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몽룡의 동주열국지 1 - 제환시대
풍몽룡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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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지》 (이하 열국지)는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로 《삼국지연의》와 《초한지》 등과 함께 중국 3대 역사소설로 꼽히는 작품이다. 오늘날 《열국지》는 《삼국지연의》보다 유명하지 않지만, 작품 배경의 역사적인 의의를 따지자면 《삼국지연의》 훨씬 중요하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정책, 제도와 같은 하드웨어와 철학과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고루 발전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제도와 사상을 최초로 정리한 이는 주나라 시대의 주공이다. 주공은 조카인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내실을 다진 인물이다. 주공은 인의를 바탕으로 예악을 통하여 나라의 사상과 제도를 정비하였고 봉건제를 통하여 지방 제후들의 권력을 인정하면서도 종갓집인 주나라의 권위를 드높였다. 주변 제후들, 열국들을 통제하는 데 있어 주공은 예와 악을 전면적으로 앞세웠지만, 주나라가 천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패권, 즉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예악을 통해 국가 간의 서열을 규정한다 하더라도 힘이 없다면 이를 유지할 수 없었다.

 

역사에서는 영원한 승자란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주나라의 국력 역시 기울기 마련인데, 중국의 첫 번째 난세인 춘추시대는 그런 주나라의 몰락에서 비롯했다. 주나라 시기는 서주시대와 동주시대로 나뉘는데 이는 도읍이 어느 쪽에 있었느냐로 구분한 것이다. 서주시대 때에는 주나라의 국력이 강했지만 도읍을 동쪽으로 이동한 동주시대는 쇠락기에 접어들었다.

 

중국의 제도와 사상을 최초로 완성한 주나라는 왜 몰락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후대 왕들의 무사안일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서주말기를 다스렸던 주선왕, 주유왕은 정사를 돌봄에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참소와 비방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개인적 쾌락을 탐닉하는데 몰두했다. 그 결과 나라 내부에서는 권력을 두고 정쟁이 일어났으며 내외적인 이유로 동쪽으로 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주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결국 예악이 붕괴, 그리고 봉건제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처럼 받들던 주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본 제후국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외적으로 무한 패권 경쟁으로 돌입하게 됐으며 내부적으로는 권력을 두고 정치투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질서의 문란, 예의의 몰락, 그리고 힘에 의한 패권주의가 무르익은 중원 대륙에서 몰락한 주나라를 대신한 나라가 바로 제나라였다. 춘추오패, 춘추시대에 첫 번째 패자라고 할 수 있는 제환공은 형제와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한 뒤 군주의 자리에 올라 원수였던 관중을 중용하고 나라를 정비한 뒤 무력을 통하여 무너진 국제질서를 힘으로 바로 세우기 시작했다. 주변 열국 입장에서는 새롭게 떠오르는 제나라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제환공의 제나라는 중원의 맏형 노릇을 자처했다. 물론 환공은 주나라 천자의 권위를 인정했지만, 이는 명분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중원의 패권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주공이 설정했던 예악은 패권 앞에 무너진 셈이다.

 

제환공이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관중 덕분이다. 관중은 명분보단 실익을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했는데 특히 상공업을 강조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력을 신장시켰다. 나라의 부를 이용하여 환공은 대외적으로 팽창정책을 시도했고 그 결과 규구회맹을 주최하여 제나라의 국력을 전국에 과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나라의 성세는 제환공 대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관중 사후 환공의 주변에는 간신들이 들끓었고 충신은 중용되지 못했다. 환공은 사람을 보는 눈이 탁월했는데, 말년에는 자신이 이룩한 패자라는 성과에 안주한 결과, 간신들을 구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지하게 된다. 그 결과 궁정에서 중용한 간신들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고 환공의 시체는 궁 안에 방치되어 구더기가 들끓는 상황에 이르렀다.

