우 주총에 대한 안내조차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재무제표를 볼 때 분명 회사가 돈을 많이 번 것 같은데, 현금배당은 생각보다 적었다. 새로운 사업이나 설비투자를 한 것도 아니고, 감가상각이 큰 것도 아니라서 주담을 붙잡고 물어봤는데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에 주식을 좀 한다는 분들께 물어보니 'K기업 문화 종특'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의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무게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가진 지분만큼의 권리는 철저하게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논리와 같이 싫으면 매도하라는 식으로 일갈한다면 이것이 올바른 대우일까? 이렇듯 한국에서는 주주에 대한 개념과 현실이 크게 괴리되어 있었고, 현명한 미스터 마켓은 이런 상황을 주가에 귀신같이 반영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장기투자보다 단기투자에 집중했다. 철저하게 수급과 테마를 중심으로 기업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지표만 확인하고 단기적인 포지션으로만 매매했다. 트레이딩을 하면서 느낀 점은 수익은 꾸준하게 났지만 자본소득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키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은 매매법이라고 생각했다. 단기간에 변동성이 강하다는 것은 수익을 크게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잃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단기매매는 집중투자로 이어질 수 없었고 결국 계좌를 크게 레벨 업 시키려면 중장기 투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장기투자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약이 돋보이기 시작했고, 이전과는 다르게 주주환원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기업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초심으로 돌아가 가치투자의 명저들과 주주서한을 읽기 시작했다. 트레이딩보다 인베스팅의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책도 이런 흐름 속에서 접하게 됐다.

책은 미국에서 일어난 행동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들로 구성됐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을 필두로 한 여덟 가지 행동주의 사례는 자본주의의 꽃이자 성숙한 시장으로 통하는 미국 시장의 주주환원 운동의 역사이자 성장사다. 과거 2017년에 《의장! 이의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는데, 원전의 이름이 《Dear chairman》인 것으로 볼 때, 구판의 제목이 원전의 뉘앙스를 더 잘 반영한 것 같다. 구판 출간 이후 6년 만에 개정본이 출간되었는데, 주주환원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이 되는 시기에 맞춰 적절하게 출간을 한 것 같다. 개정판의 제목이 바뀐 부분도 작금의 상황을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 본다.

