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역본 《리비우스 로마사 3》의 내용은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1,2,3차 중 가장 치열했던 2차 포에니 전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책은 로마를 괴롭혔던 문제적 인물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의 등장과 알프스 진군으로 시작하여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굴복시키는 부분에서 끝맺고 있다. 지금까지 《리비우스 로마사》를 읽어왔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로마사는 전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과장하자면 로마사 = 전쟁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포에니 전쟁은 지금까지 로마가 성장하기 위해 치러왔던 전쟁들과는 급이 달랐다. 포에니 전쟁은 양국의 국력이 가장 융성한 시기에 일어났으며, 어느 한쪽의 우열도 쉽게 논할 수 없었다. 이전까지 치렀던 전쟁이 소규모 전투였다면 포에니 전쟁은 가히 세계대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마와 카르타고 두 강대국은 번영을 위해 지중해와 스페인 영토를 자국의 영향력에 두려고 노력했기에 세력권 충돌 이후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3번의 큰 전쟁이 벌어졌다. 그랬기에 양국은 서로에 대한 원한이 깊었으며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입장에서도 카르타고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전쟁이었다. 카르타고는 1차 포에니 전쟁 패전 이후 이를 갈며 국력 신장에 힘을 쏟았고, 한니발이라는 뛰어난 군사 천재를 앞장세워 철천지원수 로마를 이기기 위해 치밀한 복수를 준비했다. 로마 역시 전쟁 초기 카르타고 군의 카운터펀치에 제대로 휘둘려 국토가 유린되지만, 파비우스의 지연전술, 마르켈루스의 시리쿠사 점령 및 소규모 게릴라 공격, 스키피오의 스페인 세력권 탈환과 카르타고 급습 등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끝내 승리를 쟁취한다. 1,2,3차 포에니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쟁이 바로 2차 포에니 전쟁인데 《리비우스 로마사 3》 번역본을 통해 독자는 로마와 카르타고의 긴박한 상황,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영웅적인 업적, 전쟁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 앞에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처 방법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포에니 전쟁의 주역인 두 나라인 로마와 카르타고는 군대 운용 방식이 무척 상이했다. 로마의 경우 군대는 기본적으로 자국민이 주력군을 담당하고, 식민지나 동맹 도시에서 파병된 군사들을 보조 인원으로 활용하였다. 반면 카르타고의 경우 주력군을 용병으로 구성했기에 로마에 비해 소속감이 떨어졌다. 용병으로 구성된 카르타고 군대였기에 군의 규율을 다지기 위해서는 카리스마가 뛰어난 지도자가 필요했는데, 다행스럽게도 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카르타고의 지휘봉을 잡은 장군은 카리스마가 뛰어난 용장 한니발이었다. 한니발은 엄격함이라는 채찍과 물질적 풍요라는 당근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소속감이 결여된 용병 군대를 적절하게 컨트롤했다. 그 결과 포에니 전쟁 초반에 카르타고군은 승전을 거듭했고 로마군은 연이은 패배를 겪으며 실의에 빠졌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로마의 다양한 인재 활용이 부각되었는데, 카르타고의 경우 한니발 원톱 체제로 전쟁을 수행했지만, 로마의 경우 지연전술을 주로 사용하며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던 파비우스, 지속적으로 게릴라 부대를 활용하여 한니발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로마의 검' 마르켈루스, 패기 있는 기상과 비범한 전략을 구사했던 스키피오 등 시기와 상황에 맞게 필요한 인재를 효율적으로 잘 활용했다. 그렇기에 하나의 뛰어난 장군에 의존했던 카르타고는 다양한 인재를 활용하던 로마를 이길 수 없었으며, 한니발의 패색이 짙어지자 승리의 여신은 필연적으로 로마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리비우스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포에니 전쟁의 승리 원인을 분석할 때 가장 먼저 손꼽는 것이 '로마의 정의감'이다. 그러나 이는 '강대국의 시야에서 바라본 자문화 중심주의'가 아닐까? 역사는 기본적으로 승자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사관의 기록도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로마식 정의관을 접하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중화주의'였다. 비슷한 시기 중국의 한나라에서도 자신만의 문화를 중심으로, 으뜸으로 여기며 다른 이민족들은 오랑캐로 여기며 배척했는데 로마식 정의관도 이와 매우 흡사했다. 따지고 보면 로마와 카르타고, 그리고 한나라와 흉노는 세력 확장과 그에 따른 이득을 두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면에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세력권을 넓히려는 탐욕과 욕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즉 이 시기에 강대국들은 자국을 발전시키겠다는 욕망의 충돌 사이에서 이기는 것이 곧 정의고 패배하게 되면 몰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에 카르타고와 흉노는 패배하여 멸망했고, 로마와 한나라는 '정의'로운 문명국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럼 로마의 승리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바로 다양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였고, 두 번째는 바로 자국민 중심의 군대를 구성하였기에 카르타고 군에 비해 소속감과 의무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는 바로 한니발의 군대가 탐욕과 욕망, 풍요에 길들여져 기강이 빠진 이유인데, 로마의 세력권 중 환락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카푸아에서 겨울을 나게 된 것이 결정적인 치명타였다. 카푸아는 로마의 목전인 캄파니아 지방의 맹주였으며, 로마의 오랜 우방으로 활동하던 도시였다. 그러나 한니발의 위세에 로마를 배신하고 카르타고 정복군에게 온갖 환락과 쾌락을 선사했다. 탐욕스러운 용병이 주축이었던 카르타고군은 카푸아의 환락에 전의를 상실하였으며, 그 결과 날카로운 기세를 잃어버리고, 전투의지 역시 무뎌졌다.

