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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시대정신을 담는 그릇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단언컨데 그것은 건축이다. 파르테논은 헬레니즘을 상징하고 고딕성당들은 중세를 표상한다. 모더니즘은 콘크리트와 함께 성장했고 지금은 철과 유리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점차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공간이 표피적인 자극을 추종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공간이 우리의 깊은 심연을 건드릴 때 경험은 하나의 의미가 된다는 말을 믿느냐고;;;.

표피적인 자극으로는 결코 의미있는 경험을 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진정한 경험은 어디에서 오는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근본적 존재성의 성립을 네가지로 나눴다. 그것은 '땅 위에 있음', '하늘 아래 있음', '신성함을 마주함', '죽음의 운명 속에 살아감'이다. 그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곧 공간에 대한 경험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경험의 축적이 있어야 한다. 공간 그리고 건축은 그러한 경험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모든 경험이 특출하지 않지만 우리는 살다가 놀라운 공간을 가끔 경험하게 된다. 왜 이런 감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다양하면서도 깊이있는 인문학적 소양으로 풀어낸다. 효형출판은 이미 서현이라는 작가를 통해 인문학적인 건축 들여다보기를 성공시킨 출판사다. 이번에 손잡은 김종진은 그동한 효형이 추구한 이미지에서 한 발더 인문학쪽으로 내딛는 내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근간인 건축도 놓치 않고 있다. 이 점이 다소 의아스럽다. 일반독자들에게 건축도면이나 스케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사실 저자는 건축학도를 위한 글쓰기에서 출발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보는 방법을 다소 다르게 접근해 보자. 모든 사람이 건축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는 건축물 안에서 또는 건축물들이 산재한 도시 공간 안에서 산다. 자신이 직접 건축주가 되어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는 이들도 있고 이미 지어진 건물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을 좀 변경해 보는 경우도 있다. 어떤 누구도 건축물 없이 살 수는 없고 세상에 어떤 건축물도 똑 같은 것은 없다. 판박이처럼 만들어놓은 아파트도 사실은 조금씩 다 다르다. 우리는 이렇게 어떤 형태로든 건축물 안과 밖에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건축을 바라보는 또는 소위 말하는 안목이라는 것에 대해 배워본다던가 이해를 쉽게 할 어떤 길라잡이가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몸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오감으로 만나는 공간 그리고 특출할 것도 없는 일상의 공간 경험이 지니는 의미를 작가는 차분하게 설득시키고 있다. 다양한 저널과 전시회를 발표하고 있는 저자 김종진은 공간과 건축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경험’의 가치에 주목하였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러한 경험을 통해 공간 자체에 대한 물음에서 벗어나,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와 그 존재의 경험을 탐구하고 있다. 엄마의 품속에서 세상 빛을 처음 보게 된 아이에게 주어지는 첫 ‘공간’부터 빛을 통해 보는 공간, 행위를 통해 연출되는 공간과 건축, 철학,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장르와 융합한 공간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전달되는 오감을 독자들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자 이제 길안내를 원한다면 책을 집어들라. 당신은 한 장, 한 장 저자가 구성한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자연에 교감하는 법, 그리고 공간에 공감하는 법을 체득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자 김종진(金鐘振)은 부산에서 태어나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와 미국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HARVARD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DESIGN) 건축과를 졸업했다. 뉴욕의 폴쉑 파트너십, 런던의 KPF,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 등에서 일했다. 2004년부터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실내건축설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상의 공간 경험이 지니는 의미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다양한 저널과 전시회에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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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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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와버렸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였다. 일년을 그래픽디자인학원을 다녔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하지만 그후로 디자인으로 밥을 먹고 살지는 않았다. 이제는 인생이란 꿈꾸는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임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이런 책에 눈길이 간다. 글 한 두줄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듯이 빼곡하게 채워진 드로잉들도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도없는 빈 종이들을 채워야 그나마 볼만한 그 무엇이 만들어진다. 

살다보니 문득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뭐 거창하게 캔버스를 장만하고 그럴 건 아니다. 작은 스케치북 정도에 채워넣을 그런 그림들을;;; 작가는 이 스케치북 프로젝트를 자신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듯이 나도 지금 살고 있는 매너리즘에 빠진 삶을 극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것도 내 젊은 시절 무언가를 위해 도전하던 그 시절에 몰두했던 그림 그리기로 하면 어떨까? 