저자는 시대별로 주주환원 정책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기업의 부패와 무능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를 대처하는 행동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들이 싸우면서 주고받은 서한은 어떤 내용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다양한 행동주의 운동을 읽으면서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미국 시장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느꼈다. 그들도 우리 시장과 마찬가지로 모순과 불합리한 부분이 많았고,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과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 시장은 갈 길이 멀었다는 사실에 막연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희망을 보기도 했다. 책을 보면서 저자가 무조건적으로 행동주의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의 사례는 무분별한 행동주의 운동이 기업을 어떻게 무너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대표적 사례다. 모든 주주행동주의가 정당화될 순 없다. 실적도 좋고 주주환원에 진심인 기업을 대상으로 행동주의를 펼친다면 이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행동주의 문화가 들어서려면 기업이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투자자의 시각도 한층 성숙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주식투자의 목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단순 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행동주의는 취지는 좋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특히 장기투자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업, 그리고 투자자 모두가 성숙하고 건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번거로운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모여 한국 시장을 더욱 건강하고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 시장의 건전성은 주가의 건전성으로 이어질 것이고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됐던 코리안 디스카운트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시장이 이렇게 한층 업그레이드된다면 투자를 하기에도 좋은 토대가 마련될 것이고, 기존에 투자했던 분들도 대부분 경제적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책을 읽으면서 투자에 대한 생각과 철학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장기투자자들이 앞다투어 칭송하는 '이건' 선생님의 번역서라는 이유,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투자 출판사인 에프엔미디어 책이라는 이유로 책을 읽기 전에 무척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큰 교훈을 얻었다. 주식을 처음 하는 분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저자의 주장이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재무제표나 밸류 측정, 기술적 분석, 퀀트 분석, 달콤한 기법 위주의 '차익거래'와 관련된 책을 가까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더 큰 시각으로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나 어느 정도 투자에 대해 경지에 오른 분들이라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주린이라 하더라도 주주의 권리나 주인의식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나 한국 시장에서 꾸준하게 장기투자를 할 분들이라면 '올바른 투자관의 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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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된 전쟁 - 북한은 왜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가
이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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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세계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가장 큰 충격을 줬던 사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다. 이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연대와 화합을 강조했다. 물론 중국과 미국을 큰 축으로 한 갈등이 있었지만 정치적인 레토릭과는 별도로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최소한' 서로를 불편하지 않게 한다는 룰이 암묵적으로 지켜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에서는 기술력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에서는 원자재와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세계는 공생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통하여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나의 세계'라는 가치는 '편가르기'와 '각자도생'으로 대체됐고,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IRA 법안을 통하여, 중국에 내줬던 원자재와 노동력을 확보하려고 시작했다. 유럽 역시 CRMA를 준비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원유 생산국의 중심인 사우디는 OPEC을 내세워 원유 디스카운트를 주장한 미국을 노골적으로 견제했는데 이 역시 경제적 이익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세계화에서 탈세계화로 나아가는 최근, 가장 큰 이슈는 바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다. 작년부터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중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만 방문을 하여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중국 역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대만을 포위하며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물리적인 전면전이 오늘날 현대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중국은 자국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표현한 단어가 바로 '중화사상'이다. 그렇기에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숱한 지도자들은 위업을 강조하는 데 있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중화의 확장이다. 호전적인 제국의 황제들은 역사에 명군으로 남기 위해 제국의 범위를 넓히고자 애를 썼다. 진 시황, 한 무제, 당 태종, 명 영락제, 청의 건륭제, 이들의 공통점은 정복전쟁을 통하여 중화의 범위를 넓힌 지도자다. 지금 중국의 지도자인 시진핑은 3연임을 성공시키며 사실상 절대 독재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했다. 그 역시 자신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중화의 범위를 확장하려고 한다. 여기에 대만을 두고 '통일의 대상'이라고 꼬집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기에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참고하여 대만을 향해 직접적인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럼 분단된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을 치기 전에 북한이 선제공격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의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를 두고 대만을 치려니 많이 껄끄러울 것이다. 만약 동아시아에서 물리적인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전쟁이 발발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미국과 EU의 개입이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미국도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전 세계에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수가 동아시아에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자국 영토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의 1위가 일본이고 2위가 우리나라다. 미국은 왜 이렇게 동아시아에 병력을 집중한 것일까? 바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중국이 주도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 역시도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전쟁의 규모도 엄청날 것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있었는데, 대통령의 발언과 뉴스를 보면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조선 중기,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이 떠오른다. 조선 중기, 광해군과 인조 시대에 중국은 명나라와 새롭게 떠오르는 청나라의 패권 다툼이 있었다. 광해군은 명과 청, 사이에서 실리적인 노선을 탔지만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명나라만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청은 명을 치기 전에 후방에 있는 조선을 먼저 공격했는데 그것이 바로 정묘호란, 병자호란이었다. 지금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성상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최선의 노선은 중국과 미국, 양국과 친해지는 것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모호한 노선을 타기에도 쉽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하여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의 입장을 우선했다. 중국 역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우리나라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인 이철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작년에 쓴 책 《중국 주식 투자 비결》를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투자는 아직까지 대중적이지 않다. 물론 요즘은 관련 ETF가 많이 나와서 진입장벽이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리스크가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투자를 하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국내에 중국 투자와 관련된 도서들은 아쉬운 경우가 많았는데, 《중국 주식 투자 비결》은 생각보다 디테일했고 투자와 종목을 넘어서 중국의 기업 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한 점이 돋보였다. 전작을 읽으면서 저자의 중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정말 풍부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 신간 역시도 비슷했다. 이 책은 저자의 주관적인 주장이 강하지만 그런 주관성을 배제하고 제시된 자료를 볼 때 무척 구체적이다.

