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삶의 실력, 장자 - 내면의 두께를 갖춘 자유로운 생산자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동양철학은 망망대해와 같다. 범주도 장르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방대한 동양철학의 사상 가운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이 됐던 사상은 병가와 법가, 도가다. 병가와 법가, 두 사상은 도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이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사상은 병가와 법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법가와 병가는 치고 올라가는 방법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극단성이 돋보이는 법가보단, 융통적인 병가의 방법을 더 선호한다. 도가는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필요한 사상이다. 욕심과 마음을 비우면서 얻는 방법에 대하여 풀어내고 있다. 투자를 하면서도 병가의 사상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도가의 책들을 탐독하고 있다. 도가에는 이름이 알려진 책들이 여럿 있는데 사상을 대표하는 책은 두 권이다. 하나는 《노자》고 또 하나는 지금 리뷰할 《장자》다.
도가는 이 두 책의 앞자리를 빌려 '노장사상'이라고도 불린다. 유가를 공맹사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그만큼 두 책은 도가에 있어 중요하고 상징적인 경전이다. 어릴 때부터 《노자》는 많이 읽고 리뷰도 많이 남겼다. 그러나 《장자》는 몇 번 읽었어도 글을 남긴 적은 드물었다. 철없는 시절, 《장자》는 현실성이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집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도가의 중요한 책인 만큼 읽긴 읽어야겠는데 설렁설렁 읽었고 그랬으니 남는 것이 없었다. 이번에 최진석 교수가 장자에 대한 해설서를 펴냈다. 덕분에 해설서와 더불어 《장자》를 함께 읽었다. 투자를 시작하면서, 인문학 책을 최대한 멀리하고자 노력했다. 간혹 역사책을 읽고 서평을 남겼지만 이번 책은 리뷰를 남기고 싶었다. 인문서 특히 철학서를 오랜만에 리뷰하는데 그 서막이 《장자》라서 더더욱 의미가 있다. 그만큼 이번 《장자》 회독은 나에게 있어 커다란 울림을 준 시간이었다.
도가사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장 오해가 많은 사상이기도 하다. 도가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분들은 지엽적인 현학으로 빠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노자》의 경우, 특정 경구에 얽매여 자기의 해석이 옳다고 갑론을박하는 경우가 많다. 《노자》는 현학적인 책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바로는 그렇다. 이전 서평에서도 강조했지만 《노자》를 필두로 한 춘추시대 초기 제자백가 사상의 핵심은 정치학이다. 정치. 위정자를 위한 학문이다. 이것은 동시대에 나온 《논어》나 《묵자》도 비슷하다. 《논어》는 인이라는 개념을 필두로 하여, 주나라 왕실의 형식과 제도의 부활을 희망했다. 형식과 제도는 예로 고착화되었다. 《묵자》는 비공주의였다. 노동자 출신인 묵적은 겸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하여 기존의 기득권적, 계층적 통치제도에 불씨를 지폈다. 《노자》도 정치를 논했다. 공자와 묵적이 인간의 내면에서 정치이론의 이데올로기를 발견했다면 노자는 인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답을 찾았다. 자연과 물체의 모습을 통하여 노자는 인위적인 행동보단 환경을 참고하여 억지스러움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하면 통치가 잘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춘추시대 이후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중원은 더욱 각박해진다. 주나라의 천자가 없어지고 제후국들은 서로 하늘이 되기 위해 경쟁을 가속한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혼탁한 막장의 시대를 타개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상과 이념을 한층 강화한다. 맹자는 공자의 틀을 강화하기 위해 사람의 인성에 집중하여 더욱 공격적인 논리로 무장한다. 법가 사상가들은 도가의 이론을 토대로 냉혹한 법가철학을 완성한다. 묵적의 겸애는 권력을 강화하려는 지도자의 입맛이나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시대적인 상황과 맞지 않아 쇠퇴하고 만다. 이런 과정에서 《장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 도가는 법가에도 영향을 줬고, 일부 유학자(순자)에게도 영향을 줬다. 《장자》도 도가를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여느 다른 제자백가와는 다르게 표면적으로는 극단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동시대 철학자인 맹자나 한비처럼 과격하지 않다. 그 부분이 두드러졌다.