예전에 이런 드로잉집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엔 국내작가들의 드로잉집은 아예 구경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테마로 자신만의 드로잉집을 내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이 분야도 점점 레드오션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이 책의 드로잉들은 일단 부담이 없다. 현란한 테크닉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이런 식으로 스케치북을 채워볼까하는 그런 단순한 스케치들이 맘에 든다. 그림을 잘 그리건 못 그리건 뭐 이 정도 수준에서 내 개성을 보여주는 드로잉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용기를 작가는 은근히 주입시켜 준다. 

결국 재능은 연습에서 오는 것일게다. 하지만 그 연습도 드로잉에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애정은 그것이 드로잉이건 뭐건 사실 상관없다. 작가는 그럼에도 못그리고 또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를 내면화된 두려움이라고 진단한다. 표현할 수 없다는 두려움 또는 표현해선 안된다는 강박관념. 세상에 이 작은 드로잉집은 독자들의 심리치료까지 담당할 모양이다.

선 하나 하나가 그냥 그려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결국 그리고 또 그려나가면서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스케치북은 하나의 작품집이 될 것이다. 독자들은 작가가 설정해 놓은 11개의 테마별 스케치들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실력이 늘어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즐거움을 알려면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드로잉이 화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은 세상 모든 분야가 드로잉을 요구한다. 인류 최초의 예술 행위가 드로잉이었고 수만년이 흘러 과학적 탐구의 순간에도 드로잉은 필요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잡아두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도 드로잉은 훌륭한 표현 수단이다. 작가는 말한다. 겁먹지 말고 내키는데로, 하고 싶은 만큼, 맘껏하라고 유혹한다. 그 유혹에 한번 넘어가 보라. 어느덧 상당한 경지에 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양장본이다. 책 껍질이 얄팍한게 아니라는 말이다. 두꺼운 커버 때문에 오래도록 곁에 두면서 보고 또 보며 실력을 연마할 수 있다. 작가와 출판사 예담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럼 이제 나도 두려움 없이 나만의 스케치북을 만들어 봐야겠다. 그 전에 명함부터 디자인 해야 한다. 에혀 카페 개업하고 한달이 다 되었는데도 명함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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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설기도
김소진 지음 / 베다니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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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는 거의 서평작업을 하지 않았다. 최근 내 처지가 한가하게 독서삼매에 빠질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가족들을 서울에 놔두고 혼자 제주로 내려와 살길을 모색중이다. 몇달 째 길이 막혀 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같이 따라나오지 않는 아내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슴 속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어떤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토설기도>라는 책을 만났다. 

책은 나에게 외식의 벽을 깨고 정직하게 토해내라고 주문한다. 우리들은 기도로 나아가지 않고 분노의 감정에 빠져서 자신이 칼을 들고 설치기가 쉽다. 아니면 사람에게 우리의 감정들을 토해내기 쉽다. 우리가 직접 분노하고 칼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을 의지하여 사람에게 아픔을 토해내면 실망하고 허무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내에게 내 감정을 토해냈다면 아내와 나는 영영 남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토해내야만 했다. 따라오지 않는 아내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로는 내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토설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토해 내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그렇게 토설기도를 계속하게 될 때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만져 주시며, 우리 안에 평강을 주신다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이 ‘펑’하고 뚫리도록 해주신단다. 속사람이 강해지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기도하면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던 것이 사라지게 만든단다. 오늘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되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되므로 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토설기도는 마치 만병통치약 광고처럼 내게 다가왔다. 믿음으로 살려고 했던 다윗도 계속적으로 주변으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당하였다. 그때 어떻게 했나?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3-8)

