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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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평을 쭉 지켜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나는 베스트셀러를 좋아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는 독서 시장의 흐름이나 독자들이 선호하는 기호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마냥 좋은 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홍보와 마케팅이 보편적인 시대인 만큼 베스트셀러 역시 질적인 내용보다는 과장된 광고, 자극적인 문구 등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알맹이보다는 껍데기가 화려한 속 빈 강정 같은 책들이 많다는 뜻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이하 지대넓얕) 시리즈를 처음 봤을 때에도 그랬다. 그저 그런 인문학적 지식을 파편적으로 나열해서 가볍게 설명한 입문용 책일 것이라고, 가볍고 얕은 인문학 개론서겠거니 하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이 구매한 책을 빌려서 봤는데, 생각 외로 내용이 괜찮았다. 저자는 어렵고 복잡한 지식들을 최대한 단순화하여서 설명하는데, 설명하는 방법도 소위 요즘 세대의 눈높이에 맞춰서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책을 조금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려운 내용을 단순화하여서 쉽게 설명하는 것은 굉장한 노고와 실력을 필요로 한다. 수학으로 치자면 미분이나 적분 이론을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는데, 이럴 경우 가르치는 선생은 어려운 이론을 최대한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야 한다. 이토록 어려운 일을 저자인 채사장은 능수능란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책 서평에 앞서 우선 저자에 대해서 고찰해보자. 채사장과 비슷한, 지적 소매상 포지션을 가진 작가들은 국내에 누가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지적 소매상이라는 말을 앞세워 자신을 어필한 유시민이 떠오른다. 또 누가 있을까, 오늘날 인문학 열풍에 여러모로(?) 지대한 공을 일으켰던 이지성 작가도 떠오른다. 그 외 여러 인문학 작가들이 있지만 전범위적인 인문학 지식을 소화하는 작가, 그리고 밀리언셀러 작가라는 조건을 고려해보면 앞에 언급한 두 작가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먼저 유시민 작가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1세대 잡학다식 지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방면적인 지식과 해박한 논리, 그리고 위트 있고 재미있는 서술 등으로 고정 팬을 엄청나게 확보했다. 최근에는 알쓸신잡 등과 같은 통합 인문학 프로에 나오면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역사, 고전, 독서, 문학, 여행, 문화 등등 전범위적인 인문 분야에 책을 냈으며 정치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주관이 뚜렷한 작가다.


이지성 작가 역시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도서로 우리나라의 인문학 열풍을 선두 했다. 다만 유시민 저작과는 다르게 인문학의 탈을 쓴 자기계발서 책을 많이 발간했기에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첫 작품인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후 출간된 책에서는 반복되는 패턴, 그리고 얕은 깊이 등의 고질적 문제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독자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등장한 채사장과 《지대넓얕》 시리즈. 채사장은 앞의 두 사람과 비교해서 어떤 특징이 있는 것일까. 첫 번째는 숙성된 깊이와 단순화된 서술이다. 얼핏 봐서 채사장과 유시민의 저작은 인문학 개론서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심도 있는 깊이를 담고 있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서술 방법에 있어서는 굉장히 이질적이다. 유시민의 저작은 글을 중점으로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설명하는데 반해 채사장의 《지대넓얕》은 서술이 단조로우며 그림 자료 등을 통하여 다방면적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텍스트 위주의 유시민의 설명보다는 그림을 곁들여서 단순화한 채사장의 설명이 훨씬 생생하게 와닿지 않을까. 두 번째로는 다루고 있는 지식의 범위다. 언급한 세 작가들 중 가장 다양한 범위를 소화하고 있는 작가는 채사장이다. 인문학을 넘어서 과학과 기술, 물리학과 우주, 종교 등등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범위는 무척 방대하다. 정리해보자면 《지대넓얕》은 방대한 지식을 다루는 종합 인문학서로, 바쁜 현대인의 흐름에 맞춰 각 분야의 지식의 고갱이를 추려 단순화하여서 쉽게 알려주고 있다. 타 소매상보다도 폭넓은 분야, 거기에 빠지지 않는 깊이와 단순화된 서술까지... 이런 다양한 장점을 가지기에 동종 인문 지식 소매상 가운데 채사장은 시대적 흐름에 걸맞은 탁월한 센스를 보여주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렇기에 나는 채사장의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구해 보는 편인데, 이번에 나온 《지대넓얕 제로》 역시도 무척 기대가 됐다. 전작 1,2권에 이은 3권이 아니라 0라니, 이건 또 무슨 의도인 것일까. 굉장히 궁금했는데, 책을 완독하고 난 이후 이번 작 역시 굉장히 잘 만든 작품이고, 탁월한 기획이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제로라는 말답게 책은 《지대넓얕》 시리즈의 기본이자, 교양(인문학 + 자연학)의 기본을 다루고 있다. 다루고 있는 범위는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근세까지를 다루는데, 핵심은 바로 '일원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계와 자아'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전작인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와 《열한 계단》을 읽으면서, 채사장이 일원론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과 시각을 선호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 《지대넓얕 제로》 편에서는 그런 일원론에 대한 시각을 구체화하고 깊이 있게 전개하고 있었다.


