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에 대하여 - 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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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논조에 공감할 수 없지만 주옥같은 날선 비난들이 매력적인 책이다.

문대통령의 ‘복심‘, ‘측근, ‘실세‘라 불리는 사람들이 모두 ‘민주 건달‘ 로 보인다. 과거에 잠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도 덕적 우월감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는 그들. 하지만 사실은 그런 도덕적 우월감이 더 위험하다. - P19

오만함도 층위가 있다. 조금이라도 겸연쩍어할 줄 아는 오 만함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내면의 절제나 외부의 견제가 작 동하지 않아 공격성까지 띠는, 뻔뻔한 오만함도 있다. - P25

우리에게는 내 부모처럼 나도 노동자이고, 따라서 내 자식 도 노동자가 되리라는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 주력부대가 형 성되어 있지 않다. 반면 유럽은 1848년 2월 혁명으로 앙시앵레 짐이 무너지고 특권계급이었던 귀족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 면서 유산자계급과 무산자계급이 확연히 분리되어 지금까지 이 어져왔다.
노동자는 많지만 노동자 의식은 드문 곳에서 부당하고 억 울한 일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 식하기 어렵고, 연대 의식의 토대 또한 탄탄해지기 힘들다. - P36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로 운 사람들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 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볼테르 - P41

세상에는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 다. 다만 인종주의적 언행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나와 다른 인종, 종교, 문화를 가진 대상을 차별 배제• 억압하고, 마침내는 혐오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순서일 듯싶다. - P55

애당초 나에게 조국 가족이 벌인 ‘기회의 사재기‘가 기소 요건 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물음이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교육계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불평등의 세습‘을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해 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교육이 한 사회의 생산력을 확장시켜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준다고 믿 을 근거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 르디외와 장클로드 파스롱(Jean-Claude Passeron)이 "교육은 사회 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반세기 전의 일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설령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해도 그는 이미 개천 사람 들을 대변하지 않지만 말이다. - P67

앞으로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갈 구성원에게는 자본주의에 관한 교육, 특히 노동 인권에 관한 교육이 주체성과 비판성뿐만 아니 라 연대성 함양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주체성 없는 자유로운 시민은 형용모순이다. 연대성이 없으면 공동선 •공익을 추구할 수 없고, 비판성이 없으면 법의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적 권력과 금력이 지배하게 된다.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은 민주적 공간인 학교에서 이 세 가지 요체를 함께 배우고 익힌 다음 각자의 자질 과 능력에 따라 사회에서 자기 직분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우리 공교육이 경쟁 지상주의에 압도되어,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은 형성하지 않고, 기능적인 능력만으로 학생들 을 서열화하는 과정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간디는 일찍이 7대 사회악으로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 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 앙‘을 꼽았다. 우리 공교육은 특히 ‘인격 없는 지식‘과 ‘인간성 없 는 과학‘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우리의 교육 현장은 배움의 터가 아니라 경쟁의 장이다. 아무에게나 물어보자. 학교에 왜 가 냐고?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사 람이 누구이며, 경쟁에서 앞자리를 차지하여 상위권 대학에 가 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인가? 이 경쟁의 과정 에서 인격이나 인간성은 설자리가 없다. - P85

우리는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좋은 대상에 익숙해지면 권태나 싫증을 느끼고, 나쁜 제도에 익숙해 지면 별 저항 없이 더 나쁜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며, 우리를 둘 러싼 공간에 익숙해지면 그 공간에 대한 판단력을 잃게 된다. - P96

조국 사태로 함께 동굴에 갇힌 진영과 논 리들,"지적 오만함은 파벌적일 때 가장 치명적이다"(마이클 린치 의 『우리는 맞고 너희는 들렸다.)를 시연한 ‘빠‘와 ‘양념‘의 정치들, 검찰과 언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작 정치의 소음들만 가득 하다. 정치 현상의 놀라운 과잉에 비해 정치는 실종되었고, 그리 하여 사회는 보듬어지기는커녕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 P106

온정과 시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 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는 것은 분 명하다. 남의 온정과 시혜가 필요한 상황, 그것 자체가 이미 인 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의 존엄성은 사적 온정과 시혜의 영역에서 공적 분배와 권리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삼권 등으 로 자본주의사회에서 약자의 권리를 신장해왔다. 다시 말해, 비 참하거나 고단한 민중의 삶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엷어진 만큼 공 적 분배와 권리가 확장되고 노동자의 권리 또한 신장되었던 것 이다. - P117