 

주나라와 제환공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사안일이다. 사람은 잘 나갈 때에 마음을 놓는데, 역사적인 부분을 고찰해본다면 쇠락의 시작은 성공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주나라 후대의 왕들이 선대의 초심을 잊지 않고 나라를 다스렸다면 봉건질서가 그리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춘추시대와 같이 패권을 앞세운 시대도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제환공 역시 관중 사후 초심을 간직했다면 제나라의 패도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사에 있어서, 초심을 간직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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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수정증보판)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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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몸살을 앓는 2020년에도 여김 없이 봄은 왔다. 벚꽃과 진달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형형색색 봄의 전령들은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춘분의 내음을 자랑하지만 애석하게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포근해지는 계절,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계절의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기에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하고자 생각했다. 그랬기에 고심하며 선택한 고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유몽영》 이다. 그럼 《유몽영》과 봄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유몽영》은 잠언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유명세를 얻지 않은 듯 보이지만 중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잠언집은 《명심보감》과 《채근담》을 꼽을 수 있다. 《명심보감》은 유교적 교훈을 담은 책으로 초학자나 아동용 훈육서로 널리 보급되었고, 《채근담》은 인생 처세에 집중한 내용으로 유, 불, 선 3교의 가치관이 두루 녹아있는 책이다. 《유몽영》 역시 이들 저서와 비슷하게 인생에 대한 처세, 교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명심보감》과 같이 특정 사상에 특정 계층을 염두에 둔 책은 아니며 《채근담》처럼 딱딱하게 교훈적인 내용만으로 채워지지도 않았다. 적당하고 여유 있게, 직설적이지 않고 완곡한 전개가 돋보였다. 그렇기에 여유를 가지면서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특이한 점이 있는데 가장 주목할 부분은 꽃과 바둑, 술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특히 꽃에 대한 비유가 많은 점이 이색적이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분위기는 확 다른데, 꽃에 대한 내용과 비유가 많기에 화사한 봄에 어울리는 책처럼 다가왔다. 그렇기에 비록 아름다운 꽃구경은 물 건너갔지만, 책을 통하여 마음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유몽영》의 저자인 장조는 오늘날로 말하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끝내 떨어진 뒤 실의에 빠져 출세의 길을 접고 세속을 등지며 문사들과 교류를 하며 저술로 울분을 달랜 인물로 중국 청나라 시대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차분하게 전개되는 책의 내용과 구성은 저자를 둘러싼 비관적인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소산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세계적인 명필은 작가의 불안정한 삶을 극복하기 위한 일환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사기》를 쓴 사마천이나, 《육경》을 정리한 공자 등등을 꼽을 수 있는데 《유몽영》의 저자 장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차분하게 정리한 이 책을 보면서 오히려 작가의 불운한 과거에 대해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

 

혹자들은 이 책을 보면서 세속에서 출세도 못한 인물이 고고한 척, 꽃이나 바둑 등등의 기예를 논한다고 아니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꼬아서 생각해보면 능력도 없는 사람이 허영만 가득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람의 품격은 있을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없을 때 드러난다.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방법 중 가장 최선은 그 사람이 힘들고 좌절할 때 어떻게 처세하는지를 살피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장조는 힘든 순간에도 자신만의 생각과 품격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비록 그런 모습이 허세로 보일지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장조는 《유몽영》에서 자신의 울분을 최대한 절제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책 곳곳에 숨기지 못한 울분이 더러 섞여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몽영》은 장조의 진솔한 마음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는데 계획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순 없다. 온갖 변수들이 가득한 것이 인생이니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진 못했지만 자신의 품격을 최대한 지키다 간 장조에게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처럼 불행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며 승화할 수 있는 멘탈을 지닌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불행 속에서 《유몽영》과 같은 격조 어린 작품을 탈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기에 적어도 나에게는 비록 불우한 삶을 살았던 장조의 모습이 구차하거나 비루하기보단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아무튼 코로나 때문에 어수선했던 마음을 여유로운 문장으로 씻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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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 하 - 난세 리더십의 보고 한비자
한비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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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학문적 성격의 인문고전 《한비자》