저자는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근세의 사상적 흐름을 차분하게 설명하는데 상이하고 이질적인 대륙에서 싹튼 위대한 사상들의 공통점을 깊이 있게 추적한다. 그 공통점은 일원론으로 내면의 자아와 외부의 세계가 떨어져 있지 않고, 나의 내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외부 세계라는 점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얼핏 봐서는 처음 부분, 우주의 탄생과 문명의 탄생 이전까지는 인간을 강조하는 일원론과 관계가 없는 내용같이 보이지만, 팽창하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관찰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현대 물리학에서도 인간의 의식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후 세계 각지 문명에서 진리를 추구했던 사상 - 베다, 중국의 철학, 불교, 서양의 철학, 그리고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관념들 - 을 재빠르게 살펴보는데, 상이한 사상들을 일원론이라는 관점으로 엮어서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파편적으로 배웠던 인문학 지식들이 완전한 퍼즐처럼 하나로 완성됨을 느꼈다. 또한 내가 몰랐던 기독교나 힌두교, 그리고 물리학 지식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지만 특정 인문학 분야를 편애하는 나쁜 습성이 있는데, 저자의 말대로 좁은 세계관을 뚫고 다양한 세계관의 지식을 섭렵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채사장은 《지대넓얕 제로》를 책을 인문학을 처음 배우는 분들을 대상으로 저술했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한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용하다. 책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점검하거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특정 지식이 가지는 의의, 개별적인 지식들의 연결고리 등등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새해를 따끈한 신간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책 읽는 시간 동안 매우 행복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제목에 '얕은 지식'이라는 문구 때문에 책을 가볍게 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여기서 얕은이라는 뜻은 방대한 지식을 단순화하였다는 뜻이지, 책의 깊이가 얕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나처럼 내용을 읽지 않고 제목만 보고 억측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미 명성이 오를 대로 올라서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긴 하다만... 나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분들이나, 나와 외부 세계 간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는 분들에게 강추하는 책이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기본기를 쌓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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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2 -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 시기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2
이계황 지음 / 혜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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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들이 센고쿠 다이묘 중 일반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오다 노부나가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좋아하는 만큼 노부나가를 사랑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왜 노부나가를 이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혁신적인 모습이 아닐까. 노부나가는 종래의 센고쿠 다이묘들보다 능력이 월등히 뛰어났고 사고도 앞섰다. 천재적인 발상에서 비롯하는 정치적인 감각, 군사적인 전략, 경제정책은 여느 센고쿠 다이묘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이런 천재적인 노부나가의 등장으로 인해 센고쿠 시대는 큰 전환점을 가지게 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분열된 일본 열도의 통일 관념이다. 노부나가가 활약하기 전의 센고쿠 다이묘들은 중앙 정치에 대한 기대보단 자신의 영지와 영토를 넓히고 그곳에 군림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센고쿠 초기의 어지러운 세력구도가 정리되면서 권력 수호에 성공한 다이묘들은 거대한 영지를 확보하게 된다. 혼란스러웠던 일본 열도도 두각을 드러내는 극소수의 센고쿠 다이묘들에 의해 재편되는데 노부나가 역시 오와리 지방을 바탕으로 성장한 센고쿠 다이묘였다.


여기서 노부나가는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다른 다이묘들이 생각하지 않은 일본 대륙의 통일을 야망 했다. 이것이 바로 노부나가와 다른 유력 다이묘들의 차이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이런 야망을 '천하인'이라고 명칭 했고, 일본 열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조정과 쇼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노부나가와 비슷한 규모의 다이묘들도 많았는데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그리고 모리 테루모토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종래의 다이묘들과 비슷하게 그저 자신의 지역구 내에서만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조정과 막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에, 굳이 무리하게 중앙을 장악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수도(교토) 점령을 지켜보면서, 뒤늦게 그들 역시 천하인을 꿈꾸며, 중앙으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노력했다. 정리해보자면 노부나가의 출현은 분열된 일본 열도를 통일하고자 하는 의식을 전국에 확신시켰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의를 가진다.