 

 다만, 책의 결론에 있어서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저자는 '이미' 전쟁은 시작됐으니, 북한의 선제공격을 받기보다 중국과 협상을 통하여 개입을 차단하고 오히려 남한이 전쟁을 주도하여 무력통일을 시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취지는 잘 알겠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중국과 협상을 들어가려면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밖에 없는데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 부분도 문제가 될 것이고 러시아의 예를 보듯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은 물리적, 여론적으로 엄청난 부담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결론은 존중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적으로 볼 때 고려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아무튼 책을 통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흐름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중국과 대만에 상황과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이야기할 때 '분단과 전쟁 가능성에 대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데, 책을 읽으면서 한국 주식시장이 가지고 있는 불안요소들에 대해서 새삼스레 돌아보게 됐다. 분열과 대립이 가속화되는 흐름 속에서 정부는 실리적인 외교를 진행했으면 좋겠고 개인적으로 장기투자 중인 기업들 역시도 현명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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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채식밥상 - 사찰음식계의 스승 홍승 스님의 채식 요리 클래스
홍승 지음 / 담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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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포스팅을 오래 봐 온 사람들은 잘 아시겠지만 개인적으로 불교를 무척 좋아한다. 종교적인 이유라기보다, 불교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사상,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전반의 태도 등등이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가가 있을 때마다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힐링하곤 하는데, 운이 좋다면 스님들과 차담을 하면서 여유로운 대화를 나누며 맛있는 절밥도 얻어먹기도 했다. 절밥.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사찰의 공양은 무척 감사하며 기대되는 요소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육식을 금하고 채식 위주의 자연 친화적인 음식을 섭취한다. 나 역시 여느 현대인과 다르게 육식과 생선을 무척 좋아하지만 사찰에 공양을 접하는 계기로 채식에 대한 관점도 바뀌기 시작했다.

 

 식사를 할 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데에만 집중한다. 음식이 갖은양념과 원재료가 어우러진 고유의 맛을 여유롭게 느끼는 점. 그것이야말로 식사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런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데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채식이다. 나물의 고유한 풍미를 느끼면서, 양념과 조화된 맛을 즐기고, 따로 반찬으로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나물 찬반을 모아서 장과 함께 비벼서 어우러진 맛을 느끼기도 한다. 육류나 생선도 맛있지만 언제부턴가 조금 먹다 보면 물리기도 하고 속이 불편하다. 그런데 채식은 많이 먹더라도 속이 편안하다. 그래서일까, 절밥을 먹는 날에는 역설적으로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물이나 채식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외할머니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강원도에서 자랐는데, 당시 외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 있었다. 산간지대인 강원도에서 지낸 할머니께서는 특유의 지역색 때문에 나물 찬반을 많이 해 주셨는데, 당시 여느 또래의 어린아이들처럼 인스턴트나 고기 음식을 안 준다고 반찬 투정을 엄청 했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채식 반찬이야말로 최고의 보양식이고 건강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손맛이 좋은 할머니와 청정 강원도에서 나온 재철 나물이 만났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결혼을 하고 와이프가 해주는 밥상을 먹으면서 새삼스레 할머니의 나물 반찬이 생각날 때가 있다. (와이프의 손맛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강조!!) 사찰의 공양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배경 배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식 전업 트레이딩 일을 하면서 일반 직장인들과는 다르게 집에서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에서 보내는 만큼 식생활에 더 신경을 쓸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이것저것 읽고 분석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외식, 인스턴트나 레토르트 식품, 밀키트 등등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느 순간 점심은 라면을 먹는 것이 일상화되었고, 하루를 마치면서 술을 먹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니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전업 트레이딩 역시 몸이 건강해야 한다. 몸이 건강해야지 정신이 맑아지고 일도 오래오래 할 수 있다. 몸이 건강하려면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하는데, 하나는 운동이고 하나는 식습관이다. 그중 식습관에 있어서는 인위적인 영양제나 약물보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 아닐까?

