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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와버렸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였다. 일년을 그래픽디자인학원을 다녔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하지만 그후로 디자인으로 밥을 먹고 살지는 않았다. 이제는 인생이란 꿈꾸는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임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이런 책에 눈길이 간다. 글 한 두줄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듯이 빼곡하게 채워진 드로잉들도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도없는 빈 종이들을 채워야 그나마 볼만한 그 무엇이 만들어진다. 

살다보니 문득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뭐 거창하게 캔버스를 장만하고 그럴 건 아니다. 작은 스케치북 정도에 채워넣을 그런 그림들을;;; 작가는 이 스케치북 프로젝트를 자신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듯이 나도 지금 살고 있는 매너리즘에 빠진 삶을 극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것도 내 젊은 시절 무언가를 위해 도전하던 그 시절에 몰두했던 그림 그리기로 하면 어떨까? 

예전에 이런 드로잉집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엔 국내작가들의 드로잉집은 아예 구경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테마로 자신만의 드로잉집을 내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이 분야도 점점 레드오션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이 책의 드로잉들은 일단 부담이 없다. 현란한 테크닉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이런 식으로 스케치북을 채워볼까하는 그런 단순한 스케치들이 맘에 든다. 그림을 잘 그리건 못 그리건 뭐 이 정도 수준에서 내 개성을 보여주는 드로잉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용기를 작가는 은근히 주입시켜 준다. 

결국 재능은 연습에서 오는 것일게다. 하지만 그 연습도 드로잉에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애정은 그것이 드로잉이건 뭐건 사실 상관없다. 작가는 그럼에도 못그리고 또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를 내면화된 두려움이라고 진단한다. 표현할 수 없다는 두려움 또는 표현해선 안된다는 강박관념. 세상에 이 작은 드로잉집은 독자들의 심리치료까지 담당할 모양이다.

선 하나 하나가 그냥 그려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결국 그리고 또 그려나가면서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스케치북은 하나의 작품집이 될 것이다. 독자들은 작가가 설정해 놓은 11개의 테마별 스케치들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실력이 늘어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즐거움을 알려면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드로잉이 화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은 세상 모든 분야가 드로잉을 요구한다. 인류 최초의 예술 행위가 드로잉이었고 수만년이 흘러 과학적 탐구의 순간에도 드로잉은 필요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잡아두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도 드로잉은 훌륭한 표현 수단이다. 작가는 말한다. 겁먹지 말고 내키는데로, 하고 싶은 만큼, 맘껏하라고 유혹한다. 그 유혹에 한번 넘어가 보라. 어느덧 상당한 경지에 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양장본이다. 책 껍질이 얄팍한게 아니라는 말이다. 두꺼운 커버 때문에 오래도록 곁에 두면서 보고 또 보며 실력을 연마할 수 있다. 작가와 출판사 예담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럼 이제 나도 두려움 없이 나만의 스케치북을 만들어 봐야겠다. 그 전에 명함부터 디자인 해야 한다. 에혀 카페 개업하고 한달이 다 되었는데도 명함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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