뒤트롱의 기회주의자처럼, 나는 착취자도 두렵지 않 고 선동자도 두렵지 않아요. 나는 유권자들을 믿어요. 내 이익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지요‘. - P126

오늘날 박 정권과 박 정권을 떠받치는 수구 세력이 일본의 식민 체제 아래에서 조선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공감한다 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학살과 고 문 행위에 대해서는 왜 그리 둔감할까. 아니, 둔감하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그들이 바로 학살과 고문, 간첩 조작 등 국가 폭력 행위의 주체였거나 거기서 싹튼 세력이기 때문이다. 실상 아베 신조에게는 가소롭게 비칠지 모른다. 자국민을 학살하고 고문한 자들이 식민지 조선과 조선 사람을 유린했다고 일본을 손가락 질할 수 있나? 더구나 일본의 식민 체제에 빌붙어 사적 안위와 영달을 추구했던 자들이? - P132

무릇 못난 자일수록 자신의 무능을 탓하기에 앞서 남부터 탓한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 그에 맞는 능력과 책임 의식 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156

개인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 비해 언론의 자유가 위 축되었다고 느낄 만큼 자기 검열을 하며 이 글을 쓴다. 사모펀드 가 불법이냐 아니냐를 떠나, 사모펀드와 사회주의자라는 조합은 내게 사회주의에 대한 능멸로 느껴졌다. 나는 원외 소수 정당인 노동당의 당원으로서, 지금껏 사회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 다. 문재인 정권의 고위 공직자 중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고 칭한 조국 법무장관이 사모펀드와 연관된 유일한 인사라고 한다. - P174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상징폭력은 피지배자에게 사회적 위계를 정 당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물리력에 의존하 지 않고도 복종하게 하는 지배 기제다. 몸에 가하는 폭력과 달 리, 상징폭력은 피지배자에게 지배자의 세계관, 의식, 욕망을 내 면화하게 한다. 그 결과 피지배자는 열등감, 즉 스스로를 부정적 이거나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와 서민은 돈 과 권력을 가진 사람, 정치인, 연예인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관심 을 갖는 반면, 자기와 같은 처지의 노동자 서민에게는 무관심하 다. 관심이 없으니 노동자 서민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에는 분노 를 느끼지 않는 반면, 좋아하는 정치인과 연예인이 겪는 작은 고 통과 불행에는 열화와 같은 분노를 느낀다. 프랑스처럼 공교육 등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계급의식이 형성되는 곳에서도 상징 폭력이 관철된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조국이다!" 같은 구호가 별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서초동 집회 참석 인원이 200만 명이든 20만 명이든 11시간 압수수색에 분노 했다는 그들 중에 100여 일 동안 강남역 사거리 철탑 위에서 허 공의 새가 된 김용희 씨,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에도 위험의 외 주화로 일터에서 생명을 잃고 있는 하청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석 달 넘게 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는 톨게이트 노동자에게 관심 을 갖고 분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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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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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하신 연세에도 정신이 정정하셔 책까지 낼 수 있는 점이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르신의 관점에서 저술한 책이 귀한 만큼 그들의 생각이 궁금해 흥미롭게 봤다.
다만 바람핀 대문호들의 사생활을 맹비난을 하더니 정작 첩을 거느린 본인 아버지의 경우는 잘생긴 아버제를 카바레에 데려간 어머니의 잘못이라고 탓하는 걸 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 합리화는 이 사람도 피해가진 못했나 보다.