인문학을 크게 분류하자면 문, 사, 철로 나눌 수 있다. 문은 문학, 사는 역사, 철은 철학이다. 일반적인 인문고전은 이들 세 영역 중 하나를 대표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 저작들은 세 영역 모두를 아우르며 간학문적인 성격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한비자》는 정치사상서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철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역사와 문학적인 측면도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 고전은 역사와 철학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면 근대 정치사상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주 저작인 《군주론》과 《로마사논고》를 통해 정치철학을 내세우는데 자신의 사상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검증한다. 동양의 정치사상서인 《한비자》와 《맹자》, 《대학연의》 등등도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그러므로 정치고전에서 철학과 역사는 각각 법조문과 판례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한비자》에서 철학과 역사에 관련된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문학적인 요소가 보이는 점은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동양의 정치에서 문학은 하층민의 교화적인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학파는 유가다. 그렇기에 공자는 《시경》을 정리했으며, 《맹자》와 《대학연의》 같은 정치서에서도 시를 윤리적으로 해석하여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데 사용하였다. 《한비자》는 유가 사상서와는 다르게 시가 아니라 세간에 통용되는 우화나 민담 등을 참고하여 반영했다. 우화나 민담은 세간에 떠도는 사건들에 허구를 가미하여 스토리텔링 끝에 만들어진 것인데, 오늘날의 소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산문 문학이 발전하기 전 《이솝우화》가 제작됐는데 이런 점에서 우화나 민담은 소설과 산문문학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리해보자면 《한비자》는 역사적 사례와 세간에 떠도는 민담과 우화를 적극 반영하여 법가 정치철학을 집대성한 책으로 인문학의 세 범주인 문, 사, 철의 속성을 고루 반영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비자》의 의의


인문학의 다양한 장르를 두루 내포하고 있는 《한비자》는 오늘날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유구한 세월을 거쳐 살아남은 고전은 급변하는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통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비자》는 인생사에 있어서 어떤 불변의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로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에 대한 통찰이다. 한비는 인간을 긍정하고 신뢰하지 않았다. 이런 견해는 도가사상과 비슷한데, 《노자》에서 이를 은유적이고 완곡하게 표현했다면 《한비자》는 직설적으로 폭로하듯 내뱉었다. 한비는 인간관계의 핵심을 이익으로 규정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이득을 위해서라면 어떤 행위라도 할 수 있기에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서 군주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주는 직록과 작위를 신하에게 내려서 신하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신하는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군주의 욕망(정치적인 목표)를 달성한다. 군신, 양자의 관계는 무조건적인 충성이나 인의 따위의 이타적인 부분이 개입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시민들은 생계를 위하여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근로활동을 이어간다. 기업들 역시 소득창출을 최고의 목표로 내세우고 활동하며 국가 간의 관계 역시도 명분보다는 실용을 최우선적으로 앞세운다. 그렇기에 이익에 입각한 한비자의 관계론은 오늘날 사회 풍조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현실성이다. 제자백가의 사상 전쟁에서 법가는 다른 사상들을 물치치고 최종적으로 승리한다. 난세 중의 난세인 춘추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나라는 진시황제의 진나라인데 그는 나라 내부를 법가의 사상으로 정비하였다. 즉 군주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을 필두로 내세운 진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여 중원의 제국시대를 알린다. 즉 중국의 통일은 법가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여타 다른 사상보다 법가가 현실적으로 탁월하다는 반증이다. 한비는 책에서 유가를 비롯한 다른 학파들은 과거의 통치술을 현세에 구현하려고 한다며 그들의 복고적인 성격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변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이런 한비의 현실적인 주장은 급변하는 시세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제도적으로 공정을 주장하는 부분이다. 법가에서의 법은 국가 통치의 기준임과 동시에 신민들 간의 공정을 의미한다. 법 앞에서 제국의 만민은 평등하게 포상과 처벌을 받는데 이는 고위를 막론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 유가나 묵가에서는 강제적인 법보다는 인의와 같은 도덕, 겸애와 같은 박애를 내세워 처벌조차도 최소화하자는 입장인데, 법가의 주장과는 대조적이다. 법가의 입장에서는 인의와 겸애로 국사를 볼 경우 국정 농단과 신민들의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기에 예외 없는 강력한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한비가 주장한 법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법이라는 것이 공평하게 집행되는가? 여전히 우리는 금수저, 흙수저를 거론하며 법의 공정성에 의문을 표한다. 그렇기에 공정성, 투명성을 상실한 오늘날, 《한비자》에서 주장한 공정의 가치는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한비자》의 비판