《장자》는 우화로 구성됐다. 저자 최진석의 해설을 들어보자. 대부분의 철학은 개념에서 시작된다. 개념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범위를 정해서 소유를 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영어나 독일어, 한자에서도 개념이라는 단어를 분석하면 소유의 의미가 들어있다. 개념이라는 것은 일상의 명제 속에서 보편적인 측면에 무게를 둔다. 고유의 유니크한 속성들 가운데에서 비슷한 범주들을 묶어서 공통된 속성을 뽑아낸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일반명사'다. 소유를 토대로 한 공통의 가치, 공통의 속성을 뜻한다. 철학은 보통 일반명사를 탐구하고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장자》의 스탠스는 이와는 다르다. 《장자》는 철저하게 고유명사를 추구하고 있다. 고유명사는 유니크하다. 일반명사와는 구분이 된다. '산'은 일반명사다. '지리산'은 고유명사다. 지리산은 일반명사인 산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고유한 특이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나다움의 방법과 길을 추구한다. 이것은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장자》는 궁극적으로 나다움의 방법, 나다움의 인생, 나다움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과격하고 직설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우화로 은근하게 표현한다.
《장자》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대체로 허무맹랑하다. 듣고 있으면 뜬구름 잡는 소리도 많다. 대부분의 경전의 첫 구절은 그 경전의 성격을 대변한다. 《장자》도 마찬가지다. 책의 첫 구절 소요유에서는 바다에 큰 물고기가 있는데 변해서 새가 된다고 한다. 그 새가 날아오면 엄청 거대하다고 한다. 그 새는 천지를 날아다닌다. 첫 이야기에서부터 스케일이 엄청 거대하다. 어찌 보면 허무맹랑해 보이는 내용을 왜 첫 구절에 배치한 것일까? 《장자》 원전을 읽고 최진석의 해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구절은 《장자》라는 경전의 정신세계의 넓이를 상징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웅혼하고 역동적인 느낌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희화화된 우화로 은근하게 표현하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예전에 《장자》를 읽으며 허무맹랑한 탈세속주의자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당시 지식인들은 혼란한 정국에서 자신의 철학을 써 줄 군주를 찾아 유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장자는 실력이 있는 지식인이었고 그랬기에 쟁쟁한 군주들이 그를 탐냈다. 보통의 철학자들은 입신을 위해 자신의 학문을 연마했다. 이는 오늘날 공부를 하는 이유와도 유사하다. 이 시대 지식인들, 제자백가의 학문 활동은 취직과 입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이런 흐름이 시대적 '일반명사'라고 규정해도 될 것이다. 장자는 달랐다. 쟁쟁한 군주들의 러브콜에 일갈한다. 자신은 자신만의 길이 있다고, 세속에 가는 것보다 하층에 있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일갈한다. 그의 행위는 보편성을 벗어난 '고유명사'다. 다른 지식인이 자기의 철학으로 나라를 어떻게 통일시킬지 고민할 때 장자는 반대의 행적을 걸었다. 그랬기에 과거의 나는 장자의 표면적인 모습을 보고 탈세속주의, 불교와 사상이 맞닿아있다고 쉽게 판단했다.
그렇지 않다. 세속이냐 비세속이냐가 핵심이 아니고 나다운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장자에게 있어 세속적인 학문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법한 대학자, 시대의 현인이었지만 자신의 신념이 정치에 뜻이 없었기에 그 길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생을 유유자적 노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치열했다.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삶도 치열하게 살았다. 《장자》에서 보이는 웅혼한 스케일은 그의 내면의 깊이를 상징한다. 《장자》에서 보이는 역동적인 분위기는 그의 의지를 대변한다. 세속이냐 탈세속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뜻이 세속에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가 세속에서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억지로 분위기에 따라 세속적인 인간이 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신념과 나다움이 중요하다. 《장자》는 그런 저자의 생각을 은근하게 우화로 표현하고 있다. 우화로 표현하는 것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또 다르다. 은근하고 완곡하게, 부담스럽지 않게 접근하면서 독자들에게 여운과 여지를 남긴다. 이런 표현 방법도 도가의 은유성과 닮았다.
나이가 들면서 둥글고 완곡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 《장자》가 다루는 내용은 잘 못 전달했다간 무겁고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나답게 살 것을 주장하는 내용. 크고 역동적인 정신세계를 무겁지 않게 말랑하게 우화로 전달하는 것에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저자의 풀이 덕분에 《장자》에 대해서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충 읽었던 동양고전 책들, 《맹자》와 《순자》, 《여씨춘주》 등등의 책들도 자세하게 다시 읽고 서평을 남기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오래간만에 읽었던 동양고전 해설서. 《장자》라는 책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고 고전의 격에 맞는 해설도 좋았다. 덕분에 나다움에 대해서, 나의 삶의 깊이와 실력에 대해서 고민해 본 유익한 독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