『독서의 위안」(송 호성, 화인북스)이라는 책을 보았다.
"책을 읽는 목적은 우선은 자신의 식견과 안목을 높이 는 데 있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쿨co이 해지는 데 있다. ‘쿨해진다‘는 건 냉정해진다기보다는 냉철 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세상을 등지는 게 아니라 세상과 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걸 뜻한다." - P6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정황을 묘사하느냐 하 면 누군가 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한 죽음에 따른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 을 부부 중 남은 쪽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 이다. 이러니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 이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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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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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단정한 느낌이 들고 동시에 온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곧 깨달았다. 면도도 잘 안 하고 후출근해 보이는 이 말라깽이 청년은 자신을 위해 철저히 반자본 주의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했다. 그는 사람들의 인성을 믿었다. 그는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보다 이 작은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에 도덕적 의무라는 유동자산을 저축하기를 더 좋아했다. - P10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 P15

그 중요한 순간에 그를 저버리고 만 것은 공감 부족이나 무관심, 못된 의도가 아니었다. 가장 필요할 때 올바 른 말을 못 하게 막는 것은 많은 경우 용기 부족인 것 같다.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P20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삶의 오랜 가치(일, 사랑, 우정, 예술, 자연 등)가 더욱 중요해졌다. - P25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돈의 실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기차는 붐볐고, 우편물은 제 시간에 도착했고, 제빵사는 빵을 굽고, 농부는 땅을 일구고, 아이들이 잉태되고 태어났으며, 모두가 예전처럼 자신의 소명, 성향, 재능대로 살아갔다. 나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일했고, 어쩌면 심지어 그 어느 때보다 더 훌 륭하게 집중해서 일했던 것 같다. - P25

돈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의 진수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보 존하고 수호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 P26

그런데 이 시대의 우리는 정말로 세계적 격변을 모두 목격하고 그것에 빈틈없이 참여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 렇게 묻는 게 더 낫겠다. 이 시대의 우리는 쏟아지는 이 모든 사건을 매일, 매시간 주의를 기울여 따라갈 여력 과 참여의식을 충분히 가졌을까? 솔직하게 자문해 본다면,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 끊임없이 닥치는 높은 긴장 에 대처할 여력이 없고, 우리는 그저 이따금 좌절과 절망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볼 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 P31

세계의 극이 길어질수록 장면은 점점 더 끔찍해지고, 사건이 자극적일수록 그것을 진심으로 연민하는 능력이 더욱 줄어든다. 전쟁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은 마음을 파괴하고, 시대가 우리에게 연민을 더 많이 요구할수록, 우리의 지친 영혼이 느낄 수 있는 연민은 더 줄어든다. - P32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하지 않은 모든 사건에 관심을 둘 의향이 매우 강하고, 그것에 몰두하고 참여하려는 의 지가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소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모두 더 강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 자 연법칙은 우리의 참여 의지와 공감 능력을 현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제한한다. 강한 흥분이 연속되면 필연적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너무 오래 계속되는 과도한 긴장은 일종의 마비를 일으킨다. - P32

그러므로 역사적 시대의 모든 낭만적 상상을 진실에 맞게 지우면,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바로 그 시대를 사 는 사람들은 사건을 경험하고 그에 참여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잊으려 애쓴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 P32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사방에서 벌어지더라도 일상생활은 평범하게 계속 이어진다 - P32

그것은 우리가 비인간적이어서가 아니라, 작은 심장 하나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 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역사적 시대 에 너무 많 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이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에서 잠시 떠나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는다 면, 이는 그것을 감당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선한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 P33

그러나 4년쯤 이르자 피로감이 밀려왔고, 어쩌면 미미한 익명의 소시민인 자신들이 역사적 시대에 얼마나 무 력하고 무의미한 존재였는지 깨달았을 테고, 해석하기도 힘든 정치적 사건에 무의미하게 몰두하기보다 차라 리 자기 일에, 조용하고 사적이며 눈에 띄지 않는 일상생활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터다. 그리고 이 는 결국 더 강한 자연의 의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자연의 의지는 연속성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어떤 중단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은 사람들 일부가 무참히 파괴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끈기 있게 인내하며 일상생활 을 이어나가길 요구한다. 우리가 때때로 시대에 무관심해 보인다면, 그것은 자기 피조물의 고통에 무관심한 자연의 잘못이다. 그리고 무너져 가는 세계의 폐허를 계속 노려보는 대신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게 된다. - P34

그리고 지금 내가 무엇을 가장 깊이 괴로워하는지 자문하면, 목숨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연민을 느 끼는 공감 능력까지 죽이는 이 엄청난 고통의 시대에, 모든 일에 연민을 느낄 여력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것 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 P34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 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 P63