《한비자》는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왔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커다란 교훈과 의의를 주는 고전이다. 이번에는 교훈적인 측면이 아닌 책에서 비판하고 싶은 부분을 독자의 입장에서 크게 세 가지로 꼽아보려 한다. 


첫 번째로 《한비자》의 내용은 결국 군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 그리고 리더들이 《한비자》에 열광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 역시 처음 《한비자》를 접했을 때 강력한 리더십에 매료되어 무비판적으로 《한비자》를 좋아했었다. 다른 제자백가에 비해 《한비자》의 내용은 매우 명료하며 내용도 복잡하지 않다. 강력한 군주의, 군주에 의한, 군주를 위한 철학이 《한비자》의 전부니까 말이다. 그런 한비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절대 권력의 강력한 군주가 휘두르는 강력한 법제 시스템 앞에 백성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피지배층은 최고 지배층의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도구로 전락하며, 모든 만민은 군주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하여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극단적인 공리주의가 지배하는 세상, 마치 여왕벌과 여왕개미 아래서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일벌과 일개미의 모습처럼 부국강병이라는 구호 앞에 개인의 자율이 침해받는 제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비가 추구한 제국의 모습은 이런 극단적인 사회였다.


강한 리더십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비가 주장하는 리더십을 따르게 될 시 필연적으로 한 사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로 이어진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결국 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절대 권력은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개개인의 자유가 공리에 의해 침해받는 사회, 너무도 강력하여 도저히 견제할 수 없는 리더... 한비가 활동하던 전국시대에는 인권이 없는 시대였으며, 정치 제도 역시 군주정이 유일하였으므로 이런 극단적인 정치사상이 통용될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매우 부적절하다. 권력은 최고지도자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대다수의 시민들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존립해야 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국가 권력의 존재 이유는 다수의 시민들의 자유를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다. 바람직한 공리주의 역시 개인의 자율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두 번째로 과연 나라의 부패는 제도 개선만으로 개선될 수 있느냐이다. 국가 문제를 접근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가 인간에 대한 접근, 두 번째가 제도에 대한 접근이다. 한비는 철저하게 인간을 불신했기에 법과 술, 세로 대표되는 제도적 입장으로 치국에 접근한다. 반면 유가는 성선설을 주장했기에 바람직한 정치는 제도보다 지도자의 품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입장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바람직한 국가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올바른 제도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 구성원의 의식은 높아도 이를 보장할 수 없는 제도가 없다면 한계가 있으며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졌더라도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악하다면 나쁘게 활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법가 사상의 가장 큰 맹점은 인간을 신용하지 않는 부분인데, 한비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한비가 추종하는 군주 역시 인간이라는 데에 있다. 법가는 군주의 권한을 극도로 높이는 입장인데 이런 무소불위의 군주를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가의 경우 전제왕권의 견제 역할로 지식인들을 설정하고 있으며 바람직한 군주는 바른 신하의 직간을 구분하고 수용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법가는 이런 행위를 군주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규정한다.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규제하는 것은 군주 스스로에 몫인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탐욕스러운 존재라는 한비의 철학에 따르자면 법가철학은 필연적으로 지도자의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리해보자면 한비는 군주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군주 중심의 절대 권력을 구축하게 되면 나라가 올바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군주 역시 탐욕을 추구하는 인간이므로 결국 국가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한비의 정치철학은 《한비자》에서 우화로 예를 든 '모순'으로 표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바람직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부분과 의식적인 부분 두 영역을 골고루 발전시켜야 하며, 특히 지도층의 경우 권력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더욱 철저하게 내면을 수양해야 한다.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점은 법가가 주장하는 성악설이 과연 옳은 것일까? 유가와 법가는 각각 성선설과 성악설을 주장하는데 이들의 주장은 너무나도 극단적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복잡하고 미묘하기에 선악 양면을 동전처럼 가지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와 공동체에서는 선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익이 가장 최우선이 된 사회 풍조에서 마냥 선하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인간 사회에서는 선과 악을 골고루 볼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속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한비가 주장하는 대로 인간이 악하고 이익만을 탐하는 존재라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은 자기 몸 하나의 보존만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와 봉사활동이 이어졌으며, 전국에서 대구 경북으로 자원하여 나간 의료진이 활약 역시 빛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인간이 선을 지향하며 선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인간성을 부정한 한비는 과연 이런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결론


