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심리게임이다 (22주년 기념 양장 특별판) 코스톨라니 투자총서 2
앙드레 코스톨라니 지음, 정진상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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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행위를 합리적으로 규정한다. 여기에 따르면 수요와 공급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결정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배울 때에는 제도권에서도 전통 경제학을 메인으로 가르쳤다. 그렇기에 나도 '경제활동 =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수식을 맹목적으로 신뢰했던 것 같다. 이 공식이 깨지게 된 것은 주식을 시작하면서였다. 어느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옆집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께서는 주식을 하는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한국 기업들의 주식판은 참 도박장 같아. 자네 생각을 해보게, 기업 시총이 등락률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말이 되는가?' 라고... 그때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을 못했지만 이 물음은 나에게 큰 화두를 남겼다.

 

 주식은 회사의 일부를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급적 요인에 따라 가격의 변동성이 있을 수 있다. 할아버지가 꼬집은 것은 변동성이 큰 것을 꼬집은 것 같다. 작전 세력들이 들어오거나 매수세가 강한 주식은 크게 시세를 줄 경우(상한가를 포함하여) 단기간에 50% 이상 오르는 경우가 흔하다. 기업 시총이 며칠 만에 50% 정도 오른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가격 책정인가? 쉽게 말해 1000원 하던 라면이 어느 날 갑자기 1500원으로 오른다면 소비자는 이 가격 인상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라면, 신라면, 삼양라면과 같이 특정 회사를 대표하는 라면이 엄청난 폭으로 가격을 올린다면 시민들의 강한 반발과 더불어 정부의 규제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주식판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합법적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주식시장은 근대와 현대의 경제적 토대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시스템이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장에서 이런 '비합리적인'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렇기에 특히 단기 매매, 트레이딩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장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한다. 시장에서는 특정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비이성적 과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누군가의 비이성적 과열은 나에게 있어 수익실현의 기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식시장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제로섬 게임이라는 전제는 유동성이 고정됐다는 가정에서만 유효하다. 즉 시장의 돈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라면 단기적인 수급에 의해 과열이 결정 난다. 한 마디로 돈이 들어오지 않는 박스권 장세나 돈이 빠지는 하락장일 때에만 유효한 개념이라는 소리다. 2020 ~ 2021년과 같이 시장에 돈이 밀려 들어오는 장세에서는 시장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너도 나도 돈을 벌 가능성이 높다.

 

 그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국 시장을 정리해 보자. 전통 경제학은 시장 행위를 합리적으로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비이성적 과열이 일상화되어 있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시장의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성장하는 경우, 두 번째 시장의 유동성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서 비이성적 과열에 따라 기회를 노리는 경우, 첫 번째 경우는 미국장에 해당되고 두 번째 경우는 한국장에 해당된다. 결국 국장에 투자하여 성공하려면 과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로 판결 난다. 주식에서 돈을 버는 것에 핵심은 변동성이고, 이 변동성은 결국 비이성적 과열이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가 말하는 것은 단타나 트레이딩에 해당되는 것이고, 가치투자나 장기투자는 해당되지 않는 개념이지 않느냐고.' 글쎄 과연 그럴까? 가치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가치투자란 시장에서 오해나 편견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기업을 싸게 사서 제값에 팔거나 더 비싸게 파는 방법이다. 가치투자가 성립되려면 필연적으로 '오해와 편견'이 필요하다. 즉 인간의 비이성적인 요소들이 개입해야만 가치주가 탄생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가치투자자라도 시장에서 비롯하는 '비이성적 요소'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변동성이 강한 주식투자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멘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심리' 여기에 주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감정이 개입하고 심리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거래를 하는 시장이기에 인간적 속성을 가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다. 인간의 심리 때문에 기업가치가 떨어지기도 하고 과열도 생긴다. 그렇기에 대가들은 투자를 한 뒤 요동치는 심리를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양 떼와 같은 군중심리를 극복하면서, 외로운 늑대가 되어 대중과는 반대되는 생각으로 시장의 변동성을 극복했다. 이달은 첫 거래부터 꼬였다. 유독 이달에 매매 실수가 잦았다. 성우하이텍에서도 매도가 아쉬웠고, 고바이오랩과 같은 주도주 종목들도 발굴을 잘 해놓고 심리적으로 유지를 못하여 조금밖에 수익을 못 냈다. 이렇게 투자를 할 때마다 흔들리는 날이나 손절이 큰 날에는 코스톨리나의 책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리뷰한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 이어 《투자는 심리게임이다》도 22주년 특별 기념 양장본으로 재출간됐다. 일전에 출시된 반양장본은 많이 읽어서 너덜너덜했는데 이번 책은 튼튼한 양장본이라 오래 두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익숙한 책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번에도 읽으면서 확신했다. 투자를 완성하는 것은 기법이나 법칙이 아니라 '심리'라고, 이 게임은 멘탈 게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유럽 증권계의 아버지이자 투자의 대가 코스톨라니도 이런 사실을 일찍 깨달았기에 이 책을 저술했을 것이다. 깔끔하게 출간된 양장본 책을 덮으며 옆집 할아버지가 던진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정리했다.