작가는 조국을 떠날 수는 있어도, 창작하고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와는 갈라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독일어로 나치의 자기 신격화에 맞서 줄곧 싸워왔고, 바로 이 독일어야말로 세계를 파괴하고 인간 존엄을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범죄적 망상에 맞서 싸우는 데 쓸 수 있는,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입니다. - P63

처음에 그를 당혹스럽게 했던 센강의 낚시꾼 일화에서, 그는 혁명의 정점인 루이 16세 참수에도 아무 일 없다 는 듯 느긋하게 미끼를 던진 낚시꾼들의 무관심을 1940년 전쟁 최전선에서 매일 접하는 새로운 충격적인 보 도에 아랑곳하지 않는 동시대 사람들의 무감각과 비교한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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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남편의 아름다움 -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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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치게 하는 지독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 여자와 그 모든 것의 이유가 된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다룬 이 작품 - P3

시인들이 (관대하게 말하자면) 아이러니의 층 아래 진실을 감추는 걸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층적이고 규정하기 힘든.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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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룻밤에 다 읽는 경제 에스프레소 금융 - 29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돈의 역사
김종승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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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개념을 그것들의 탄생 비화를 알아가면서 공부하니까 신기할 정도로 쉬웠다.

금융 서비스 제공자의 형태나 금융상품 종류는 천차만별이지만, 금융이 수행하는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금의 이전과 중개 기능이다. 금융은 여유자금을 모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해주며, 중개 시스템을 통해 자금이 결제된다. 두 번째는 자금의 관리 기능이다. 금융은 우리의 자산을 안 전하게 보관해주는 기능을 넘어 적극적인 운용과 투자를 통해 재산 형성에 기여한다. 세 번째는 위험관리 기 능이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사고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험 같은 금융의 위험관리 기능을 활용하면 앞으로 닥칠 손실이나 재난에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 P6

기독교에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것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이로 써 예수 사후 지속되어온 기독교 박해는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392년에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 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는 과거부터 이어져온 금융 관행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노동 없이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으로 죄악시했기 때문이다. 다음 성경 구절에서도 드러나듯,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는 교회법에 정면으로 저촉되는 일이었다. - P29

이를 근거로 유대인은 일반적인 상업 형태를 벗어나 금융업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외국인에게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더라도, 형제들로부터는 이자를 받지 마라. - P32

중세 기독교 교리와 금융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의 노력에 의해서였다.
대표적인 인물은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며 종교개혁운동을 촉발했던 마르틴 루터였다. - P34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 충돌을 불러온 사건이지만, 유럽과 중동, 아시아 지역 사이의 교역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들 지역의 길목에 위치한 지중해 인근 도시들은 그로 인한 최대 의 수혜 지역이었다. 이탈리아의 제노바, 베네치아, 피렌체, 피사 같은 도시들이다. 이 도시들은 천혜의 지리 적 장점을 바탕으로 12세기 말 이후 무역과 금융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다. 템플기사단의 해체로 야기될 법한 금융의 공백 상태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훗날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금융 중심지가 이동하기까 지 약 4~5세기 동안, 금융이라는 무대의 주역은 단연 이탈리아인 차지였다. - P45

14세기 초반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 이전에 유럽 최대의 금융가로 군림했던 두 집단의 영향력이 두드러졌 다. 바로 피렌체의 연대기 작가 조반니 빌라니가 ‘기독교 세계를 떠받치는 두 기둥"으로 묘사했던 바르디 가문 과 페루치 가문이다 - P49

화폐를 직접 지니는 데 따른 위험을 덜 수 있게 된 것은 이 시기 나타난 새로운 금융상품 덕분이었다. 바로 12 세기 말, 이탈리아 상인들이 널리 활용하기 시작한 환어음bill of exchange이다. - P54

이 시기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은 실상 대단한 재력가들이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막대한 부를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청빈, 희생 같은 기독교 덕목에 반했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을 죄악시하던 교회법상 예금 을 맡기고 이자를 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교회법을 따라야 하는 왕실과 귀족도 마찬가지였 다. 이 때문에 성직자나 고위 권력층에게는 자신의 돈을 은밀하지만 안전하게 불려줄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 보다 절실했다. - P64