오랜만에 본 《한비자》는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고 다정하게 다가왔다. 고전은 시대적인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보편적인 교훈과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한비자》는 중국 최초의 제왕학서, 동양 최초로 지도자의 리더십을 고찰한 책인데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는 점으로 볼 때, 책의 가치는 세월이 지나더라도 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회독은 신동준 선생님(이하 신동준)의 번역본으로 읽었다. 신동준의 번역은 특히 동양 고전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데, 번역도 번역이지만 역대 《한비자》의 주석서를 비교 대조하여 설명한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신동준의 번역서는 기존 학계와는 상이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데, 이번 《한비자》에서도 이 저술이 한비의 단독 저술이라는 점, 그리고 한비의 죽음이 이사가 아닌 요가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역자는 수많은 동양 고전을 번역했지만 대체로 부국강병과 전제정치와 밀접한 법가사상을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긍정하고 있다. 나는 법가에 대해 역자의 생각과 온도차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번역본을 통해, 역자의 해설을 통해, 법가의 유용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9년 고인이 된 역자의 부고 소식을 접하면서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1년이 지난 지금, 역자가 가장 애정 하던 《한비자》 번역본의 개정쇄가 나와서 놀랐는데, 오랜만에 역자 특유의 힘찬 어조의 해설을 접하니 생각의 호불호를 떠나 무척 반가웠다.


내가 《한비자》를 접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서평도 이번을 포함하여 세 번 정도 쓴 것 같은데, 뭐든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듯 이번 서평을 끝으로 《한비자》에 대한 글은 당분간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한비자》에 대한 글을 쓴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해 서평을 작성했다. 아직 풀어내지 못한 생각 - 유가와 법가의 통치술 비교, 기능론과 갈등론적 시각으로 바라본 유가와 법가사상, 마키아벨리 저작과 한비자의 비교 등등 -이 많지만 훗날로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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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 상 - 난세 리더십의 보고 한비자
한비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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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구성과 내용


뜻하지 않게 많은 개인 시간을 보내면서 애독했던 고전들을 다시금 손에 잡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한비자》다. 많은 책 가운데에서 왜 이 책을 다시금 읽은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후세에 끼친 영향이다. 《한비자》는 중국 제자백가 고전 중 하나로 법가사상을 대표하는 고전이다. 중국의 고전이라고 하면 으례껏 《논어》, 《맹자》 등의 유가 경전들을 손꼽으며 조금 더 나아가면 《노자》나 《장자》 등의 도가 경전을 포함한다. 널리 알려진 메이저 제자백가 사상과 비교해볼 때 법가는 생소하지만, 중국 제국주의 국가 운영에 있어서 유가와 함께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사상이다. 노골적으로 단순화하여서 표현하자면 중국의 통치는 유가와 법가의 대립이 포인트인데, 역대 중국의 명군들은 표면적으로는 유가를 내세우고 속으로는 법가에 입각하여 제국을 경영했다.