 

 '기업 시총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시장이 합리적이지 않고 심리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입니다. 큰 변동성은 기회이자 리스크입니다. 현명한 투자자는 시장의 오해와 과열을 잘 이용하여 돈을 법니다. 결국 심리를 극복하고 이기는 투자자가 진짜 위너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런 변동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잘 이용할 것입니다. 그 길은 무척 힘들겠지만, 투자는 심리게임이라는 코스톨라니의 말처럼 시장의 심리를 잘 이용하고 내 심리를 잘 다스려서 경제적 자유라는 정상으로 조금씩 전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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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의보 9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44
구준 지음, 정재훈 역주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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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출간된 《대학연의보》 번역본은 2, 9, 10권으로, 2권은 인사에 관련됐고 9권과 10권은 예와 관련된 제도를 다루고 있다. 9권은 '교화를 숭상함(崇敎化)' 챕터의 총론을 시작으로 학교 제도 정비, 도학과 경술에 근거하여 사회를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정을 담당하는 6부 중에서는 예부(禮府)의 업무를 다루고 있다. 예부의 업무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2권과 비교해 볼 때 성리학적 이념을 한층 강조하는 것 같다. 예와 관련된 《예기》를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주역》과 《시경》, 《상서》도 자주 보였다.

 

 9권의 핵심은 예와 관련되어 있다. 행정 6부 중 예부(禮府)는 사회 풍속과 학교 제도, 제사 제도 등등을 관장하던 곳이다. 유학에 있어 예란 이념(仁)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법가의 법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지만 유가의 예는 강제적 성격보다 당위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이런 예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제사다. 유교 풍습의 문화권에서 제사는 응당 조상에게 마땅히 드려야 당위적인 할 의식으로 통용된다. 법으로 규정하지 않았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어떤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지 않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유학의 장점이자 맹점 중 하나는 인재를 판별함에 있어 도덕과 능력을 고려하는데 대체로 도덕을 더욱 중시하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문질빈빈의 인격체를 추구하는데 여기서 바탕은 도덕이라고 할 수 있겠고 무늬는 일머리를 뜻한다고 보면 될 듯싶다. 문제는 이런 초인적인 인간상을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법가에서는 도덕보다 능력을 우선하여 관리를 선발한다. 이에 반해 유가에서는 능력보다는 인간이 된 사람을 우위에 둔다. 법가는 능력이 뛰어난 신하들을 군주가 법과 술을 사용하여 강압적으로 제압할 것을 강조한다. 반면 유가는 인성이 바른 사람들을 조정에 두면 자발적으로 충성하고 정사가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 사회인 요즘에 선호되는 사상은 아무래도 효율성이 돋보이는 법가다. 개인적으로 도덕과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리적인 사람이 능력이 뛰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도덕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윤리를 우위에 두는 유가의 사상은 이상적인 측면이 많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윤리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를 구성함에 있어 도덕과 윤리는 무척 중요하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처럼,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정들을 모두 법으로 다룰 순 없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는 무척 경직될 것이고 개인의 자유도 무척 제한될 것이다.

