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을 제거하는 비책 - 위대한 역사를 만든 권력 투쟁의 기술
마수취안 지음, 정주은 외 옮김 / 보누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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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 제목이 무척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이라. '굳이 정적을 제거하면서까지 나의 안위를 도모해야 할까? 상생하는 길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끝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나는 한나라의 역사를 다룬 고전 《한서》를 완독하고 있는데, 한나라의 사례만 보더라도 이름난 명신이나 충신보단 간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비단 한나라뿐일까? 인류사를 통틀어서 고려해볼 때, 좋은 위인보다는 악인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 이어진 이래, 지역과 문명을 막론하고 악을 적극적으로 권장한 케이스는 전무했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와 종교 안에 흐르는 관념은 보편적으로 선을 추구했다는 소리인데, 냉정하게 살펴볼 때 인류사가 과연 선하게 흘러갔는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사는 '악의 연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타락과 부패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도대체 그토록 선하고자 노력하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익을 탐내는 마음, 즉 탐욕이 주요한 원인이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이권이 많은 곳에는 타락한 인간들이 들러붙어서 극단적인 이윤 추구를 위하여 추악한 행위들을 자행했다. 오늘날에도 여러 조직에서는 권모와 술수를 부리며 사내정치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선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 고결하고 아름다운 정신이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선하게 바라본다고 해서 남도 나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태도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무조건 착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을 두고 멍청하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그럼 어떻게 처세를 하며 살아야 할까? 핵심은 착하게 살 건 나쁘게 살 건을 떠나, 나를 공격하려는 상대의 권모를 읽고 미리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인배들이 주로 사용하는 권모나 술책 등등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은 당나라를 살았던 내준신의 《나직경》을 골자로 하여 재해석한 책이다. 내준신은 측천무후 집권기에 총애 받던 권신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정적들과 선량한 충신들을 모함하여 권력을 유지했던 소인배였다. 그는 자신의 권모술수를 작은 책 한 권으로 만들어 정리했는데, 그 책이 바로 《나직경》이다. 당시 권모술수로 보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 측천무후인데 《나직경》을 읽고 '짐도 여기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하니 이를 통하여 그 내용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책은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나직경》 원문을 재해석한 경구가 앞에 위치하고, 이에 따른 역사적 사례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나는 사례들의 80%는 알고 있어서 두꺼운 쪽수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독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살펴본 바, 《나직경》의 원문은 분량이 매우 적은 편인데, 본서는 《나직경》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재구성한 뒤 역사적 사례를 붙였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면 중국사에 대해서 지식이 없는 분들에게는 동양사와 권모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할 것 같기도 하다. 책을 통하여 《나직경》을 살펴본 바 그 내용은 무척 악랄했다. 날조, 기만, 사기, 횡령, 권모, 술수, 형벌 등등 조직생활에 있어 온갖 기술적인 모략들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준신은 소인배 중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자였다. 요즘의 표현으로 치자면 소위 '네임드 간신'이었던 셈이다. 그런 거물이 정리한 권모술수 비책인 만큼 깊이 있게 음미해 볼 만한 내용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예시나 사례 중심의 글을 무척 싫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권모술수를 가까이한다는 것을 두고 비천하고 비열하다며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중국의 철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윤리고 둘째는 권모다. 선악으로 구분해보자면 백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 윤리고, 흑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 권모였다. 여기서 윤리를 담당했던 사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자의 유가, 그리고 묵적의 묵가를 꼽을 수 있다. 권모를 상징하는 사상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병가, 외교학의 종횡가, 그리고 법가인데, 이 세 가지 사상은 도가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고대 이래로 중국을 다스렸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국경 밖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농경 민족인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확한 농작물인데 그들은 오랑캐라고 불리는 유목민들이 쳐들어와 물자를 약탈해가는 것을 극도로 민감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중국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오랑캐를 이길 방법을 생각했고 최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역설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면서 중원에는 다양한 권모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권모술수는 중원 국가의 발생 이래로 대대로 발전, 계승되어 왔던 사상이기에 그들의 정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중국을 꿰뚫어보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주로 구사했던 권모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내준신의 《나직경》 역시 중국 중세의 권모술수를 종합한 도서이기에 탐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서 권모의 필요성을 생각해보자. 상대가 나를 술수로 압박하는 데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술수를 부린 상대도 나쁘지만 이를 파악하지 못한 스스로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렇기에 각박한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 남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모술수를 배울 필요가 있다. 본서의 제목처럼 권모를 활용하여 정적을 제거하는 것은 지나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지키는 칼로 사용할 순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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