《한비자》는 법가의 사상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제자백가 고전들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저자인 한비가 볼 때 인간은 이익과 사심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였다. 이는 전통적으로 성선설을 고집하던 유가의 사상과 대조적이다. 한비의 스승은 순자인데, 그는 유가 철학임에도 맹자의 성선설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순자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본능과 욕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으며 교육을 통하여 선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비는 순자의 견해에서 더욱 나아간다. 순자는 교육을 통해 인간은 선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일말의 여지를 남겨놓았지만 한비는 이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욕망 덩어리의 인간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은 강압적인 법제와 통치가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한비는 '공손앙의 법, 신불해의 술, 신도의 세'를 종합하여 법가 사상의 집대성을 시도한다. 그 결과가 바로 《한비자》였다.


법가 사상에서 내세우는 '법'이란, 치국에 있어 기준이자 잣대다. 유가에서는 인의를 기초로 하는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한다. 인간을 믿지 않았던 한비는 자율적인 성격의 도덕보다 강제성을 가진 법을 통하여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믿었다. '술'이란 신하들을 제어하는 기술로 흔히 말하는 권모술수를 뜻한다. 사람을 철저하게 불신한 한비는 군신관계에 있어 유가에서 주장하는 무조건적인 충성은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과 사람은 이익을 두고 갈등을 하는 존재인데 이는 군주와 신하 역시 마찬가지다. 《한비자》는 군주의 리더십에 집중한 책인 만큼 철저하게 군주의 입장에서 신하들을 억누르는 각종 술책들을 언급한다. 신하들은 자신의 사욕을 극대화하기 마련이므로 적절한 포상과 엄벌을 할 수 없다면 군주의 자리조차 위태로울 수 있으니, 적절한 술책으로 신하들을 다스려야 할 것을 강조한다. 술은 《한비자》 전편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익을 중심으로 한 경제활동이 주축이 된 오늘날에서도 되새겨 볼 만한 점이 많다. 법과 술의 관계를 고찰해보자면, 법은 불특정 대다수의 신하와 백성들에게 선포되며 공개적인 성격을 가진다. 반면 술은 궁정 내부의 신하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법의 개방성과는 반대로 폐쇄적인 속성을 지닌다. 자신의 권모술수를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군주는 자신의 카드를 내보이는 것과 같아 종국에는 신하들에게 제압당할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한비는 도가사상인 노자의 무위를 끌어들여서 군주의 통치는 무위와 같이 신하들이 감히 알아볼 수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가사상은 도가와 사상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데 한비는 도가의 무위의 도를 술에 적극 적용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노자한비열전>을 저술하여 법가가 도가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고찰했는데, 이 역시 법가의 술에서 볼 수 있는 도가사상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세'는 고유한 힘으로 흔히 말하는 권세와 비슷한 개념이다. 군주는 세가 있기에 남들보다 월등한 자리에 있으며, 세를 타인에게 빼앗기면 군주의 자리를 잃게 된다. 즉 군주가 군주일 수 있는 이유는 세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권력, 권위, 힘 등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세는 법가뿐만 아니라 군사학을 논하는 병가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세는 법과 술에 비해 《한비자》에서 가장 적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중요도로 보자면 가장 으뜸이다. 세가 없는 군주는 법과 술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며, 법과 술 역시 궁극적으로는 군주의 세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전 서평에서도 언급했듯 두툼한 《한비자》를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집단을 다스릴 때 법으로 만인을 통제하고 술로 내부의 사람들을 은밀하게 관리한다. 그렇게 하여 자신만의 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통치라고 할 수 있다."