 

 언젠가부터 '한 접시의 음식이 내 앞에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먹는 음식은 자극적이고 먹으면 먹을수록 질린다. 조금만 먹어도 속이 불편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돈의 가치와 인간의 편리 때문에 탄생한 간편 요리는 진심보다는 빠름만 담겨있다. 건강을 위해서, 진심이 담긴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오프라인 서점에서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요리 관련 신간을 둘러봤는데, 홍승 스님이 쓴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음식은 우리 삶에 전반적인 부분의 영향을 끼치므로 아무것이나 먹으면 안 된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실용서들을 볼 때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구체적인 내용'과 '실천 가능성'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구체적이지 않고 실상에 써먹을 수 없다면 굳이 책을 볼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책은 우리가 평소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들, 가령 가지, 무, 버섯, 두부, 단호박 등등을 챕터로 하여 관련 요리들의 레시피를 짤막하게 제시하고 있다. 레시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리에 들어가는 양념을 제조하는 방법 등의 기본기도 서두에 설명하고 있다. 깔끔한 편집에 큼직한 판형도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반인들이 식재료를 바라보는 시각과 홍승 스님의 시각은 결이 달랐고, 그런 자연 친화적인 스님의 시각이 무척 와닿았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과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식 재료의 만남으로 완성된 사찰음식 레시피. 기교가 있지 않은 소박한 레시피로 채워져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오는 편리에 편승하여 작성된 레시피와는 결이 다르다. 이 책의 레시피만 있으면 굳이 사찰에 가지 않더라도 건강한 채식 밥상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제철 식재료로 해보고 싶은 요리들이 많아졌다. 책과 함께 가지와 무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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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그리고 리더십 - 개인과 조직을 이끄는 균형의 힘
김윤태 지음 / 성안당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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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좋은 기회로 역사 대중서를 읽었다. 전업투자를 시작한 이래 경제와 경영, 그리고 투자와 관련된 책만 읽었는데, 최근에는 시사와 역사, 그리고 인문학과 실용서들도 함께 읽고 있다. 대중들에게 있어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떤 이미지일까?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헬 조선'이다. 유교적 이념에 찌들어 있고, 실질보다는 명분에 집착하는 분위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몰락한 나라 등등... 이런 인상으로 대중들은 조선을 쉽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부정적인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500년의 시간 동안 살아남은 저력이 있는 국가였다. 임진전쟁 직후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몰락하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며 새로운 시대를 알렸다. 그러나 조선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섣부르게 과소평가를 할 수도 없다.

 