이 책은 저자의 삶과 주변인의 삶 속에서 경험한 토설기도의 체험을 담고 있다. 토설기도가 현학적인 인식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건져낸 삶의 지혜라는 이야기다. 제주의 주변 지인들에게 토설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대부분은 그런 기도는 안한다고 말을 한다. 요번 주에 서울에 잠시 다녀와야 했다. 서울의 지인들에게도 토설기도를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대부분이 토설기도 경험이 있다고 말을 한다. 제주와 서울의 지역적 차이말고 또 다른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제주보다는 서울의 삶이 더 치열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은 문제를 안고 산다. 또한  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 것이다. 서울에서 수리를 맡긴 노트북을 찾아나오다가 버스정류장에서 한눈 파는 사이에 도난을 당했다. 그 순간 사람들이 다니는 한 길가에 서서 열심히 토설기도를 했다. 노트북을 가져간 놈의 다리가 부러지게 해달라고 저주하며 기도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마음에 평정심이 돌아왔다. 지금은 노트북을 가져간 사람이 잘 쓰게 해달라고 기도가 나온다. 그 노트북엔 수천장의 기독교 성화사진이 들어있다. 수년간 모아놓은 수고의 산물이다. 그 성화들로 그 사람이 변화되기를 기도해 본다.

아내는 역시 그냥 서울에 남겠단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도 지금은 담담해진다. 나는 이미 하나님께 그녀에 대한 문제를 토설했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이 일을 하실 차례다. 아내도 나에 대해 토설기도를 했단다. 나를 저주하고 비난하고 그리고 이젠 용서했단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이제 서로에게 직접적인 언어공격을 피한채 하나님께 의지한다.

다시 제주에 내려왔다. 다음달부터는 조그만 여행자카페를 시작한다. 그걸 운영하면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토설기도의 소재로 등장할까? 내겐 원수같은 사람들이 결국 내 선한 이웃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방법을 안 셈이다. <토설기도>의 저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저자에게 영감을 준 성령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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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칼
데이빗 월커슨 지음, 탁영철 옮김 / 베다니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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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음성에 순종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온전히 바쳐나가는 여정,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감동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때문이다. 이 책이 나에게로 온것도 순탄치 않았다.인터넷 카페의 서평단 모집에 응모했고 선정이 되었지만 책은 몇주가 지나도 우송되지 않았다. 일주일 간격으로 카페 게시판에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글을 올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관리자에게 쪽지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책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내게 어렵게 다가왔고 한동안 울어본 적이 없는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다. 그러나 그 모든 드라마들이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감동은 진실에서 나온다. 위선은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 진실이 있다고 나를 믿게 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나에게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1500만명에게 동일한 경험을 부여했고 영화배우 팻 분(Pat Boone)이 나오는 5천만명이나 감상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팻은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더이상 "예전과 같은 사람으로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한다. 나 또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 삶에 간섭하시는 어떤 힘이 존재함을 느낀다. 독자들도 그 경험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펜실베이니아 서부지역의 작은 시골교회 젊은 목사인 데이빗 윌커슨은 어느 늦은 밤, 서재에 앉아서 <라이프> 지를 읽다가 뉴욕에서 소아마비 소년을 일곱명의 아이들이 칼로 살해한 사건을 담고 있는 내용에 눈이 멈추었다. 가해자인 한 소년의 사진에서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소년의 눈빛에 나타난 당황함과 증오와 절망이 그의 뇌리를 사로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뉴욕에 가서 그 소년들을 도우라"

우리는 누구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산다. 이 내면의 소리는 항상 두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하라'와 '하지마라'다. 선택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지만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쪽이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혼란스러움을 핑계로 자신에게 들리는 그 내면의 소리를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더 이상 내면의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데이빗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명령에 순종한다.

뉴욕에서 그는 수많은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고 마약과 폭력에 시달리고, 분노와 섹스에 탐닉하는 그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은 이내 큰 물결처럼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었다. 이 책은 그 순종으로 얻게되는 놀라움 체험들로 빼곡하다. 칼을 버리고 십자가를 택한 십대 불량청소년이었던 니키는 이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런 베이비 런>(Run, Baby, Run)의 저자가 되었다.  