진서인가 위서인가


《한비자》를 회독할 때마다 다양한 출판사의 번역본을 읽어왔는데, 이번에는 신동준 선생님의 번역본을 읽었다. 여느 다른 번역본들과 다르게 역자는 《한비자》가 한비 개인이 완성한 저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너무 지나친 견해인 것 같다. 한 사람의 단독 저술로 보기에 이 책은 중언한 부분이 너무 많다. 논리정연하고 명확한 내용과 어지러운 책의 구성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데 이를 통해서도 후학이나 후대인의 글이 첨부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내용적으로도 시대와 고증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 많은데 이런 부분은 전문적인 부분이라 여기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한다. 사실 고전을 고찰할 때 진서이냐 가서이냐는 학문적으로 중요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한비자》에 비록 후대인의 글이 첨가되어 있을지라도 법가 사상이라는 사상을 살피는 데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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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경영학 - 돈, 사람, 성공이 따르는 사람들의 비밀
김태연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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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관상과 명운을 중시했다. 그렇기에 특별한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큰일이나 사업, 결혼을 앞두고 유명하다는 점집이나 관상가들을 찾는다. 여기서 사주와 관상에 대해서 구분을 해 보자. 사주는 태어난 연도와 월, 날짜와 시간을 가지고 명운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주는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성격을 가진다. 또한 사주는 철저히 개인에 집중한다. 일반적으로 사주를 보는 사람들은 특정 개인의 명운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관상은 어떨까? 일반인들에게 관상을 물어보면 얼굴을 통하여 사람의 전반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하다고 볼 수도 없다. 관상이란 얼굴을 포함하여 목소리 그리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읽어내는 것이다. 사주와 관상은 특정한 부분을 가지고 인간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진다.


그러나 사주와 관상은 차이점이 있다. 관상은 고정적인 사주와는 다르게 가변적인 성격을 가진다. 태어난 시기는 바꿀 수 없지만 얼굴이나 모습, 풍채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주기적으로 읽고 있는 책인 지허스님의 《선방일기》에 표현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주는 자기 이전에 던져진 의지와 주어진 질서여서 생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천적인 사실이지만 관상은 자기 자신의 의지와 자유로이 선택한 후천적인 현실이다. 그래서 사주는 필연이지만 관상은 운명의 당위요 사주가 불변이라면 관상은 가변이요, 사주가 한계성이라면 관상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현재의 나는 사주의 객체이지만 관상의 주체이다. 사주는 자기부재(不在)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실재(實在)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관상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생애 마지막까지 무한히 열려 있다."


또한 관상은 사주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사주를 보려면 생년월일과 같은 프라이버시를 알아야 하지만 관상은 그런 것을 모르더라도, 외관을 통하여 사람의 전반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폐쇄적인 사주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혹자들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과연 사람의 풍채를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파악할 수 있냐고.


사람을 살피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람을 살필 때 언행을 일차적으로 고려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행은 가식으로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볼 때 현재의 말과 행동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행적을 더 우위에 둔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관상도 마찬가지다. 풍채는 그 사람이 살아왔던 과거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세간에서는 "힘들게 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얼굴 상이 좋지 않다.", "얼굴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라는 말들이 떠도는 것이다.


사업과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 리더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피는 것이다. 사람을 잘 본다면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 사람을 잘 못 보게 되면 사업과 비즈니스가 꼬이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관상은 사람을 파악하는 데 있어 색다른 통찰을 제공한다. 물론 관상만 가지고 사람을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겠지만 지인지감(知人之鑑)의 한 방편, 수단으로는 활용할 수 있다. 《관상 경영학》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간된 것 같다. 책을 살펴보니 복잡할 것만 같은 관상학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풀어내 설명하고 있다. 사주나 관상에 대한 책은 한자투성이에 어려운 해석이 난무하며, 책도 여러 가지인데 이 책은 관상학의 정수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굉장히 재미있었다. 책을 읽고 거울을 보면서 내 관상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봤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안 좋았던 과거를 뒤로하고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결심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래를 꿈꾸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과소평가할 순 없다. 지금 살아가는 현재는 과거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면 과거를 철저하게 복기하여 현재의 나쁜 습성을 고쳐나가야 한다. 이는 개인에게도 기업에게도 통하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관상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좋지 않은 풍채를 가졌더라도 이를 인지하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한다면, 좋은 관상을 가질 수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다.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한 요즘이라 민감한 문구이지만, 같은 조건이면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이 사람의 본심이다. 그러니 나의 관상을 관리하는 것, 좋은 인상을 유지하는 것은 나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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