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몽룡의 동주열국지 1 - 제환시대
풍몽룡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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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지》 (이하 열국지)는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로 《삼국지연의》와 《초한지》 등과 함께 중국 3대 역사소설로 꼽히는 작품이다. 오늘날 《열국지》는 《삼국지연의》보다 유명하지 않지만, 작품 배경의 역사적인 의의를 따지자면 《삼국지연의》 훨씬 중요하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정책, 제도와 같은 하드웨어와 철학과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고루 발전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제도와 사상을 최초로 정리한 이는 주나라 시대의 주공이다. 주공은 조카인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내실을 다진 인물이다. 주공은 인의를 바탕으로 예악을 통하여 나라의 사상과 제도를 정비하였고 봉건제를 통하여 지방 제후들의 권력을 인정하면서도 종갓집인 주나라의 권위를 드높였다. 주변 제후들, 열국들을 통제하는 데 있어 주공은 예와 악을 전면적으로 앞세웠지만, 주나라가 천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패권, 즉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예악을 통해 국가 간의 서열을 규정한다 하더라도 힘이 없다면 이를 유지할 수 없었다.

 

역사에서는 영원한 승자란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주나라의 국력 역시 기울기 마련인데, 중국의 첫 번째 난세인 춘추시대는 그런 주나라의 몰락에서 비롯했다. 주나라 시기는 서주시대와 동주시대로 나뉘는데 이는 도읍이 어느 쪽에 있었느냐로 구분한 것이다. 서주시대 때에는 주나라의 국력이 강했지만 도읍을 동쪽으로 이동한 동주시대는 쇠락기에 접어들었다.

 

중국의 제도와 사상을 최초로 완성한 주나라는 왜 몰락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후대 왕들의 무사안일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서주말기를 다스렸던 주선왕, 주유왕은 정사를 돌봄에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참소와 비방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개인적 쾌락을 탐닉하는데 몰두했다. 그 결과 나라 내부에서는 권력을 두고 정쟁이 일어났으며 내외적인 이유로 동쪽으로 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주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결국 예악이 붕괴, 그리고 봉건제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처럼 받들던 주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본 제후국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외적으로 무한 패권 경쟁으로 돌입하게 됐으며 내부적으로는 권력을 두고 정치투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질서의 문란, 예의의 몰락, 그리고 힘에 의한 패권주의가 무르익은 중원 대륙에서 몰락한 주나라를 대신한 나라가 바로 제나라였다. 춘추오패, 춘추시대에 첫 번째 패자라고 할 수 있는 제환공은 형제와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한 뒤 군주의 자리에 올라 원수였던 관중을 중용하고 나라를 정비한 뒤 무력을 통하여 무너진 국제질서를 힘으로 바로 세우기 시작했다. 주변 열국 입장에서는 새롭게 떠오르는 제나라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제환공의 제나라는 중원의 맏형 노릇을 자처했다. 물론 환공은 주나라 천자의 권위를 인정했지만, 이는 명분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중원의 패권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주공이 설정했던 예악은 패권 앞에 무너진 셈이다.

 

제환공이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관중 덕분이다. 관중은 명분보단 실익을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했는데 특히 상공업을 강조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력을 신장시켰다. 나라의 부를 이용하여 환공은 대외적으로 팽창정책을 시도했고 그 결과 규구회맹을 주최하여 제나라의 국력을 전국에 과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나라의 성세는 제환공 대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관중 사후 환공의 주변에는 간신들이 들끓었고 충신은 중용되지 못했다. 환공은 사람을 보는 눈이 탁월했는데, 말년에는 자신이 이룩한 패자라는 성과에 안주한 결과, 간신들을 구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지하게 된다. 그 결과 궁정에서 중용한 간신들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고 환공의 시체는 궁 안에 방치되어 구더기가 들끓는 상황에 이르렀다.

 

주나라와 제환공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사안일이다. 사람은 잘 나갈 때에 마음을 놓는데, 역사적인 부분을 고찰해본다면 쇠락의 시작은 성공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주나라 후대의 왕들이 선대의 초심을 잊지 않고 나라를 다스렸다면 봉건질서가 그리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춘추시대와 같이 패권을 앞세운 시대도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제환공 역시 관중 사후 초심을 간직했다면 제나라의 패도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사에 있어서, 초심을 간직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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