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수정증보판)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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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몸살을 앓는 2020년에도 여김 없이 봄은 왔다. 벚꽃과 진달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형형색색 봄의 전령들은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춘분의 내음을 자랑하지만 애석하게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포근해지는 계절,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계절의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기에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하고자 생각했다. 그랬기에 고심하며 선택한 고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유몽영》 이다. 그럼 《유몽영》과 봄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유몽영》은 잠언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유명세를 얻지 않은 듯 보이지만 중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잠언집은 《명심보감》과 《채근담》을 꼽을 수 있다. 《명심보감》은 유교적 교훈을 담은 책으로 초학자나 아동용 훈육서로 널리 보급되었고, 《채근담》은 인생 처세에 집중한 내용으로 유, 불, 선 3교의 가치관이 두루 녹아있는 책이다. 《유몽영》 역시 이들 저서와 비슷하게 인생에 대한 처세, 교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명심보감》과 같이 특정 사상에 특정 계층을 염두에 둔 책은 아니며 《채근담》처럼 딱딱하게 교훈적인 내용만으로 채워지지도 않았다. 적당하고 여유 있게, 직설적이지 않고 완곡한 전개가 돋보였다. 그렇기에 여유를 가지면서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특이한 점이 있는데 가장 주목할 부분은 꽃과 바둑, 술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특히 꽃에 대한 비유가 많은 점이 이색적이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분위기는 확 다른데, 꽃에 대한 내용과 비유가 많기에 화사한 봄에 어울리는 책처럼 다가왔다. 그렇기에 비록 아름다운 꽃구경은 물 건너갔지만, 책을 통하여 마음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유몽영》의 저자인 장조는 오늘날로 말하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끝내 떨어진 뒤 실의에 빠져 출세의 길을 접고 세속을 등지며 문사들과 교류를 하며 저술로 울분을 달랜 인물로 중국 청나라 시대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차분하게 전개되는 책의 내용과 구성은 저자를 둘러싼 비관적인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소산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세계적인 명필은 작가의 불안정한 삶을 극복하기 위한 일환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사기》를 쓴 사마천이나, 《육경》을 정리한 공자 등등을 꼽을 수 있는데 《유몽영》의 저자 장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차분하게 정리한 이 책을 보면서 오히려 작가의 불운한 과거에 대해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

 

혹자들은 이 책을 보면서 세속에서 출세도 못한 인물이 고고한 척, 꽃이나 바둑 등등의 기예를 논한다고 아니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꼬아서 생각해보면 능력도 없는 사람이 허영만 가득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람의 품격은 있을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없을 때 드러난다.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방법 중 가장 최선은 그 사람이 힘들고 좌절할 때 어떻게 처세하는지를 살피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장조는 힘든 순간에도 자신만의 생각과 품격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비록 그런 모습이 허세로 보일지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장조는 《유몽영》에서 자신의 울분을 최대한 절제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책 곳곳에 숨기지 못한 울분이 더러 섞여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몽영》은 장조의 진솔한 마음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는데 계획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순 없다. 온갖 변수들이 가득한 것이 인생이니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진 못했지만 자신의 품격을 최대한 지키다 간 장조에게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처럼 불행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며 승화할 수 있는 멘탈을 지닌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불행 속에서 《유몽영》과 같은 격조 어린 작품을 탈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기에 적어도 나에게는 비록 불우한 삶을 살았던 장조의 모습이 구차하거나 비루하기보단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아무튼 코로나 때문에 어수선했던 마음을 여유로운 문장으로 씻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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