책에서 개인적으로 재미있던 점은 무로마치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요시아키와 노부나가와의 미묘한 관계였다. 노부나가는 천하인을 꿈꾸고 있었지만 스스로 서기에는 세력이 약했으므로 쇼군을 옹립하는 행위를 통해 다른 다이묘들과 정치적인 차별화를 꾀했다. 이는 마치 중국의 후한 시대 조조가 한나라 황실의 후예인 헌제를 옹립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과 비슷했다. 공교롭게도 조조와 노부나가는 혁신가였으며 허례허식보단 실리를 중시했으며, 풍운아 기질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 둘은 시대를 상징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난세의 통일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결점도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쇼군 요시아키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노부나가의 후광을 입어 쇼군의 자리에 올랐지만 허수아비 쇼군으로 남아 노부나가와의 불편한 동거를 유지하지 않고, 실질적인 권력을 탐했다. 정치 10단인 노부나가 역시 쇼군에게 정치적 실권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쇼군은 전국 각지의 세력가들에 의탁하면서 끊임없이 반노부나가의 세력을 형성하고 압박한다. 이런 연합은 노부나가에게 있어서 최대의 정치적, 군사적 위기였고 부담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노부나가의 편이었던지 절체절명의 순간 반노부나가 연합은, 연합을 주도했던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의 죽음으로 빈번히 실패한다. 물론 노부나가의 뛰어난 군사활동도 있겠지만 신겐과 겐신의 죽음은 반노부나가 연합에 있어 너무나도 결정적인 패착 요인이었다. 이렇듯 노부나가는 시대에 앞선 혁신적인 사상, 그 사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운이라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요즘 말로 금수저에 실력도 좋으며 운까지 억세게 좋았던 셈이다. 이 삼박자를 고루 갖춘 노부나가는 결국 숱한 정적들을 무찌르고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부나가를 지켜줬던 운명의 여신은 천하통일을 앞둔 역사의 주인공을 외면해버린다. 오늘날까지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아케치 미쓰히데의 혼노지 급습. 믿었던 부하의 배신으로 인해 천하인을 목전에 앞둔 노부나가는 역사의 이슬로 사라지고, 모리 가문과 대립하고 있던 히데요시는 재빠르게 교토로 회군하여 미쓰히데 세력을 처단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임진왜란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 우리나라에선 역사적 악연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일본에서는 출세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여러모로 노부나가와 대조적이었다.


노부나가가 천재적이고 이상적이라면, 히데요시는 기민하고 현실적이다. 노부나가가 독단적이라면 히데요시는 심리와 설득의 대가였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노부나가와는 달리 히데요시는 신분이 낮았다. 그렇기에 그는 밑바닥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 온갖 일을 도맡아 했으며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성장 배경을 가지다 보니,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에 능통할 수밖에 없었으며,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혜안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신분의 비약적인 상승은 히데요시의 단점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다르게 히데요시는 상류층의 문화에 굉장히 심취한다. 그가 고용했다가 죽인 센노 리큐는 일본 다도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히데요시는 자신을 드높이는 것을 매우 민감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든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히데요시의 경우 그 강도가 매우 심했다. 그렇기에 그가 쓴 문서나 그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제시한 조건들을 보면,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과장한 부분이 많다. 이런 단점들은 결국 미천한 신분에 대한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들이었고, 어쩌면 조선에게 자신만만하게 전쟁을 건 것 역시 자신의 정권과 능력을 너무나도 과대평가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이룩한 업적들을 단숨에 소화했다. 새로운 정권에 대한 반발이야 어느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있는 일이지만, 노부나가에 정권에 비해서 히데요시의 정권은 생각보다 큰 저항을 맞지 않았다. 히데요시의 시기 전국의 센고쿠 다이묘들도 세력 분쟁이 어느 정도는 끝나있는 상황이었으며, 히데요시는 그런 유력 다이묘들을 모략으로 회유하고 무력으로 치는 것으로 비교적 손쉽게 통일을 도모했다. 그러나 저자가 밝히는 대로 히데요시의 정권 역시 지방 군벌 세력들을 완전하게 제압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지 않고 대외 원정(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벌인 것은 크나큰 실책이자 오판이었다.