 

책에서 나오는 인물들 중 가장 주축이 되는 인물은 한니발과 스키피오다. 두 장군은 당대 최고의 전술가였으며, 나라의 국운을 책임지고 싸운 용장들이었다. 또한 이 두 인물은 해설에서도 언급했듯 가족들 역시 포에니 전쟁과 깊이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한니발의 아버지는 1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 군대를 지휘했던 하밀카르 바르카였고, 스키피오의 아버지도 1,2차 포에니 전쟁 때에 로마군을 이끌고 활약했던 장군이다. 한니발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로마에 깊은 복수와 원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키피오 역시 아버지에게 조국을 위해 카르타고를 무찌르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두 인물 모두 전투에 대한 투지, 그리고 적군에 대한 깊은 적대심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장군의 스타일은 무척 달랐는데, 한니발은 카리스마를 내뿜는 외향적 장군인 반면 스키피오는 온화하고 인덕을 갖춘 덕장에 가까웠다. 또한 한니발은 자신의 욕망과 용병들의 욕망을 추구하는 데 있어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부도덕한 행위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여기까지 보면 리비우스가 한니발보다 스키피오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리비우스는 스키피오의 온화한 성품 때문에 일어난 문제점도 꼬집고 넘어갔다. 한니발은 군사들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관리하여서 휘하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키피오 부대에서는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스키피오의 도덕적이고 온화한 성품이 통솔에 있어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리비우스는 로마 사람이며 《리비우스 로마사》는 기본적으로 로마의 위대함을 부각하기 위해 쓰인 역사서다. 만약 리비우스가 로마의 치부를 감추려고 했다면, 스키피오에 단점을 숨기고 한니발을 더욱 악독하게 서술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비우스는 한니발의 장점도 인정함과 동시에 스키피오의 단점들을 최대한 공정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객관적인 서술 덕분에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있어 리비우스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1~10권, 초반부는 온전하게 전해지는데 왜 그 뒤의 내용은 파편으로 전해지는 것일까. 10권 이후에 전해지는 내용은 21 ~ 45권이 전해지는데, 방대한 내용 중 왜 하필 21 ~ 45권만 전해지는 걸까?' 생각을 거듭한 결과 내 나름대로 추론을 해서 결론을 내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 ~ 10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덕분인 것 같다.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는 《리비우스 로마사》 1 ~ 10권을 바탕으로 하여 쓰인 책이기에, 이를 읽은 서구의 지식인들이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리비우스 로마사》 1 ~ 10권을 소중하게 보관하지 않았을까.

 

그럼 21 ~ 45권은 왜 전해지는 것일까? 21권의 시작은 한니발의 등장인데, 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30권에 이르러 전쟁이 종결 나면서 2차 포에니 전쟁이 마무리되는데, 이 사이의 내용은 비교적 온전하게 내려져오고 있다. 왜 2차 포에니 전쟁이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일까.

 

좁은 식견으로 이유를 판단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 시기의 내용은 무척 재미있다. 예로부터 역사서는 딱딱하고 지루한 서술이 많은데 2차 포에니 전쟁을 다룬 리비우스의 글은 역사서가 아닌 전쟁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표현과 수사가 생동감 있다. 또한 한니발과 스키피오라는 두 주인공 가문을 주축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거대한 메인 플롯과 더불어 다채로운 서브플롯들을 설정하고 있어 읽고 즐길 거리가 풍부했다.

 

두 번째는 2차 포에니 전쟁은 중요성이다. 앞서 서술했듯 로마에게도 카르타고에게도 2차 포에니 전쟁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이 전쟁의 승패로 인하여 식민지 확장정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느냐, 국가의 멸망이냐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로마의 발전단계는 여러 시기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식민지 정책을 활발하게 진행한 것은 2차 포에니 전쟁 이후부터였다. 그랬기에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는 '로마 제국 탄생의 밑거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는 그리스 지역에서 간을 보며 신경을 거스르게 했던 마케도니아를 정벌하는데 그 과정을 담은 내용이 30 ~ 45권에 나와 있다. 그렇기에 전체 로마사의 비중에서 2차 포에니전쟁은 무척 중요했고 그랬기에 이 시기 기록이 온전하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역사적 패자인 한니발에 대해서 깊이 동정하는 것은 어쩌면 리비우스의 생동감 있는 필력 덕분일 것이다. 만약 《리비우스 로마사》의 2차 포에니 전쟁의 내용이 전하지 않았더라면, 한니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하고 생동감 있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2차 포에니 전쟁을 다룬 문헌으로는 폴리비우스의 《역사》와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 정도인데, 폴리비우스의 책은 번역본도 없으며 서술도 무미건조하여 리비우스의 글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없다.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의 경우 안타깝게도 2차 포에니전쟁의 중심인물인 스키피오를 서술한 부분이 없어졌다. 그런 점에서 한니발은 적국 출신이지만 2차 포에니 전쟁을 심도 있고 디테일하게 묘사한 리비우스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2차 포에니 전쟁을 가장 디테일하게 표현한 고전은 《리비우스 로마사》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번역본 기준으로 1000쪽에 육박한 거대 벽돌 분량이지만 내용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기에 독서에 빠진 날들이 무척 즐거웠다. 남은 번역본은 4권 로마와 지중해 세계인데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로마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