 

 《대학연의보》는 이념보다 실무와 행정에 초점이 맞춰진 고전인데, 9권의 경우, 예(禮)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파트와는 다르게 관념적인 성격이 한층 강화된 것 같다. 촘촘하게 제시하는 윤리 강령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명나라가 윤리적으로 바른 사회였다면 굳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윤리 강령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시대를 거듭할수록,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편의가 더욱 강화될수록, 윤리와 도덕은 더욱 각박해졌던 것 같다. 유학에서 이상적으로 꿈꾸는 요순의 시대와 책이 저술된 명나라를 비교해 본다면 어느 시대가 윤리적일까? 아무래도 전자의 시대가 아닐까? 문명이 발전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군상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멀리 갈 필요 없이 MZ 세대와 30 ~ 40대 세대의 분위기와 윤리관을 비교해 본다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도덕과 윤리는 중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9권은 분량이 많고 인용된 경전들의 문구가 다소 형이상학적이라 어려웠지만 윤리와 도덕이 쇠락해가는 현대에 있어 귀감이 될 만한 문구가 많았다. 이런 울림이야말로 고전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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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의보 2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37
구준 지음, 오항녕 역주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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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연의보》는 중국 명나라에서 발간된 제왕학서로, 《대학연의》의 후속판이자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진덕수의 《대학연의》는 송나라 시대에 발간된 제왕학서인데 43권으로 발간됐다. 진덕수는 주희가 체계화한 성리학의 핵심 경전인 《대학》을 바탕으로 경전(經 - 철학)과 사서(史 - 역사)를 결합하여 《대학연의》를 완성했다. 흔히 알고 있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라는 문구도 《대학》에서 비롯하였는데, 원래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로 8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연의》는 맨 마지막 '치국 평천하'를 제외한 6가지 덕목 (격물 ~ 제가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만 논하고 있다.

 

 구준의 《대학연의보》는 《대학연의》에서 완성하지 않은 '치국 평천하 (治國 平天下)'를 다룬 책으로, 분량은 《대학연의》보다 훨씬 많은 160권으로 구성됐다. 내용적인 측면으로 고찰해 보자면 《대학연의》가 지도자의 내적 수양에 집중했다면, 《대학연의보》는 《대학연의》가 소홀하게 다뤘던 외면적, 제도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유학에서 주장하는 체(體)와 용(庸)에 비유할 수 있겠는데 몸체와 근본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학연의》, 활용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학연의보》를 각각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연의》가 발간된 송나라는 성리학이 태어난 시대다.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은 유학을 한층 형이상학적으로 격상하였지만 지나진 관념화로 인하여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대학연의보》가 발간된 명나라는 실천적 행동을 강조하는 양명학이 태어난 시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두 책은 적극 반영하고 있다. 그렇기에 《대학연의보》의 핵심 주제는 '유학적 이념과 철학이 어떻게 현실로 구현될 수 있는가?'라는 활용에 대한 고찰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 번역된(2023년 4월 기준) 《대학연의보》는 총 3권인데, 현행 단행본 기준 2, 9, 10권이 먼저 발간됐다. 이 중 리뷰를 하고 있는 2권의 내용은 인사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책이 완간되지 않아 거시적인 조감을 할 순 없지만 제도적인 측면을 고찰한 내용이라는 점을 미뤄 짐작하건대 단행본 2권의 내용은 6부(이부, 호부, 예부, 공부, 형부, 병부) 중 인사를 담당하는 이부(理府)와 관련된 것 같다. 관직 임명에 대한 총론을 비롯하여 당대의(명나라) 정치 제도와 과거의 제도들을 비교하며 공과를 가리고 있으며, 관리 등용과 인사고과 관직 남용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다. 내용적으로 유학적 이념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대간(비판적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과 관리 선별과 승진에 대한 내용, 관직 남용에 대한 내용은 오늘날에도 귀감이 될 만한 사례들이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학술 서적을 리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깊은 부분을 다루기에는 전문가보다 미숙하고, 평이하게 풀어쓰기에는 내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학연의》는 지도자의 마음에 집중하고 있기에 쓰는데 있어 부담이 덜했는데, 《대학연의보》는 제도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에 《대학연의》보다 훨씬 어려웠다. 《대학연의보》는 번역본 기준으로 2권과 9권, 10권이 먼저 나왔다. 1권이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2권부터 리뷰를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됐다. 대부분의 동서고금은 초반부에 전체적인 내용을 개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처음 챕터의 내용이 무척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조감을 보지 않고 중간부터 읽어서 내용 파악이 매끄럽지 않았다.