책의 말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나오는데, 공간적 배경이 일본 영토에서 익숙한 우리나라로 설정되니 책을 보는데 한결 수월했다. 흔히 우리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가 일본군에게 수세에 몰린 것만을 생각하는데, 이는 개전 초기일 뿐이었고, 명군의 투입이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일본군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책에서는 일본군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승승장구했다고 알려진 일본군의 전력 역시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장기전이다. 전쟁 개전 당시 조선이 밀린 이유는 파격적인 규모의 기습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군 역시 문제가 생기는데, 중요한 점을 언급해보면 길어진 보급선과 예상치 못했던 의병과 승병의 활동, 그리고 명군의 참전과 이순신의 활약 등등이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바로 의병과 승병, 그리고 이순신의 활약이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호남과 영해권을 점유하지 못했던 일본군은 평양 너머로 진군을 꾀할 수 없었고, 결국 한성으로 후퇴를 한 뒤 최종적으로 남쪽으로 퇴각한다. 이후 일본군은 싸움보다 강화에 집중했고, 타국에서 피를 흘리기 싫었던 명나라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응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가 간의 이해타산이 맞지 않았고 회담은 결렬되었으며 정유년 일본은 다시 침공을 한다. 임진왜란은 조선을 넘어 명과 인도까지 점령하여 동아시아의 세력권을 일본을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히데요시의 과욕에서 비롯했다. 전쟁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히데요시는 이런 자신의 야망에 자신이 있었지만, 명과 인도는커녕 조선에서 고전하는 자국의 다이묘들의 모습을 보자 부풀었던 욕심도 사그러들고 현실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유재란은 이런 현실적 목표에 근거하여 한반도 남쪽 지역의 지배권을 목표로 하고 일어난 전쟁이었다. 전쟁의 최대 눈엣가시인 이순신을 실각시키고 조선 수군을 괴몰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명나라와 조선의 육상 병력도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또 결정적으로 복권된 이순신이 명량대첩을 통해 일본 수군에 지대한 타격을 입히자, 일본군은 전라도와 경상도 바닷가 근처에 성을 짓고 농성하면서 강화에 나선다. 불행하게도 히데요시는 정유재란 도중 죽음을 맞이하고, 조선에 파견된 일본군들은 자국 내의 영지와 중앙 정치의 흐름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귀환을 하며 전쟁은 종결된다.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시리즈는 무로마치 말기부터 히데요시의 집권기까지의 정치적 흐름을 최대한 깔끔하게 서술했는데, 종래의 특정 다이묘 중심의 서술이 아닌 대륙 전반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에 짧은 시기 수많은 인물과 수많은 세력들이 등장하는데 전권 리뷰에서도 강조했지만 일본에 대해 흥미가 없다면 읽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1권보다 2권이 더 재미있었는데,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와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여러 관점으로 심도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이들 외에도 다양한 군상들의 정치적 행위를 통하여 인간에 다양한 모습을 고찰할 수 있었다. 또한 임진, 정유재란을 일본군의 관점으로 기록한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이를 통해 7년 전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전국 시대의 3걸 중 하나이자 최종적으로 센고쿠 시대를 통일한 승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일전쟁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리즈의 목차를 보고 3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일 전쟁과, 히데타다, 이에미쓰를 거친 에도 막부 정치의 완성을 기대했는데, 2권 말미에 맺음말이 있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 두 권으로 센고쿠 시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는데 무리는 없지만, 근세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에도 막부의 성립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시각으로 세키가하라 합전을 살펴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으니, 드라마를 보다가 결말을 못 본 기분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3권을 출시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에도막부의 성립을 다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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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발도 2021-10-05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가 쓴 일본근세사라는 책이 이미 있어서 그렇게 마무리 되었나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1 - 센고쿠기의 군상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1
이계황 지음 / 혜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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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연말 근세 일본에 대한 책이 연달아 출간되었는데 김시덕 교수의 《일본인 이야기》와 이계황 교수의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다. 두 책 모두 근세 일본을 다루고 있으며 시리즈물로 기획됐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술 포인트는 상당히 다르다. 《일본인 이야기》는 근세 일본을 신선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정치적인 흐름을 포함하여 세계사에서 일본이라는 플레이어가 어떻게 활약하는지, 그리고 이 시기에 새로운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카톨릭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대단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일본의 전국시대에 혼란했던 다이묘들의 정치적 군사적 움직임을 소상하게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일본인 이야기》에 서술된 것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전문적이다.


그러므로 두 책을 정리해보자면 《일본인 이야기》는 범위는 넓고 깊이는 대중적인 시각으로 설정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범위는 다소 좁으나 깊이는 심도 있게 파고 들어간다. 똑같은 시기를 다룬 책이 연달아 출간된 것도 신기한데, 저자에 따라서 같은 시대를 다룬 저술의 포인트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시리즈는 총 2권으로 출간됐는데, 1권의 제목은 센고쿠기의 군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책은 무로마치 막부의 전반적인 정치 흐름을 시작으로 센고쿠(한자어로 전국을 뜻하나 책에서 표기한 대로 본 글에서도 앞으로 센고쿠라고 표현한다.) 시대의 서막을 알린 오닌의 난, 그리고 슈고 다이묘들의 몰락과 센고쿠 다이묘들의 등장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리뷰하기 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먼저 이 책은 내용은 다소 전문적이다. 그러므로 일본, 특히 센고쿠 시대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완독하기 힘들다. 책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며, 수많은 사건이 나오는데, 일본 지리와 문화, 그리고 인물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소화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본인 이야기》는 역사적 흐름보다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을 전면에 내세운 책이라면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은 최대한 배제하고 역사적 흐름을 위주로 전개하고 있다. 무로마치 막부에서 센고쿠 다이묘들의 시대가 오기까지 정치적 군사적으로 잡음이 많았는데 이런 분위기는 특정 지역을 넘어 일본의 전 영토에서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 국내에 소개되거나 번역된 센고쿠 역사서는 소위 전국시대의 3걸이라고 불리는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이런 책들도 대체로 편향된 시각을 보이거나 얕은 처세술을 이야기하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그에 반해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1권의 경우는 센코쿠 시대가 열리기 전 무로마치 막부가 내재하고 있던 잡음과 센고쿠 시대를 열었던 오닌의 난의 배경을 디테일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일본 전역에서 일어난 정치적 군사적 행적들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의 두께에 비해 다루고 있는 양은 많았고, 너무나도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이 나오기에 책을 끝까지 완독하는 데 있어 애정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최대한 자신의 의견은 자제하고 역사적 흐름만을 담담하게 기술하겠노라고 서두에 밝히지만, 정치적 군사적인 흐름을 설명한 뒤 이런 행동이 정치적으로 어떤 점을 노린 것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짤막하게 코멘트를 달고 있다. 학자나 이 분야에 능통한 전문가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이 다소 불편하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인 나에게는 이런 저자의 코멘트가 시대를 이해하고 각 세력의 이합집산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책의 내용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축약해보면, 일본의 역사를 크게 살펴보면 지금의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동부) 지역과 교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역(서부)의 갈등이 거대한 축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이래로 가마쿠라 막부 이전까지는 선진문물의 통로인 해안가가 있는 간사이 지방이 정치적 중심지였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가 간토 지방에 세워지고 정치의 축은 동부로 이전된다. 가마쿠라 막부 이후 교토에 무로마치 막부가 세워지면서 열도의 실권은 다시 간사이 지방으로 이전되며, 센고쿠기를 거쳐 에도에 막부를 세우게 된 도쿠가와 가문 덕에 다시금 간토는 정치의 중심지로 거듭난다.