이와 같이 금세공업자가 발급한 증서는 단순한 보관증 이상의 기능을 발휘했다. 상인들 간에 자유롭게 주고받 을 수 있는 상거래의 교환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거래 관행이 자리 잡자, 결국에는 보관증 소지자의 요구에 따라 지급의무를 부담한다는 증표로서의 성질을 갖게 되었다. - P68

금세공업자의 경험에 따르면, 고객이 금고 안의 돈을 직접 찾으러 오는 경우는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나 머지 90퍼센트는 금고 안에서 잠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객이 맡긴 돈이 총 1,000파운드라면 100 파운드만 금고에 남겨두더라도 고객의 인출 요구를 감당하기 충분했다. 이를 기초로 금세공업자는 금고 안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남몰래 빌려주었고, 이는 금세공업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이런 모습은 현대의 은행들이 부분지급준비금 제도를 통해 새로운 돈을 만들어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P69

메디치 가문만큼이나 금융 역사의 많은 페이지를 장식한 가문을 꼽자면 단연 로스차일드 가문일 것이다. 메디 치 가문을 통해 근대 은행의 면모가 갖추어졌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머천트 뱅킹merchant banking이라 는 새 영역을 개척하며 국제금융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 P92

1602년, 네덜란드는 동인도 지역과 무역거래를 하던 소규모 회사들을 통합해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라는 하나의 회사를 설립했다. - P107

주식을 발행하는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주식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주식이 발행되면 주주 들은 투자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이는 회사 운영을 위한 기초적이고 영구적인 자본을 형성한다. 대출거래에서 부담하는 채무와 달리 회사는 주주에게 약속된 시점에 돈을 갚아야 한다거나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 회 사의 운영 성과에 따라 발생한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면 그만이다. 물론 사업이 부진하면 배당금 을 지급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처럼 채무 상환의 부담 없이 거액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식은 대단히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조달 수단으로 기능한다. - P116

채권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주식보다 훨씬 이전인 12세기 무렵이었다. 지중해 북부 아드리아해의 지배권을 두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베네치아와 비잔틴제국이 벌이던 전쟁이 그 발단이었다. 당시 비잔틴제국에 맞서 함대를 구축해야 했던 베네치아로서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흔히 쓰이던 방식은 자국 민을 상대로 세금을 걷거나 금융가 집단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도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인 1172년, 베네치아 정부는 새로운 해결책을 떠올렸다.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었다. - P118

당시 신흥 국가로 부상하고 있던 미국 역시 남북전쟁이나 철도 건설 같은 사업을 위해서는 유럽 자본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내에는 그만한 돈을 빌려줄 은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의 투자자들을 상대로 채권을 판매해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채권과 유럽의 자본을 연결해준 대표적인 인물은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Junius Spencer Morgan이었다. 모건 금융 왕국의 선구자와도 같은 인물이다. - P122

펀드란 투자자로부터 모은 돈을 공동으로 운용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나눠주기 위한 투자의 한 수단이다. 펀 드는 이전의 방식과는 구분되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투자 수단이었다. 펀드가 나타나기 전까지, 투자란 개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직접투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투자 대상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투자자 자신이었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은행에 예금을 맡기거나, 증권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매입하는 것 이 일반적인 투자 형태였다.
하지만 펀드를 통한 투자에서는 투자자가 이런 일들을 직접 하지 않는다. 투자자는 투자금만 납입하고 실제 투자는 여러 단계를 거쳐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P138

그에게는 시장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언제든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방안이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헤지드펀드Hedged Fund의 출발점이었다.
이를 위해 윈슬로는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에 매입전략과 매도전략을 동시에 구사했다. 저평가된 주식을 매 입하되 고평가된 주식은 공매도를 통해 미리 매도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레버리지전략 도 함께 구사했다. 펀드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 투자 규모를 확대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투자전략을 구사 해 20년간 펀드를 운용한 결과는 놀라웠다. 누적 수익률이 4,800퍼센트에 달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이름과 투자 스타일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1966년, 그가 이룬 투자성과가 <포춘〉 지를 통해 알려지자 비슷한 패턴을 따르는 펀드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그가 마련한 투자전략이 헤지펀드 운용 의 기본 원리로 활용되었음은 물론이다. - P156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의 일반적인 전략은 롱전략long strategy(매수전략)이다. 가치 상승이 예상되 는 주식 같은 투자 대상을 사두고 가격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이다. 예상했던 대로 가격이 오른다면 수 익을 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손실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통전략과 함께 숏전략short strategy(매도전략)을 동시에 구사한다.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종목은 매수를 통해, 가치 하락이 예상되는 종 목은 매도를 통해 손실을 피하고 추가 이득을 얻고자 한다. 주식시장에서는 흔히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하고 고평가된 주식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숏(매도)전략을 실행할 때 주로 쓰이는 것이 공매도short selling다. 주식 같은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투자은행 같은 제3자로부터 주식을 빌려 시장에 파는 방식이다. 헤지펀드는 빌려서 판 주식의 가격이 하락하면 이를 싼 가격에 매입해 빌린 기관에 되갚으면 된다. 이때 헤지펀드는 공매도한 주식을 내다 판 가격과 이후 매입한 가격의 차액만큼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 P157