 

 나온 번역본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 바, 2권의 내용은 인사에 관련된 것으로 봐서 이부(理府)의 내용인 것 같다. 나머지 9권과 10권은 교화와 풍속을 다루고 있는데 따지자면 예부(禮府)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구준은 《대학연의보》를 이, 호, 예, 형, 공, 병 즉 6부의 구성에 맞춰 쓴 것으로 예상된다. 권력의 실세적인 측면으로 볼 때 문반의 우두머리 기관은 이부였고 무반의 우두머리 기관은 병부였다. 그렇기에 번역본 2권에서 다루는 인사와 관련된 내용은 6부의 구성 중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통치자의 입장에서도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인사이기 때문이다.

 

 《대학연의》에서는 인사와 관련된 부분을 다룰 때 사람의 심리에 집중했다. 그러나 《대학연의보》에서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어떤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효율적일지, 인사고과 반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학적 이상에 안성맞춤인 제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이고도 실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역대의 제도의 공과를 서술하며 현재 제도를 살피고 있기에 따분한 인상도 받았지만 부분 부분에서 오늘날 조직운영에도 귀감이 될 만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었다. 분량이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대학연의보》는 《대학연의》가 가지고 있었던 결점, 제도적인 측면에 대한 구체성을 극복하려는 것을 독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대학연의》를 완독하던 날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연의》가 발간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무척 벅차올랐던 그 순간.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번역본을 닳고 닳도록 읽었던 시기가 엊그제 같은데,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연의보》가 출간이 되고 있다. 《대학연의》를 보면서 관련 후속 저술들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막연하게 상상했는데, 그 결실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다시금 가슴이 벅차오른다. 《대학연의보》를 번역한 역자분들을 살펴보니 과거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대학연의》를 번역한 분들이셨다. 분량이 많은 고전인데 아무쪼록 무탈하게 완간이 되길 절실하게 희망한다. 대중성을 필두로 유사 인문학이 판을 치는 시대지만, 이런 명저의 번역을 통하여 우리나라 인문학의 깊이를 더해주는 역자와 세창출판사에게 개인적으로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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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가치투자 - 이론과 실전을 모두 담아 새로 쓴
최준철.김민국 지음 / 이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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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있어 무언가를 '처음' 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처음은 설렘이 있고 신선하다. 새롭게 출간된 《한국형 가치투자》를 읽으면서 처음 투자에 나섰던 나 자신의 모습을 새삼 돌아볼 수 있었다. 미숙하긴 하지만 열정과 설렘, 신선함이 가득했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대부분의 가치투자자, 투자자가 그렇지만 주린이 시절, 나도 다른 투자자들과 비슷하게 미국 대가들의 고전을 읽으면서 '삼성전자'를 샀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대가들의 노하우를 한국 시장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좀 더 친절하고 구체적이며 한국 실정에 맞는 투자서를 읽고 싶었다. 그러다 추천받은 책이 바로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었고, 책을 바탕으로 투자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책 덕분에 '삼성전자'를 벗어나 다양한 종목들을 스스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은 무척 의미있는 책이다. 주식에 있어서 첫걸음을 내딛게 해준 고마운 길잡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의 후속편이 《한국형 가치투자》 라는 이름으로 최근 새롭게 출간됐다.

 

 《한국형 가치투자》는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 출간된 이후 21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대학생 투자자였던 저자들은 어느새 3조 원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의 대표가 됐다. 그래서인지 신간에서는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노련함과 성숙함이 돋보였다. 스마트 개미들이 많아지는 요즘 투자의 수준과 눈높이도 점점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시장의 분위기도 과거와는 다르다. 투자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종목 선정의 기준도 까다로워졌다. 그래서 사실 저자들이 정리한 가치투자의 거시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전교 1등이 정리한 모범 요약집과 같은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이 책의 진가는 미시적인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는 난이도가 높아진 시장에서 가치투자에 있어 어떤 부분들을 체크해야 하는지 세부적으로 디테일하게 알려준다.

 