무로마치 막부는 중앙 집권을 지향한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막부와는 다르게 쇼군 가신단과 유력 슈고 다이묘의 연합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쇼군이 어지간한 역량을 지니지 못한다면 (아니 역량을 가진다 할지라도) 유력 슈고 다이묘와 가신단을 정치적으로 제압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무로마치 막부 중기와 말기에는 외부적으로 간토에 세워둔 가마쿠라부와도 대립이 있었는데, 간사이 지방에 있는 막부가 간토 지역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었으며, 역사적으로 두 지역은 갈등관계 속에 있었기에 간토의 영주들 역시 쇼군가의 권위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명목상으로는 쇼군의 지위를 인정하지만 수가 틀리면 언제든지 자기들끼리 연합하여 반기를 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앙 정치의 갈등과 하극상 분위기는 지방으로도 스며드는데, 여러 지방의 대영주인 슈고다이묘는 중앙 정치를 위해 수도인 교토를 들락거렸으므로, 실질적인 영지 지배는 슈고다이나 가신들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지방의 토지를 다스리는 사람은 슈고다이묘가 아닌 슈고다이나 가신들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역시 슈고다이묘 몰래 지방 행정력과 군사력을 장악했다. 그래서 오닌의 난 이후 무너지는 중앙 정치에 실망하여 돌아온 슈고다이묘들 가운데에서는 자신의 영지의 행정력을 장악한 유력 가신이나 슈고다이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하극상 풍토에 불을 붙인 것은 중앙 정치를 관장해야 하는 쇼군의 떨어지는 역량이었다. 나라가 망조에 들 때에는 늘 빠지지 않는 것이 무능하고 어린 최고지도자와 그 틈을 비집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세력들의 움직임인데, 무로마치 막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정치력으로 지방의 하극상을 진압한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외에는 그렇다 할 정치력을 보여준 쇼군이 없었는데, 쇼군의 강력한 권력을 지향했던 6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가 아카마쓰 노리야스에게 살해당하면서(가키쓰의 난) 끝내 쇼군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만다. 이후에 집권하는 쇼군들은 전전긍긍 자신의 자리만 지키기에도 벅찼으며, 결국 이런 쇼군의 정치적 우유부단함, 슈고 다이묘들과 쇼군 가신단의 대립, 지방의 하극상 풍토가 빚어낸 결과가 바로 '오닌의 난'이었다.