보험대차 방식에 따르면 항해에 나서는 상인들은 선불 수수료를 지급하고, 그 대가로 항해 실패에 따른 위험 을 금융업자에게 부담시켰다. 이를 위해 활용된 것은 선박이나 화물에 대한 ‘가상‘의 매매 계약서였다. 다만 계약의 효력은 아래 그림과 같이 항해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달리 취급되었다. - P192

이 같은 방식은 위험한 항해가 성공해야만 금융업자가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흔히 모험대차‘로 불린다. 이 는 세부적으로 보자면 무역상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기능과, 고율의 이자를 부과해 위험을 인수하는 기능이 결 합된 형태였다. 하지만 대출과 이자 징수라는 형태를 띠고 있는 한, 고리대금을 금지하던 교회법의 제한을 비 켜가기 어려웠다. 13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모험대차에 대해서도 정식으
로 문제를 제기했다. - P192

보험대차 방식에서는 교회법상 금지되던 대출이나 이자 지급에 관한 내용은 배제되었다. 상인이 지급하는 선 불 수수료는 오늘날 보험료와 유사했는데, 이를 통해 항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이후 보험대차를 활용해 위험만을 인수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자, 종전의 모험대차 방식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갔다. - P193

런던 대화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지만, 다른 한편 여러 방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우선 대화재 이후 당시 런던에서 유행하던 페스트가 자취를 감추었다. 비위생적이었던 주변 환경과 전
염병의 감염원이 모두 불타버린 덕분이었다. 소방대를 창설하고 체계적인 소화전 시설을 마련한 것도 런던 대 화재로부터 얻은 교훈이었다. 이와 더불어 새 건물을 지을 때는 반드시 석조나 벽돌을 사용하도록 했다. 오늘
날 여행객들이 동경하는 런던의 풍경이 조성된 것도 이즈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한편 금융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바로 화재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의 새로운 금융상품이 생 겨난 것이다. 해상보험 이후 새롭게 나타난 보험상품은 니컬러스 바본Nicholas Barbon이라는 사업가의 노 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의사이자 건축사업가로서 더 큰 성공을 꿈꾸고 있던 그에게, 런던 대화재는 획기적
인 사업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 P198

현재‘ 시점에서 거래가격이나 수량 같은 거래 조건을 미리 정해두고, 결제는 ‘미래의 특정 시점‘에 하도록 하 는 거래를 선도거래forward contract라 한다 - P236

변동환율제는 새로운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를 촉발시켰다. 환율 변동에 따라 나라별로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 고, 그에 따른 경제적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때 활용한 것이 파생상품의 일종인 통화선물이다. - P242

그러나 1971년 8월, 미국 닉슨 대통령에 의해 이와 같은 고정환율제는 사실상 붕괴되고 말았다. 미화 35달러 를 금 1온스와 교환해주는 종래의 기준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금 태환 정지 선언이다.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함께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로 달러화 발행이 크게 늘어난 것이 주원인 이었다. 기존처럼 미화 35달러와 금 1온스를 교환했다가는 중앙은행에 보관한 금이 순식간에 동날 것이 뻔했 다. 결국 1976년, IMF 역시 고정환율제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각국의 선택에 따라 변동환율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 P242

하지만 어려움이 무엇이건 간에 그 해결책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이 필요할 뿐 이다. 거래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영국의 기업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기업을 찾아내 각자가 부담하는 의무를 상호교환하는 방식이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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