 종목 선정에서는 가치주의 주가를 촉진시킬 수 있는 '촉매'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얼핏 보면 주가를 부양한다는 점에서 '모멘텀'과 비슷하게 보이는데 차이점도 많았다. 우선 촉매는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하고 실적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 포인트다. 모멘텀의 경우, 실체가 없고 심리와 기대의 요소로 형성되는 비이성적 과열이지만 촉매는 실질가치와 실적에 바탕을 둔다. 포트폴리오 구축에서는 축구의 포지션을 예로 들어 성장주와 가치주, 배당주와 현금의 비율을 설명한 부분이 도움이 됐다. 종목별 물타기와 불타기, 그리고 갈아타기 등등의 전략도 설명하는데 '보유한 기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토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백미를 꼽으라면 심리를 고찰한 부분을 꼽고 싶다. 가치투자자는 주식을 매수한 뒤 필연적으로 물릴 가능성이 높다. 그뿐 아니라 강세장에서는 밸류가 높은 주도주를 가지지 못했기에 포모(FOMO)를 느낄 수 있고, 약세장에서는 적극 매수해야 하지만 떨어지는 칼날을 잡기가 두려워진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투자를 한 사람들이라면 여러 상황들을 나름의 심법으로 유연하게 대처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멘탈이 가루가 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 가치와 성장성을 믿고 들어간 주식이 생각 이상으로 떨어지면 온갖 스트레스를 겪는다. HTS, MTS를 쳐다보지 않거나, 기업을 분석하며 기다리거나, 대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는데 이 책의 심리 파트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단기투자와 장기투자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단기투자를 중점적으로 했는데 시드가 커지면서 '잃지 않는 투자', '안전한 투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상으로 볼 때 단기투자는 장기투자보다 목표 수익에 도달하기까지 기간이 짧은 반면 수익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단타 매매의 핵심은 회전율이다. 원하는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번 매매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높은 회전율로 이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매매를 여러 번 한다는 것은 실패의 확률도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칼 같은 손익비 계산과 손절을 지키지 못한다면 벌어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날릴 수 있다. 단기매매는 실적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감과 모멘텀이 사라진다면 주가가 한순간에 폭락할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다.

 

 반면 장기투자는 종목 선정을 잘 했다는 가정을 둔다면 단기간에 변동성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큰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 단타가 감성의 영역이라면 장기투자는 이성의 영역이다. 단타의 기반은 허상이지만 장기투자의 기반은 실체다. 장기투자는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차분하게 분석하여 들어가는 투자이기 때문에 확신만 선다면 비교적 큰 금액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주변의 가치투자 고수분들은 '큰돈은 장기투자가 벌어다 주는 것이다.'라고 조언해 주시는데, 이제서야 그 의미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두 투자법은 스타일이 다르지만 공통되는 요소들도 많다. 종목 선정을 잘 해야 하고 (가치주의 경우는 밸류 측정 및 분석, 단기투자의 경우는 수급이나 모멘텀 요소),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들어간 종목들이 원하는 시세를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원하는 자리에서 매수를 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런 공통점 때문인지, 단기투자를 하다가 물려서 멘탈이 흔들릴 때에는 가치투자의 명인들의 책을 보면서 마음을 다스렸던 날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단기투자와 장기투자의 공통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투자 스타일에 대한 '변곡점'을 겪고 있는 요즘, 공교롭게도 《한국형 가치투자》를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뜻깊게 다가왔다. 투자에 있어 처음과 변화를 함께했으니 일면식은 없지만 저자들과의 인연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기자기한 편집 덕분에 독서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챕터 안에 있는 대가들의 명언들도 투자에 있어 귀감이 된다. 한국 시장에서 투자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전작인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과 더불어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중수 이상의 분들도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투자 스타일을 떠나서 국내에서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응당 읽어야 할 필독서로 손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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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전지 승자의 조건 - 배터리가 주도하는 400조 거대 시장의 패권 경쟁
정경윤 외 지음 / 길벗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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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업투자자인 나는 아침 아홉시가 되면 거래를 시작하는 것으로 업무가 시작된다. 아홉시에서 열시 반 사이, 시장은 비이성적 과열로 요동친다. 그렇기에 트레이딩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간이지만 장기 포트에 투자하고 있는 가치주나 성장주 종목들은 크게 손쓸 일이 없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고정적인 수입 덕분에 단타를 칠 필요가 없었다. 퇴근 후 매력적인 종목들을 분석하며 투자하는 것이 나름의 낙이었다. 그러나 전업투자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거래를 시도해 보고 있고, 나름 승률이 쏠쏠하기에 트레이딩과 가치투자를 같이 진행하고 있다. 새벽 기상 이후 걷는 운동을 하면서, 아침 리포트를 비롯하여 여러 정보들을 읽으면서 정보를 취합한다. 23년 2월과 3월은 대체로 이차전지 배터리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왔다. 우량주 에코프로를 필두로 이차전지 관련 종목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차전지 주식은 대한민국에서 주식을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관심을 가지는 섹터다. 성장성이 보장되어 있는 섹터이기에 주식을 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트에 보유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LG 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하여 우량한 종목들을 장기 포트에 담아놨다. 그런 주식들이 테마에 맞물려 시세를 분출하고 있다. 최근 주식 단톡에서 가장 무서운 말 중 하나는 '에코프로가 오르고 있다.'라는 멘트다. 유동성이 한정된 요즘 시장에서 이차전지 우량주이자 대장주인 에코프로가 시세를 주기 시작하면 다른 섹터가 오르지 못한다. 시장에 돈은 이차전지로 쏠리게 되고 폭등으로 이어진다. 포트에 이차전지 관련 주식들이 없는 사람이라면 포모(FOMO)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국이다.