오닌의 난은 쇼군의 후계자를 정하는 것으로 의견이 나눠 일어났지만 이는 명목상인 이유일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슈고다이묘와 가신단간의 이합집산으로 인한 권력 다툼이었다. 전쟁은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지루하게 전개되었는데, 결과적으로 교토는 불타기 시작했고,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슈고 다이묘와 가신단은 대규모 충돌로 인해 군사적인 힘이 크게 약화됐다. 중앙의 이런 흐름을 살피던 지방의 슈고다이와 슈고다이묘의 가신 세력들은 서서히 지역 내에서 실력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혈연이나 혈통보단 정치적 군사적 실력으로 모든 것이 결정 나는 센고쿠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규슈를 포함한 서부, 그리고 도후쿠를 포함한 동부, 중부를 포함한 기나이 등 일본 열도 전방위에서 영지의 지배권을 잡기 위한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슈고다이묘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실력으로 영지의 지배권을 획책하기 위해, 영지를 넓히기 위해 전투는 이어졌으며, 그 속에서 여러 세력들 간의 이합집산, 합종연횡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서부에서는 전통적인 슈고 다이묘인 오우치가와 신흥 세력가인 아마고가의 전투가 메인이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모리 가문이었다. 중부의 경우 오와리에서 일어난 오다 가문이 전통적으로 막강했던 슈고 다이묘인 이마가와가와 새로운 패자로 등극한 사이토가를 무찌르고 패권을 장악한다. 간토 지역에서는 카이의 다케다가, 그리고 다테가와 도호쿠의 우에스기가 등이 두각을 드러냈다. 무로마치 막부의 지방 행정권은 혈연과 세습에 기초한 슈고다이묘가 가지고 있었는데, 오닌의 난을 통해 세습적 권위가 무너지자, 영주의 실권을 장악하는데 역량이 부족했던 슈고다이묘는 하극상으로 권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소다이묘들이나 가신들, 그리고 정치적 군사적 역량으로 권좌를 지키는데 성공한 슈고다이묘들은 센고쿠 다이묘로 진화하게 되고, 중앙 정부와 쇼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센고쿠 다이묘들은 광역적인 패권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짧은 시기 다양한 세력의 활동을 담고 있어서 책을 쫓아가는데 나름 애를 먹었지만, 완독하고 나니 남는 것도 많았다. 센고쿠 시대는 일본 역사, 그리고 세계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시대였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문치주의와 평화로운 관계에 사로잡혀 태평스러운 나날을 보냈는데, 물 건너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막부가 통치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막부와 영주들은 늘 긴장 속에 군사적인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일본인들은 정확하고 계산이 빠르며 이해타산을 칼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은 무로마치 막부와 센고쿠기의 시대를 거치면서 생존하고자 했던 지배층의 모습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에서 윤리를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윤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실질적인 정무 능력보다 공직자에 대한 도덕을 너무 우선하여서 현실성이 없었는데, 일본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이들에게 있어 정치란 윤리와 도덕 이전에 생존의 문제였다. 일개 평민과 무사에서부터 하급 다이묘, 그리고 슈고 다이묘와 조정의 대신들, 심지어 천황과 막부의 수장 쇼군까지, 자신을 노릴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이렇다 보니 어제의 적은 오늘의 우군, 오늘의 우군은 내일의 적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이런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흐름은 현실을 너무 극도로 생각한 나머지 최소한의 윤리마저 결여된 것 같았다. 아무튼 책을 통해서 오늘날 일본의 모습에 대한 기원을 추적할 수 있었으며, 복잡한 센고쿠기 다이묘들의 움직임을 이토록 소상하게 밝혀낸 점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일본인의 책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리한 센고쿠 시대의 역사서라서 더더욱 신뢰가 갔다.


물론 책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책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자료나 지도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지만, 중요한 전쟁의 경우 진군로 정도는 표현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는 책에서 그런 부분들을 직접 찾아서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작게 인쇄된 지명을 보며 세력들의 추이를 직접 살피는 것은 아무리 애정이 있다 하더라도 독서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젊은 나도 작은 지도의 지명들을 보기에 어려웠는데, 눈이 어두운 어른들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정성스럽고 잘 쓰인 저서에 옥에 티인 것 같아서 매우 아쉬웠다. 남은 2권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는데, 내가 잘 알고 있는 시대라서 그런지 1권보다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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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굿맨 2020-02-2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리뷰수준 ㅎㄷㄷ하네요. 정말 잘봤습니다.
 
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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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그중 특히 남도 땅은 예로부터 권력과 거리가 멀었다. 삼국시대 말기에는 풍수의 대가 도선이라는 스님이 활동했는데 주로 남도 쪽에서 활동을 하며 명당 터에 사찰을 창건했다. 땅을 보는 데 뛰어난 혜안을 가졌던 도선국사는 왜 많고 많은 땅 중에서 하필 전남에서 활약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전남 지역이 예로부터 권력에서 소외되어서 민초들의 정신이 가장 잘 살아있는 곳이었으며, 그렇기에 민본 중심의 불국토를 건설할 수 있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도선국사의 활약 덕분에 신라 말, 그리고 후삼국 시대에는 남도의 명당 터에 유서 깊은 절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려왕조가 들어서면서 전남 지역은 또다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궁예의 휘하에 있을 때 후백제의 핵심부 중 하나인 나주를 공략했는데, 왕건의 나주 공략은 후삼국시대의 판도를 바꾼 결정적인 전투였으며 후백제의 왕 견훤의 뒤통수를 때린 습격이었다. 공격은 적진 한복판을 기습하는 것으로 시작됐는데, 그렇기에 왕건의 고충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겠다. 이때 호남 사람들이 보여준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을까, 훗날 왕건은 삼한을 통일하고 고려의 왕위에 올라 전남 지역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기용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사람이란 동물은 이렇듯 좋은 일보단 나쁜 일에 더욱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자신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 역시 호남 사람들의(나주) 호응 덕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왕건은 그들의 열의를 두려워했고 끝내 외면했다.