 500여 년 동안 존재했던 조선의 저력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전근대 왕조시대에는 국운이 왕의 행보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은 다른 왕조국가와는 다르게 왕권과 신권의 권력 배분이 비교적 균형적으로 행사됐던 나라다. 황제의 권력이 너무 막강했던 명나라에서는 황제의 타락을 시작으로 황제의 주변인인 내시나 환관들이 권력을 남용했고 결국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이에 반해 조선은 왕의 행동도 중요했지만 왕과 함께 정치를 담당했던 사대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왕의 무분별한 권력남용은 사대부의 견제로 이어졌고, 특정 가문이나 신하의 권력이 강할 때에는 왕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권력 쏠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권력의 분립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조선의 정치체제는 다른 절대왕정 국가보다 훨씬 진보적이다.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조선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포인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조선의 왕 9명을 살펴보면서 배울 점과 비판할 점을 고찰한 역사 대중서다. 조선 건국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태조, 태종, 세종, 세조를 필두로 중기의 성종, 선조, 광해군, 후기의 영조와 정조를 고찰하고 있다. 아홉 명의 왕들은 조선사에 있어 무척 중요한 왕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태조, 태종, 세종, 세조를 살펴보자면, 태조와 태종은 드라마에서 무척 많이 등장했다. '용의 눈물', '정도전' 그리고 최근 종영됐던 '태종 이방원'에 이르기까지, 태조와 태종의 스토리는 사골이라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재해석되었다. 세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성군이고 명군이다. 계유정난과 관련이 있는 세조의 이야기도 널리 알려졌다. 중기로 넘어가 보면 성종의 경우 조선의 문치를 완성한 왕으로 알려졌다. '성종 = 경국대전 완성 = 조선 문물의 정비'라는 문구는 학창 시절 때나 한국사 관련 시험을 볼 때 기계적으로 외웠던 공식이다. 선조와 광해군은 임진전쟁과 관련이 있다. 후기의 군주 영조와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되살린 부흥의 군주로 손꼽힌다. 이렇듯 책에 다룬 아홉 명의 왕들은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인물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지도자의 후계구도였다. 태조는 용맹하고 결단력이 있었지만 후사 문제를 처리할 때 사적인 감정에 치우쳤기에 말년이 고단했다. 태종은 어떤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태종은 성격이 과감하고 냉혹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자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는 대중매체와 드라마가 만든 허상의 이미지다. 태종은 이유 없는 숙청을 하지 않았다. 혁명 동지들과 처남들을 숙청한 것은 그들이 권력을 사유화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 태종은 마음이 무척 여렸고 눈물도 많았다. 이런 개인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구분하며 후계구도를 처리한 점은 높이 사야 할 점이다. 특히 아버지인 태조와 비교해 볼 때 태종은 후계구도 처리에 있어 무척 대조적이다. 사적으로 양녕을 무척 사랑했지만 조선의 미래를 위해 충녕에게 왕위를 선양했다. 세종은 어떠한가? 완벽한 세종의 단점을 하나 꼽아보자면 후계구도에 대한 부분이다. 그가 아들인 문종의 결혼에 개입한 사실은 알았지만 다른 대군들의 이혼에도 적극 개입했다는 내용은 책을 통하여 처음 알았다. 일에 있어 완벽주의자였던 세종은 자식들의 혼사 문제에도 비슷한 관점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이렇게 깐깐하게 접근하다 보니 문종의 후사가 늦어졌고, 이는 결국 계유정난으로 이어졌다.

 

 또한 세종은 세자인 문종뿐만 아니라 대군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었는데,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원래 왕조국가에서 후계자를 제외한 다른 왕자들은 권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다. 왕자들이 권력을 나눠 갖는다면 승계 구도에 잡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사에 박식한 세종도 이를 알고 있었겠지만 자신들의 자식들은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기에 세종이 설계한 후계구도도 공보다는 사적으로 기울었고 그 결과 세조의 찬탈로 이어졌다. 성종과 선조, 그리고 영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종과 선조, 영조는 스스로의 적통성이 결여됐는데 이런 부분이 후계구도를 정립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했다. 선조는 뛰어난 광해군을 두고 적통인 영창대군과 끊임없이 저울질했고 영조의 완벽주의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책을 통하여 뛰어난 업적을 남긴 군왕들도 후계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 외에도 저자만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왕들을 해석한 부분이 돋보였다. 흔히 우리는 선조를 두고 무능한 국왕이라고 비난하지만, 그렇지 않다. 임진전쟁에서 선조의 행동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이순신을 알아보고 전쟁 전 미리 요직에 배치한 부분이나 당쟁과 붕당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한 부분은 장점으로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선조는 명군으로 추앙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방계 혈통으로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왕권을 안정시켰으며, 선조 시대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등용된 점을 볼 때 그가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조선조의 군왕 중 리더십이 뛰어난 왕으로 숙종을 꼽을 수 있는데, 숙종을 고찰하지 않은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아무튼 조선을 대표하는 아홉 왕의 공과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잘 정리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사에 대해서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분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겠고, 역사를 통해 리더십을 탐구하고 싶은 분들이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선사를 조망하고 싶은 분들께도 일독을 권한다.

 

 ※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증정 받아서 읽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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