 

 이차전지의 성장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과열을 보면 무섭기도 하다. 이러한 폭등이 합당할까? 거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역사적으로 고찰해보건대 미스터 마켓은 과열을 통하여 투자자들을 농락했다. 과거에 시장을 주도했던 주도주들의 끝은 어땠는가? 코로나 시기 성장주라는 타이틀로 화려했던 카카오와 네이버, 그리고 셀트리온의 모습은 어떤가? 그때도 그랬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새로운 산업이기에 기존의 밸류로 접근할 수 없는 모델이다.'라고 말하며 폭등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고점과 대비해서 현 주가의 가격은 어떠한가? 이를 확인하면서 폭등한 이차전지 주식들의 밸류는 과연 합당한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증권사의 산업 리포트와 종목 리포트를 읽고 TV에 나오는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들어봤다. 업종 애널리스트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산업 전망을 너무 밝게 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의 말을 들으면 배터리 산업이 정말 꿈의 산업처럼 다가온다. 애널리스트와 기업 IR 담당자들의 고충도 이해는 간다. 증권사와 사측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도 리포트를 쓰기도 어렵고, 악재 역시 최대한 좋은 말로 포장해서 알려야 하기에 부정적인 내용을 부각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답답했다. 개인적으로 특정 섹터를 공부할 때에는 그 업종에 있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반도체 섹터에 대해서도 공부할 때 애널리스트들이 쓴 책보다는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쓴 책으로 기초를 닦았다. 이차전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지식을 얻고 싶었지만,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책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이차전지와 관련된 책이 두 권이나 나왔다. 하나는 금양의 홍보이사이자 밧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의 《K 배터리 레볼루션》, 또 하나는 배터리 연구원들이 공저로 쓴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이 그것이다. 두 책 모두 읽어본 입장에서 《K 배터리 레볼루션》은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의 우수성과 초격자 기술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고,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은 이차전지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하고 폭넓은 지식을 명료하게 정리했다. 접근성이나 가독성은 《K 배터리 레볼루션》이 뛰어나고 산업의 동향과 객관성, 그리고 깊이는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일본의 기술력이다. 시장에서 점유율이 낮은 일본의 배터리 특허 출원 건수가 한국보다 압도적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차전지 산업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이라고 생각했는데, 도표를 보니 일본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외에도 미국과 유럽의 규제 법안의 극복, 글로벌 기술력 경쟁, 완성차 업체와 셀메이커 기업 간의 경쟁,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 등등... 무엇 하나 녹록한 부분이 없었다. 책을 읽고 배터리 산업에 대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전쟁이다. 대부분의 성장 산업이 그렇듯, 초기 경쟁에서 이긴 업체가 시장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해당 기업들은 사력을 다하여 경쟁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업계의 치열함을 생동감있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배터리 시장의 전망은 밝지만,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는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의 업체들이 배터리 산업에서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면 현재의 가격 이상으로 주가가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밸류는 단기적인 수급에 의한 과열처럼 느껴진다. 단기적인 트레이딩으로 접근한다면 모르겠지만 장기적인 투자를 위해서라면 업황에 대한 체크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포트 내에 배터리 주식이 없는 분들도 책을 추천하고 싶다. 주식시장에서 소외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공부가 최선이다. 오른 주식을 보면서 배 아프거나 속앓이를 하기보다 책으로 이차전지를 공부하면서 섹터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지금의 가격이 적정한 가격인지 분석한다면 다룰 수 있는 종목 풀이 커질 것이다. 시중에 반도체 관련 책은 많지만 이차전지 관련 책은 드물었는데, 이 책을 필두로 다양한 관점의 이차전지 관련 책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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