두 왕조를 거치면서 형성된 프레임은 조선왕조에도 유효했다. 일설에 따르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뒤 삼한의 명산, 산신들에게 왕조의 안녕과 축원을 드렸는데, 유독 지리산에서만 좋지 않은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오늘날 지리산은 호남과 영남을 가르는 곳에 우뚝 서 있지만, 이 산의 역사적인 내력을 쭉 살펴보면 정치적으로 소외된 호남의 흐름과 무척이나 닮았다. 남한 땅에서 가장 거대하고 방대한 산자락이라 그런 것일까. 유독 이 산에는 반골 기질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갔다.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노력한 의병들, 실패한 동학농민운동의 농민들, 빨치산 부대 등등... 이념을 초월하여 순탄하게 살지 않았던 당대의 풍운아들은 지리산 산자락으로 도피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지리산은 한 많은 그들을 넉넉하게 품어냈다. 그렇기에 지리산의 역사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호남의 흐름과 함께하고 있다. 이런 남도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이었던 동학이 피어났다.

원래 동학은 경상도 땅인 경주에서 최제우가 창시했다. 그러나 영남의 땅이 어떤 곳인가. 역대 이래로 정치의 최전선을 담당하던 곳이었으며 선비문화의 원류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렇다 보니 지역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보수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역사에 있어 극단과 극단은 때론 상통하기도 하는데 경상도와 동학이 이런 관계다. 사농공상이 철저하게 구분된 선비문화를 지키는 데 으뜸인 지역에서 가장 낮으며, 민중적인 사상이 탄생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최제우 역시 지역적 보수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충청도와 전라도를 전전하다 죽는다. 이후 2대 교주 최시형이 교리를 더욱 가다듬으며, 동학은 한층 더 민중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가장 낮은 남도의 땅에서, 낮은 자들을 대상으로 한 종교가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필연적이었고, 이 필연은 역사의 줄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전봉준, 김개남, 그리고 손화중 등등의 동학도는 무장봉기를 통해 남도의 행정력을 마비시켰다. 그들은 수탈이 일반화된 남도의 구슬픈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고, 백제의 멸망 이후로 줄곧 대접받지 못했던 민초들은 이들을 열렬히 호응했다. 남도, 그리고 전라도 일대, 충남 지역까지 민초들의 울부짖음은 이어졌다. 동학군의 아우성은 당시 중앙정부의 무능을 상징했다.


그들은 열망했다. 사농공상이 없는 나라, 차별받지 않는 나라, 최소한 인간답게 살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 현대인인 우리가 봤을 때에는 당연히 누려야 마땅한 것들을 요구하고 열망했다. 세계가 평등사상으로 재무장하고 있을 때 조선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봉건주의 신분제를 고집했다. 참다못한 민초들은 동학을 빌려 사람답게 살 권리를 주장했다. 무능한 국가는 동학군을 두려워했고 결국 일본을 불러들여 민초들을 탄압했다. 체계적이지 못한 움직임, 지도부의 분열 등등으로 인해 동학군은 패배를 했으며 스러졌고 결국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책은 그런 동학 혁명의 흐름을 유적지 위주로 디테일하게 추적한다.


오늘날 일반인들에게 동학은 굉장히 낯설다. 종교 하면 불교나 그리스도교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동학이라는 사상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전해지는 경전도 대중화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 안에 스며든 인간 중심의 사상 역시 사라져가고 있다. 잊힌 사상을 답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을씨년스러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답사 역시 그랬다. 당시 뜨겁게 타오른 장소들은 쇠락하여 흔적조차 마모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저자는 텅 빈 공터에서 흰옷을 입은 한 무리의 환영들이 보이는 것 같다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나 역시 눈을 감으니 그 무리들이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했다. 냉정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근본적인 원인을 여럿 꼬집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오늘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동학은 이 땅에서 처음 태어난 인간 중심의 사상이다. 불교도 천주교도 유교도 인간 중심을 외치지만 근본을 따지고 보면 타국에서 건너온 외래 사상이다. 그런데 동학은 우리 땅에서 태어난 우리의 사상이다. 이 땅에서 처음 일어난 사상인만큼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동학을 따른 사람들은 지식인이나 교양인이 아닌 핍박 받은 백성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을 조직적으로 규합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아쉬움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근대화 바람의 서막을 연 것이 바로 '동학농민운동'이라는 점이 아닐까.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에게 온갖 한계를 거론하며 냉소적으로 일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한계가 있더라도 용기 있게 길을 간 것에 대해 축복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책은 표지를 보니 최근에 나왔으며, 일전에 리뷰했던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와 흡사한 것으로 봐서 세트인 것 같다. 두 권의 책 중 개인적으로 이쪽이 훨씬 좋았다. 전작인 사찰 답사기는 다소 가볍고 경쾌하게 글을 썼다면, 이번 책은 울분에 찬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렇기에 읽는 내내 저자의 감정에 공감을 하며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동학과 천주교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이 두 사상의 근대화 공로에 대해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시각이나 편향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이 두 사상의 공통점은 바로 평등과 자유였다. 신분제 왕조 국가에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평등과 자유. 이렇다 보니 문자를 아는 기득권 유자들은 이 두 사상을 싸잡아 비난했고, 후대인은 그들의 남긴 기록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책을 덮으며 다시금 생각한다. 동학의 유적지를 하루빨리 돌아봐야겠다고, 어영부영하다가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에 역사적인 장소가 모두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노파심도 나를 들볶는다. 타인이 쓴 답사기로도 이토록 가슴이 아린데, 정작 내 발로 찾아가 살피게 되면 아픔의 증폭이 얼마나 클 것인가. 오늘날 개인의 인권이 보편화된 이 시대에서 과연 그들이 목숨을 내걸고 열망했던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올바르게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확언할 수 없는 않는 화두를 가지고 조만간 남도 땅을 다시금 밟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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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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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불교 답사를 시작하면서 사찰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집에는 국내에 나온 유명한 절집 답사기는 대부분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에 도보 여행가인 신정일 선생이 사찰과 관련된 책을 냈다고 하여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책은 작은 편이었으며 페이지 수에 비해서 책장도 잘 넘어갔다.