현재 전세계에 위기상담 및 홈리스를 위한 거주센터를 두고 있는 청소년 사역센터 '틴 챌린지'의 시작과 성장이 이 책의 주요 줄거리다. 책은 벌써 45번째 특별기념판으로 나올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책의 주인공인 데이빗은 2011년 4월, 80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그가 교통사고로 죽기 전에 올린 블로그 글에서 위로를 받는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지금 당장은 네게 이유를 말해 줄 수 없지만 언젠가는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내 계획의 일부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네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견고히 붙들어라. 네 고통의 시기에 나로 너를 품안에 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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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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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삽화도 잘 그리지만  

글은 또 얼마나 잘 쓰는지 
 

 

 제주 촌놈이 서울에서 장가들고 거기서 직장 다니고 아이들을 길렀다. 20여년 세월을 그렇게 서울에서 보냈다. 게다가 건축잡지 기자로 일했으니 서울 구석구석 안가본 곳이 없다고 자부할만하다. 그런데 이 책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보고서는 꼬랑지 내리고 말았다.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올레 17코스를 걷다가 들어간 카페 닐모리동동에서였다. 카페 손님들을 위한 책꽃이에서 이 책을 찾아낸 초등학생 아들이 먼저 급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빠! 이 책 좀 봐바.", " 뭔데?", 아들 손에서 책을 나꿔챈 나는 한참을 책 속에 빠져들어갔다. 책 속에 그려진 시간들은 그 서울의 시간들은 결국 나의 시간들이었다. 나는 지금 홀로 제주에 산다. 겨우 육개월째이지만 그래도 더더욱 내가 보낸 서울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아들은 이 책 서평이 완료되면 빨리 책을 보내 달란다. 아들에게도 서평을 써보라고 해야겠다. 
 

 

도시공학을 전공한 일러스트의 시각으로 바라 본 서울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수백년의 적층을 들춰내다보면 또 나오고 또 나올 것이다. 해외 도서들 중에 이런 류의 책들을 간혹 본적이 있다. 파리나 뉴욕의 뒷골목 스케치와 함께 소소한 단상의 글들이 들어 있는;;;. 그런데 그런 책들에 대한 부러움을 이 책이 일거에 날려버렸다. 게다가 그 풍부한 삽화라니;;;; 도대체 신은 왜 이리 불공평한거람? 이 사람. 삽화도 잘 그리지만 글은 또 얼마나 잘 쓰는지 몰라;;; 처음엔 그저 네이버백과에나 나온 글이려니 하고 들여다 보는데 하나하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손과 발로 만져보고 걸어본 이야기들로 채워 넣은 것이 아닌가;; 정말 불공평해;;;; 집요함까지 주시다니;; 헐헐;;;;

요즘 블로거들은 카메라 찍기가 대세다. 그래서 다들 웬만하면 데세랄(DSLR)을 들고 다닌다. 파워 블로거들 중에는 그동안 찍고 쓴 단상들을 모아 책 한 권 내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또 하나의 유행이 있다. 10년도 더 전에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목터지게 외쳤었지만 찻잔의 태풍으로 끝나버린 그 구호가 이제는 우후죽순처럼 서점가의 진열대를 장악해 버린 것이다. 나는 이 현상이 너무나 반갑다. 주커버그가 모든 사람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것을 꿈꾸던 그 상상력으로 페이스북을 만들었듯이 재기발랄한 이런 작가들이 계속 등장해 그 충만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독자들의 눈을 그리고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주니 말이다. 가히 이제 세상은 인문학적 상상력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은 안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시와 골목, 최신식 건물들과 유적과 심지어 유물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이 책과 카메라를 들고 작가가 걸은 길을 따라가 보고 그가 그린 스케치와 동일한 앵글을 찾아내서 찍어보라. 어차피 당신은 이 작가만큼의 스케치 실력은 없을테니까;;;;(앗 아니라구요? 죄송;;;) 그리고 작가가 찾아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지 그것도 탐색해 보라. 이제 블로그 쓰기 창을 열어 몇번 정리해 가다보면 당신의 표현력이 갑자기 쑥쑥 자라난 것을 느낄 것이다. 당신의 안목이 더 성장했음을 미리 축하하고, 그 감사는 저자 이장희에게 돌려라. 그의 다음번 도전이 자못 궁금해 진다. 

흠 잡을데 없는 이 책에서 딱 한가지 굳이 대라면;;; 글이 조금 독백조다;;; 그래선지 너무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이다. 다음번에는 좀 통통 튀는 그의 글 맛을 기대해본다. 왁자지껄 따라다니는 탐방객들 앞에 서서 마이크 잡고 웃겨주고 울려주는 그런 목소리를 담은 글이라면 어떨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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