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 상 - 난세 리더십의 보고 한비자
한비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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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구성과 내용


뜻하지 않게 많은 개인 시간을 보내면서 애독했던 고전들을 다시금 손에 잡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한비자》다. 많은 책 가운데에서 왜 이 책을 다시금 읽은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후세에 끼친 영향이다. 《한비자》는 중국 제자백가 고전 중 하나로 법가사상을 대표하는 고전이다. 중국의 고전이라고 하면 으례껏 《논어》, 《맹자》 등의 유가 경전들을 손꼽으며 조금 더 나아가면 《노자》나 《장자》 등의 도가 경전을 포함한다. 널리 알려진 메이저 제자백가 사상과 비교해볼 때 법가는 생소하지만, 중국 제국주의 국가 운영에 있어서 유가와 함께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사상이다. 노골적으로 단순화하여서 표현하자면 중국의 통치는 유가와 법가의 대립이 포인트인데, 역대 중국의 명군들은 표면적으로는 유가를 내세우고 속으로는 법가에 입각하여 제국을 경영했다.


《한비자》는 법가의 사상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제자백가 고전들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저자인 한비가 볼 때 인간은 이익과 사심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였다. 이는 전통적으로 성선설을 고집하던 유가의 사상과 대조적이다. 한비의 스승은 순자인데, 그는 유가 철학임에도 맹자의 성선설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순자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본능과 욕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으며 교육을 통하여 선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비는 순자의 견해에서 더욱 나아간다. 순자는 교육을 통해 인간은 선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일말의 여지를 남겨놓았지만 한비는 이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욕망 덩어리의 인간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은 강압적인 법제와 통치가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한비는 '공손앙의 법, 신불해의 술, 신도의 세'를 종합하여 법가 사상의 집대성을 시도한다. 그 결과가 바로 《한비자》였다.


법가 사상에서 내세우는 '법'이란, 치국에 있어 기준이자 잣대다. 유가에서는 인의를 기초로 하는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한다. 인간을 믿지 않았던 한비는 자율적인 성격의 도덕보다 강제성을 가진 법을 통하여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믿었다. '술'이란 신하들을 제어하는 기술로 흔히 말하는 권모술수를 뜻한다. 사람을 철저하게 불신한 한비는 군신관계에 있어 유가에서 주장하는 무조건적인 충성은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과 사람은 이익을 두고 갈등을 하는 존재인데 이는 군주와 신하 역시 마찬가지다. 《한비자》는 군주의 리더십에 집중한 책인 만큼 철저하게 군주의 입장에서 신하들을 억누르는 각종 술책들을 언급한다. 신하들은 자신의 사욕을 극대화하기 마련이므로 적절한 포상과 엄벌을 할 수 없다면 군주의 자리조차 위태로울 수 있으니, 적절한 술책으로 신하들을 다스려야 할 것을 강조한다. 술은 《한비자》 전편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익을 중심으로 한 경제활동이 주축이 된 오늘날에서도 되새겨 볼 만한 점이 많다. 법과 술의 관계를 고찰해보자면, 법은 불특정 대다수의 신하와 백성들에게 선포되며 공개적인 성격을 가진다. 반면 술은 궁정 내부의 신하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법의 개방성과는 반대로 폐쇄적인 속성을 지닌다. 자신의 권모술수를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군주는 자신의 카드를 내보이는 것과 같아 종국에는 신하들에게 제압당할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한비는 도가사상인 노자의 무위를 끌어들여서 군주의 통치는 무위와 같이 신하들이 감히 알아볼 수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가사상은 도가와 사상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데 한비는 도가의 무위의 도를 술에 적극 적용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노자한비열전>을 저술하여 법가가 도가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고찰했는데, 이 역시 법가의 술에서 볼 수 있는 도가사상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세'는 고유한 힘으로 흔히 말하는 권세와 비슷한 개념이다. 군주는 세가 있기에 남들보다 월등한 자리에 있으며, 세를 타인에게 빼앗기면 군주의 자리를 잃게 된다. 즉 군주가 군주일 수 있는 이유는 세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권력, 권위, 힘 등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세는 법가뿐만 아니라 군사학을 논하는 병가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세는 법과 술에 비해 《한비자》에서 가장 적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중요도로 보자면 가장 으뜸이다. 세가 없는 군주는 법과 술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며, 법과 술 역시 궁극적으로는 군주의 세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전 서평에서도 언급했듯 두툼한 《한비자》를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집단을 다스릴 때 법으로 만인을 통제하고 술로 내부의 사람들을 은밀하게 관리한다. 그렇게 하여 자신만의 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통치라고 할 수 있다."


진서인가 위서인가


《한비자》를 회독할 때마다 다양한 출판사의 번역본을 읽어왔는데, 이번에는 신동준 선생님의 번역본을 읽었다. 여느 다른 번역본들과 다르게 역자는 《한비자》가 한비 개인이 완성한 저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너무 지나친 견해인 것 같다. 한 사람의 단독 저술로 보기에 이 책은 중언한 부분이 너무 많다. 논리정연하고 명확한 내용과 어지러운 책의 구성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데 이를 통해서도 후학이나 후대인의 글이 첨부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내용적으로도 시대와 고증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 많은데 이런 부분은 전문적인 부분이라 여기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한다. 사실 고전을 고찰할 때 진서이냐 가서이냐는 학문적으로 중요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한비자》에 비록 후대인의 글이 첨가되어 있을지라도 법가 사상이라는 사상을 살피는 데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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