같은 사찰을 소개하더라도 작가에 따라서 포인트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가령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산사순례》 편은 유교수 특유의 현학적이고 심미적인 문체가 돋보이며 최완수 교수의 《명찰순례》 시리즈는 절집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에 중점을 둔 깊이 있는 해설이 특징이다. 건축학자 김봉렬 교수의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시리즈는 사찰 가람배치와 전각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산사 답사로 명성이 자자한 선묵 혜자 스님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 산사》 책은 기존의 책과는 다르게 산문이 아닌 운문으로 절집을 소개하고 있어서 이색적이다. 강호 동양학의 대가인 조용헌 선생의 사찰 답사기는 풍수지리적인 해석이 인상적이다.


그럼 신정일 선생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첫 번째로 평이한 난이도다. 절집 답사에 대해 초심자들이더라도 무리 없이 책의 내용을 소화할 수 있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 역시 절집에 대한 설화와 역사, 고증 등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유홍준 교수의 책이나 최완수 교수의 책처럼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기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물론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내용은 모두 담고 있다.


두 번째로 지리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꼽고 싶다. 신정일 선생은 대중들에게 《신 택리지》 전집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그렇기에 저자의 가장 큰 특징은 지리에 대한 부분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도 그런 저자의 지리적인 묘사와 식견이 듬뿍 녹아있다. 특히 공감했던 점은 해남 미황사 편에서 여느 절집들은 본당 부근보다 사찰이 끼고 있는 산책로가 더 매력적인 경우가 있다고 강조하며 미황사의 부도전으로 가는 길목을 꼽은 부분이다. 또 강진 백련사 역시 절집 부근보다 다산초당으로 이어진 산책로가 아름답다고 극찬했는데, 책에 거론한 사찰과 산책로를 모두 돌아봤기에 저자의 주장에 이백 프로 공감했다.


세 번째로 꼽고 싶은 점은 유명한 관광 사찰이 아닌 나름의 품격을 가지고 있는 한적한 사찰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산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조용한 분위기인데, 관광 사찰은 인파가 많이 몰려들기에 절집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경주 불국사, 양양 낙산사, 속초 신흥사, 양산 통도사... 등등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거찰들이 이에 속한다. 반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찰들은 대체로 조용함을 간직하고 있는 '뼈대 있는 절집'이 대부분이라 선정을 참 잘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곡성 태안사'와 '화순 운주사', 그리고 '양주 회암사'였다. 올해 초 양주 회암사는 템플스테이를 예약해놨기에 조만간 방문할 예정이고 전남에 포진된 두 사찰 역사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서 답사를 할 예정이다. 물론 이 책에도 관광지 절집을 소개하고 있긴 한데, 여주 신륵사, 해남 미황사, 공주 갑사 정도다. 이보다 더 큰 관광 사찰들은 소개를 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한 해에는 메이저급 대찰과 교구본사, 관광 사찰들을 중심으로 답사를 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규모나 유명세보다는 분위기, 그리고 나름의 내력을 가진 흙 속의 보석 같은 가람들을 둘러보고 싶다. 책에 소개된 사찰들의 절반은 가보지 않았는데 덕분에 올해의 답사 계획에 큰 도움을 줄 것 같다. 갈 곳은 많은데 여유시간은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다름이다. 그렇기에 주체할 수 없는 역마살을 책을 읽는 것으로 달랜 느낌이다. 아무튼 전남의 유구한 가람들을 답사하러 조만간 나서야겠다. 물론 이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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